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신부

사진 출처- 이경
사진 출처- 이경

요셉신부

활주로를 선회하던 비행기가 청주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곳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발아래에 떨어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내 어깨 위로 내려앉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공항 대합실은 텅 비어 있었다. 비상 착륙으로 내린 승객이 전부였다. 나는 커피 자판기를 발견하고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블랙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구석진 자리로 옮겨가 앉았다. 기온이 뚝 떨어진 탓에 몹시 한기를 느꼈다. 막 커피 한 모금을 넘기려는 순간이었다. 빨간 넥타이가 다가와 스스럼없이 툭, 말을 던졌다.

“아까는 아주 놀라셨죠?”

나는 살짝 웃어 보였다. 커피 한잔 마시는 이 순간만큼은 당신과 말을 섞는다는 게 불쾌하다는 의미의 웃음이었는데도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행 중인가요?”

이번에도 대답 대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여유가 있어 보여서요.”

더는 대답이 없자, 빨간 넥타이는 먹이 사냥에서 실패한 늑대의 모습으로 커피 자판기 앞으로 어슬렁대며 걸어갔다.

엄마와 요셉신부를 떠나던 날도 오늘처럼 는개가 내렸다. 금강을 끼고 있던 마을이었던 탓에 는개가 피는 날이 종종 있었다.

는개가 내리는 날, 그날은 마을에 갑작스러운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이웃이 봇짐 하나만 달랑 챙겨 들고 달아나는 날도 그런 날이었다. 남의 눈에 띄지 않아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어쩜 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다. 물론 빚 때문에 야반도주를 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을 모두 는개 탓으로 돌렸다. 점점 나도 은연중에 마을에 는개가 피는 날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동네 미친 여자가 소복 차림을 하고 는개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드는 모습을 봤던 것도 그날이었으므로.

요셉신부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그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내 감정을 훤히 꿰뚫어 보는 듯해 언젠가 멀리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켜켜이 쌓였던 탓이다. 죄의 사함, 그것은 아주 사소한 잘못일 때나 가능한 것, 성모송을 암송한다거나, 주의 기도를 외며 죄를 뉘우칠 그런 죄가 아니었기에 애초에 고백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고백성사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 이름, 고평오가 내 몸 한구석을 떡하니 차지하고 누워 주인행세를 하는 한, 어떻게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겠는가.

고평오는 검은 그림자처럼 늘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몇 년째인지 세어볼 수가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 지금 내 나이는 서른여덟 살이다. 그런데도 고평오란 이름이 떠오르면 마치 어린 날의 그 소녀의 감정으로 되돌아갔다. 고평오, 그와의 악연은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호흡기관 타고 그의 흔적들이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재채기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그 냄새에서 묵은 곰팡이가 날렸다.

오전 10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는개는 걷힐 기미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날씨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언제 비행기가 뜰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배가 몹시 고팠다.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식당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로 죄다 그곳에 모여 음식을 먹거나 큰 소리로 잡담하고 있어 발길을 되돌렸다. 한적한 곳으로 찾아들어 편의점에서 사 온 빵과 음료수를 마셨다. 그제야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부팅을 아무리 해봐도 방전이었다. 아침에 서둘러 나오는 통에 충전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요셉신부는 내가 제주도로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테고, 구태여 전화를 할 것까지는 없었다. 핸드폰을 다시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흐릿한 눈으로 공항 유리창에 부딪히는 작은 물방울들을 바라봤다. 고여있다가 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세다가 그만 깜박 졸았다.

