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_ 최정예 비밀 요원. 은비칼. 나채국. 오강심

그들은 오성통신센터 IDC룸 한쪽 구석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허드렛일을 하는 걸로 보이는 그들은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기 위해 조직된..

아니, 차출된 최정예 비밀 요원이었다.

요원이라니?

특수 훈련이라도 받은 자들인가?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그건 아주 큰 오산이다.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자들인가?

그 소수 정예 중 나채국이라는 인물을 한 번 살펴보자.

그는.

2인분짜리 곰돌이 몸매를 가진.

난 좀 내 멋대로야 라고 어필하는 듯 염색한 샛노란 머리를 한.

몇 번을 보아도 뒤돌아서면 절대 다시는 그 얼굴을 떠올릴 수 없는 그놈이 그놈 같은 페이스를 달고 있는 천재적인 프로그래머였다.

물로 자칭이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최고의 실력을 가졌지만 공인되지 않은 실력이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은가?

엄청난 실력을 가졌지만 그걸 스펙으로 쓰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 나오지 않는 숨은 고수. 진짜 실력자.

하지만 왜?

귀찮았으니까.

재주와 실력을 알면 편하게 살게 하지 않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주변에서 마구마구 찔러대고 또 이용하려고 했을 테니까 말이다.

원래 진짜 천재는 바보인 척하거나 진짜 실력을 숨긴다고 했다.

여러분 주변에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일을 어리숙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잘 살펴보시라.

어쩌면 미래의 제갈공명 일지도…..

각설하고..

여기에서 알 수 있듯 나채국의 성격은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였다.

이 천재적인 실력을 가진 프로그래머께서 왜 중요 요직이나 이름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이는 곳이 아닌 오성 통신 내부 통신망 전산실에서 근무할까?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그건 나채국의 위에서 말한 성격 때문이라는 걸 알아두자.

그는 단지 조금 더 놀고 또 쉬운 일을 하고자 이곳에 있는 것뿐이었다.

그뿐이었다.

편하게 일하고 많이 놀고..

말 그대로 욜로족.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기 전에도 팀장.

그 후에도 팀장인.

이 나채국이 그의 옆에 앉아 일하고 있는 부사수 오강심에게 말을 걸었다.

“오우 예~ 강심아. 다 끝났다.”

“벌써요? 헐, 역시…. 인정. 팀장님 오늘 실장님한테 칭찬 좀 받겠는데요?”

“그렇지? 마치 나를 닮은 것처럼 이 완벽한 시스템을 보면 칭찬을 안 할 수가 없겠지? 흐흐흐 흐”

오강심.

그녀는 정직한 여자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그녀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을 가졌다.

그녀는 나채국의 말에 말없이 두 손가락으로 엑스표를 그렸다.

아니라는 뜻이었다.

대체 뭐가 아니라는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나채국이 물었다.

“뭐야? 그건.”

“삐- 라는 뜻입니다.”

“그게 뭔데?”

“동의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뭐를?”

“완벽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니 왜? 어째서?”

“그거야 시스템과 팀장님과의 유사성이 제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팀장님은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어? 이런..

나채국이 원한 답은 그게 아닌데..

순간 나채국이 삐쳤다.

그가 원한 답은.. 어머! 팀장님. 최고예요! 이거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첨과 능청에 약했다.

한 마디로 사회생활이 힘든 여자.

오강심.

그녀는 시스템 운영자이다.

그녀가 이 전산실로 온 이유는 오로지 덕질 때문이었다.

무슨 덕질이냐고?

그건 차후의 문제로 돌리고..

이렇듯 오강심은 입에 발린 말을 잘 하지 못했다.

잘하면 잘한다 못하면 못한다 맞다면 맞다 아니라면 아니다.

이 문장이 오강심을 모두 설명하는 문장이었다.

그러니 나채국은 그녀가 재미가 없었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3년 내내 그랬다.

여자는 모름지기 예쁘고 애교 많은 강아지 같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던 나채국의 눈에 오강심이 예뻐 보일 리가.. 후후.

아무튼 이번에 특별히 차출된 동료로서 앞으로 어쩌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 바탈 추적 시스템 프로젝트에 그녀와 함께 일할 생각을 하니 나채국은 가슴에 답답증이 몰려왔다.

‘농담이라도 주고받아야 이번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심심하지 않을 텐데..’

지금 그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 있는 생각이었다.

“됐고, 빨리 실장님이나 불러.”

“알겠습니다. 팀장님.”

오 강심은 벌떡 일어나 아주 큰 목소리로 외쳤다.

어디에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실장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실장님!! 실장님!! 다 끝났습니다.”

IDC 서버 렉 사이로 이유 없이 그냥 배회하고 있는 은비칼의 귀로 오강심의 목소리가 꽂혔다.

“아니.. 벌써? 이럴 수가..”

이 깜짝 놀란 사람이 여기 내부 통신망 실장이었다.

그의 이름은 은비칼.

키가 멀대 같이 크고 엄청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

그에겐 외모가 스펙이었다.

그 정도로 잘생겼다.

그 잘생긴 은비칼이 흥분한 듯 나채국과 오강심 쪽으로 향했다.

해맑게 웃던 그가 갑자기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백치의 기운이 넘쳐흐르고 있었는데..

커다란 눈에 여자 아이같이 곱상한 얼굴을 가져서 그랬던 것일까?

아무튼 이 알 수 없는 백치미는 악의 기운을 쫓아내는 신비한 마법을 가졌다.

이를 테면 이런 일들이었다.

은 비칼이 나 채국과 오 강심에게 무리한 일을 시켰을 때.

무리한 일이라면..

이를 테면 이틀 만에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말한다.

