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출처-이경
그림 출처-이경

기억 속의 그 풍경

멀리 철길이 보였다. 기차가 스쳐 지나갈 때 바퀴와 맞물린 철길은 빛을 냈다. 너무도 아득하니 먼 그림 속의 그 철길이 바로 내 눈앞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들녘을 가로지르고 지나가던 철길은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의 발광체를 품었다. 때로는 그 철길 위에 갈기갈기 살갗이 찢겨나간 동물의 사체가 나뒹굴었다. 아니, 일 년에 서너 번은 사람의 것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 뒹굴었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깊은 밤이면 사람들은 철길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철길을 따라 30분쯤 걸어가면 기차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급한 사람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차를 타기 위해 철길을 이용했다. 그러다가 처녀 귀신에게 걸려들어 죽는다는 말이 풍문으로 떠돌았다. 어떻게 귀신에게 걸려드는지는 마을 사람들 모두는 아는 눈치였다. 처녀 귀신이랬다. 남자의 배신으로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진 처녀가 귀신이 되어 비가 오거나 깊은 밤이면 한풀이 대상을 찾는다고 했다. 간혹 그 한풀이가 이른 새벽에 터지는 일도 있었다.

반질반질한 철길을 따라가다 보면 미지의 세계를 통과라도 하듯 황홀한 기분에 젖어 든다고, 그 시간은 전혀 힘들지 않고 걷는다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면 어느새 역전 광장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을 발견했다고. 그런 경험들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 이야기처럼 돌고 돌았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수시로 사람들이 철길에서 죽어 나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많은 사람이 철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역전으로 가는 길을 가려면 빙 둘러서 그것도 걸어가야만 하는 형편들이었다.

역전 광장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날마다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근 산에서 채취해 온 소나무를 사람들이 몰려들어 껍질을 벗겼다. 그런 다음, 화물 기차에 싣고 가공업체로 가지고 가거나 제재소로 보내졌다. 목피를 벗겨 땔감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기차역이 있던 탓이었다. 지리산에서 벌목한 나무를 밤 기차로 실어와 광장에 부려놓으면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껍질을 모조리 벗겨내어 제집으로 가져갔다. 나무를 돈 한 푼 안 들이고 아주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서 회사에선 큰소리치며 돈벌이했다. 그것도 한철뿐이었다. 벌목을 기회가 마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종종 마을 사람들 무리에 섞여 소나무 벗기는 작업에 꼈다. 보통은 수레에 과일을 싣고 여러 마을을 전전하며 행상을 했다. 겨울에는 품목이 명태와 고등어, 오징어로 바뀌기도 했다. 아버지의 부재는 엄마를 생활전선으로 내몰았고, 나는 동생을 돌봐가며 겨우 학교에 다닐 수가 있었다. 긴 여름 장마가 시작되면, 엄마의 과일 장사도 시원치 않아 역전 광장에서 지지 껍질을 벗겼다.

무덥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엄마는 짐수레에 삽과 끌 그리고 도끼를 실어놓고는 이른 저녁상을 차렸다. 장마전선이 올라온 탓에 간간이 비를 뿌렸지만, 역전 광장에 소나무가 어마어마하게 도착할 거라고 해서 서둘렀다.

“지언아! 동생 잘 봐. 엄마는 새벽쯤에서나 올 거야. 문 잠그고 일찍 자.”

“엄마! 비가 오잖아. 천둥소리가 너무 무서워.”

“우리 지언이는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역전 마당에 소나무가 많이 온다고 해서 가야 해.  나무 많이 해서 올게.”

모든 준비를 마친 엄마는 동생을 나에게 맡기고 어둠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의 검은 무리 속에 파묻힌 엄마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손수레를 끌고 가는 긴 행렬은 장관이었다? 마치 진흙 속을 뚫고 걸어가는 바퀴벌레 같았다. 수레에 걸쳐 있는 장비들을 보면 마치 전쟁터로 향하고 있는 전사들 같기도, 저마다의 꿈을 향해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나는 군상들, 그런 느낌은 너무 부르주아적인 생각 있었을 것이고. 어찌 됐든 비참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 대부분이 참여하는 틈에 끼지 않는 것은 외려 배신에 가까운 행위였다.