물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환영 속으로 빠져드는 침묵의 시간은 짙푸른 색이었다. 짙푸른 강물이 갑자기 넘실댔다. 내 몸이 흠뻑 젖었다. 흠씬 놀라 벌떡 눈을 떴다. 잠시 의자에 앉아 꿈을 꾸었던 모양이었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던 구겨진 양복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그의 얼굴이 몹시 창백하다 못해 흰빛이 돌았다. 이 상황에 구겨진 양복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다니 겸연쩍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전에까지만 해도 곧 자폭해 버릴 것 같은 위기감에 온몸을 떨며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구겨진 양복의 모습이 내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구겨진 양복, 그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오래전에 나는 이곳에서 멀지 않는 소도시에 살았다. 청주에서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득하게 느껴졌던 그곳이 가깝게 느껴졌다. 고여 있던 기억의 편린이 핏빛으로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다. 그곳엔 엄마와 어린 동생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항공회사 안내 창구로 다가갔다. 목적지를 바꾸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조금 전까지 전혀 생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담당자가 비행기 요금의 일부를 반납해 주겠다고 말했다. 들고 있던 가방 외에는 비행기 안에 다른 짐이 없어 가능했다. 구겨진 양복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곧 그도 환불을 요구했다. 그도 비행기 짐칸에 짐이 없어 가능했다. 돌려받은 지폐를 쥐고 있는 그의 손이 너무도 희고 깨끗했다.

나는 그곳을 벗어나 택시 승강장 쪽으로 내려갔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택시 기사가 차창 밖으로 목을 쭉 빼 들고는 큰소리로 물었다.

“대전 방면요?”

“합승하시면 절반 요금으로 가실 수 있어요. 다른 승객과 합석하실래요?”

“그러죠.”

기사는 택시에서 내려 뒷문을 열고 가방을 빼앗다시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공항 대기실 안으로 뛰어갔다. 합승할 사람을 데려올 모양이었다.

청주 공항 주변을 둘러봤다. 주위가 뿌옇게 보여 낯선 외국에 내린 느낌이었다. 한 3분쯤 지나자, 택시 기사가 급히 걸어왔다. 그 뒤를 구겨진 양복이 뒤따르고 있었다.

“합승하실 분이 나타났어요. 정확하게 어디로 가십니까?”

“대전에서 다시 옥천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요.”

택시 기사가 구겨진 양복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은 어디까지 가세요?”

“저도 같은 방향입니다. 도착지는 가면서 결정할게요.”

가면서 도착지를 결정한다니 그의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일단 출발합니다.”

택시 기사는 서둘러 핸들을 꺾어 주차장을 한 바퀴를 회전해 다시 출구 쪽으로 향했다. 총알택시를 타고 있는 기분이 들 만큼 액셀과 브레이크를 연달아 밟았다. 택시를 잘못 탄 게 아닌지 후회가 들 정도였다.

옆좌석에 앉아있던 구겨진 양복은 피곤한지 곧 눈을 감았다.

“날씨가 좋지 않아 오늘따라 공항이 한산해요. 이런 날은 우리도 남는 게 없어요. 요즘 경기가 얼어붙어 더 해요.”

택시 기사는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정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누가 듣던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몇 마디 대꾸해주다 지쳐, 구겨진 양복처럼 눈을 지그시 감았다. 기사는 아무도 호응하지 않자, 맥이 빠지는지 말문을 닫아버렸다.

십 년 동안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이었다. 모두 허물어졌을 엄마의 묘와 어린 동생의 묘를 한눈에 알아보기란 어려울 것이다. 희미하게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차창 밖은 명주를 펼쳐 놓은 듯 하얀 길이 계속 이어졌다. 추수하고 난 뒤라 볏짚 갈둥그리가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택시는 시속 백이십 이상 넘는 속도로 내달렸다.

“너무 빠르지 않으세요? ”

“걱정하지 마세요. 이 길은 눈감고도 갈 수 있어요”.

구겨진 양복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자는 것인지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기실에서 봤던 그런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얼마 동안 그렇게 택시는 질주했다. 너무 적막했던지 택시 기사가 요즘 유행한다는 트로트를 틀었다. 여자 가수의 애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겨진 양복이 몸을 움찔댔다.

반달눈썹의 아이

그림 출처-장세현 작가
그림 출처-장세현 작가

나는 반달처럼 검게 돋아난 눈썹과 볼우물이 예쁜 아이였다. 아이들과 뒤섞여 놀아도 하얀 얼굴은 쉽게 눈에 띄었다. 엄마의 감청색 치마를 줄여 만든 몽당치마와 꽃무늬가 그려진 고무신을 신고도 공주가 된 양 좋아하며 온 동네를 쏘다녔다. 흑갈색 눈은 늘 어딘가를 향해 있었지만, 밤하늘에 뜬 반달을 아주 좋아했고, 화가가 되는 꿈을 꾸곤 했다.

