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양복

그림 출처-장세현 작가
그림 출처-장세현 작가

대전이라고 쓰인 이정표가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구겨진 양복의 도착지가 어디일지 궁금해 그의 얼굴을 슬쩍 흘겨봤다. 지그시 눈을 뜨고 있던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상관하지 말라는 듯 무신경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돌렸다. 부스스한 머릿결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는 느릿한 동작과 굳게 닫힌 입술에서 어쩌면 어딘가에서 한 번쯤 스치고 지나쳤던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님, 다음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갔으면 해요.”

나는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말하려다 말고 그들의 눈치부터 살폈다.

“그럽시다. 그런데 가방은 두고 내리세요.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화장실에 간다고 내렸다가 줄행랑치는 손님이 더러 있었어요.”

“설마요.”

나는 그런 부류의 승객 취급받았다는 게 기분이 언짢아졌다.

“모르시는 말씀 마세요. 택시뿐만 아니라,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는 직원이 한눈파는 사이에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정말 돈이 없어서 그런 짓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신종 뺑소니들이 한 짓들이죠. ”

택시 기사는 신종 사기범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깜박 차선을 변경하지 못해 하마터면 죽암 휴게소를 놓칠뻔했다. 방향을 돌려 휴게소 주차장에 타를 주차하고 세 명 모두가 차에서 내렸다.

기사의 말대로 큰 가방을 택시에 놓고 보조 가방 하나만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근처 흡연실은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사람들 사이를 겨우 비집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방광이 꽉 찼는지 아랫배가 뻐근하니 아팠다. 문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이 짜증을 내며 문을 두드렸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속을 비워낼 수 있었다.

화장실 밖으로 나가자, 택시 기사가 빨리 오라고 손짓해 보였다. 커피 한잔 마실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곧 택시는 출발했고,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이 흘렀다. 택시 기사는 졸린다며 카세트테이프 넣고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스륵 스륵 긁히는 소리가 잠시 났고, 곧 이선희 여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 요즘 이선희에게 푹 빠졌어요. 목소리가 맑고 신선해요. 그런데 남자 손님께선 어디까지 가십니까?”

“여성분 먼저 내려주시고 그다음에 결정합시다.”

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럼 목적지가 없나요. 혹시 자유여행이라도?”

“그렇소. 제주도로 갈 예정이었는데, 못 가게 된 이상, 여기저기 발길이 닿는 곳을 다녀볼 생각입니다.”

그는 피부가 깨끗하고 뽀얀 한 탓에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적어도 나보단 연상으로 보였다. 룸 밀러 속의 기사 얼굴은 웬 횡재인가 싶은지 웃음이 만연했다. 구겨진 양복은 주변 사람에게 도통 관심으로 보이지 않았다.

점점 그의 행동에 신경이 쓰였다. 단순히 여행 목적인 사람이 아닌 듯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름이 돋았다. 혹시 자살할 장소를 찾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표정에서 전람회에서 본 ‘군상’이란 조각품을 연상시켰다. 굳게 다문 입술은 황소울음이라도 쏟아낼 듯 두툼했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눈을 떴다. 잠시 나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초점 잃은 눈을 꼭 감아버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지친 그의 얼굴에서 요셉 신부의 모습이 연상됐다.

“당신도 지쳐있군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튀어나왔다. 구겨진 양복은 보일락말락 하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쩜 미소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남 참견하지 말라는 비웃음이었을 수도 있었다.

오전 11시가 지나고 있었다. 대전을 지나 외곽 도로를 달리던 택시는 고향을 향해 속도를 냈다. 낯익은 산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도로 옆으로 난 철길은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는개가 서서히 걷히고 햇살이 뿌옇게 드러났다.

금강이 제모습이 서서히 드러냈다. 고향으로 가고 있는 길은 상흔(傷痕)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그 옛날의 감정에 휩싸여갔고, 다시 고평오와 얽혀 일을 지난 일을 떠올렸다.

두려운 존재

고평오 그 애가 고무줄 바지를 추스르자, 나는 냅다 창고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집으로 가는 지름길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엄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축축한 옷을 갈아입고 쓰러지듯 이부자리에 누웠다.

고평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친 탓에 하체가 뻐근했다. 컴컴했던 창고 속에서 벌어진 일이 환영처럼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두 눈을 꼭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방바닥의 냉기가 올라와 등줄기가 서늘한데도 몸은 점점 구들장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온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지언아, 왜 이러는 거야?”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왔다. 의식이 아득하니 멀어져갔다.

