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_미래의 히어로 김 탄.

모든 것에는 고유한 주파수가 있다.

빰빰빰빰. 빰빰빰빰.

여기 빰이라는 글자가 8개가 있다.

이게 만약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의 1악장 도입부를 텍스트로 표현한 거라면?

숙련된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장대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들릴 것이다.

이에 필적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오직 숙련된 숙련공들만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신우 프로텍 직원들이 기계로 내는 오케스트라였다.

3축 가공 cnc, 3D 프린터, 밀링 머신, 유압 프레스, 진공 탈포기 등등.

마치 연주자들이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듯 신우 프로텍 직원들은 위와 같은 기계들을 만지며 멋진 하모니를 만들고 있었다.

청중이 많듯 오더도 많았다.

그런데 이 신우 프로텍 기계들이 내는 하모니 속에서 이질적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계음 속에서 나는 사람의 목소리는 상당히 불쾌하고 낯선 소음 같았다.

“불량이야. 불량이라고. 이런 또 불량이네”

이 불쾌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바로 이곳 신우 프로텍의 총 생산 책임자 반장이었다.

그는 큰 키에 다부진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매력적인 남자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이는 60대 초반.

그에 따라 얼굴에도 주름이 많았다.

아무튼 이 반장이라는 사람은 지금 화가 나 있었다.

그가 검수하고 있는 제품이 모두 불량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라, 이것도 불량이네? 어휴, 큰일이야. 이틀 뒤가 납품 기일인데 이를 어쩌나….”

반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압력 밥솥 폭발하듯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 불량 작업의 원인 마영식을 째려봤다.

원흉이었던 마영식은 아무것도 모른 체 샌딩 머신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마영식.

신우 프로텍 생산직 직원.

고등학교를 졸업과 국방의 의무를 마친 평범한 대한민국 26세 남자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불량 메이커.

신우 프로텍 요주의 인물. 반장의 경계 대상 1호!

그는 평상시 작업을 잘 하다가도 한 번 불량을 내면 대량으로 사고를 쳤다.

그는 한때 수습 불가 사태까지도 일으킨 주범이기도 했다.

신우 프로텍 역사상 그런 수습 불가 사태를 일으킨 건 마영식이 최초이자 최후였었다.

그는 이렇듯 반장을 괴롭히는 자였다.

“영식이 이 놈의 자식을 그냥…”

더 이상은 묵과할 수 없다.

단단히 버릇을 고쳐주겠다며 반장이 다짐을 했다.

그가 증거물을 손에 들고 마영식을 불렀다.

“영식아!! 영식아!!”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마영식은 하던 작업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자 화가 나 있다는 듯 도끼눈을 뜨고 있는 반장이 포커스 인 되었다.

‘아니겠지. 환청인가?’

영식은 다시 고개를 돌려 기계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또 영식아 라는 환청이 마영식의 귀에 들렸다.

그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반장이 보였다.

순간 몸이 굳고 심장이 덜컥 내려 앉은 마영식.

‘어우 씨. 내 이름을 부른 게 반장님이잖아? 환청이 아니었네.’

“영식아!”

이건 당장 달려오라는 소리였다.

즉시 마영식은 한숨부터 나왔다.

반장님.

마영식의 직장 상사.

하지만 마영식에게는 가장 껄끄럽고 무서운 존재.

그리고 마영식은 그가 이 직장에서 자신을 가장 못마땅해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마영식의 심장이 마치 신경의 무조건 반사처럼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영식아!”

반장이 또 이름을 불러댔다.

이건 정말 오늘 뒤지게 혼난다는 뜻.

그걸 알기에 마영식은 선뜻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다시 반장이 영식을 불렀다.

“영식아!”

“네. 반장님.”

“너 이리 와 봐!”

어차피 마영식에게는 늘 있는 일이었다.

그게 뭐냐면..

매일 반장에게 꾸중을 듣는 일.

처음 맞는 매가 무섭지 매일 맞으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한 영식이가 ‘에이 씨’ 라고 투덜거리고는 우싸인 볼트 같은 속도로 쏜살같이 반장에게로 달려갔다.

