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_ 살아돌아 온 김탄. 절친 마영식과 술 한잔

턱시도, 웨딩드레스, 명절 때 입는 한복.

모두 예식과 격식을 따질 때 입는 복장이다.

경찰 제복, 군인복, 소방수 복장.

모두 직업을 나타내는 복장이다.

저 멀리 기어서 오고 있는 스포츠 바이크 라이더는 라이딩 전용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직업이든 아니든 확실하게 바이크 라이더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는 것.

그것도 프로페셔널한 라이더.

그는 정말 바이크 레이싱 선수처럼 입고 있었다.

김탄은 그 복장을 한 라이더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봤다.

그의 절친 마영식이었다.

수냉 4 기통 998cc 슈퍼 차져 엔진 장착.

무려 300 마력의 출력을 뿜어내는!

카본 재질과 크롬 도금의 외계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 바디를 가진!

마영식의 바이크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느릿느릿 기어 오고 있었다.

먹자골목 사람들이 모두 바이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탄의 눈엔 그 사람들이 모두 바이크를 탄 사람한테 욕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김탄은 자신이 그 바이크를 탄 사람도 아닌데 얼굴이 빨개졌다.

그에 반해 그 멋진 바이크의 라이더는 그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당당함과 자연스러움을 넘어 폼과 허세가 그득한 자세였다.

김탄은 솔직히 창피했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니는 이 골목을 바이크를 타고 오는 민폐를 범하는 마영식에게.

김탄은 그런 마영식이 또 자신의 친구라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아무리 친한 절친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랬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김탄의 얼굴은시간이 지나 빨갛다 못해 파랗게 질렸다.

그대로 화단 위에 쭈그려 앉아 있던 김탄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영식이 자신을 몰라보고 그냥 지나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엔진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빠라빠라 빠라 빵.

요란한 경적 소리에 김탄의 몸이 놀란 듯 움찔거렸다.

요란한 경적은 역시 마영식이 울린 것.

김탄은 분명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는 걸 알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빠라빠라 휘룔료 삐익 빵.

한번 아까보다 더 이상한 경적이 울렸다.

분명 마영식이 김탄에게 돌아보라고 울린 경적 소리.

마영식은 김탄을 알아본 것이 확실하다.

그걸 알아버린 김탄의 자세는 경직을 너머 돌이 되었다.

삐뾰뾰뾰 휘잉.

이상한 경적 소리와 함께 탄 옆으로 영식의 바이크가 바싹 붙어 정차했다.

김탄은 곁눈으로 그걸 보고 있었지만 지금 하고 있는 레이싱 게임에 집중하는 척했다.

갑자기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다.

스매싱 때문에 김탄은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돌아보자마자 바이크 레이싱 선수들이 쓰는 헬멧이 보였다.

NO.1

헬멧 실드 위로 선명하게 새겨진 글자가 김탄의 눈에 확 들어왔다.

영식이 이번에 새로 바꾼 걸로 보였다.

헬멧 아래로 타이트한 가죽점퍼에 또 타이트 하다못해 꽉 끼는 가죽 바지를 입고 있었다.

너무 꽉 끼는 거 아닌가?

오늘따라 너무 유별스럽다.

김탄이 자신이 그 옷을 입지 않았는데도 민망함에 얼굴을 붉어졌다.

그때 마영식이 헬멧의 쉴드를 올리고는 투덜거렸다.

“야 이 새꺄! 형이 그렇게 불렀는데 뒤도 안 돌아보냐?”

“아. 그랬어? 미안. 게임에 빠져서 못 들었어.”

“그래?”

“응”

김탄의 스마트 폰은 슬쩍 본 마영식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삼매경.

시공간을 초월하는 느낌이 뭔지 마영식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마영식 또한 게임을 좋아하는 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관대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가 헬멧을 벗기 시작했다.

프로들이라 쓰는 헬멧이라 잘 벗겨지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마영식.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 김탄이 쳐다보자 그의 얼굴 근육이 딸려 올라가는 모습에 김탄은 눈쌀을 찌푸렸다.

그냥 낙낙한 헬멧을 써도 좋은데 왜 꼭 저렇게 티를 내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던 김탄은 보기가 그랬는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이 상황을 보며 비웃는 사람은 없는 확인하려 했던 것.

다행히 신경 쓰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뽁! 소리와 함께 헬멧이 벗겨졌다.

