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_ 괴물의 실체.

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어.

난 귀신을 볼 수 있고 조종할 수 있어.

난 텔레파시로 원하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어.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을 있다면 다들 정신이 이상하거나 미친 사람으로 볼 것이다.

은비사가 딱 그 상황이었다.

하지만 은비사는 진실했다.

“믿기 힘들겠지.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사람의 형상을 한 괴물. 오랜 세월 인간의 몸에 숨어 기생해 온 존재라고 들었어.

그들이 이번에 떨어진 운석의 힘에 의해서 깨어나게 된 거야.”

역시나 은비사의 말에 은비칼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변했다.

은비칼은 그렇게 넋 나간 표정으로 말없이 은비사에게 다가와 캔음료를 넘겼다.

음료를 건네주는 비칼의 손은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대체. 뭐 사람의 탈은 쓴 괴물이라고?”

“비슷한 거라고 보면 돼. 우리도 거기까지 밖에 몰라.”

“우.. 리?”

비칼의 질문에 비사가 순간 당황했다.

그걸 눈치챈 듯 비칼이 계속 추궁을 했다.

“우리라니? 형!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냥 단순한 추적 시스템이 아닌 것 같은데? 형 말고도 이 일에 관여된 사람이 있는 거야?”

은비사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지 않아야 할 것까지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라는 건 괴물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하나 이상의 사람이 더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은비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형! 우린 형제야! 형이 이렇게 침묵한다는 건 날 믿지 않는다는 거잖아!

그럼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 거지? 설마. 날 이용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말해. 지금 당장. 나 화날 것 같아.”

비사가 갑자기 캔 음료의 뚜껑을 따 벌컥벌컥 들이켰다.

자신도 믿기 힘든 일을 조금은 어리숙해 뭐든지 잘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자신의 동생 은비칼에게 말하려니 목에 갈증이 났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를 얘기하면 열을 알아들었으면 좋으련만

자신의 동생 비칼은 하나를 이해시키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비사는 그런 은비칼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또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얘기를 해 주지 않으면 이번 프로젝트를 안 하겠다고 생떼를 피울 게 분명했다.

‘맡기지 말 걸 그랬나?’

은비사의 머릿속에 잠시 스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번 추적 프로그램은 극비리에 진행되는 일.

그것은 무조건 믿을 수 있는 자에게 맡겨야 하는 일이었다.

피로 맺어진 관계. 혈연관계.

특히 가족은

모두가 다 버려도 끝까지 함께 하려는 속성이 있다.

물론 아닌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그렇다.

가족만큼 믿고 맡길 자가 있는가?

가끔 가족이 등을 치거나 버리면 그게 뉴스에 나온다.

그만큼 드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은비사는 은비칼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 자신의 앞에서 씩씩거리며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는 비사를 달래야 했다.

“얘기할 게. 화내지 마.

음.. 그러니까 이 일을 대비해..

괴물이 나올걸 알고 있던 조직이 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왔지. 조직의 이름은 파이온.

나도 이 모든 이야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알게 되었고.

모든 이야기는 회장님께서 말씀해 주셨거든.”

“그런데? 왜 ‘우리는’이라고 한 거야? ”

“놀라지 마. 내가 지금 그 조직에 속해 있거든. 그리고 아버지도 그 파이온이라는 조직의 일원이었어.”

“조직이라고 하는 것 보니까 나쁜 곳이야?

비밀리에 일을 시키고 또 진실을 숨기는 걸 보니까 나쁜 곳 같은데?”

“아니. 세상을 구하는 조직이야.”

“세상을 구한다고?”

“그래.”

“내가 괴물이라고 했지?”

은비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칼. 그 괴물이 나쁜 거야.

그리고 더 무서운 사실은 그 괴물은 죽여도 죽여도 다시 나타나는 존재였다고 들었어.

그리고 너무 많은 것들이 희생됐었고….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번에 끝을 보지 않으면 안 돼.

그러니까 추적하는 일에 매진해 줘.”

“풉 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비칼이 웃기 시작했다.

은비사가 예상한 게 맞았다.

은비칼은 믿지 않았다.

은비사는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웃던 비칼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뭐라고? 죽지 않는다고? 이모탈? 혹시 드라큘라 야?

아님 불사신 코너 맥클라우드 같은 건가? 왜 거 있잖아. 하이랜더 주인공. 크크크 크”

은비사는 은비칼의 비웃음에 화가 울컥 치밀었다.

은비사가 정말 어렵고 힘겹게 꺼낸 말이었다.

괴물은 사실이었고 심각한 거였다.

하지만 믿어주지 않는 비칼에게 계속 설득하기란 독 깨진 항아리에 물 붓기였다.

그럼 방법은 단 하나.

윽박지르기.

“장난이 아니야. 비칼!! 정신 차리고 잘 들어. 괴물은 진짜라고!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니야!”

은비칼은 태어나서 처음 불같이 화를 내는 형을 보았다.

깜짝 놀란 비칼은 무척 당황했고 그 때문에 딸꾹질을 시작했다.

“만약에 말이야. 비칼.

그 괴물이 자신의 온전한 힘을 찾게 된다면 이 세상은 멸망하고 말 거야.

모든 게 끝이야. 바로 아마겟돈이 오는 거라고!”

은비칼은 말없이 형을 보며 딸꾹질만 했다.

그가 말한 이야기는 사실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은비칼이 쳐다보는 비사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은비칼에게 전해졌다.

그는 멈추지 않는 딸꾹질을 해대며 은비사의 말에 동의 한다는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종말.

아마겟돈.

세상이 끝난다는 의미.

인류의 역사에서 최종적으로 일어날 일.