엄마가 떠난 지 채 한 시간도 안 돼 천둥과 번개가 치고 억수 같은 비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던 전재미 마을은 밤이면 촛불과 호롱불에 의지했다. 나는 동생을 엎고 마을 어귀로 나섰다. 우산을 썼다지만 비가 들이쳤다. 밖에 서 있는 게 되려 무서움이 덜했지만 업혀 있던 동생이 칭얼대는 통에 집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천둥소리는 마을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점점 양철지붕을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후드득 내리꽂혔다. 방안 천장 한 귀퉁이에서는 빗물이 스며들어 양동이를 갖다 놓았다.

벽에 걸린 시계는 웬일인지 꼼짝하지 않았다. 엄마가 태엽을 감아주는 걸 깜박 잊었던 모양이었다. 동생을 재워 놓고 이부자리에 누였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번개가 하늘 가르며 용트림했고, 퍼런 불빛이 마당 우물 안 가득 떨어졌다. 커다란 불빛 방문 앞에 턱 하니 걸려있었다. 온통 푸른 불빛이었다.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그렇게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을 때, 역전 광장에서는 엄청난 사고가 터졌다.

전재미 마을 사람들 대부분 끌을 잡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광장으로 모여들었고 어둠 속에서 소나무 껍질을 끌로 벗겨냈다. 나무껍질이 두꺼운 것을 골라내자면 통나무를 이리저리 굴릴 수 있는 힘센 남자가 필요했다. 순철이네는 온 식구가 끌질했고, 차 씨네는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모두 합세해서 좋은 나무를 산더미처럼 골라낼 수 있었고. 고 씨는 커다랗게 자기구역 표시를 놓고 목질이 좋은 것을 끌어모았다.

굳이 지지 껍질을 벗겨서 겨울을 나지 않아도 될 만큼 사는 형편이 좋은 고 씨였으나, 욕심이 많은 탓에 그곳에서도 허세를 부렸다. 무녀와 신 보살도 그날만큼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는 일에 동참했다. 악착같이 달려드는 사람들 틈에서 엄마는 제풀에 지쳐 그만 껍질을 벗겨낼 수가 없어 잠시 끌을 내려놓고 비를 피하기 위해 처마 아래에 서 있었다고. 그 틈에 벌떼같이 모여든 사람들은 엄마의 목까지고 가져가 속이 몹시 상해있었다고. 엄마는 있는 힘을 다해 구역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고.

길고 지루한 밤이었다. 요란하게 울어대는 천둥소리는 가슴을 죄어 왔다. 금방이라도 방문이 덜컹하고 열리며 시퍼런 불덩이가 방 안으로 들어올 것 같은 불안감에 온몸을 떨었다. 이불을 머리까지 쓰고 숨소리마저 죽였다. 시계도 정지된 상태였기에 시간을 알 수 없어 공포는 점점 더했다. 자정을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자잘한 소리까지 모두 먹어 치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린 동생의 고른 숨소리만 가득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나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졸음이 몰려들어 꾸벅꾸벅 졸았다.

그때였다. 방문 고리를 흔드는 소리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벌써 아침인가 하고 눈을 비볐다. 여전히 어둠이 가득했다. 그런데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때, 다시 문이 덜컹거렸다. 창호지 문살에 검은 그림자가 드러났다. 순간 나는 겁에 질려 동생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누구세요?”

“...........”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 대답하지 않으면 고함을 거야!”

“나다.”

그제야 갈라지는 저음이 들려왔다. 고평오였다.

“왜? 왔어.”

“지언이가 무서워할까 봐 왔어.”

“얼른 가지 못해?.”

“문을 좀 열어봐. 줄 것이 있어.”