사흘이나 몸져누워 고열에 시달렸고 헛소리했다고. 해서 내가 열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동네에 쫙 퍼지기까지 했다. 점쟁이를 불러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는 이웃도 있었다.

내가 잠시 정신이 돌아오자, 엄마는 고평오가 던진 우윳가루를 끓여 입안으로 떠 넣었다. 나는 그 우유를 넘기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독감에 걸린 것으로 알았던지, 약국에서 처방해온 독한 약을 먹이기 위해 고평오가 준 우윳가루에 쌀가루를 섞어 끓여왔다. 그런데 몇 숟가락 먹었던 것 모두 토하자, 어쩔 수 없이 동네 어귀에 있던 무녀의 집을 찾아갔다. 점쟁이는 내 몸에 부정이 들었다며 악귀를 씻어내는 씻김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씻김굿 비용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쟁이를 찾아갔을 뿐이었는데, 오히려 근심거리만 더 얹은 셈이었다.

무녀는 육십을 넘기도록 독신으로 살았다. 선비의 원귀가 몸에 실려 몇 번이나 결혼하려고 했으나, 신랑감이 모두 비명횡사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신을 받고 전재미 마을로 흘러들어왔다. 무녀에게 선비의 원귀가 실릴 때마다 알 수 없는 흘림체 문자를 써가며 점을 쳤고, 시조를 읊기도 하고, 남자 흉내를 내기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가 한글조차 깨우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한문을 쓰고 읊겠는가 싶어 선비의 원귀가 실렸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도 많았다.

무녀 곁에는 집안일을 돌봐주는 신보살이 있었다. 신기가 있어 미쳐 날뛰는 신보살에게 귀신을 쫓아낸다고 자주 굿을 했다. 그런데 두 해를 넘기자. 아예 무녀의 집에 눌러앉아 허드렛일하게 되었다. 신보살은 평소엔 얌전하다가도 산과 들에 푸른 싹이 돋아나는 이른 봄이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 벌거벗은 채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그녀의 행동을 구경했다. 그녀를 붙잡아 옷을 겨우 입히면 어느새 입고 있던 옷을 마구 찢어버리고 다시 춤을 추었다.

그 광란의 춤은 한동안 계속됐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산과 들을 뛰어다녔다. 마른 억세 풀에 두 다리가 긁혀 피가 낭자하게 흘러내렸다. 힘이 센 장정 몇 명이 달려들어 겨우 그녀의 몸을 밧줄로 묶어야만 광란의 춤은 끝이 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신보살의 하얀 속살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신보살에게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무녀가 그녀를 골방에 가두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무녀의 집에 엄마가 다녀왔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무녀가 이미 고평오가 내게 저지른 못된 짓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머리가 점점 아파져 왔고, 또다시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다급해진 엄마는 또다시 무녀를 찾아갔다.

나는 아주 혼란스러운 방에 누워있었다. 울긋불긋한 천들이 휘장처럼 둘러친 방 한가운데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엄마를 계속해서 불렀다. 엄마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랐다. 그런데도 엄마는 울고 있을 뿐,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지언아! 오늘만 이곳에서 보내자. 무섭더라도 하룻밤만 참아보자. 보살님이 네가 악귀에게 매우 놀랐다고 하는구나. 악귀를 쫓아내려면 법당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몸을 씻어내야 한다고 해. 네가 죽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 아기는 순철이 할머니가 데리고 갔어. 엄마가 곁에 있을 테니 어서 자.”

밤이 깊어갔다. 나는 어둠 속에 갇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무서운 흉상인 탱화 속 부처가 곧 밖으로 튀어나와 단검으로 내 목을 내리칠 것만 같았다. 빨강, 초록, 노랑 색종이로 접은 꽃송이가 대나무에 묶어 구석구석에 세워 있었다. 그것들이 갑자기 내게로 날아들 듯이 싶었다. 무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맡에 놓여 있던 쌀 한 대접과 물 한 사발을 보고 나서 내가 혼절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씻김굿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아프면 이곳에 와서 씻김굿을 했다. 어둠 속에 시퍼런 칼날이 공중을 향해 번득였을 것이다. 날마다 악귀를 쫓는다며 무녀는 칼춤을 추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엄마, 무서워.”

나는 엄마의 가냘픈 가슴을 헤집었다. 엄마의 가는 허리가 두 팔 안으로 잡혔다. 젖은 말라버린 빈 가슴이었다. 마른 엄마의 빈 젖을 만지작거렸다. 곧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엷은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었다.