그렇게라도 하면 화를 덜 낼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인생 최고의 달리기 기록을 달성한 듯 반장 앞에선 마영식은 숨을 헐떡거렸다.

그런 그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반장의 비난이 쏟아졌다.

“영식아. 너 자꾸 일을 이따위로 할 거야? 어?!!”

“뭐가요?”

마영식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을 이따위로 했는지..

그가 멀뚱히 눈만 끔벅거리며 쳐보자 반장이 그 증거물인 부품을 영식의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어? 이건.. 제가/”

반장은 영식에게 변명할 틈을 주지 않았다.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며 잔소리를 해댔다.

“뭐가요? 라고라고 했냐? 지금? 자 봐. 이거42번 부품.

눈이 있으면 똑바로 봐라. 이거 이거 샌딩이 모두 불량이잖아!

작업할 땐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라고 했잖아. 이 한심한 놈아.

어휴, 제발 좀 야간 잔업 좀 그만하자. 영식아.

대체 넌 왜 그러는 거야. 다른 동료들도 생각해야지. 에휴.

요즘 것들은 다들 그렇게 이기적인 거야?”

누가 들어도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비난이었다.

하지만 영식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왜 그런 것 가지고 나무라냐는 듯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봤다.

그런 영식의 모습에 반장은 당황했다.

‘설마.. 관두려고 저러나? 아이고. 오더가 많아서 지금 그러면 큰일인데.’

예상과 다른 반응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반장은 지금 할 말을 잃었다.

원래대로라면 마영식이 잘못했다며 싹싹 빌어야 맞는 스토리인데 지금 그는 뻔뻔하게 반장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행동은 정말 마영식이 회사를 관둘 생각이 아니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행동.

반장의 예상이 적중한 듯 마영식이 픽 비웃으며 고개를 아래로 툭 떨구었다.

마치 모든 걸 다 내려놓겠다는 듯..

반장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마영식이 이러면 곤란했다.

정말 오더가 많았으니까..

반장이 쩔쩔매자 영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쳐다보는 사람이 기분 나쁠 정도로 삐딱했다.

평소 같으면 이런 영식의 머리를 후려치며 욕을 할 반장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저 말없이 영식을 쳐다보며 그의 입에서 관둔다는 소리가 나오질 않기 바랄 뿐이다.

픽~

비열하게 마영식이 웃자, 반장의 심장은 원래의 위치를 벗어난 것처럼 더 아래로 내려 앉았다.

“하이고~”

반장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마영식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일단 절박한 자가 물러서는 법.

반장이 먼저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영식아. 화내서.”

“아이 씨. 이제 아셨어요? 그거 제가 한 거 아니거든요?

김 탄이 한 거잖아요. 반장님.

42번 샌딩작업 오늘부터 탄이 하기로 한 거 잊으셨어요?

오전 작업 물량이면 탄이 한 건데 왜 저한테 뭐라고 하는 거죠?”

기가 살았는지 쩌렁쩌렁한 영식의 목소리가 반장의 귀를 후벼 팠다.

동시에 반장이 눈이 깜짝 놀란 듯 커졌다.

“뭐라고? 탄이 했다고? 탄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네. 맞아요. 탄이 한 거라고요. 너무하세요. 반장님.

아무리 제가 불량 메이커라고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라고요.”

“하지만… 탄이는..”

“아 나. 어이가 없네.

반장님이 탄만 예뻐하는 건 알겠는데 탄의 잘못을 저한테 뒤집어 씌우는 건 잘못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차별과 박해 속에서 일하는 저는 제가 참 대견스럽다고 생각해요.

부잣집에서 못 태어난 제 죄가 큰 거죠.

부조리와 억압 속에서도 먹고사니즘 때문에 참아야 하니까요.”

틀린 말이었지만 반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영식이나 할 법한 대량 불량 작업을 탄이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반장님!”

“으.. 응.”

“전 이만 제 작업을 하러 가도 되죠? 저 이따가 약속 있어서 잔업하면 안 돼요.”

“어. 그래. 그래. 어서 가서 일 해라. 미.. 미안하다. 오해해서..”