영식은 눌린 머리칼을 손으로 빗어 세웠다.

만족할 때까지 한참을 머리를 매만지던 영식은 비로소 탄을 보고 소리쳤다.

“야 이 새꺄!! 죽었을 때 어땠냐? 야 C발. 대박이다. 죽다 살아 돌아오다니. 김탄!!”

영식의 목소리는 원래 큰 편이다.

지금도 그랬다.

게다가 그가 흥분을 하며 말할 땐 온 세상이 울릴 것 만 같은 큰 소리였다.

지금 그가 그랬다.

그럼 사람들이 쳐다볼 수밖에..

영식이 낸 목소리의 강력한 주파수의 크기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김탄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개졌다.

주목받기 싫어하는 소심하고 부끄러움 많은 김탄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고역이었다.

그가 재빨리 화단에서 내려 영식의 팔을 잡아끌었다.

“빨리 다른 데로 가자. 형. 나 배고파. 빨리.”

“어, 그래. 잠깐만 기다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영식은 갑자기 바이크를 끌고 가로등 밑으로 가 섰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바이크 도난 방지 자물쇠를 꺼내 바이크 바퀴와 가로등을 결속시켰다.

김탄이 그런 영식을 보며 생각했다.

‘새로 산 바이크가 엄천 비싼 거라더니.. 그래서 저러는 건가?’

탄은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계속 보고 있자니 영식이 추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김탄에게 헤드 락이 걸려왔다.

영식이 탄에게 자주 하는 행동이다.

영식의 겨드랑이에 낀 김탄이 짜증 난다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김탄에게 마영식이 씩 웃으며 소리쳤다.

“고맙다. 탄아!! 살아 돌아와 줘서. 형이 너 사랑하는 거 알지?”

“어휴~ 형은 걸어서 5분 거리를 저걸 타고 오냐? 참. 어차피 묶어둘 거면서..”

갑자기 마영식이 기분 나쁘다는 듯 발끈했다.

“무슨 소리야? 남자의 생명은 가오인 거 몰라?

5분을 이동해도 최대한 멋있게.

수돗물을 마셔도 천연 암반수를 먹는 것처럼.

네가 아직 그걸 몰라서 여자가 없는 거잖아.

너 모쏠이잖아.”

영식의 말에 탄의 가슴에 화살이 꽂혔다.

하나 가 아닌 수 백 발 같았다.

그렇다.

앞서도 말했지만 김탄은 태어나서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본 모태솔로였다.

반면에 마영식은 수많은 여자가 따랐던 화려한 전적을 가진 인기 남이었다.

물론 지금도 여자 친구가 있다.

마영식은 사춘기 이후로 단 하루도 여자 친구가 없었던 적이 없다고 했었다.

헤어지면 보통 공백기를 가지지 않는가?

마영식에겐 공백이 없었다.

즉 문어발 다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김탄은 그런 마영식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마영식은

174 정도 되는 고만고만한 키.

얼굴도 그렇게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아마 중상 정도?

그럼 부모님이 부자인가?

아니었다.

물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자 여기까지가 마영식의 남자 친구로서의 스펙이다.

김탄은 마영식과 비슷한 키에 마영식 보다 조금 더 잘생겼다.

학벌도 비슷했고 돈이 없는 것도 비슷했다.

‘그런데.. 왜? 나는 모쏠이지? 진짜 가오가 없어서 그런 건가?’

김탄은 영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말대로 폼이 제대로 없으니 여자 친구가 없는 것이라고..

순간 탄의 눈이 빤짝이기 시작했다.

죽음 직전에도 느낀 피맺힌 한 같았다.

연애를 못해본 것.

지금 김탄은 다시 태어난 기점으로 그 한 맺힌 원을 풀고 싶었다.

그래서 팔랑귀가 되었다.

“그래? 정말이야? 가오가 있으면 여친 생겨?”

“그렇다니까.

여자들은 돈을 좋아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진실한 사랑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거든.

돈 많은 남자들은 돈 주고 여자를 사지?

그럼 그 여자들은 돈을 좋아하는 거야.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하지만 여자들의 진심은 멋진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

그걸 어떻게 증명하냐고?

멋있는 남자들은 여자들이 돈을 가져다주거든.

왜냐고?

여자들은 진짜 사랑하면 전부 다 주니까.

