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에서 배우는 독서경영

저자 : 이재운, 출판사 : 휴머니스트

“조선 유일의 재테크 서적, 부자 되기를 권하다”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영조와 정조 시대의 지식인 이재운이 부(富)의 미덕을 찬양하고 당대의 거부(巨富) 9명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누구나 부를 추구하는 것이 하늘이 준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생업에 기꺼이 뛰어들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벼슬보다 낫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고집하며 가난을 미덕으로 칭송하고 부유함을 악덕으로 비난하던 조선 양반사회에 정면으로 반하는 사상을 펼쳤던 것이다. 욕망을 긍정하고 부자가 될 권리를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는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유일무이한 재테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발굴하고 번역한 안대희 교수는 “변화가 무궁하며 붓끝이 굉장하고 빛이 나서 근세 100년 사이에 이런 작품이 없다”는 평이 자연스러울 만큼 주제와 문장이 잘 어우러지고 세련된 묘사와 다채로운 수사가 빛나는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경제 주제를 넓고 깊은 식견으로 긴장감 넘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조선시대를 새로운 각도에서 보는 재미를 선사해 줄 것이다.

이 책은 전체가 한 편의 글이다. 장과 절을 구분하지 않았고 소제목도 없다. 글은 크게 의론(議論)과 서사(敍事)로 구분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부의 축적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부분과 이를 입증하기 위해 아홉 명의 부자를 소개한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전체 구성과 논지 전개의 개략을 살피기 위해 작은 주제를 자세하게 항목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서론, 생업의 본질, 팔도 물산의 큰 줄거리, 분업, 빈부의 차이와 치부의 동기, 거부 열전 다섯 편, 팔도의 경제 지리와 물산, 생업의 선택, 재물의 노예 열 가지 사례, 행상과 거상의 비교, 정승과 거상의 비교, 안정 자산의 품목, 빈자의 굴욕, 치부의 방법, 시장과 환경의 에측 능력, 빈자의 각성, 상인의 규모와 종류, 거부 열전 네 편, 자수성가 방법, 부자의 미덕, 빈자의 악덕, 소규모 사업 성공 사례, 부자의 재물 운용 등이다.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부록으로 세 편의 물산기(物産記)를 소개하고 있다. 먼저 물산기의 선구적 저술인 미수(眉率) 허목(1595~1682)의 《땅의 역사》, 그리고 검주(黔洲) 이응징(1658~1713)의 《동방식화지》, 마지막으로 성호(星湖) 이익(1681~1763)의 《재물의 생성》이다. 이 세 편은 부록이기에 참고하기 위해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해동화식전》은 유학이 세운 기본 구도를 부정하였다. 군자는 의로움을, 소인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논리를 부정하여 “군자 역시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군자-의로움-선, 소인-이익-악으로 연결되는 관계를 해체하여 군자도 이익을 추구하고, 소인도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빈부를 도덕과 연결하는 도덕주의적 태도와 도덕적 기준으로 부의추구를 죄악시한 논리를 부정하였다. 돈을 버는 일은 도덕적 행위보다 앞서는 근원적 욕망임을 인정하였다. - <서설_부(富)의 추구와 생업의 가치를 역설한 이재운의 중상주의적 경영론; 부(富)의 새로운 이재(理財)의 논리> 중에서

군자는 재물을 이용하여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소인은 재물을 얻으려고 자신을 희생하다고 누구나 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가난하다고 누구나 악을 쌓는 것은 아니다. 이런 처신의 뿌리와 근원을 깊이 살펴보면 그렇다. 그러하니 소인이 이익의 추구에 밝기는 해도 만물을 이롭게 하면 넉넉히 의로움에 부합할 수 있고, 군자가 본디 의로움을 이익으로 삼기는 해도 이익을 추구하면서 의로움까지 실현할 수 있다. 그러니 군자역시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군자가 세 곱절의 이윤을 남기며 장사하는 상인의 수완을 잘 안다고 하여 책망할 이유가 전혀 없다. - <해동화식전_서론> 중에서

부와 재물을 알게 되면 이를 얻기 위해 계획을 짜낼 수밖에 없고, 계획을 짜내면 솜씨 좋게 얻을 수밖에 없다. 귀와 눈, 입과 코, 팔과 다리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떤 물건이든 마음으로 흠모하고 여기에 정신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다. 이야말로 하늘의 이치로 볼 때 당연하고 인간의 욕망으로 볼 때 팽개쳐둘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치산(治産)을 잘하는 사람은 재물을 크게 불리고, 그다음 사람은 아끼고 절약하며, 그다음 사람은 변화를 일으켜 형통하고, 그다음 사람은 고생을 참고 근면하게 일한다. 아무 수완이 없는 사람은 거지로 산다. - <해동화식전_생업의 본질> 중에서

