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작!

사진 출처-이경(비단에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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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른 덤불 위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마당에는 온통 잡초들로 무성했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봤다. 예전과 다름없는 일자형으로 된 구조의 집이었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면 부엌이고 곧바로 큰방과 작은방이 연달아 붙어있다. 큰방과 작은방 사이는 미닫이문이었다.

헛간과 변소가 마당 구석에 놓인 것은 최근 일이다. 전재미 마을은 집마다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마을 입구에 있던 마을 공동변소를 사용했다. 지금은 변소 자리에 쉼터공간이 들어섰다.

마을 공동변소의 구조는 간단했다. 구덩이를 깊게 파고 커다란 항아리를 묻어 굵은 나무판자를 가로세로 겹겹이 올려놓은 게 전부였다. 날씨가 좋은 날은 컴컴한 항아리 안이 훤히 보였다. 몸의 균형을 잃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자칫 구멍의 위치를 비껴가면, 첨벙 소리에 놀라 잽싸게 엉덩이를 쳐들어도 오물세례를 받았다.

깊고 커다란 항아리 속, 벌레들이 앞다투어 꿈틀댔다. 꿈틀대는 벌레들은 서로의 몸체를 밟고 밖으로 기어나오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일단 항아리 밖으로 기어나와야만 변이와 변종을 거쳐 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미처 나오지 못한 구더기가 겹겹이 쌓였다가 어두컴컴한 밑바닥을 나뒹굴었다. 전투라도 하듯이 항아리 위로 오르기 위한 행렬은 겨울이 오기까지 계속되었다. 그곳에서 쉼 없이 뿜어져 나오는 구린내는 변소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옷 속까지 침투했다. 그래서 오만상을 찌푸린 얼굴로 서커스를 하듯 조심스럽게 허리춤을 풀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볼일을 봤다.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공동변소 벽에 춘화를 그려놓았다. 미리 준비한 연필과 크레용으로 벌러덩 누워 있는 남녀의 모습에 뚝 불거져 나온 남자의 성기와 검은 풀숲에 은밀하게 형체를 드러낸 여자의 생식기를 그려놓은 것이었다. 정말 남자와 여자의 성기가 그렇게 생겼을까? 날마다 그런 호기심이 들었다. 서툰 춘화였지만, 어린아이들의 눈을 몹시 자극했다. 여자의 성기와 남자의 성기가 삐뚤빼뚤한 문자 속에 뒤엉켜 관계를 맺고 있는 춘화를 보기 위해, 키 작은 아이들은 엉덩이를 쳐들고 봐야 했다. 아, 변소의 눈요깃감은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여러 날이 지나고, 그 춘화 아래 갓난아기가 서너 명 그려져 있었다. 나는 춘화처럼 관계해야만 아기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변소 안에서 처음 알게 됐다. 전재미 마을의 공동변소와 뒷골목 후미진 담벼락에 새겨 놓은 춘화가 말초적인 본능만을 일깨운 건 분명 아니었다. 금기시만 했던 성에 대한 예의와 적어도 철학적인 사고와 인간의 변천사를 생각하게 한 성장통의 장소였던 게다.

동네 주민 누군가, 몸의 정화 버리고 나면 깨끗해진다는 해우소의 개념을 에둘러 표현했던 그 춘화는 일단 성공한 셈이었다. 자신의 족적이라도 남기고 싶었는지, 복잡하게 서명을 해뒀다. 그 서명을 아주 세밀하게 추적한 결과 춘화를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밝혀지면 두 번 다시 춘화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쌍욕이 쓰인 신문지와 똥 찌꺼기가 굴러다니던 전재미 마을의 공동변소, 어둠의 그 공간은 이제 전재미 마을 그 어디에도 없었다. 춘화와 낙서 위에 지역 화가들이 모여 꽃과 나비가 날아드는 벽화를 그려 넣었다. 우리들의 춘화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이다지도 서글픈 일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였다. 귀뚜리 울음이 문틈 사이로 끼어드는 순간, 처마 아래 외등이 켜지고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나직하게 아버지를 불렀다.

현관문이 열리고, 가냘픈 아버지의 그림자가 그 안에서 어룽댔다.

“뉘시오?”

“저에요.”

“우리 아들 세형이가 왔구나!”

아버지가 맨발로 뜰팡 아래까지 나왔다. 나는 맨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아버지에게 절을 올렸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뵐 면목이 없어요.”