“싫어! 가지 않으면 소리칠 거야!”

“소리쳐봐! 천둥소리 때문에 아무도 들을 수 없을걸?”

고평오가 문고리를 세게 잡아당겼다. 방안에 고여 있던 공기가 일시에 밖으로 빨려 나갔다. 힘없이 문고리가 풀어졌다. 고평오의 몸에선 비릿한 몸 냄새가 풍겨왔다. 비를 맞은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어 있었고, 번들거리는 얼굴은 붉은빛이 돌았다. 나는 동생이 잠든 이불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꼼짝없이 고평오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고평오는 내 곁으로 다가와 앉더니 누런 봉투를 내밀었다.

“우윳가루야! 널 만나면 주려고 했는데, 네가 자꾸 나를 피해 다니는 바람에 줄 수가 없었어.”

내게 바짝 다가온 그 애가 손을 뻗어 치마 속을 더듬기 시작했다. 성당 창고에서 성추행당한 이후 고평오를 피해 다니느라고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애의 손가락이 어느새 아래 깊숙이 들어와 만지기 시작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수치심이 구석구석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허리에 힘을 얼마나 주었는지 장딴지가 몹시 당겼다.

“전재미 동네는 밤마다 쿵쿵거려. 왜 쿵쿵거리는지 모르지? 남자와 여자가 부둥켜안고 있기 때문이야. 히히.”

그 아이의 웃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고평오에게 벗어나려고 몸을 틀었다. 그러자 고평오가 내 목덜미를 잡아챘다.

“가만히 있어. 아주 잠깐이면 끝난단 말이야.”

“이건 나쁜 짓이야!”

“만져만 보겠다는데, 가만히 있어.”

양동이로 퍼붓듯 비가 양철 지붕 위로 쏟아져 내렸다. 빗소리 때문에 고평오의 숨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가 나를 밀쳐 방바닥으로 눕혔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밀어냈다. 그런데도 고평오는 서서히 내 몸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버둥거리던 내 발이 잠들었던 동생의 몸을 차는 바람에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그렇다고 그 애의 손장난이 쉽게 끝나지는 않았다.

그는 바지를 내리고 내게 달려들었다. 딱딱한 이물질이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다. 처절하게 몸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자지러질 듯이 울어대던 동생도 잠잠해졌다. 내 몸속으로 미처 들어오지 못한 고평오는 씩씩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역겨운 냄새가 풍겨왔다.

코를 쓱쓱 문지른 고평오가 막 방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양철 대문이 요란하게 흔들리더니 사람 소리가 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옷을 입었다. 고평오는 재빠르게 부엌으로 몸을 숨겼다.

엄마가 순철이 아버지의 등에 업혀 들어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 몇몇이 함께 따라 들어왔다. 고평오의 아버지도 섞여 있었다.

“엄마!”

나는 힘없이 쓰러져 누운 엄마를 흔들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저씨! 우리 엄마 왜 그래요?”

순철이 아버지한테 물었다.

“벼락이 옆에 떨어져서 실신했어.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 집으로 데려오긴 했다.”

함께 온 사람들은 엄마의 의식이 깨어나도록 손과 발을 주무르고 바늘로 손끝을 찔러 피를 짜냈다. 그러는 사이에 고평오는 무사히 집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고 씨가 잠시 나무 끌을 옆에 세워두고 담배 한 대 겨우 물었는데, 난데없이 시퍼런 불덩이가 그곳에 떨어져 온통 불바다가 되었지 뭐냐. 네 엄마가 그 파란 불에 갇혀 정신을 잃었던 거야! 다행히 쇠붙이를 손에 들고 있지 않아 벼락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지. 하마터면 저승길로 갈 뻔했어.

순철이 아버지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아내면서 겨우 말문을 열었다.

“내 평생 그렇게 큰 불덩이는 처음이야! 땅바닥으로 쫙 깔린 그 불 속에서 멀쩡하게 살아온 것만도 기적이지.”