“맨날 나한테만 뭐라 그래…. 쳇”

영식의 불만 가득한 구시렁거림은 영식의 바람대로 반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는 못했다.

단지 그는 이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사건에 대해 알아내고자 탄이 작업하는 곳으로 향했다.

여기서 잠깐!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되돌려 보면 왜 히어로 얘기에 생산이니 기계니 불량작업이니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사람 때문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샌딩 머신 뒤로 서 있는 한 남자.

바로 이제 갓 20살이 된 청년 김 탄.

아마 174cm정도 되는 평균 키.

히어로로서 자질이 의심될만한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냥 몸.

뒷모습은 별거 없으니 앞모습을 보자.

염색을 하지 않은 그냥 이발소 같은 데서 자른 스타일 같은 새까만 더벅머리.

그리 잘생기지도 못 생기도 않은 페이스.

다만 그의 개성이 하나 있다면 쭉 찢어진 큰 눈이었다.

한 마디로 촌스러웠다.

그렇다.

애석하게도 여기 바로 김탄이라는 사람이 히어로다.

아니, 미래에 히어로가 될 사람이다.

아득하지 않은가?

이 자가 어떻게 히어로가 될지 상상해보면?

토니 스타크처럼 초일류 부자도 아니고

피터 벤저민 파커처럼 주변에 방사능에 피폭된 거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로버트 부르너 배너처럼 핵물리학자 출신도 아니니까 말이다.

위에 열거한 사람들이 누구냐고?

순차적으로 아이언 맨, 스파이더 맨, 헐크이다.

대단한 히어로들이지 않은가?

어디 그 뿐인가?

지금까지 존재한 그 수많은 히어로의 직업을 따지다 보면 김탄의 스펙은 저기 흙수저를 넘어 똥수저에 가까웠다.

우리 미래의 히어로께서는 지금 이렇게 신우 프로텍에서 샌딩 머신기를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김탄의 직업이 신우 프로텍 생산직 직원이었으니 당연히 이에 관련된 얘기를 할 수 없지 않은가?

김탄이 이 직업을 가진 게 김탄 잘못만은 아니었다.

그가 만약 하워드 스타크의 아들이었다면?

그가 만약 태어난 곳이 미국에 있는 뉴욕시 퀸스에 거주지가 뉴욕시 맨하튼 파커 인더스트리즈 였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김탄이 꼭 그렇다고 해도 아이언 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지금 신우프로텍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직업 때문에 대한민국 히어로 탄생기 이야기를 듣는 걸 포기하고 싶다면 다시 한 번 김탄의 국적과 태생에 연민을 가져보시라.

적어도 세계 최고 히어로가 대한민국에서 탄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은가?

저 스펙과 저 국적으로 말이다.

그럼 왜 하필 김탄이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불특정 다수 중에서 제비 뽑기로 뽑힌 거와 비슷한 거였으니까.

어쩌면 김탄은 솔직히 재수없게 히어로에 낙점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 만년 전 파눔의 만든 판을 탓하시길.

파눔은 만년 전 이 모든 이야기를 계획하신 설계자.

그에 대해 알고 싶으면 앞으로 5년 뒤에 쓰게 될 이 이야기의 프리퀄 안녕 내친구 자붐비를 미래에 찾아 보시라.

흠냐~

아무튼 그때 당시 파눔이 자본주의를 알리 없거니와 직업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히어로로서의 요구상을 몰랐을 테니까 말이다.

부디 디테일이 부족한 파눔을 용서해주시라.

쿨럭!

아무튼 우리의 미래의 히어로 깨서는 샌딩 머신기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계셨다.

그런데 너무 많이 흘렸다.

“야! 탄아! 김 탄!”

이름을 부르자 김탄은 당연히 돌아봤다.

반장이 서 있자 환한 미소부터 나왔다.

“어? 반장님!”

ACT_001_001_02_벌써 빌런(악당)이 등장한다고? 뭐야? 이건..

미소는 미소를 부른다고 했던가?

하지만 김탄의 미소는 반장의 미소를 불러오지 못했다.

