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작!

그림 출처-장세현 작가

6

트럭이 있는 공터를 향해 걸어갔다. 경사진 골목길을 내려가는 동안 아버지는 숨이 차는지 몇 번이고 쉬었다.

“트럭이 굴러가긴 해요?”

“옆집에 사는 통장이 가끔 차를 쓰고 정비를 해둬서 엔진은 괜찮다. 후딱 다녀와서 할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도록 하자. 나 죽으면 그것들 모두가 짐 덩어리야.”

아버지의 몸뚱이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뼈만 남아 있어 옷이 헐렁했다. 아버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점퍼가 먼저 흐느적댔다. 아버지를 부축해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아버지와 날마다 으르렁댈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지의 손을 한 번도 잡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몸을 부축한다는 게 어색했다.

아버지가 나지막한 담벼락에 기대고 섰다. 그제야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부축했다. 아버지의 몸에서 아교 썩은 냄새가 날렸다. 딱딱한 아교를 물에 불려 중탕으로 녹여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용량을 많이 하다 보면 아교가 남았다. 그래서 창고에는 늘 부패한 아교 통이 굴러다녔다. 그 냄새가 아버지의 몸에 밴 것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이미 온몸으로 퍼진 암세포가 뿜어내고 있는 고약한 냄새였을 수도 있다.

그런 아버지에게도 엄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들도 평생을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들의 아집 때문에 둘 사이는 늘 평행선을 달렸다. 할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배우고 논어와 맹자까지 익혔다. 패철을 배우고, 풍수지리와 오행을 따져 손가락으로 육갑을 집는 방법을 익혔다. 하지만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작은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듯이,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너무나 컸던 탓이었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단청 일을 배웠으니, 아버지는 주눅이 들어 어깨 한 번 쭉 펴지 못하고 늘 구부정한 자세로 살았다.

아버지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할아버지로부터 단청 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박 씨 아저씨도 함께 수습생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평생 아교를 녹이고 석채를 절구에 갈았다.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일을 한 곳은 흥덕사지 금당 유적지였다. 금속활자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지가 청주에서 발견되었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다.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청주 흥덕사지에서 금당과 3층 석탑을 복원하는 일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버지의 낡은 트럭은 공터 맨 구석에 있었다. 무려 십오 년을 훌쩍 넘긴 트럭이었다.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아버지의 오랜 트럭이 쿨럭댔다. 아버지의 망가진 폐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침 소리와 비슷했다.

흥덕사지 금당에 도착했을 때, 박 씨 아저씨가 먼저 나와서 보수해야 할 부분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세형이 왔구나!”

십 년 만에 만난 박 씨 아저씨였다. 그런데도 마치 어제 본 듯이 반갑게 맞이했다. 아저씨는 머릿수건을 질끈 동여매며 아버지의 얼굴을 살폈다.

“영갑아, 몸은 괜찮은 거야?”

“괜찮긴, 겨우 목숨만 붙어있다. 왜 자꾸 나오라고 한 겨?”

“이번 태풍에 기와가 밀렸는지 저쪽 처마가 온통 물에 젖었지 뭐냐. 그리고 십우도의 아홉 번째 그림이 문제야. 위쪽 처마에 제비가 둥지를 틀었어. 그것도 털어내고 보수를 해야겠다.”

“명장 감투를 쓴, 네놈 혼자 해도 될 일을 뭣 하러 나까지 불렀어?”

아버지가 가시 박힌 말투로 되받아쳤지만, 두 눈은 이미 처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세형이가 왔다고 하니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불렀다. 남의 속도 모르고 투박이야.”

나는 십우도 아홉 번째 그림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처마 아래의 제비집을 올려다봤다. 제비는 떠나고 둥지는 텅 비어 있었다. 제비 똥이 주르르 벽을 타고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 건물을 한 바퀴 빙 둘러봤다.

돌계단 아래 금당 표지석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반본환원(返本還源, 근원으로 돌아가다)

본래 자리 돌아와 돌이켜보니 헛수고만 했구나.

차라리 그냥 장님이나 귀머거리로 있을 것을

암자 안에 앉아 암자 밖의 사물 보지 않나니

물은 절로 아득하고 꽃은 절로 붉구나.’

내 처지에 딱 맞는 글귀가 표지석 안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세형이가 이번 보수공사 좀 도와줄 테냐?”