부자는 남이 재물을 가져다주어서 부유해진 것이 아니고 빈자는 남이 재물을 빼앗아서 가난해진 것이 아니다. 재주가 많은 사람은 시기를 잘 포착하여 넉넉해지고, 재주가 모자란 삶은 시기를 놓쳐서 넉넉해지지 못한다. 따라서 시기를 잘 포착하는 사람은 다가오는 해에 신발값이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이면 나중에는 얻기 힘든 상품을 사들이기 쉬울 때 자금을 동원해 전부 사재기하기도 한다. 마치 어둠 속에서 촛불로 물건을 비춰보거나, 거북점을 치듯이, 또 부절(符節)을 맞추듯이 정확하게 예측한다. 대대로 나라에서 녹봉을 받은 것도 아니고 조상에게 큰 가업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지만, 혼자 힘으로 천금(千金)을 벌어서 부귀영화를 누리기도 한다. - <해동화식전_빈부의 차이와 치부의 동기> 중에서

전국 팔도의 360개 고을에서 유통되는 토산물 가운데 서울로 물려든 연후에 사방으로 길을 다라 퍼지지 않는 물건이 없다. 따라서 평시서(平市署) 관원이 있어 경중을 재고 귀천을 조절하여 서울에 모였다가 서울에서 흩어지게 한다. 물건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고 모였다가 다시 흩어져서 순환하는 과정은 끝나는 때가 없다. 비유하자면 온갖 하천의 물이 바라도 쏟아져 들어와 미려(尾閭)로 새어나가는데 이 물이 다시 온갖 하천의 근원이 되어 물줄기가 항상 바다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과 같다. 따라서 한양이 토지는 나라 전체에서 400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는 100분의 1에 불과하나 가진 부를 헤아리면 5할을 차지한다. - <해동화식전_팔도의 경제지리와 물산> 중에서

무릇 부를 쌓은 사람은 어질지 않고, 어진 사람은 부유하지 않다는 것은 양호(陽虎)가 한 말이다. 그러나 나라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다. 부자는 위로는 나라가 부과한 세금을 거부하지 않으니 이는 충성됨이고, 아래로는 향촌의 이웃 사람에게 금전을 빌리지 않으니 이는 청렴함이다. 안으로는 육친에게 옷을 따뜻하게 입히고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평화롭게 지내게 하니 이는 효도와 우애와 자애로움이다. 밖으로는 가깝거나 소원하거나 상관없이 친구들이 찾아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흔쾌히 허락하니 이는 인자함과 의로움과 신의다. 관혼상제 예식에 예물을 잘 갖추어놓으니 이는 예절 바름이다. 걱정거리를 풀게 하고 일을 처리함에 구차하지 않으니 이는 지혜이다. - <해동화식전> 중에서

부유하다고 해서 다 현명하게 마음을 쓰지는 않으나, 법을 두려워하고 남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꺼려서 현명하게 처신하려 애쓰는 부자가 많다. 가난한 자는 뜻하는 바가 모두 악하지는 않으나 의지할 데가 없어서 제멋대로 모나게 행동하고, 간혹 자포자기한 자도 나타난다. 앞에서 밝힌 ‘부유하면 덕이 모여들고 가난하면 악이 일어난다’는 말이 틀린 말이겠는가? - <해동화식전_부자의 재물 운용> 중에서

* 전박사의 핵심 메시지

이 책의 저자는 명문가의 서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토정 이지함 이래로 경제와 상업, 유통을 중시하는 가학(家學)의 전통 속에서 자란 그는 탁월한 글솜씨를 자랑했지만 오랫동안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 55세에 겨우 벼슬자리에 오른 이재운은 붕당 간의 갈등에 이용당해 매를 맞고 귀양을 가야 했다. 서자 집안이라는 태생과 불우한 삶은 가학의 전통과 함께 《해동화식전》이라는 저작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좌절한 지식인의 열망이 모두가 당당하게 부를 추구하자는 가치관의 혁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책은 과감하고 급진적인 주장을 펼치며 조선 후기의 중상주의적 경제론이 만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책이 널리 읽히고 두루 필사되었더라도 《해동화식전》은 당대를 변화시키는 마중물이 되지는 못했다.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서자 집안의 지식인이 던진 경제경영론은 강고한 유교 이념과 신분질서에 부딪혀, 가치관의 변화와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이토록 불온하고 과감한 사상이 빛을 보기까지 수백 년이 걸렸다는 것이야말로 조선의 불행이었다.

이 책은 시대를 거스른 중상주의적 경영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책이다. 부의 가치를 긍정하고, 누구나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부자가 되는 방법과 당대의 거부(巨富)들을 고개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유일무이한 경제경영서로 손색이 없는 이 책을 통해 부자의 꿈을 이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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