오히려 심기가 불편한 듯 서 있는 반장에게서 이상함을 느낀 김탄이 입을 열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왜.. 부르셨나요? 반장님.”

“아니, 그게…. 탄아.”

반장은 선뜻 말하지 못했다.

그러자 김탄이 되물었다.

“왜 그러세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반장이 보기엔 김탄은 불량작업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순간 그 부분에 대해선 그냥 넘어갈까 생각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불러봤어.”

대충 얼버무리고는 그대로 뒤로 돌았다.

멀리서 마영식이 마치 감시하는 듯 쳐다보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저 자식은 일 안하고 뭐 하고 있어? 진짜.’

반장이 다시 몸을 돌려 김탄을 쳐다보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등 뒤에서 아주 멀리 서 있는 영식의 따가운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다.

반장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멀뚱히 서 있는 김탄에게 일단 부품부터 내밀었다.

“탄아. 무슨 일 있는 거니?”

“네?”

“아니 그게 말이다. 42번 샌딩 오전 작업 네가 했다며?”

“아.. 네..”

“그런데 왜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했어?”

“네?”

김탄이 깜짝 놀라 반장의 손에 들린 부품을 잡아들고 자세히 살폈다.

얼핏 보면 보이지 않는 거친 부분이 보였다.

상품 가치가 제로가 된 불량이었다.

“아.. 이런..”

난처해하는 김탄에게 반장이 다시 꾸지람을 했다.

“불량률이 제로에 가깝게 성실하고 꼼꼼한 녀석이 이번 작업은 40%가 불량이야.

난 또 영식이 한 줄 알고 애먼 영식이만 잡았지 뭐냐.

그 녀석 평상시 불량 메이커라 뭐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하아~”

김탄이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자 그의 이마에 흐르고 있던 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녀석 무슨 땀을 이렇게 흘려? 일을 열심히 해서 그런 거야?”

그런 김탄을 보고 반장이 걱정스레 묻자 김탄이 머뭇거리더니 웅얼거렸다.

“저기.. 죄송해요.”

“땀 흘리는 게 뭐가 죄송해?”

“그게 아니라.. 제가 지금 몸이 좋질 않아요.

자꾸 메슥거리고 토할 것 같고 속이 울렁거리고 그리고 또 어지럽고 현기증도 나고.. 막 그래요.”

“아이고 이런.. 그래서 불량을 낸 거구나.”

반장이 김탄의 처지를 이해하자 김탄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지금은 5월 중순이다.

별로 덥지 않은 계절.

 

그리고 여기 신우 프로텍은 작업 특성 상 창문이며 출구며 모든 입구는 공기가 통하게 열어 논 상태였다.

절대 더울 수가 없는 상황.

그렇다면 김탄이 흘리는 땀은 더워서 흘리는 땀이 아닌 몸이 쇠약해 나는 식은땀이 분명했다.

 

그걸 알아 챈 반장은 즉각 자비심이 발동했다.

“이런, 정말 종합병원 수준이었구나.

몸이 안 좋으면 쉬어야지 왜 참아가면서 일해. 원… 욘석도.. 쯧쯧..

납품기일 때문에 그런 무리수를 둔 건 알겠다만 그렇게 한다고 능사가 아니란다.”

순간 탄의 눈가에 맺힌 감동의 눈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반장에게 고마워서였다.

“급한 일이지만 조금 더디더라도 한 번에 할 일을 한 번에 해야 해.

한 번 할 일을 두 번 하게 되면 그게 더 오래 걸려.

네 마음 알았으니 됐다. 오늘은 그만 하고 들어가서 쉬어라.”

“네. 고맙습니다. 반장님.”

반장은 그대로 몸을 돌려 돌아갔다.

김탄의 눈에는 그런 그의 뒷모습에서 후광이 비쳐 보이는 것 같았다.

마치 지저스처럼.. 마치 석가모니처럼..

자애롭고 자비로운 반장님 때문에 김탄은 마음의 불편함을 놓았다.

그 때문인지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왔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몸이 안 좋은지.. 그냥 반 차 쓸걸..’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던 김탄은 일단 샌딩 머신기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휴~”

가볍게 한숨을 훅 내쉰 김탄은 즉시 회개모드로 들어갔다.

