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_히어로가 벌써 죽어? 에이 설마.......

거북하고 괴로운 마음.

김탄은 조기 퇴근을 하기가 상당히 불편하고 또 불편했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나부터 살고 봐야지..

김탄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생각이었다.

그는 온 몸이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식은땀은 아직도 계속 줄줄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생존 본능은 그를 철면피로 만들었다.

김탄이 집에 가기 위해 가방을 어깨에 맸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작업장을 둘러보자 김탄이 사고친 불량 작업을 다시 작업하고 있는 직장 동료들이 보였다.

불만이 가득하고 힘에 겨운 표정이었다.

그래도 김탄은 나부터 살고 봐야지였다.

생명의 절대적 본능.

생존 본능이 지금 그에겐 우선이었다.

그냥 몰래 빠져나가려던 탄은 그래도 신우 프로텍 직원들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죄송해요! 먼저 퇴근할게요!”

재빠르게 작업장을 뛰쳐나가는 김탄의 등 뒤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를 테면, 푹 쉬고 내일 열심히 해. 잘 들어가 등등..

이런 말들을 김탄은 내심 기대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김탄이 친 사고에 동료들이 불만이 많았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은 예외였다.

작업장을 나서는 김탄의 뒷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반장이었다.

“에휴~ 저 녀석. 혼자 몸조리는 잘하려나 모르겠네. 쯧쯧”

반장이 근심 반 걱정 반 가득한 얼굴로 혼자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듣지 말아야 할 혼잣말을 들은 사람이 있었다.

영식이었다.

“하이고~ 애잔하다. 애잔해. 누가 보면 탄이 반장님 아들인 줄 알겠어요.”

누가 들어도 비꼬는 말이었다.

하지만 영식의 비꼬는 말에는 진짜 반장의 본심이 들어 있었다.

그는 정말 김탄을 아들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고 또 그 사실을 그 누구도 알 길 원하지 않았다.

특히 마영식에게는..

“시끄러워! 영식이 넌 탄이 못 끝낸 작업이나 끝내고 가. 야간 잔업이야.”

“아. 그건 송 팀장 팀에서 하기로 했잖아요? 왜 이래요? 진짜.”

“씨끄러워! 여기선 내가 대장이야. 시키는 대로 해!”

영식은 반장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역시, 탄만 좋아하는 구나. 나는 싫어하고..’

누군들 사랑 받고 싶지 않겠는가?

어렸을 때 가장 슬픈 기억은 부모의 편애이지 않은가?

가장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은 영식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뿐 아니라 직장에서 또는 교우관계에서..

사춘기 아이처럼 삐딱해진 영식은 마음에 복수라는 두 글자가 새겨졌다.

그가 반장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

그건 바로 야간 잔업 거절이었다.

왜냐하면 반장은 이 직장에서 납품 기일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 약점을 알고 있는 마영식은 치졸한 복수극을 펼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반장님!!”

“왜?”

“저 오늘 저녁에 순정이랑 약속 있는데요?”

“뭐? 그런데”

“반장님이 하라고 한 야간 작업 못 할 거 같아요.”

“오늘만 살고 내일은 죽어? 순정이는 내일 만나면 되잖아!”

“네. 그럴게요.”

반장 말대로 정말 오늘만 날이 아니었다.

그리고 영식이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회사 납품 기일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영식의 잔업 거절의 논리는 빈약해졌다.

그랬기에 영식의 치졸한 복수극은 시작과 동시에 막을 내렸다.

마영식은 그대로 자리에 얌전히 자리에 앉아 일을 다시 시작했다.

‘확 때려 칠까? 하지만.. 애마 할부금이 아직 남았는데.. 아, 참. 핸드폰도 할부가 남았지..’

마영식의 마음에 갈등은 일었지만 남아 있는 채무가 그 갈등을 종식시켰다.

순간 마영식은 그의 나약함에 눈물 글썽였다.

