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작!

그림 출처-장세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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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새벽 다섯 시였다. 미닫이를 열고 주방이 딸린 방으로 들어서자, 쌀을 씻는 아버지의 거친 손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아침 준비를 하세요?”

“흥덕사 금당에 문제가 생겼다는구나. 좀 전에 박 씨가 새벽 댓바람부터 전화를 해왔다.”

“흥덕사 금당에요? 그 몸으로 어떻게?”

“단청을 손 좀 봐야 하는데, 박 씨가 오방색 섞는 것만 도와달라고 해. 네가 집에 왔다고 했더니만,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하더구나.”

“아저씨는 건강하세요?”

“그 사람도 예전만 못해. 우석이한테 단청기술을 전수하려고 아무리 닦달해도 말을 듣지 않아 포기했다. 돈도 안 되는 그 기술을 누가 받으려 하겠냐. 우석이가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다지? 전국 팔도를 돌며 돌을 구해와 정으로 돌려 깎는다는데 제법 비싼 가격을 쳐준다고 하드먼. 우암산에 작업실도 크게 지었다는구나.”

우석이 이야기가 나오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저씨한테 신세 진 것도 있고 할 말도 있어요. 같이 갈게요.”

“밥 한 술을 얼른 뜨고 창고에 있는 칠통 가방을 채비하렴.”

된장국에 몇 숟가락 밥을 말아 후루룩 들이켰다. 아버지는 좀처럼 식사를 하지 못했다. 병원에 들러 아버지의 몸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석이도 나처럼 수암골 전재미 마을에서 태어나고 함께 자랐다. 그는 젊은 현대 조각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전재미 마을의 자랑스러운 후예,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우석이는 외모가 잘생겼으며, 공부도 잘해서 동네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수연이는 오로지 나에게만 마음을 열었다.

곱고 예뻤던 수연이를 생각하며 나는 창고로 들어갔다. 달걀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오래된 아교 통에서 나는 냄새였다. 창고 안은 환기가 되지 않아 습했으며 어두컴컴했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자 흐릿하게 내부가 보였다. 아버지가 썼던 칠통 가방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아버지가 암이 재발하자 칠통에서 손을 놓은 흔적이 역력했다.

앵글 거치대는 녹이 슬어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흔들거리는 앵글 거치대를 붙잡고 맨 위 칸에 놓여있던 칠통 가방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검은 가방이 함께 휩쓸려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 검은 가방 안에는 아버지가 쓰던 작은 체, 분쇄기, 탕비기, 주걱, 채기, 달루, 장척, 다양한 크기의 붓, 촛바늘, 타분 주머니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안에서 달루를 꺼내 들었다. 양가죽 달루였다. 그것을 보자, 코끝이 시큰해져 왔다. 매듭 끈이 아직도 탄탄했다. 채기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달루에 아주 작은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가느다란 마디에 흰색 꽃이 조롱조롱 매달려있는 게 아닌가,

“이 꽃이 우담바라죠?”

나는 달루를 들고 아버지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우담바라야! 삼천 년에 한 번 피는 그 꽃이야. 어떻게 달루에 피었을까?”

순천 선암사에서 박 씨 아저씨 곁에서 단청 칠 보조를 할 때, 불두에 핀 우담바라를 본 기억이 있었기에 단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석가여래나 지혜의 왕 전륜성왕과 함께 나타난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 그 꽃이었다. 우담바라의 실체가 풀잠자리 알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 지문, 그 흔적 위에 핀 꽃이기에 풀잠자리가 알을 까놓았든, 파리가 알을 품었든 간에 달루에 꽃이 핀 것은 대단히 신기한 일이었다.

“이 달루는 튼튼하게 매듭을 꼬았다. 대부분 굵은 실을 여러 겹 꼬아 만들어 쓰지만, 부드러운 양가죽을 여러 가닥으로 쪼갠 다음 명주실로 이어 만든 달루라서 아주 최상급이야. 그래서 질기고 유연해. 앞으로 네가 이 달루를 쓰도록 해라.”

아버지는 자신이 평생 애지중지하며 사용하던 달루를 나에게 물려줬다. 달루를 잡고 있던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전율이 느껴졌다.<계속>

[약력]이경 소설가

충북 영동 출생

대전대 대학원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 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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