11_ 내가 영식이 형 때문에 미쳐

딱!!

술잔과 술잔이 부딪히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기분이 좋아진 마영식과 김탄은 각자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순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마영식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가 화가 난 듯 술을 마시지 않고 술잔을 거칠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김탄이 그런 그에게 의아해하고 있을 때 마영식이 허탈하게 입을 열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반장님은 정말 나만 미워하나 보네? 저번에 내가 다쳤을 땐 화부터 냈는데…”

“어휴, 그거랑 이거랑은 틀리지.”

“틀리긴 뭐가 틀려! 넌 이렇게 멀쩡히 살아 돌아왔잖아. 난 아직 이렇게 흉터가 남아 있다고!”

말을 마친 마영식이 팔 소매를 걷어 탄에게 보여줬다.

어깨 쪽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진 아주 긴 흉터가 보였다.

갑자기 영식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그가 비참한 듯 화를 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여름에 나시티를 못 입어. 내 완벽한 근육을 보여 줄 수 없다고. 여자들한테!!”

“흉터를 더 멋있게 생각하지 않을까? 뭔가 강한 남자의 스멜이 느껴지잖아.”

“어이구. 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고 다니지 마라. 모쏠인 거 티 나니까.

요즘은 나처럼 댄디로 무장한 패셔너블한 남자가 대세인 거 몰라? 그런데 흉터 때문에 나시티를 못 입다니.. 쯧.”

흉터 때문에 패션 센스에 장애가 온 마영식은 원망으로 가득 차 보였다.

김탄은 그런 그에게 딱 한마디밖에 조언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형은 여자 친구가 있잖아. 그것도 아주 예쁘고 착한 순정이 누나.”

김탄의 조언이 즉시 마영식의 우울증을 벗어나게 했다.

“맞아. 여자들한테 보여줘 봤자 더 이상 필요 없지. 내겐 순정이가 있으니까.”

“난 형이 부러워.”

순간 마영식은 김탄에게 미안했다.

세상은 불공평했기 때문이었다.

김탄처럼 모태 솔로가 있는 반면 마영식처럼 한때 수많은 여자를 거느렸던 불공평.

마영식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다시 한번 김탄이 모태 솔로를 벗어날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말을 했다.

“탄아. 형 말 한 번만 들어 봐. 너 머리 스타일과 옷부터 바꿔. 그럼 바로 번호부터 따일 거야.”

김탄이 펌도 염색도 안 한 새카만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생각했다.

‘정말 그래 볼까? 정말로 여자 친구가 생길까?’

탄은 영식의 스타일을 훑어봤다.

여자 친구가 미용사라 그런지 영식이의 머리스타일은 근사해 보였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된 살짝 컬이 들어간 투 블럭 컷의 머리 스타일.

정열을 나타내는 빨간색 브이넥 쫄티에는 옷을 입은 주인이 낭만적인 남자라는 듯 커다란 꽃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그 옷 위로 부의 상징인 샛노란 체인 금 목걸이가 반짝였다.

화려해 보였다.

반면 김탄 자신은 해진 운동화

3년 동안 매일 입다시피 한 청바지에 목과 손목이 늘어난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당연히 여자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아. 나의 신념을 버려야 하는 것인가?’

김탄은 평소 깨끗하면 된다는 패션 스타일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대로 살면 평생 모쏠을 면하기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한 김탄은 급 우울해졌다.

‘그냥 이대로 나를 좋아해 주는 여자는 정녕 이 지구 상에 없는 걸까?’

탄은 초우울해진 탓에 술을 목에 털어 넣었다.

쓴 술이 더욱더 쓰게 느껴졌다.

영식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연애 노하우를 전수해 주느라 입을 쉬지 않았다.

부어라 마셔라.

죽어라.

술잔을 부딪히고 술을 들이켜기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마영식은 알코올 분해 능력의 한계치를 초과해버렸다.