아저씨가 다가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연히 해드려야죠. 제가 가져간 돈도 아직 갚지 않았는데요.”

“언제 적 이야기를 하냐. 그 돈은 퇴직금이었다. 내가 어르신께 단청기술 배운 걸 생각하면 그 은혜를 반도 갚지 못했다.”

“알긴 아네. 우리 아버지는 친아들인 나보다 만식이를 더 애지중지했어.”

어느 틈에 아버지가 곁에 서 있었다. 아저씨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눈을 질끈 감는 시늉을 했다.

아버지가 금당 안으로 들어가 본존불 앞에 서서 합장을 했다. 나도 뒤따라 들어가 본존불 앞에 엎드려 삼배했다. 아버지는 법당 내부를 꼼꼼하게 살폈다.

금당과 3층 석탑이 정혈에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다. 그 일에 할아버지가 참여한 것이다. 당시 아버지와 아저씨는 단청기술을 배우며 잔심부름을 했다. 할아버지는 아저씨의 손재주를 눈여겨봤다. 단청 도안 뜨는 솜씨와 색을 섞는 기술이 남달랐다. 더구나 예의 바른 행동이 할아버지의 마음에 쏙 들었다. 단청쟁이의 기본은 바른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하며, 수행자의 자세를 먼저 가르쳤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인생철학이기도 했다.

1377년에 직지를 만들어 인쇄한 곳이 흥덕사지였다. 전란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흥덕사지 금당을 복원하는 일은 처음부터 단초가 없어 어려운 작업이었다.

역사학자들과 대목장들과 단청칠 장인들이 모여 갖고 있던 자료와 경험을 토대로 양변 산기슭에 흥덕사 금당을 복원하기도 결정했다. 순천 선암사에서 단청 일을 하던 중에도 할아버지는 한달음에 달려와 합류를 했고, 어린 두 소년이었던 아버지와 아저씨에게도 작은 직책이 맡겨졌다.

사찰이 완공되고 3년이 지나야만 단청을 그릴 수 있었다. 그동안 할아버지 일행은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작은 절간을 전전했으며, 틈틈이 금당에 사용할 단청 문양과 석채를 준비했다.

할아버지는 금당 내부 천정과 처마에 도안 채본을 붙여 밑그림을 그리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오방색을 섞어 단청 칠을 하는 일에 박 씨 아저씨가 큰 역할을 했다. 문양마다 국가의 안위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는 작업이었기에, 실력이 미숙한 아버지는 제외됐다.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으니 그 설움이 얼마나 컸을지 어림으로나마 짐작이 갔다.

어린 소년이었던 아버지는 열 번도 더 탈출을 감행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어찌나 깐깐했던지 한창 놀고 싶은 나이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런데도 박 씨 아저씨는 그 과정을 오롯이 견뎌냈다. 그래서 오늘날 단청칠장 국가 명장이란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저씨는 불편한 조력자 관계였다. 그런데도 여태 일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집안 내력으로 흐르던 단청쟁이란 습 때문이
었다.

박 씨 아저씨는 금당 앞마당을 둘러보며 흥덕사지에서 발견된 유물에 관해 이야기했다.

‘고려 우왕 3년에 청주 흥덕사 금당에서 금속활자를 만들어 책을 인쇄하였다. 그 책이 바로 금속활자로 찍어 만든 직지심체요절이다. 백운 스님은 여러 부처와 조사 스님들의 설법에서 필요한 내용을 뽑아 흥덕사에서 책으로 엮었다. 그 내용을 1377년 7월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냈다는 기록을 직지심체요철의 책에서 발견했다.’

몹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백운 스님의 제자였던 석찬과 달잠 그리고 비구니 묘덕 스님의 시주로 만들었다는 짧은 기록 덕분에 직지심체요절의 탄생 설화까지 모두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은 택지개발사업으로 땅을 정리하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택지개발사업 도중 '흥덕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금구와 청동불발이 출토되어,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지라는 것이 밝혀졌다. 택지개발 사업이 잠시 중단된 후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는데 금당터, 서회랑터, 강당터, 부속건물들이 있던 터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대중 3년명’이라 새겨진 기와와 기타 유물들을 통해 9세기에 지어져 고려 후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음도 밝혀졌다.’