마을 앞길 너머의 철길은 멀리에 서서 봐도 늘 은빛으로 반짝였다. 공동 우물이 마을 중앙에 터줏대감처럼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의 눈을 피해 철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가곤 했던 나는, 흐드러지게 핀 들꽃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야 철길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유년의 꿈은 공동 우물 속 물이끼처럼 파랗게 피었다가도, 깊은 샘물 속으로 텀벙 가라앉아버리기도 했다.

이지언이란 이름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그 당시에 여자들의 이름을 자, 숙, 희, 영자의 돌림으로 마치 한 집안 같은 느낌을 주는 정도로 지었다. 그런데 내 이름은 달랐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의 이름처럼 세련됐다.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신선한 느낌을 주는 그 이름은, 아버지가 몇 날 며칠 고뇌 끝에 건진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읍내에서 초상화를 그렸다. 아버지가 그린 초상화는 색감이 독특했다. 안료를 직접 만들어 써서 색이 잘 변색하지 않았다. 그랬던 탓에 자기 얼굴을 그리고 싶어 하는 읍내 유지들이 줄을 섰다.

내가 살던 곳은 전재미 동네였다. 그렇게 부르게 된 연유는 두 가지의 이유에서였다. 6.25사변으로 인해 남쪽으로 피난을 가던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라서 그렇게 불렸고, 또 다른 하나는 마을 어귀에 점쟁이가 살고 있어서 점쟁이 마을이라고 부른다고들 했다. 사실 어떤 이유로 그 마을을 전재미라고 불렀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집의 형태는 독특했다. 양철 지붕이었던 건물은 다닥다닥 일렬로 서로를 의지하고 붙어있었다. 두부를 반듯하게 썰어놓은 듯한 가옥 형태라 비밀이 지켜질 리가 없었다. 늘 아낙들과 남정네들의 몸싸움이 잦았다. 걸핏하면 욕설이 먼저, 손이 먼저, 몽둥이가 앞서는 그런 동네였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런 곳에 산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이 뒤엉켜 사는 동네, 문둥이와 비렁뱅이가 사는 동네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몸뚱이가 재산 전부라며 악을 쓰던 이웃들, 늘 술에 취해 있는 사람이 한둘은 있던 탓에 하루가 멀다 않고 경찰관을 호출했던 그런 곳이었다. 모여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탕을 하면 미련 없이 동네를 뜨겠다는 말을 욕설처럼 내뱉었다. 하지만 한 번 그 마을로 기어든 이상 쉽사리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운수 좋은 날은, 천주교회에서 배급이 있는 날이었다. 온 동네가 새벽부터 떠들썩했다. 노인은 물론 애들까지도 일찍 일어나 아우성이었다. 천주교에서 분유 가루와 옥수숫가루, 밀가루를 나누어주었는데,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배급받기가 어려웠다.

성모송과 주의 기도를 암송하는 아이들에게는 영세를 받지 않아도 일단 통과였다. 어린 아이들의 눈에 비친 미국은 정말 부자 나라였다. 성모송과 주의 기도문을 외우면 일주일에 한 번은 구호품을 받을 수 있었다. 너무도 쉽게, 거저먹는 일이었다. 당시 구호품은 마을 사람들에겐 유일한 신의 선물이었다. 구호품을 받으려고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성당을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평오의 아버지였던 고 씨는 배급이 있는 날이면 허리에 뒷짐을 쥐고 성당 입구에서 서성댔다. 성당에서 회장 직책을 맡았으며, 읍내에서 열성적인 전도 활동도 펼쳤다.

얼마 전에 요셉신부로부터, 간암 선고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천주의 부름을 받기 전에 꼭 한번 나를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요셉신부는 캐나다 출신으로 예순다섯 살이었다. 그는 평생 한국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힘든 세월이었지만 절대로 한국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가 서품받았을 무렵은 잿더미가 된 한국이 새마을 운동을 한다고 한창 야단법석을 떨던 시기였다. 서품받자마자, 요셉신부는 한국으로 지원했고, 전재미 마을 인근에 있는 성당으로 부임 됐다. 당시 30대가 안 된 나이였으니, 패기와 의욕이 넘쳤다. 캐나다에 있는 부친이 돌아가실 때 이외는 캐나다 땅을 밟지 않던 그였다. 철저하게 한국인이 되고자 자기 고향과 담을 쌓았다.