그 종말이 괴물 때문에 온다고 했다.

그 괴물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늦은 밤 신림 사거리 먹자골목.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는 거리.

그 거리를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김탄이었다.

그가 집에 가려면 지나쳐야 하는 골목이었다.

활기차고 시끄러운 주변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김탄은 풀이 죽은 듯 의기소침한 상태로 땅만 보고 걷고 있었다.

‘내가 죽었었다고? 정말 일까?’

이 생각이 병원에서 나오고 여기까지 오는 내내 김탄이 한 생각이었다.

지병 없이 멀쩡했던 그가 죽었었던 건 말 그대로 의문사 겸 돌연사였었다.

김탄은 시체 보관 냉장고에 들어가기 직전 상황을 떠올리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정말 말 그대로 재수 없는 죽음이 될 뻔했다.

그러니 의기소침 할 수밖에..

김탄이 다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겠다는 듯 갑자기 고개를 털레털레 저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다정하게 팔짱을 낀 한 커플이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모쏠 김탄은 커플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속으로 욕을 했다.

기분이 나빠진 김탄은 커플이 보기 실어 고개를 돌렸다.

카페테라스에 한 커플이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도 역시나 한 커플이 한 몸처럼 붙은 체로 걸어가고 있었다.

탄은 갑자기 울컥했다.

세상이 온통 커플이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탄은 죽기 직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모태 솔로로서의 인생을 벗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던 자신을 한탄했던 모습을 말이다.

‘맞아 그때 죽었었나 보네?’

하지만 탄은 죽음 직전의 상황만 기억날 뿐 그 전 상황은 기억나질 않았다.

그가 기억나는 부분은 퇴근을 하기 위해 회사를 떠난 기억뿐이었다.

궁금해진 김탄이 전화기를 꺼냈다.

발신된 전화도 문자도 없었다.

‘칫.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나 보네. 영식이 형도 연락을 안 하다니.

나보고 베스트 프렌드라면서 끝까지 함께하자고 해 놓고선..’

김탄은 마음이 상했다.

한마디로 삐쳤다.

스마트 폰 연락처를 열었다.

영식이 형이 즐겨찾기에 등록되어 있었다.

마영식이 아닌 베프 영식이 형이란 이름으로 저장이 되어 있었다.

‘내가 죽었는데 아무도 나한테 전화를 하지 않은 거야?’

마음이 상한 김탄이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죽었는데 어떻게 연락할 수 있겠는가?

삐쳐서 골이 난 김탄은 영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발신음이 갔다.

발신음이 끝나자 마 영식이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넌. 누군데 내 절친 김탄의 전화기를 갖고 있는 거지?”

“형. 나야!”

으아아악! 악!

와! 아아아악!! 악!! 악!!”

전화기 너머로 마 영식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김탄은 소리가 너무 커 귀에서 전화기를 뗐다.

전화기를 멀리 뗐는데도 마영식의 비명소리가 다 들렸다.

순간 김탄은 주변 사람들이 들을까 창피해졌다.

그가 슬며시 스마트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흐어억허

으아아아악.

흐흐흐흐흐흑.”

그러자 마영식의 흐느끼며 통곡하는 소리가 주머니 밖으로 새어 나왔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계속되는 마 영식의 통곡이 멈췄다.

탄이 그제야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드디어 돼지 멱따는 소리는 사라지고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야! 탄!! 뭐… 뭐야? 너.. 진짜 김탄 맞아? 귀신이 전화 할리는 없고. 너.. 너 죽었잖아?!”

“어. 그랬었다고 하더라. ”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다시 살아난 거야?”

“어. 그랬다고 하더라. 다시 살아났다고..

혹시 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어?

난 한 숨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영안실이더라고.

퇴근 이후에 쓰러진 기억은 나는데 그 이후론 기억이 없어.”

“야 인마. 기절했으니까 기억이 없지”

“아. 그렇구나.”

둘의 통화에 잠시 정적의 시간이 흘렀다.

마 영식이 그 정적을 깨며 말했다.

“야. 너 지금 어디냐? 병원이야?”

“아니, 여기 지금 신림동 사거리 먹자골목. 집에 가는 길에 밥이나 먹고 가려고.”

“뭐? 그래? 그러면 내가 거기로 갈 게. 여기 순정이 미용실이거든.”

“아니. 그냥 내일 보자. 나 오늘은 그냥 쉬고 싶어.”

“삐졌냐?”

“아니.”

“삐졌구만..”

“아니라니까.”

“기다려. 형이 갈게. 야 인마. 전화로 얘기하긴 그렇고 만나서 얘기해. ** 편의점 앞에서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 거니까.”

“그러던지..”

통화를 마친 탄은 **편의점 앞으로 가 화단 위에 주구려 앉았다.

영식의 여자 친구 고 순정의 미용실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5분 거리니까 잠깐 게임을 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휴대폰을 꺼내 평소 즐겨하던 레이싱 게임 앱을 실행시켰다.

3. 2. 1

부아아앙!

레이싱 시작과 동시에 엔진음이 들리자 탄은 화들짝 놀라 스마트폰 무음 변환 버튼을 확인했다.

무음 모드로 되어있었다.

붕 부웅 부아아앙!

계속되는 엔진을 가속하는 소리는 김탄의 스마트 폰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챈 김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소리는 그 엔진 소리는..

바로 마영식의 스포츠 바이크 소리였다.

설마… 아니겠지.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거리는 이 거리를 스포츠 바이크를 타고 온다고?

아찔해진 김탄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돌아보았다.

스포츠 바이크 한 대가 사람 사이를 힘겹게 비집으며 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걷는 속도가 스포츠 바이크 속도보다 빨랐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