그 오랜 시간, 캄캄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증거물들이 세상 밖으로 제 모습을 드러낸 결과에 세계인들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아저씨는 금당 주위를 돌며 석축 위에 있던 건축물 구조를 하나씩 설명했다. 생경한 단어들이 아저씨의 입에서 쏟아졌다.

“지금까지는 금당만 복원했지만, 훗날 금속활자를 만들던 공간과 서고와 요사채까지 복원해야 한다. 그게 너희들의 과제야.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는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그 원본도 되찾아 와야 하고.”

설명을 마친, 아저씨가 주차장 쪽으로 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제 그만하고 밥을 먹으러 가자.”

“벌써요? 아직 점심 먹기엔 이르잖아요?”

아버지는 고단한지 어느 틈에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좀 멀리 가려고 한다. 그러니 차를 타고 가자.”

“근처 식당에서 먹지요. 뭣 하러 멀리 가려고 해요.”

나는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오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아저씨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차장을 향해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나섰다. 내가 운전하겠다고 하자 자신이 더 잘 아는 길이라며 재빨리 차 시동을 걸었다. 아버지와 나는 뒷좌석에 앉아 아저씨의 눈치를 살폈다.

“오늘은 내 뜻대로 하게 놔둬라.”

“어디를 가려고 그러세요?”

“가 보면 안다.”

차는 흥덕사지 주차장에서 아래로 내려와 우측 길로 돌았다. 청주 시내 방향이 아니라, 외곽도로를 탔다. 곧 우암산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우석이의 작업실이 우암산 근처에 있었다.

“지금 어디 가세요? 혹시 우석이한테 가는 건 아니죠?”

“맞다. 그 녀석한테로 간다. 너희들이 왜 틀어졌는지, 내 다 안다.”

“저는 여기서 내릴게요. 우석이한테 가려고 따라온 게 아닙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당장 차에서 내리겠다고 난리를 쳤다. 그러자 아버지가 내 손목을 꽉 잡아당겼다.

“풀 건 풀자, 우석이가 지금 많이 아프다.”

내 손목을 붙들고 있는 아버지의 손이 파르르 떨었다.

30여 분쯤 달려서 우암산 자락에 있는 우석이의 작업실 주차장에 도착했다. 빔으로 지은 2층 건물이었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는 화강암으로 깎은 사람의 형상이 땅에 머리를 박고 거꾸로 서 있었다. 주위에 줄지어 있는 조각품 몇 점도 눈에 들어왔다.

‘저런 것도 다 예술이라고…….’

나는 우석이의 조각 작품인 듯 보이는 조형물을 흘겨보며 눈에 독기를 잔뜩 품었다.

넓은 창문 사이로 사람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우석이가 분명했다. 그가 우리를 발견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어서들 오세요.”

나는 우석이의 얼굴을 부릅뜬 눈으로 노려봤다. 그런데 예전의 얼굴이 아니었다. 파리한 얼굴색, 입술은 논바닥 갈라지듯 툭툭 터져 있고 두 눈은 휑하니 움푹 들어가 있었다.

‘어쩌다 저 몰골이 되었을까.’

잠시 멈추고 서서 생각했다. 무슨 죽을병에라도 걸린 게 아닌가 싶어 우석의 몸을 샅샅이 훑어봤다. 오래전 거들먹대던 그 녀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얕은 예술가의 흉내를 내며 살던 그가, 인두겁을 쓴 채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예상이 빗나갔다. 치 떨리게 증오했던 그 시간이, 개떡 같은 내 인생이 모두 우석이 때문이라고 원망했던 지난날들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그에게 펀치를 날려 싸움을 벌이고 싶어도, 상대방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몸이었다. 링 위에 나 혼자 덩그렁 하니 서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일시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우석이가 널 보고 싶다고 해서 왔다. 미리 말하지 않아서 미안하다.”

아저씨는 넌지시 말을 던지고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은 몽당연필로 문양을 뜨던 다부진 모습이 아니었다. 가냘픈 어깨와 허물어질 것 같은 두 다리로 걸어갔다. 노심초사하는 아저씨의 행동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작업실 내부에는 다듬다 만 돌과 끌, 정 그리고 쇠망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조각품이 미완이긴 했어도 우석이의 얼굴상과 흡사했다. 제 얼굴을 깎아대는 삼류 조각가, 뭐 그리 인기가 많은지 모를 일이었다. 그곳을 지나 브론즈 몇 점이 나열된 방으로 옮겨갔다. 바깥 풍경 속 소나무들과 조화를 이뤘다. 하지만 그 형상들 모두 우석이 얼굴이었다. 코웃음이 피식 나왔다. 무슨 나르키소스라도 된 양, 모든 작품마다 제 얼굴로 분탕질을 해놨다.