나는 열 살이던 해에 요셉신부를 처음 만났다.

이른 새벽이었다. 엄마는 잠에 취해 있는 날 흔들어 깨웠다.

“지언아, 어서 일어나. 오늘 성당에서 밀가루 배급한다니까 우리도 빨리 가자.”

나는 엄마의 음성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알 수 있었지만, 쉽사리 잠을 털어내지 못했다. 이미 우리 집 쌀독은 바닥이 난 상태였다. 젖먹이 동생의 암죽 끓일 쌀마저 떨어졌을 정도였다. 묽은 나물죽을 한 그릇 마신 엄마와 나는 산등성이에 있던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어린 동생은 엄마의 등에 업혀 잠들어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던 엄마는 배급받으려고 치마끈을 질끈 동여맸다. 종탑이 보이는 성당 언덕에 이르렀다. 성모마리아 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두 눈이 성모마리아 동상에 잠시 머물렀다.

지붕 위의 뾰족한 십자가엔 참새 떼가 모여들었다. 참새 떼들도 마당에 떨어진 곡식 가루를 먹기 위해 하루를 열고 있었다.

고 씨는 확성기를 입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조용히 하고 차례로 줄을 서시오. 곧 신부님이 나오십니다. 여기는 시장 바닥이 아니라 신성한 천주님의 집입니다.”

먼저 줄을 서려고 실랑이를 벌이다 여러 개의 줄이 생겨났고, 힘없는 사람들은 결국 끝으로 밀려났다.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나는 엄마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사람들 틈에 갇혀 오가도 못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평오가 내 손목을 꽉 잡아끌었다. 엄마는 다른 방향으로 휩쓸려가는 중이었다.

“지언아, 어디 있어?”

엄마의 목소리가 가물거렸다. 고평오가 너무 우직스럽게 손목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힘없이 끌려 나갔다. 겨우 인파 속을 헤집고 밖으로 나왔을 땐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어 있었다.

“날 따라오면 밀가루와 분유 가루를 줄 수도 있어.”

고평오가 말했다. 나는 배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그만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다 세 살이나 많던 고평오는 평소 불량스러운 행동을 저지르던 아이였다. 마을 아이들은 그 애의 행실을 알고 있었다. 고평오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괴롭혔다. 치마를 들치거나 추행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아버지가 성당의 회장이었고, 배급이 있는 날은 유세가 엄청났기에 감히 고평오의 짓궂은 행동을 일러바치는 사람은 없었다.

성당 건물을 막 지나치려는데 검은 수단을 입은 신부와 딱 마주쳤다. 유난히도 키가 컸다. 검은 치마를 입은 파란 눈의 외국 신부가 덥석 잡아채 갈 것 같아 냅다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평오는 신부를 피해 창고 문 뒤에 숨어버렸다. 고평오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안도감이 들었다. 한편이 되었다는 생각에서였다. 창고 안은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평오가 작은 창문을 열자 빛이 쏟아졌다.

고평오의 머리카락 끝이 노랗게 빛을 반사하고 있어 예전과 사뭇 달라 보였다. 요셉신부의 머리카락도 노란빛이었다. 노란 후광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어 매우 경이로웠다.

“배급품은 어디에 있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더 안으로 들어와 봐! 여기에 있어. 나 혼자서는 자루를 들 수가 없어.”

내가 어둡고 음습한 창고 안으로 깊이 들어가자 고평오가 문을 꽝하고 닫았다.

“왜 문을 닫는 거야!”

“너, 이리로 와봐!”

고평오가 창문 쪽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창밖을 보라고 했다. 성당 앞마당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검은 수단을 입은 신부가 확성기를 입에 대고 기도문을 올렸다.

“저것 봐! 저 사람들이 다 배급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어림도 없어. 내 말만 잘 들으면 밀가루와 분유 가루를 줄 수가 있지.”

고평오의 말투가 좀 이상하다 싶었으나, 나는 고평오의 음흉한 속내를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뭔데?”