이 프로젝트를 시켰을 때 처음에 오 강심과 나 채국은 거의 악귀에 신들린 사람처럼 발광했었다.

실장님 미친 거 아니냐고..

우리는 양자 컴퓨터가 아닌 사람이에요..

이러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때 은비칼은 소처럼 크고 맑은 두 눈을 끔벅이며

‘미안합니다. 여러분들. 이번만 수고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기만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런데..

나채국과 오강심은 자신들이 언제 발광했냐는 듯 한 순간 그들의 광기를 접었다.

그리고는 순한 양이 되어 지금까지 밤늦게 일을 하고 있던 것이다.

아주 신기한 일이지 않은가?

그러니 마법이라고 말할 수밖에.

지금 나채국과 오강심이 하고 있는 일도 바로 이 과정을 거친 일이었다.

이틀 안에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라.

솔직히 그때 은비칼이 생각 없이 내뱉은 일종의 던진 카드였다.

그런데 그들이 하루도 안 지나서 시스템을 구축해버렸다.

은비칼의 생각으로는 이틀이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던진 일이었다.

프로그래머가 아닌 관리자였으니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해 버리니..

은비칼은 표정이 표정이 어두워질 수밖에.

‘너무 쉬운 일이었군..’

그러면 관리자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이거였다.

잘해도 잘했다고 하지 말고 못하면 아주 못했다고 말하기.

그가 권위를 표현하는 법.

바로 이렇게.

“아, 그래요? 그럼 시작할까요? 아, 그런데 나 채국 씨?”

나채국이 눈을 치켜뜨며 은비칼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그런데라는 말에서 직감하고 있었다.

은비칼이 있지도 않은 꼬투리를 잡아 걸고넘어질 거라는 걸..

질 수 없었던 나채국이었다.

“왜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실장님.”

은비칼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린 것 같아서요.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아 보이던데….”

나채국이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말도 안 돼.

이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이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완벽하게 끝낸 최고의 내 실력을 지금 무시하는 건가?

확 뒤집어엎어 버릴까?

나채국이 한 생각이었다.

나채국은 화가 났다는 듯 말없이 은비칼을 노려보았다.

물론 티 안 나게..

그러자 은비칼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순간 마법이 발동했다.

나채국은 은비칼의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자 이상하게도 싫은 소리가 선뜻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내가 참아야지.. 잘 모르니까.. 관리자니까.. 라며 울분을 가라앉혔다.

나채국은 알고 있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고 그릇이 큰 자는 그릇이 큰 자를 알아보는 것처럼..

그런 상황이면 좋으련만 그것이 아니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모르는 자에게 내가 누구인지 말하기..

먼저 알아달라고 기다리면 도태되는 21세기.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어필하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다.

21세기 남자 나채국이 감정을 속이며 가식적인 미소를 띠우고는 말했다.

“에이~ 실장님..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그래도 저니까 이 시간에 끝낸 거라고요.

저 스톤에서 나오는 밀리미터파의 함수 변한 작업이 까다로웠어요.

중간중간 간섭 주파수가 나와서요.

이 함수로 새로운 통신 알고리즘을 설계했죠.

아, 이거.. 엄청난 건데..

그게 뭐냐면 저 스톤의 출력에 반응하는 객체의 신호를 잡아내는 시스템이에요.

보세요. 이제. 이 코드를 덮어 씌우기만 하면 돼요.

얼마나 완벽한지는 두고 보시면 아실 거예요.

그리고 이건 아무나 못하는 겁니다.”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것과 더불어

자신이 얼마나 근사한 실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어필을 중간중간 섞어가며

나채국의 속사포를 쏟아내듯 설명했다.

하지만 은비칼은 나채국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가 모니터에 띠운 코드를 보여 줬지만 은비칼은 볼 수 없었다.

까막눈이었으니까.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에 있어서 은비칼은 거의 문맹의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생각을 깊이 하는 것처럼..

코드를 잘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없이 심각하게 모니터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포커페이스 같았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은비칼이 드디어 입을 열고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죠?”

은비칼은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건 분명 잘못된 질문이었다.

그는 질문을 하지 않고 칭찬을 했어야 했다.

이 질문은 나채국이 설명한 얘기를 또 하라는 뜻이었다.

즉 은비칼이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다.

분명 아까 다 설명했는데

설명을 또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채국은 절망에 빠진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오강심이 바보 같아요. 실장님이라고 말하는 듯 은비칼을 빤히 쳐다보았다.

은비칼은 알고 있었다.

나채국과 오강심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서..

하지만 그는 그의 멘토의 말을 따르려고 오강심을 쳐다보며 말했다.

“왜 보시는 거죠? 오 강심 씨? 뭐가 잘못됐나요?”

멘토의 조언은 통했다.

오강심이 슬며시 눈을 피했다.

멘토의 조언이 무엇이길래 오강심의 솔직한 감정을 눌렀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이것.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무조건 뻔뻔하게.

은비칼의 멘토 자신의 형이 해 준 조언이었다.

오강심은 정말 솔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그럴 수 없었다.

은비칼이 바보 같았지만.. 정말 답답했지만..

그녀는 그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회사였으니까..

은비칼의 파워는 셌다. 실력은 없었지만..

그 파워를 지금 은비칼이 보여주고 있었기에 오강심이 솔직하게 말하고픈 감정을 누르며 눈을 피한 것이었다.

그녀의 성격에 위배되는 처신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그녀의 덕질을 위한 계좌가 0이 되지 않을 테니까..

오강심은 은비칼에게 아주 친절히 나채국의 모니터에 띄어진 코드의 핵심을 말했다.

“기지국들이 레이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실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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