‘반장님 말이 맞아. 모두 내 잘못이야.

어차피 할 일은 한 번에 끝내는 게 능률적이지.

괜히 미안한 마음에 일을 엉망으로 해 버려서 미안하네..

그래도 반장님이 이해해줘서 고맙다.’

회사에 오더가 많았기에 손 하나를 빼버리면 남은 동료들이 힘들어지게 되는 걸 잘 알고 있는 김탄이었기에 이런 참사를 낸 것.

즉 잘 하려고 한 마음 때문에 벌어진 참사.

손해가 막심한데도 또 잔업을 다른 동료에게 떠넘기게 됐는데도 모든 걸 이해해주는 반장이 김탄은 정말 고마웠다.

그가 그 마음을 담아 이미 멀리 가버린 반장의 뒷모습을 다시 쳐다 보며 빙긋이 웃었다.

탄에게는 언제나 좋은 사람.

그가 진짜 어른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사회에 나와 마주친 어른 중 가장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

반장을 바라보는 김탄의 얼굴에 띤 미소가 더욱 커졌다.

쿵! 쿵! 쿵! 쿠쿵!

갑자기 심장이 요동쳤다.

깜짝 놀란 탄은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시.. 심장 마비?’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하나의 심장에 또 하나가 감싼 듯한 느낌.

그리고 그 두 개의 심장이 엇박으로 뛰고 있는 느낌이었다.

‘뭐지? 이건? 아까부터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까? 이상해. 정말.’

두 달 전에 받았던 건강검진에선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럼 일시적 현상이란 뜻이다.

두 달 만에 심장이 두 개로 나뉘거나 협심증 혹은 부정맥이 오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왜 이런 일시적 심장 이상이 오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는 말없이 손으로 심장이 들어 있는 가슴을 토닥였다.

마치 아기가 잠이 들길 바라는 엄마의 손길처럼..

그래도 심장은 진정이 되질 않았다.

쿠쿵! 쾅!

그 김탄의 심장 이상의 원인.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이 어느 산에 충돌했다.

충격파는 산기슭의 나무들을 무참히 쓰러뜨렸다.

운석은 그 처참함의 범인이라는 듯 대기권을 빠져 나오느라 뜨거워진 몸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열을 식히고 있었다.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면 뉴스에 나온다.

하늘에서 폭설이 내리면 그것도 뉴스에 나온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졌으니 대한민국에 있는 티비에는 온통 운석 뉴스로 도배가 되었다.

“긴급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 2시 40분경.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야산 인근에 운석이 추락했습니다.”

티비 속에서 아나운서가 딱딱한 표정으로 그리고 딱딱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말한 운석은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낙하운석이었다.

운석.

사람들은 이것을 또 다른 말로 하늘에서 온 로또라고 표현했다.

한 예로 러시아 체바르쿨 호수에서 발견된 운석은 당시 가치가 1조 4400억이었다.

진짜 말 그대로 로또였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일은 로또 발행보다 적었으니 희소가치가 높기에 당연한 말이다.

그리고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였다.

소유권이 최초 발견자에게 가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번 운석은 대한국에 떨어지는 바람에 로또로서의 가치가 명실불부해졌다.

그 이유는 2019년도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마 2014년 이전에 떨어졌다면 운석 발견자는 지금쯤 호화 요트에서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9년도는 달랐다.

2014년 12월.

대한민국 국회는 운석의 국외 반출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 시켰다.

또 운석은 등록제로 관리가 되었다.

즉 2014년 이후에는 대한민국에서는 로또로서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지금 떨어진 운석의 관심이 많은 사람은 당연히 돈보다는 가치를 원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여기 대략 80살 정도로 보이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티비에 나오는 운석 뉴스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볼륨을 2단계 높여.”

노인이 말을 하자 티비의 볼륨이 높아졌다.

음성명령이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는 보고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만 자세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현장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

방송국에서 현장을 보여준다는 말에 노인이 거만하게 꼬고 앉았던 다리를 풀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정말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

티비 화면으로 헬리콥터에서 찍은 크레이터가 보이자 노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흠~”

긴장을 풀기 위해 내는 소리 같았다.