영식은 술에 취해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뜨거워진 취기에 혀가 늘어진 듯 그가 말했다.

“야~ 김 탄~ 추카한다. 주타 사라 도라오고. 자 마셔~ 오늘 한 펀 주거 보자고.”

“어휴, 도대체 몇 번째 축하하는 거야. 이제 그만해.”

“야 인마! 내가 너룰 얼마나 아키는데… 추카를 끄치 어토록 해도 모자란다고오.”

영식은 진짜 맛이 갔다.

그의 동공은 풀려 도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탄을 보고 있는 게 맞는 듯 보였다.

한 손에 들려진 술잔은 살짝 기울어져 술이 탁자로 쏟아지고 있었다.

입은 기분이 좋은 듯 헤벌쭉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침이 고여 넘칠 것만 같았다.

침이 주룩 흐르기 시작했다.

탄은 재빨리 티슈를 꺼내 영식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갑자기 영식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뤈데… 너 이 쉐키….”

“아! 미안. 침이 나오고 있어서.”

탄은 재빨리 티슈를 치웠다.

그러자 영식이 화가 난 듯 심각한 표정으로 탄에게 다가왔다.

당황한 탄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영식의 얼굴은 결국 탄의 코앞까지 왔다.

영식이 내쉬는 숨에서 술과 마늘,

그리고 온갖 것들이 섞인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탄은 내색하지 않았다.

단지 왜 영식이 형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만! 더 이상 다가오지 마!

김탄은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김탄의 입술과 마영식의 입술이 맞닿기 직전 마영식은 다가오기를 멈추었다.

다행히 둘의 접촉사고는 불발이 됐다.

김탄은 그대로 눈알만 돌려 주변을 스캔했다.

아무도 이 상황을 눈여겨보는 이가 없었다.

다행이었다.

후~

영식의 입김이 탄의 코로 들어왔다.

탄의 숨이 멎었다.

그대로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는 핀잔을 주었다.

“왜 …. 왜 이래? 징그럽게.”

“근데 왜 넌 하나토 안 추한 거엇 가트냐? 술도 야칸 노미…”

“헉. 그러게? 나 벌써 두 병째인데.”

탄은 재빨리 자신의 얼굴을 만져봤다.

뜨거운 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멀쩡했다.

마영식은 그런 탄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김탄의 주량은 소주 석 잔

마영식의 주량은 소주 세 병.

김탄이 영식보다 멀쩡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순간 영식은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도시괴담?

“나쁜 놈들. 분명히 병원에서 너한테 무슨 실험을 한 게 틀림없어!

소주 3잔이면 맛이 가는 네가 지금 두 병이나 마셨는데 멀쩡할 리가 없잖아?

넌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냐? 분명 이건 음모이자 실험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취하더니 사차원 세계로 갔나 보다.

김탄이 영식의 말에 웃으며 대꾸했다.

“워워~ 영식이 형 너무 취했네. 무슨 실험을 나한테 해. 말도 안 되잖아. 형. 오늘은 그만하고 이제 집에 가자!”

집에 가려고 일어서는 김탄의 손을 마영식이 덥석 잡았다.

“야. 이거 어쩌면 기회일지도 몰라. 고소하자. 고소해서 배상금 받자. 진짜로 실험을 한 거 같아.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네가 소주 2병을 마실 수 있지? 이상하지 않아?”

“그.. 그러게. 나도 그게 좀 이상하긴 하네.”

순간 영식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이 실험을 당한 것도 아닌데 마치 당한 것처럼 억울한 듯 두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가 분에 못 이긴 듯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 나쁜 새끼들!! 고소해버려!! 당장!!”

시끌벅적하던 맛없는 집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와 동시에 김탄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영식의 얼굴도 흙빛으로 변했다.

그런 마영식의 손끝으로 무언가 모를 분노가 전해졌다.

그 분노의 감정이 전해진 손끝을 향해 천천히 마영식이 고개를 돌렸다.