고 씨가 뒤를 이어 말꼬리를 되받았다. 그렇게 제각기 한마디를 던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순철이 할머니가 엄마를 보살펴 주었다.

“비가 보통 쏟아져야지. 모두 일하다 말고 돌아왔어. 네 엄마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으니까, 일할 맛이 싹 사라져버려 모두를 뿔뿔이 흩어졌어. 어쩌다가 젊은 나이에 어린 새끼들 키운다고 이런 고생을 하는지 불쌍하기도 해라.”

순철이 할머니는 엄마의 다리를 주무르다 말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신이 도왔다. 신이 도왔어.”

순철이 할머니도 가톨릭 신자였다. 문맹이라 글씨를 읽을 수 없었지만 웬만한 기도문은 모두 암송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모태 신앙임을 자부하는 순철이 할머니는 자신은 순교자 집안 후손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이번의 일로 우리 집도 성당을 열심히 다녀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모든 일이 성모마리아의 은총이라고. 영세는 아직 받지 않았지만, 엄마가 가끔 주일에 성당 문턱을 드나들어 그나마 은총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엄마는 순철이 할머니를 따라 주일이면 어김없이 미사를 보러 성당으로 향했다. 그렇게 종교를 의지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밤이면 묵주를 굴리며 기도문을 암송했다. 엄마의 기도는 끝날 줄 몰랐다. 그 기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든 날이 많아졌다.

얼룩진 미사포

그해 겨울이었다. 엄마는 연분홍색 한복을 입고 세례를 받았다. 영세식을 받는 엄마의 모습은 너무도 환하고 행복해 보였다. 뽀얀 피부에 늘씬한 키 그리고 잘록한 허리, 신도들의 시선을 끌었다. 고 씨 아내는 은근히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시샘을 해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다. 우리 아버지가 딴 집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나 엄마는 의연했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소소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쪄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세례를 준 사람은 요셉 신부였다. 그 당시만 요셉 신부는 검은 수단이 그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 듯 사명감에 불타있었다. 가끔 로만 칼라를 하지 않고 평상복을 입었는데, 그의 몸 매무새는 몹시 단단해 보였다. 그는 한국어 발음이 서툴러 설교하다가도 실수를 연발했다. 나도 엄마를 따라 성당에 나갔다. 그때부터 요셉 신부와의 질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나는 요셉에게서 부성애를 느꼈다. 처음엔 파란 눈의 이방인으로 보였는데, 차츰 요셉의 손길에 배어 있는 따뜻함을 알게 되었다. 그의 서툰 발음마저도 정감으로 다가왔다. 영세는 죄의 사함을 받는 의식이라 말에 나도 모르게 귀가 번쩍 뜨였다. 해서 요셉에게 교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재미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던 날은 마침 내가 세례를 받던 날이기도 했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레이스 망사로 된 미사포를 쓴 나는 제단 앞에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동전 크기의 하얀 밀떡은 곧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신다는 서약이었으며, 죄의 씻김을 받은 의식이라는 요셉의 음성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처음처럼 동정녀가 되고 싶었다. 적어도 교리대로라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자, 전재미 마을은 일상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서 늦은 저녁을 먹는 일은 사라졌다. 동네 여자들의 일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기제품이 하나둘씩 집으로 들였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소란스러워졌다. 질투가 섞인 몸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늦도록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밤새 악을 쓰며 싸웠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일은 수해를 매년 입는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연중행사처럼 여름만 되면 물난리를 겪었다. 마치 노아의 홍수를 방불케 했다. 살림을 꾸려 인근 마을이나 성당으로 피신했다. 대부분 7월과 8월에 물난리를 겪었는데, 때로는 기상이변으로 4월에 홍수를 입기도 했었다. 하천이 전재미 마을보다 높은 게 문제였다. 제방 둑을 잘 쌓았다고 하지만, 개천 바닥에 쌓인 모래가 많아 많은 물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중호우가 계속되면 제방 둑이 터져 저지대에 있던 가옥들이 물에 잠기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어느 해 4월 이른 아침이었다.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 제방 둑이 붕괴, 하천이 역류해 마을이 잠기는 일이 벌어졌다.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누런 황토물이 마당으로 슬금슬금 밀려들더니 금세 부엌까지 차 들었다. 이불과 옷가지를 끄집어냈으나 곧 물은 방으로 차 들어왔고, 낡은 장롱 사이로 흙탕물이 넘나들었다. 아기를 업은 나는 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가재도구를 주워 모았다. 엄마의 두 눈은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엄마는 비닐로 말아둔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인 그림 몇 점이 장롱 위에 잘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림을 건드릴 때마다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는데, 엄마는 애처로운 눈빛이 아버지의 그림을 보다가 다시 보물처럼 꼭꼭 싸서 더 높은 벽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와 시골 풍경을 담은 풍경화 몇 점이었다.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자, 엄마와 나는 필사적으로 살림살이를 하나라도 더 건져내려고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살림이래야 봤자, 주방용품과 옷가지였지만 하나라도 잃어버린다면 당장 불편을 겪어야 할 판이었다. 부엌 아궁이에 걸쳐있던 무쇠솥은 붉은 황토에 깔려있어 꺼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양은솥과 나머지 그릇들은 챙겨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곧 쓰러질 것 같던 판자촌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물이 빠지고 난 후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 전재미 사람 모두가 땅을 치고 펑펑 울었다.