그걸 증명하듯 노인의 손이 떨리고 있었고 눈에는 안광이 서렸다.

티비 화면이 전환됐다.

그에 따른 멘트가 흘러나왔다.

<네, 여기는 운석 현장입니다. 보시다시피 정부는 혹시 모를 방사능 유출이나 안전 문제로 사고 지역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

티비 화면으로 무장한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운석 현장으로의 모든 진입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화면을 본 노인은 전화기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세.”

노인의 전화기 너머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회장님. 회장님도 보고 계십니까? >

“그래. 지금 보고 있네.”

<시작할까요? 회장님. >

“그래. 하거라. 이번엔 진짜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먼..”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뚝.

통화가 종료되었다.

다시 뉴스에서 아나운서 멘트가 흘러나왔다.

<운석은 다행히 주거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야산에 추락해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현장 관계자의 말이 있었습니다. >

“꺼!”

노인의 명령에 티비가 저절로 꺼졌다.

“그럼 맞는지 확인을 해 봐야겠지.”

혼잣말로 나직이 중얼거린 노인이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노인은.

전화기 목소리가 말한 회장님.

이름은 왕종철.

그는 재계 총수였다.

돈 많은 그가 운석에 관심을 보인다는 건 운석을 통해 그 이상을 원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운석이 무엇인지 아는 자라는 소리이다.

운석 속에 든 바탈 스톤.

그는 그 신비한 돌을 찾길 원하는 자였다.

왕종철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취향인 듯 고풍스럽고 정갈한 가구들 사이로 배치된 책장 쪽으로 향했다.

책장 앞으로 간 노인은 책장 속에 진열된 책들을 천천히 훑어 보았다.

그의 직업에 어울리게 경제학과 경영학, 마케팅 그리고 역사 서적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책들을 훑어 보던 그의 시선이 멈춘 건 한 책이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그가 그 책을 꺼내자 책장 세로로 된 칸 중 한 열이 문이 열리 듯 열렸다.

그 안에는 벽이 있었고 그 벽엔 금고 하나가 박혀 있었다.

일반 금고와 달랐다.

매끈한 하이글로스 재질의 표면은 다이얼도 없었고 버튼도 없었다.

왕종철이 검버섯이 핀 주글주글한 손을 그 표면에 가져다 댔다.

삐-

지문 인식을 시키자 음성이 흘러나왔다.

<신분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음성을 인식하겠습니다. 패스워드를 말해주세요.>

“아르보르”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내용물을 확인하십시오. 왕 종철 회장님.>

음성이 끝나자 금고의 하단이 서랍처럼 앞으로 천천히 튀어 나왔다.

그 안에는 금궤, 다이아몬드, 채권 같은 물건은 없었다.

대신 아주 오래된 골동품 같은 나무로 만든 상자가 들어 있었다.

왕종철이 그 나무상자를 꺼냈다.

무언가 두려운 듯 경직된 얼굴로 상자를 묵묵히 바라보던 그가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여는 것과 동시에 붉은 빛이 그의 얼굴을 휘감았다.

나무 상자 안에는 붉은 빛이 나는 돌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붉은 빛이 나는 돌은 맥이 뛰듯 빛이 나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걸 경이스럽게 본 왕종철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흠. 맞았어. 파눔의 심장이 맥동하기 시작했구나.”

한참을 설레는 표정으로 파눔의 심장을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창가로 발을 옮겼다.

창가 앞에 선 그가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힘의 상징인 듯 마천루 최상층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아주 작았다.

도심 사이를 지나가는 자동차.

인도를 걸어가는 사람들.

도심을 형성하는 낮은 건물들.

모든 것이 작게 보였다.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왕종철이 혼잣말로 조용히 읊조렸다.

“그래, 이제 모든 게 선명해지겠구먼.”

창에 통해 들어오는 빛 때문에 왕종철의 뒷모습은 후광이 비치는 듯 보였다.

마치 신성한 신처럼.....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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