“집으로 돌아왔으니 됐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살가웠다. 보자마자, 행색이 왜 그 모양이냐며 쓴소리를 먼저 퍼부어야 했다. 너무도 다정한 목소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의 얼굴을 살폈다.

“왜 아비가 이상하냐? 이제 죽을 때가 되었나 보다.”

아버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서자 재래식 부엌 바닥을 입식으로 고친 주방이 나타났다. 잡동사니들이 뒤엉켜 있어 어수선했다. 바닥에는 이불이 널브러져 있었다. 싱크대 위에 놓인 구겨진 양은냄비에 달라붙은 시커먼 찌꺼기가 바짝 말라 있었다. 아버지가 혼자 대충 끼니를 챙기며 산 흔적들이 고스란히 집기에 묻어 있었다.

아버지는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텔레비전의 사운드가 완전히 꺼지고 트로트 여가수의 입만 벙긋댔다. 열 평이 될까 말까 하는 공간에 아버지의 짐들이 쌓여 있었다. 라면, 휴지, 쌀, 커피포트, 그리고 수북하게 약봉지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일상이 어떤지 짐작이 갔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아버지의 어설픈 살림살이가 시작됐다. 수납공간이 있는데도 물건들이 제멋대로 바닥에 굴러다녔다.

“저녁밥은 어떻게 한 겨?”

“저 아래의 대폿집에서 먹었어요.”

“그동안 뭐 하고 지냈냐?”

드디어 아버지의 잔소리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인테리어 사업을 했어요.”

“단청쟁이면 달루를 들고 살아야지. 그간 허송세월만 했다.”

“오늘은 그만하시고 쉬세요.”

나는 건넛방으로 가려고 가방을 챙겼다.

“건넛방이 냉골이야. 내일은 기술자 불러 보일러를 고칠 테니, 오늘은 여기서 같이 자야겠다.”

방바닥에 깔린 이불 아래에 일인용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다.

“제 방에 들어가 잘게요. 다시 단청 일을 시작해 보려고요.”

“그게 정말이냐? 정말 단청일을 다시 시작할 테냐? 아이고, 이제야 마음 편히 두 눈을 감을 수 있겠구나.”

아버지는 반색하며 몹시 들떠 했다.

나는 건넌방으로 들어가 반닫이 위에 있던 이불과 요를 바닥에 깔고 누웠다. 자리에 누운 지 십여 분이 지나자,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가 목울대를 기어오르다 말고 컥컥댔다. 푸푸! 아버지의 자맥질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겨우 두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대다 눈을 다시 떴다. 검은 곰팡이가 벽지 꽃무늬를 타고 방바닥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전재미 마을 뒤쪽으로 우암산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호랑이가 종종 마을로 내려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우암산 깊은 골짜기에서 내려온 배고픈 호랑이, 수암골 전재미 마을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늦도록 잠자지 않는 아이를 눈 깜짝할 사이에 물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땐 동네 아이들 모두가 우암산 호랑이를 두려워했다.

밤 열 시가 되면, 성당의 종소리가 들렸다. 강우네, 순섭이네, 손돼지네, 순천이네, 영식네도, 미자네, 치과집 경수네, 미경이네, 미예네의 집 전등이 하나둘씩 꺼졌다.

한 지붕 아래, 모든 대문의 경첩이 잠길 시간이 된 것이다. 밖에 뛰어놀던 아이들은 성당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칫 종소리를 듣지 못하는 날, 부지깽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다음에 겨우 대문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순천이네 아버지는 막걸리 양조장 배달부로 일했다. 늘 불콰한 얼굴로 짐칸이 긴 자전거를 끌었다. 한 말짜리 술통을 뒷바퀴 고리에 두 개나 매달고, 위로 네 말을 실었다. 검은 고무 밧줄로 꽁꽁 동여매면 총 여섯 말을 거뜬히 싣고 내달렸다. 순천이 아버지가 그렇게 고된 일을 했지만 다섯이나 되는 애들을 배불리 먹이지는 못했다.