나는 살포시 단잠에 젖어 있었다.

잠결에 이상한 앓는 소리를 들었다.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이었다. 두 눈을 번쩍 떴다. 엄마를 찾았다. 엄마의 자리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몸을 웅크린 채 이불을 썼다. 그러나 흐느낌은 더욱 가까이 들려왔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들었다. 나는 도망치려고 법당문을 살며시 밀었다. 그리고는 마루 밑에 있을 신발을 손으로 더듬었다. 하지만 쉽게 잡히지 않았다. 또다시 들려온 여자의 흐느낌이 무녀의 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녀가 광란의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머리가 쭈뼛쭈뼛해지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무녀의 방은 온통 붉은빛이었다. 촛불의 흔들거림이 창호지 문살 위로 흐릿하게 드리워졌다. 촛불이 타고 있는 그림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방문 앞으로 기어갔다. 그리고는 찢어진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신보살의 하얀 속살이 문틈으로 보였다. 그녀의 끊어질 듯한 신음이 방안을 휘젓고 있었다. 무녀가 신보살의 젖가슴을 쓰다듬자, 신보살 파르르 몸을 떨었다. 마치 커다란 물고기가 뒤엉켜져 있는 듯이 보였다. 무녀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신보살이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내뿜었다. 더는 문구멍을 훔쳐볼 수가 없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 엄청난 광란의 춤, 촛불이 훨훨 타는 가운데 벌어진 굿판, 그 광경을 훔쳐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호흡이 몹시 가빠졌다.

나는 신발도 채 신지 못하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순간, 방안에서 들려왔던 앓는 소리도 뚝 멈추었다. 댓돌에 있던 물건이 나뒹구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뒤엉킨 몸을 풀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을 테고, 문구멍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훔쳐보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쫓기듯 달아났다.

속이 메스꺼웠다. 자꾸만 뇌리를 파고드는 환영들이 두려움과 공포로 나를 몰아갔다.

엄마는 집에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불을 켰다. 차가운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고,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무서우리만큼 컸다. 몇 차례 무서운 경련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열 살이란 나이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와 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일들이 환영처럼 계속해서 스치고 지나갔다.

엄마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순철이 할머니한테 맡겨둔 동생에게 젖을 먹이고 법당으로 갔는데, 내가 없어서 다시 돌아왔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엄마에게는 찢어진 문구멍으로 훔쳐본 붉은 광란의 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성당 뒤편에 있던 창고에서 고평오에게 성추행당했다는 이야기도 꼭꼭 숨겼다. 나는 힘없이 엄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머리끝이 쭈뼛해지면서 알 수 없는 미로 속으로 온몸이 가라앉고 있었다.

고평오는 천주교에서 나오는 구호물자를 가끔 나에게 던져주고 갔다. 내가 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처음엔 슬슬 피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골목길에서 마주친다거나, 아무도 없는 빈집에 혼자 있을 때면,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지나쳤다. 소름이 쫙 돋는 눈빛이었다.

엄마는 푸성귀와 과일을 수레 담아 시장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해서 나는 늘 외톨이가 되어 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방학이 되면 동생을 등에 업고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날마다 시장 바닥을 헤매고 다닌 덕에 천주교 구호품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었다. 겨울엔 생선, 여름엔 과일과 푸성귀가 가득 실은 엄마의 짐수레는 먼 이웃 동네까지 오고 갔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전신주 아래 쪼그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리다 지치면 못을 들고 땅 그림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속엔 는개 속으로 사라진 아버지가 늘 있었다.

점점 밤이 무서워졌다. 밤이면 고평오의 거뭇거뭇한 성기가 나타나기도 하고, 무녀와 신보살의 허연 속살이 엉켜진 채, 나뒹구는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계속해서 악몽에 시달리며 헛소리하자, 급기야 엄마는 성당을 다녀야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요셉 신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물론 마을 이장을 맡고 있던 고씨의 입김이 큰 작용을 했겠지만, 우리 집도 미신 타파의 외침으로 점점 세뇌당하고 있었다.