넓은 테이블 위에 음식을 차려내고 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보! 손님 오셨어요.”

우석이가 젊은 여자를 향해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음식은 다 됐어요?”

우석이가 결혼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순천이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만약 알았다면 득달같이 내게 고자질을 했을 것이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수연이를 그렇게 벼랑 끝으로 내몬 범죄자가 어떻게 떳떳하게 결혼까지 했느냐며, 순천이와 나는 욕을 퍼부어댔을 것이다.

“아버지께 어렵게 부탁을 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어요.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

“넌 어디가 많이 아픈 거냐?”

아버지가 우석이에게 말했다. 누렇게 뜬 우석이의 얼굴에 미소가 설핏 돌았다.

“돌가루를 많이 마셔서 그런지 폐가 안 좋아요.”

“젊은 게 벌써 그럼 쓰나. 요즘은 좋은 신약도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 그런데 언제 결혼을 한 게야?”

“그냥 혼인 신고만 했어요. 여보, 이쪽으로 와서 인사드려요.”

젊은 여자가 테이블 쪽으로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눈을 멀뚱거리며 그들의 행동을 면밀하게 지켜봤다. 우석이와 그녀 사이에 점철되고 있는 불길한 기운이라도 있을까 싶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노려봤다.

아저씨의 눈빛이 몇 번이고 마음 풀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의 간절한 눈빛에 그만 차려진 음식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음식을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었다. 그 녀석의 폐가 뭉그러지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녔다. 소가 여물을 씹어대듯 그렇게 몇 번인가 음식을 넘기고 수저를 내려놨다. 좀처럼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작업실을 슬그머니 빠져 나왔다. 정원 한 귀퉁이에서 머리를 땅에 처박고 서 있는 조각품에 기대어 담배를 빼 물었다. 우암산 봉우리를 향해 연기를 힘껏 내뿜었다. 어느새, 우석이가 작업실 밖을 나와 내게로 걸어왔다.

“더, 먹지 않고.”

“넌, 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냐? 사는 모습이 아주 좋아 보인다! 젊은 여자랑 혼인신고까지 하고.”

우석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손가락으로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겼다.

“다시 수연이를 찾아 나설 생각이다. 내 인생의 종착점은 수연이를 다시 만나는 일이야.”

나는 우석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우석이의 목덜미에 푸른 핏줄이 팽팽하게 섰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양인지, 목을 쭉 빼 들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그리고 입고 있던 점퍼 안쪽 포켓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나에게 훅 들이밀었다.

“수연이 주소야. 그 아래 번호는 축제장 전문 업체 단장의 연락처야. 그 단체는 전국 축제장을 돌며 장사를 하더라. 수연이도 부스를 맡아 장사를 하고 있단 소리를 들었다.”

우석이는 조각할 돌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정작 돌 때문만은 아닌, 수연이가 축제장을 돌며 장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그림자를 좇아 정신없이 찾아다녔다고 했다.

해남 청석, 고흥석, 함양 마천석, 문경석, 상주석, 거창석, 강화석, 포천석 그리고 충주의 대리석까지 구하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그게 아닌, 수연이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언젠가부터 우석의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그런데도 무시한 채 관광지 축제장을 돌며 수연의 행방을 쫓아다녔다. 사실 무모한 짓이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관광지 축제장을 돌며 사는 수연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드디어 우석이는 충주 탄금대 근처 축제장에서 그녀를 찾아냈다.

나는 그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됐는지 다그쳐 물었다.

“먼 발치에서만 봤어. 그녀에게 중학생쯤 되는 아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어. 그들의 일정을 알아봤는데, 곧 다른 축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하더군.”

“야, 그게 다야?”

“그런데 말이야, 수연이가 그 단체의 단장과 함께 살고 있었어. 수연이의 얼굴이 몹시 밝았어. 그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지. 혹시 내가 불쑥 나타난다면 그녀가 다시 불행해질까 싶어서 그냥 돌아왔어.”

종이쪼가리에 적힌 단장의 연락처를 들여다봤다.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계속.

[약력]이경 소설가

대전대 대학원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 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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