“잠깐 가만히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있으면 돼.”

순간 나는 몸을 움츠렸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고평오가 무얼 원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친구로부터 고평오가 여자의 성기를 만진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자아이들에게 이상한 행동을 저지를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순간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고평오가 옷을 와락 잡아당겼다.

작달막한 고평오의 몸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고평오의 얼굴이 부푼 찐빵처럼 커다랬다.

“기분이 좋아지는 장난이야, 그렇게까지 벌벌 떨 거 없어. 아까부터 널 지켜보고 있었지. 넌 이제 내 여자야.”

“왜 그러는 거야! 소리칠 거야.”

“어디 한 번 소리 쳐봐! 모두 양키 물건을 받겠다고 아우성들인데, 누가 네 모깃소리를 들을 수 있겠어? 말만 잘 들으면 배급을 아주 많이 줄게. 우리 아버지가 성당에서 회장이란 거 모르진 않지? 만약 소리를 지르면 나와 똑같은 벌을 받게 될 거야.”

내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솟았다. 고평오는 낡은 소파 위에 나를 앉혀 놓고는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그 애의 거무스름한 손이 검은색 돔방치마를 걷어 올렸다. 붉은 내복이 드러났다. 찬바람이 아랫도리로 파고들어 왔다.

바람이 창문으로 휘몰아쳤다. 추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공포와 수치심이 피부 곳곳에서 돋아났다. 고평오의 손이 작은 젖가슴을 움켜줬다. 곧, 고평오의 통통한 손이 여물지 않은 음부를 주물럭대며 만지기 시작했다. 내 몸은 파르르 떨었다. 온몸이 경직되고 마비가 왔다.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아랫배가 뻐근해졌고, 금세 방광이 차올랐다. 고평오는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장난쳤다. 몹시 오줌이 마려웠다. 고평오가 제 바지를 쓱 내렸다. 그리고 내 눈앞에 성기를 드러내 보였다. 고평오의 성기에 거뭇거뭇하니 털이 돋아있었다. 고평오가 갑자기 나를 쓰러트리더니 배 위에 올라탔다. 순간 방광이 슬금슬금 열렸다. 고평오의 거뭇한 성기가 내 몸속으로 파고들려는 순간, 큰 소리를 내며 펑펑 울었다.

“나쁜 짓이야! 그만해! 넌 천주교 신자잖아!”

부질없는 외침이 허공으로 부서졌고, 눌린 방광이 드디어 폭발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오줌이 줄줄 흘러나왔다. 순간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고평오의 몸을 떠밀었다. 몸속을 헤집고 들어오려던 고평오의 몸이 구석으로 나가떨어졌다. 나는 낡은 소파에 앉아 오줌을 잔뜩 쌌다.

“너 오줌 쌌지?”

나는 오줌을 쌌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워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네 엄마한테 말했다가는 이 동네에서 쫓겨나게 될 거야.”

고평오는 비밀 공간에서 누런 자루를 꺼내 구석으로 내던졌다.

“더는 순철이 하고 놀지 마! 공부를 좀 잘한다고 으쓱대는 꼴이라니……. 이건 약속했던 밀가루와 우윳가루야! 넌 이제부터 내 여자야!”

순철이는 옆집에 사는 같은 반 남학생이었다. 노란색 실로 짠 티셔츠를 즐겨 입던 아이였다. 동네에선 공부 잘하는 아이로 소문이 나 있었다. 고평오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창고 안은 공명을 일으켰다. 나는 옷을 끌어 올릴 기력도 없었다. 고평오의 손길이 몸에 닿을 때 어찌나 움츠렸던지 한 발자국을 움직이는 데도 매우 힘이 들었다. 하지만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몹시 엄마가 보고 싶었다.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사람들이 배급받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 틈에서 엄마는 목을 빼고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고 있었다.

“엄마!”

나직한 목소리로 엄마를 불러보았다.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얼마 동안 그렇게 서서 숨죽여 울었다. 창고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는 그곳을 나오려다 말고 고평오가 구석에 던져 놓은 밀가루와 우윳가루를 생각해 냈다. 서둘러 그 자루를 품고 창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경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 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메일 imk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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