전재미 마을은 일자형의 구조로 지은 집들이었다. 북방 형이니 남방형이니 하는 가옥의 형태를 따져 지은 집들이 아니라, 다닥다닥 이어 지은 판자촌이었다. 우리 집 양철 대문을 들어서면 기름칠이 잘된 펌프가 있었다. 그 펌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마을 공동 우물을 사용했다. 손잡이가 작두처럼 생긴 펌프를 설치하고 나서야 겨우 물싸움이 사라졌다. 안방 문을 열면 작은 쪽마루가 있었고, 쪽마루에서 내려다본 부엌은 늘 컴컴했다. 빛이 전혀 들지 않는 부엌 바닥은 눅눅했고, 검은 가마솥은 온기가 없어서인지 썰렁했다. 집과 집 사이엔 이십 센티미터 정도의 좁은 송판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옆집 사람들이 소곤대는 소리는 물론 온 동네 대소사까지 들려왔다.

소문은 꼬리를 물고 다녔다. 송판 틈새로 새어 나온 말 때문인지 동네 아낙들의 싸움이 잦았다. 자고 일어나면 눈덩이처럼 커져 있는 소문 때문에 엄마도 괴로워해야만 했다.

엄마가 그 동네에서 혼자 산다는 건 쉽지 않았다. 고향도 아닌 낯선 곳에서 자리 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사라졌으니 오죽 힘들었겠는가. 몇 년 동안 동네 여자들은 앉기만 하면 우리 집 이야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엄마가 성당엘 나가면,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여자들의 입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도 섞여 있었다.

내가 무녀의 집에서 도망치듯이 나온 후,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내 사주가 무척 사납다느니, 나로 인해 곧 마을의 재앙이 올 거라느니 하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엄마는 그 소리를 듣고 진언을 캐려고 무녀를 찾아갔으나, 무녀의 입담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지, 그만 잠자코 가만히 숨죽였다.

전재미 동네에서 유일하게 잘 나가는 집은 고씨였다. 외곽지역의 땅을 싸게 사들여 축사를 짓고 양돈업을 시작했는데,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 또한 고씨의 신앙은 열성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말을 잘못했던 요셉 신부는 영어를 할 줄 알았던 고씨를 신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씨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신앙으로 보상받고 싶어 했던 일종의 신분 상승을 위해 고전분투했다.

고씨는 양공주와 살림을 차렸고, 고평오를 낳았다. 고씨의 과거를 동네 사람이 몇 명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씨의 아내가 나서 애써 부인했다. 마을 사람들은 고씨가 양공주와 동거했든, 재혼했든 그러한 과거가 얄미웠던 게 아니었다. 고씨의 처는 남편은 한 번도 성경 말씀을 어긴 일이 없다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눈에 뜨일 만큼 짙게 화장하고 다녔던 고씨의 아내의 입담은 날로 험악해졌다. 욕설이 섞이지 않으면 말이 안 되기라도 하듯 입이 거칠었다. 종종 남 일에 참견을 잘해 아낙들과 머리채를 휘어잡고 싸우는 일도 벌어졌다. 더구나 양돈 사업으로 고씨가 돌을 벌자 의기양양해져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행동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지독한 가난과 싸우느라 모두 지쳐있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횡포에도 허리를 굽신거렸다.

엄마는 엘리트 여성이었다. 여학교까지 나온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아버지를 기다리며 산다는 게…. 더군다나 전재미 동네를 떠나지 않는 이유를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 관한 일들은 장롱 깊숙이 넣어둔 보물단지라도 되는 양 좀처럼 들춰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는개에 갇힌 뒷모습이 전부였다. 어떻게 해서 전재미 마을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재미 마을은 매년 여름이 되면 땔감 준비했다.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오는 게 아니었다. 요즘은 기차역이라고 불리는 정거장에서 땔감을 거두어들였다. 목재업을 크게 하던 업자들이 정거장 광장에 소나무를 부려놓으면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어 껍질을 벗겨갔다. 감독관이 지키고 서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두툼하고 잘 마른 소나무를 골라주기도 했다.

가난한 주민들은 역 광장에 부려놓은 소나무 껍질을 가져와 뒷마당에 수북하게 쌓아두었다가 그때그때 사용했다. 마치 탑을 쌓기라도 하듯 큰 원통으로 나무를 쌓았다. 어른의 키보다 높게 쌓은 지지 껍질 탑이 뒷마당 가득 생기면, 곧 겨울이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전재미 사람들은 소나무 껍질을 지지 껍질이라고 불렀다. 지지 껍질은 겨울 땔감뿐만 아니라, 밥과 국을 끓일 때도 썼다. 마을 사람 대부분, 연탄으로 난방하지 않고 지지 껍질을 사용했다. 그만큼 사는 게 퍽퍽했다.

이경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 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메일 imk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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