마을 한쪽에 있던 공동화장실의 내용물이 집집이 차고 들었다. 오물과 붉은 황토가 끈끈하게 가구마다 붙어 있었다. 과연 저 집에서 다시 살 수 있을까 하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각자 자기 집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어느새 잠자리를 만들고 솥을 걸었다. 죽지 못해 산다고들 하면서도 나름대로 살아갈 방도를 잘도 찾았다.

사람들은 날마다 전재미에서 탈출하는 꿈을 꾸었던 것, 무궁화 마을 사람들처럼 뒷짐 지고 물 구경을 할 수 있는 그런 꿈도 꾸었을 것이고. 하지만 그 건 단지 꿈이었다. 돈만 생기면 술 퍼먹고 싸움질이나 일삼는 사람들이었다. 작은 소문에도 머리채를 휘어잡고 싸워대는 아낙네들의 꿈이 쉬 이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직도 전재미 동네에서 살았던 기억을 떨쳐 내지 못하는 것은, 사랑과 미움이 함께 찾아온 곳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꿈이 없던 시절

내 눈에 비친 마을 사람들, 마치 갈 곳을 잃고 허둥대는 모습으로 보였다.

오로지 고 씨네 돼지농장만이 날로 번창했다. 인근에 매물로 나온 땅을 사들여 축사를 새로 지었고, 날마다 돼지가 새끼를 쳤다. 어수선했던 마을에 잠시 평화가 찾아온 것은 그 고 씨네가 새롭게 조성된 무궁화 동네로 이사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동네는 마을 입구에 무궁화가 피어 있었다. 보랏빛 무궁화가 피어 있던 그곳은 정부에서 주택 융자받아 지어진 현대식 건축물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권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농촌 주택 시범 마을로 선정된 곳이라 아궁이 대신 연탄보일러를 설치해 난방하는 구조였으며, 현대식 입식 주방으로 지어졌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렇게 고 씨네가 전재미 마을에서 이사하자, 고평오와 동네에서 마주치는 일은 사라졌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고평오를 더는 피해 다니지 않았다. 나는 고평오보다 한 뼘 정도 키가 자란 상태였고,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었다. 전재미 동네를 그때까지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지만, 엄마가 하는 시장통에 점포를 얻어 채소 가게를 차려 사는 형편이 좋아졌다. 곧, 전재미 마을을 떠날 수 있다는 꿈을 꾸었다.