그리고 남자는 멋있어야 하는 거야.”

마영식의 연애학 개론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럼 나도 형 따라 하면 여친 생길 수 있는 거야?”

“두말하면 잔소리. 이 형을 보고도 모르겠냐?

네가 날 딱 반만큼만 이라도 따라 해 봐.

아주 그냥 여자가 줄을 설 거다. 줄을.”

“정말이야? 형!”

마영식은 김탄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멋있는 척 짝 다리를 짚고는 한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보고 있어도 쥐가 날 듯한 어색한 자세로 자신이 온 곳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 전에 내 애마를 타고 올 때 여자들이 날 막 쳐다보는 거 못 봤어?

이 치명적 가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거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열 다리도 걸칠 수 있어.

사실 세 다리도 걸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해. 너도 알잖아.

지금은 내게 순정이가 있으니까.”

“그랬나? 아닌 것 같았는데…”

“뭐래냐? 여친도 없는 자식이.”

탄은 그대로 풀이 죽었다.

영식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진짜 여친이 없었기 때문이다.

증명보다 강력한 설득은 없다.

그러나

솔직히 바이크를 타고 오던 영식의 모습은 탄에겐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부끄러운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여자들이 그런 모습을 좋아한다니..

믿을 수도 없었고 인정하기도 싫었다.

김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럼 여자들은 태생부터 다른 존재들이야? 남자 눈에 보이는 남자와 여자 눈에 보이는 남자는 다르단 건가?’

탄의 깊은 생각을 깨뜨리는 듯 영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뭘 그렇게 시무룩해. 여자는 단순하니까 걱정 마.

형이 가르쳐준 대로 하면 생겨.

짜식. 술이나 한 잔 하자. 죽다 살아온 기념으로. 내가 쏠 게!”

김탄은 짠돌이 영식이 형이 갑자기 한 턱 쏜다는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시 평상시대로 밝은 모습으로 돌아온 탄이 말했다.

“헤헤. 그럼 소 먹으러 갈까? 형.”

“삼겹살 처먹어. 자식아. 나 이번에 바이크 새로 뽑아서 좀 쫄리거든. 미안하다. 다음에 크게 쏠 게”

“아니야. 형. 아이고 괜히 소 먹으러 가자고 했네. 그냥 한 소리야.”

영식은 미안해하는 탄의 어깨에 팔을 턱 둘렀다.

“가자. 삼겹살 배 터지게 먹어. 형이 그 정돈 사줄 수 있으니까.”

고만고만한 키에 잘난 것 없이 평범하지만 우정이 넘치는 두 사람.

김탄과 마영식.

그 둘은 서로 사이좋게 삼겹살 집을 찾으러 길을 떠났다.

좋은 정보로 가득한 웹 세상에 있는 맛집을 스마트 폰으로 검색하면서.

맛없는 집.

그 일대 삼겹살로 유명한 맛집이다.

마영식과 김탄은 그 맛없는 집으로 들어갔다.

김탄과 마영식이 웹에서 삼겹살 집을 찾은 것처럼

오성 통신 서버룸 한 구석에서

통신으로 이루어진 웹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쓰이는 기지국을 통해

은비사가 말한 괴물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은비칼은 허겁지겁 서버룸으로 향했다.

운동신경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그가 얼마나 다급하게 달려왔는지

헝클어진 머리칼과 헐떡이는 숨이 말해주고 있었다.

전산실 출입문 앞에 도착한 그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의 얼굴에 긴박감이 가득했다.

조금 진정한 은비칼이 카드키를 잠금장치에 가져다 대자 출입문 잠금이 해제되었다.

그가 문을 벌컥 열고 소리부터 질렀다.

“신호가 잡혔다고요?!!”

갑자기 들린 우렁찬 고함 소리에 나채국이 깜짝 놀라 마시고 있던 커피를 쏟았다.

“아우. 씨.”

그가 짜증과 성질을 내며 옷에 묻은 커피를 닦아냈다.

어느새 오강심과 나채국 옆으로 온 은비칼이 그 둘을 쳐다보자 나채국 대신 오강심이 보고를 시작했다.

“네. 실장님. 시스템이 통했습니다. 갑자기 신호가 잡히기 시작해서 실장님을 호출한 겁니다.”

“그래요? 신호가 잡히는 장소는 어딥니까?”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