권력에 굴종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처럼..

위와 같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멋있게 퇴장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영식은 그럴 수가 없었다.

확 씨 그만 둔다고! 더러워서 못 하겠네!

머릿속으로 소리를 질러봤다.

하지만 상상으로는 그의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다.

마영식이 아주 작은 개미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씨. 짜증 나. 진짜. 씨팔.”

듣지 말아야 하는데 반장이 들어 버렸다.

“뭐라고?”

“아… 아니에요.”

“지금 나한테 뭐라고 욕하지 않았어? 아. 씨. 뭐라고 한 거 같은데?”

“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자꾸 왜 이러세요. 오늘. 진짜 이상하시네.”

명백히 영식이 잘못했지만 영식은 반장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

진실을 가려야 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영식은 정말 욕을 했다.

아니라고 발뺌을 했지만 반장은 다 들었다는 듯 무섭게 영식을 노려보고 있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싸우기 전 서로 마주한 동물들 중 시선을 회피하는 동물이 지는 것이다.

시선을 회피하는 건 도망갈 곳을 찾는다는 뜻이다.

영식이 반장의 시선을 슬며시 피했다.

“어? 저기요! 저기 좀 보세요!”

“뭘? 지금 말 돌리는 거야?”

“아니요! 진짜 저기 좀 보세요!”

영식의 말에 반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집에 가고 있어야 할 김탄이 작업장 입구를 조금 나가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니, 탄아! 아이고! 저런!”

반장이 깜짝 놀라 경황없이 소리만 치고 있을 때 영식은 이미 탄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탄에게 도착한 영식은 김탄을 흔들어 깨웠다.

“탄. 탄아! 일어나 봐! 여기 누워 있으면 어떡해! 야!”

하지만 김탄은 영식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구급차를 불러야지 그렇게 몸을 흔들면 어떡해.”

“아! 맞다!”

어느새 마영식 옆에 와 있던 반장이 말하자 영식은 그제야 다급히 자신의 전화기를 꺼냈다.

순간 반장이 신고하지 말라는 듯 영식의 전화기를 아래로 내렸다.

“이미 전화했어. 곧 구급차가 올 거야.”

“고.. 고마워요. 반장님.”

“아니, 당연한 일 가지고 네가 왜 고맙다는 거냐?

탄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구나.

이렇게 기절을 할 정도면 그냥 집에 가지 뭐 하러 일을 한다고 고집을 부렸나. 참.”

“작업 일정 때문에 그런 거겠죠. 요즘 오더가 너무 많으니까..”

“그래도 저렇게 할 필요까지야. 미련한 거지.. 쯧쯧.

어서 탄을 그늘로 옮겨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

“네. 반장님.”

반장과 마영식은 탄을 나무 그늘 아래로 옮겼다.

탄을 바라보는 마영식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마영식보다 6살 어리지만 김탄은 영식의 베스트 프렌드였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김탄이 잘못될까 두려웠다.

반장만 김탄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영식 또한 그를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우정을 말한다.

사랑은 서로 믿고 아끼는 것이다.

믿고 아끼기에 가슴이 아팠던 영식의 입에서 걱정 가득한 말이 흘러나왔다.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야.”

반장도 애써 침착하게 말해 봤지만 마음은 걱정과 염려로 그득하다는 게 경직된 얼굴로 말해 주고 있었다.

곧이어 구급차가 와 탄을 싣고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 들어오면 살아 돌아 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죽는 사람도 많았다.

생명을 되살리는 골든 타임.

4분.

심정지가 오면 무조건 4분 안에 되살려야 한다.

그래야 후유증 없이 되살릴 수 있다.

심장은 우리 몸에서 생명을 유지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다.

즉 심장이 멈추고 10분이면 완전히 되살릴 수 없게 된다.

이건 사망이란 뜻이다.

다행이 응급실에 실려온 김탄은 심정지는 오지 않았지만 코마상태였다.

의식불명의 원인 불명.