어느 날부턴가, 마을 사람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수군댔다.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던 고평오의 성추행이 뒤늦게 소문이 난 것이 아닌가 해서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데 그건 엄마에 대해 소곤거림이었다. 엄마가 꼬리를 쳐 성당 신부와 연애한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뜬소문에 엄마는 화가 치밀어 입술을 부르르 떨었으나, 입을 닫아버렸다.

고평오의 엄마가 퍼뜨렸다는 것을 알았던 것, 그래서 그 어떤 반응을 하지 않았다. 어쩜 저리도 당당하지? 어린 자식 데리고 혼자 산다고 좋게 봤는데 다 연극이었다는 구만. 점점 소문이 거세졌다. 고 씨 아내는 요셉 신부가 엄마에게 다정한 말이라도 하면 심하게 질투했던 것이고, 요셉 신부는 그런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함께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신부님 앞에서 침통한 얼굴로 한숨을 쉬거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내게도 아주 자상하게 대했다. 학용품이나 구호품이 들어오면 남겨두었다가 건네주었다. 성당은 우리 모녀에겐 크나큰 은총이요, 안식처였다.

‘신이여! 나를 절망케 하지 마시고, 악의 구렁에서 벗어나게 하여 성인 성녀의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요셉의 맑은 목소리가 내 가슴에 점점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여느 애들과 달리 성숙했다. 그런데 여자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고평오의 손이 스쳤던 그 젖가슴이 더는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도 없이 완숙한 여자로 점점 피어나고 있었다. 엄마도 여전히 고운 눈빛과 흐트러지지 않는 몸매를 갖고 있었다. 그랬기에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흘깃대는 마을 남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우리 가족은 교회 사람들로부터 따돌림당했으나 주일이면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성당으로 향했다. 고 씨 아내와 일부 여자들의 눈 흘김을 당했어도 흔들림이 없는 엄마의 모습은 무서울 만큼 차분했다.

악의가 서린 눈빛으로, 더러움과 오물로 가득 찬 세상이라고 보기 시작했던 그 날, 그때의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그 생채기를 헤집어야만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릴 것 같다. 왜 이토록 깊은 고리를 풀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지, 지금까지도 요셉 신부를 가슴이 아프도록 그리워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야 할 것 같아서다. 하지만 나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그 이야기만큼은 쉽게 꺼내지 못한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너무나 불결한 느낌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성탄전야였다. 예수가 성스럽게 태어나던 그 날, 나는 논바닥에 누워 하얀 눈 속에 묻혀 흐르는 혈흔을 손으로 닦아내야 하는 큰 사건이 터졌다. 내 탓이 아니었다고 수없이 되새겨보았지만, 그 어떤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평오 그 눈빛

‘큰 빛이 오늘 우리 위에 비치리니,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나셨다. 그 이름 묘하신 분, 하느님, 평화의 임금, 영원한 아버지라 하리니 그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

요셉 신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성당 곳곳에 베어 신앙의 충만함으로 가득하던 날, 성가대의 이름다운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성당 안은 은은한 조명 빛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없었던 지난 삶이 그 시간만큼은 위로는 받는 듯 평화롭게 느껴졌다.

하필 엄마는 동생이 감기에 걸려 저녁 미사를 본 후에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성가대에서 성가를 불렀던 나는 자정미사 중에 찬송가를 더 불러야 해서 엄마와 함께 가지 못했다. 나에게 먹구름이 덮쳐 오리란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마냥 떠들며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구원의 빛을 찬양했다.

저녁 미사 때 잠시 마주쳤던 고평오도 이미 돌아간 뒤라서 안심하고 성가대원들과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속에 파묻혀 지냈다. 성당 안쪽에는 작은 마구간이 있었다. 그곳에는 아기 예수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전등 빛이 가득한 마구간은 평화롭고 아늑해 보였다.