영식의 손가락 끝에 한 남자의 관자놀이가 붙어 있었다.

그 남자는 빈 젓가락을 입 가까이 들고 허망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 남자의 순백보다 하얀 와이셔츠에 새빨간 김치가 붙어 있었다.

정황상 영식이 뻗은 손에 그 남자의 관자놀이와 접촉했고 접촉한 순간 김치를 먹으려던 남자의 젓가락을 잡고 있던 손이 그 충돌의 충격으로 인해 중심점을 잃은 것으로 추측이 되었다.

그러니까 정교해야만 하는 남자의 젓가락질은 영식의 손가락에 의해 조잡함으로 변해 김치를 젓가락 끝에서 떨어뜨리고 만 것.

이건 영식의 주사가 맞다.

흥분으로 인한 실수가 맞고 명백히 영식의 잘못.

영식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하얀색 와이셔츠에 김치가 붙은 남자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이 씨. 샤앙!”

남자의 와이셔츠에 붙어 있던 김치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덩달아 영식의 심장도 쿵 떨어졌다.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며 허공에 대고 말했다.

“아 나 오늘 기분도 더러운데.. 오늘 진짜 죽고 싶은 날인데. 누가 날 쳐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딱 걸렸네.”

하필 기분 좋아 술 마시는 사람이 아닌 기분 나빠 술을 마시던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마영식은 죽을 맛이었다.

그의 심장이 쪼그라들기 시작할 때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고개를 돌려 영식을 쳐다보았다.

분위기가 험악했다.

마영식은 남자와 눈을 마주치자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지금 그저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영식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양아치 같았다.

같은 일행인 탄도 보았다.

훗~ 비웃어줬다.

그 비웃음에 탄도 눈을 내리깔았다.

첫날밤을 치르기 전 새색시 같이 다소곳이 깔았다.

갑자기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영식의 멱살을 잡았다.

멱살을 잡힌 영식은 최대한 남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런 새발. 양아치 쉐키가.. 술을 처먹으려면 곱게 처먹어야지.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려! 개 양아치 새끼야!”

영식이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기회를 엿보다가 튀려고 했지만 양아치란 소리에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 세련되고 멋있는 도시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마영식이의 자존심이 처절하게 찢어지는 순간.

참을 수 없었던 영식이 눈을 번쩍 떴다.

찢어진 자존심만큼 눈도 쭉 찢어져 있었다.

“뭐? 양아치? 이런, 그럼 넌 텐 선비냐? 당신 대가리가 거기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내 옆에 바싹 붙어 있는 게 잘못한 거지.

그리고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사과를 받을 생각도 안 하고 다짜고짜 욕부터 하는 게 양아치지. 내가 왜 양아치야?”

싸움이 시작됐다.

와이셔츠 입은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비웃었다.

“뭐? 대가리? 이 무식한 새끼가..”

남자가 손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왜? 한 대 치려고? 보아하니 사무직인 것 같은데. 연봉이 좀 센가 보지? 그래, 쳐라 쳐! 오늘 돈 좀 벌어 보자.”

영식의 말에 화가 더 치밀었는지 남자가 들어 올린 손을 뒤로 쭉 뺐다.

가속도를 높여 충격 에너지를 높이려는 심산 같았다.

위기일발의 순간이다.

김탄은 마영식이 사과를 하면 끝나는 것을 왜 저러는지 몰랐다.

갑자기 탄이 둘 사이에 훅 끼어들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 친구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

김탄의 사과는 남자의 화를 풀지 못했다.

오히려 제삼자가 끼어든 상황이 되어 버려서 그의 화를 더 돋우기만 했다.

“이 새낀 또 뭐야? 쌍으로 그지 같은 것들이..”

남자의 손이 그대로 탄의 뺨을 갈겨 버렸다.

탄의 고개가 돌아갔다.

충격이 상당했는지 많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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