의료진은 그 원인을 살피기 위해 김탄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며 살피고 있었다.

응급의 한 명이 김탄이 누워 있는 병상으로 다가와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 환자가 구급대원들이 말한 그 환자인가요?”

“네. 선생님.”

간호사에게 차트를 건네 받은 응급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초췌한 얼굴로 훑어 보았다.

“아직도 바이탈 사인이 이상한가요?”

“아니요. 현재 호흡이 거친 거 외엔 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의식은 여전히 없는 상태고요?”

“네.”

응급의는 이 이상한 환자 김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주머니에서 라이트를 꺼냈다.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려는 동공의 대광반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응급의가 김탄의 한 쪽 눈꺼풀을 들어올리려다 깜짝 놀랐다.

마치 의식이 있는 듯 김탄이 실눈을 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급의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감추고 침착하게 간호사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눈을 뜨고 있었죠?”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그래요? 정말이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의사는 혹시나 김탄의 의식이 돌아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꺼풀을 젖히고 불빛을 비쳤다.

동공 수축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더 지켜보도록 하죠. 보호자는 어디 있죠?”

“잠시 볼일이 있다며 다시 돌아오겠다며 돌아갔어요.”

간호사의 말에 살짝 당황한 의사는 손목에 시계를 보았다.

“그럼 검사는 보호자가 돌아오면 하도록 하죠.”

응급의가 김탄에게 조치해야 할 일을 다했으니 다른 환자를 보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뚜뚜뚜뚜뚜.

순간 김탄의 환자 감시장치에서 경고음이 울리자 응급의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그가 당황한 얼굴로 돌아보자 간호사가 감시장치의 모니터 시그널을 확인하곤 다급하게 말했다.

“선생님! 환자의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왜 이래? 에피네프린 1mg 투여하세요.”

심장을 살리는 응급 약물 에피네프린.

의사의 말대로 처방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탄의 심박수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조만간 심장이 멈출 걸 예상한 의사가 소리쳤다.

“CPR 대비해 주세요!”

상황은 급박했지만 대처는 정확했다.

의료진들은 긴박하고 부산스러웠지만 차분하고 일사불란했다.

그런데

갑자기 김탄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눈물을 눈여겨보는 이가 없었다.

우리의 히어로 김탄은 의식은 있었지만 몸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

그렇지만 의식이 있다는 걸 확인할 길이 없었기에 코마 상태로 분류가 된 것.

그렇다면 김탄은 이 모든 상황을 의식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또 그렇다면 김탄은 자신의 심장이 곧 멈추게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눈물이 고인 걸까?

김탄이 죽기 직전 눈물이 살짝 고인 이유.

온몸이 마비가 됐는데도 눈물샘이 발동한 이유.

그건 그의 억울함 때문이었다.

그의 생에 마지막에 든 억울함.

20살 꽃다운 나이에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억울함을 뛰어 넘는 이유!

‘나 죽는 건가? 안 되는데…. 나… 아직 모쏠인데…’

장난이 아니다.

거창한 이유.

절박한 이유.

그딴 건 지금 김탄에게 없었다.

수컷으로 태어나 여자 친구 한 번 못 사귀어 본 한 맺힌 억울함.

김탄은 이 순간 이렇게 생을 빨리 마감할 거면 차라리 2년적 짝사랑했던 같은 반 연수에게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해볼 걸 그랬나 라며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였다.

김탄은 비통함마저 들었다.

삐-

마지막 순간 그 비통함을 담고 그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또르르르 볼을 타고 떨어졌다.

가늘고 긴 사망 신호음이 환자 감시 장치에서 계속 흘러 나왔다.

의료진은 김탄에게 심폐 소생술과 CPR을 시행했지만 4분 안에 심장을 되살리지 못했다.

생명을 되살리는 골든 타임.

4분.

김탄은 그 4분을 넘어 10분을 넘겼기에 사망으로 분류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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