자정미사가 끝나자마자 하얀 눈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축복을 나누고 희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큰 손뼉을 치며 모두 제집을 향해 걸어갔다. 삼거리를 지나자, 함께 걸어왔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나 홀로 길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눈이 소복하게 쌓여 대낮처럼 밝았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10분이면 충분했지만, 눈길이라 더뎠다. 훅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쌓인 눈이 회오리를 일으켰다. 발자국이 도장처럼 쿡쿡 찍혔다가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 논두렁에 쌓아놓은 짚단 속에서 무언가 바스락댔다. 들짐승이 움직이는 소리라고 생각해 뛰다시피 했다. 또다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물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누군가 비틀거리며 휘적휘적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멀리 전재미 마을에서 불빛이 희붐하게 보였다. 조금 전까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위해 축가를 부르며 행복했던 시간이 너무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 환희가 자꾸만 어둠 속으로 말려드는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빤히 보이는 마을이 멀게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검은 물체가 앞을 가로막고 내 앞에 섰다. 처음엔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검은 물체가 나를 내려다봤다. 고평오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몸을 움츠렸다. 벌떡 일어나 도망쳤다. 뒤따라온 그가 내 손목을 우직스럽게 잡아끌더니 논 한가운데로 끌고 갔다.

할 말이 있으니 조용히 따라오라고 했다.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나와의 실랑이가 논 가운데에서 계속되었다. 푹푹 쌓이는 눈 위로 고평오의 발자국과 내 발자국이 뒤엉켰다.

“제발 집으로 보내 줘.”

“너, 자꾸 성질나게 할 거야?”

갑자기 고평오의 주먹이 날아들고 발길질해댔다. 나는 힘없이 눈 위로 나뒹굴고 말았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점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고평오의 얼굴이 내 얼굴 위로 바짝 다가왔다.

“대학에 떨어진 놈이라고 너까지 무시할 거야. 너 오늘 죽고 싶어!”

“집으로 보내 줘! 엄마가 마을 입구에 나와 계실 거야.”

나는 달팽이가 껍질 속으로 파고들 듯 외투를 끌어 올렸다. 고평오는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넌 악마야, 가까이 오지 마!”

필사적으로 반항하는 날 그는 또 한 번 발길로 힘껏 걷어찼다. 나는 엉금엉금 기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저를 구해주소서. 은총이 가득하신 모후여, 저 사탄을 벌하여 주소서”

나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음이 더 고평오를 포악하게 만들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하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천주의 성모마리아여, 이제 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나는 큰소리로 성모송을 암송했다. 고평오는 내 뺨을 사정없이 내리치더니, 짚단이 깔린 곳으로 끌고 갔다. 입술에서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가 치마를 사정없이 잡아당겨 찢었다. 아랫도리가 벌거숭이가 된 나는 그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었다.

“신이여 나를 구해주소서. 신이여, 이 순간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가 성기를 거칠게 더듬다가 사정없이 제 것을 내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악하고 터진 비명은 눈 속에서 흩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일은 벌어지고 나는 힘없이 무너졌다.

술에 취한 고평오의 힘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손에 잡히는 건 지푸라기와 힘없는 갈둥그리 뿐이었다. 그의 머리를 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기자, 그의 입김이 내 목덜미에 훅하고 치고 들어왔다.

발버둥 치는 몸 위로 눈이 소복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고평오는 마치 하얀 들짐승처럼 눈 속에서 꿈틀댔다. 속살이 뻐근하게 아팠다. 체념이란 말이 얼마나 끔찍하고 굴욕스러운가를 처음 느꼈다.

허벅지 아래로 뜨끈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절망의 나락의 순간이 찾아들었다. 고평오가 몸을 들썩이자, 논바닥이 쿵쿵거렸다.

모든 게 조용해졌다. 그제야 나는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무녀와 신 보살이 흐느끼며 붉은 광란의 춤을 추었던 게 바로 이런 행위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몸도 생각도 모두 구정물 통에 빠져버린 느낌. 더는 어제의 내가 아니었다.

이경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 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메일 imk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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