순천이는 그 집 장남이었다. 나와 같은 학년 같은 반이지만 처음엔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열 살이 넘도록 밤마다 오줌을 지려 동네에서 왕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순천이가 이불에 오줌을 흥건하게 싼 날이면 새벽 댓바람부터 순천네 엄마는 늑대 하울링 소리를 내며 난리굿을 폈다. 그래서 순천이가 오줌싸개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이었다. 전재미 마을에 유괴사건이 벌어졌다. 순천네 막둥이가 하룻밤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부잣집에 태어났으면 배를 곯지 않고 살 것을, 하필 지지리 궁상맞고 못사는 집에 태어나 고생이다. 기회가 되면 부잣집 양자라도 보내야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던 순천이 엄마, 그날은 퉁퉁 부은 젖을 짓누르며 눈물을 연신 훔쳤다.

오줌싸개 순천이네 막둥이가 사라지자 순천이도 몇 날 며칠 울었다. 오줌을 많이 싸는 막둥이부터 호랑이가 물어갔다. 그러니 찾지 말라는 엄마의 불호령에 변소 앞에 쭈그리고 앉아 훌쩍댔다. 순천이는 그 날 이후 단 한 번도 이불에 오줌을 싸지 않았다. 호랑이에게 물려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물을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순천이가 가여워 전쟁놀이에 끼워줬다.

순천네 막둥이를 우암산 호랑이가 잡아갔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동네 아이들뿐이었다. 막둥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이도 없었다. 다들 입을 꾹 다물거나, 가끔 노인네들이 은행나무 주위에 둘러앉아 부잣집에 가서 흰 이밥에 소고깃국 먹으며 살길 바랄 뿐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우암산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요란스럽다. 지친 눈꺼풀 위로 검불이 하나둘 내려앉았다. 전재미 마을에 사는 게 창피했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혹여 동급생들의 눈에 띌까 싶어서 돌고 돌아 우회해서 집으로 기어들었다. 넝마주이 동네에 사는 거지가 이젤과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는 꼴이 가당찮은 듯 학교 아이들이 손가락질까지 했다. 그때부터 오줌싸개 순천이보다 내가 더 왕따가 되었다.

이부자리를 깊이 껴안자 어머니의 냄새가 풀썩 올라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피란민들 틈에 섞여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한강 다리가 폭파 직전에 천신만고 끝에 강을 건너왔다. 용케 부모의 손을 놓지 않고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걷고 또 걸었다고, 그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살아생전 어머니는 종종 말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리는 울산까지 떠밀려갔다. 뜻을 합친 피란민들 몇몇이 비바람을 피할 장소를 물색해 짐을 풀었다. 식솔들을 이끌며 더는 내려갈 곳도 갈 힘도 없었기에 울산 육군 23부대 병원 앞에 자리를 폈다.

토정비결과 풍수지리에 해박했던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피란민의 세력이 똘똘 뭉치게 되었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건축 자재를 사 모았다. 울산 육군 23부대 병원 인근은 전국에서 모여든 피란민들로 가득 찼다. 산기슭마다 솥단지 걸어두고, 풀죽을 끓여 먹고 밤낮으로 일을 하느라 북새통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들에게도 고요가 찾아왔다. 그때마다 포탄에 맞아 피범벅이 된 채 죽은 가족들을 떠올리며, 놀란 가슴 한소끔씩 내려놓았다. 가족을 잃고 애도의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피란을 떠나야 했었기에, 모닥불 주위에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자신들이 겪었던 참담한 슬픔을 털고 또 털어냈다.

몇 달이 또 흘렀다. 다시 긴 행렬이 북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전세가 역전된 것이었다. 뜻을 같이한 피란민들 일부가 봇짐을 챙겨 이번에는 북으로 향했다. 그들은 고향 산천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짐을 꾸렸다.

피란민들이 청주에 도착했을 무렵, 모든 전세가 다시 얼어붙었다. 전쟁상황은 북으로도 남으로도 방향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애먼 젊은이들만 죽어 나갔다. 한반도 허리춤에 걸려 옴짝하지 않는 전쟁터, 점점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중공군이 끝도 없이 남쪽으로 밀려왔다. 더는 고향으로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았다. 그들은 청주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울산 육군 23부대 병원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할아버지를 주축으로 수암골에 천막을 치고 솥단지를 걸었다. 그리고는 벽돌을 쌓고 석가래 치고 양철지붕을 씌웠다.

몇 년 후에는 집집이 내부구조를 서양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새 문명에 눈을 뜨고 새 식구가 불어난 이유였다. 흙벽돌을 찍어 벽을 세우고 담장을 치기 시작했다. 부엌과 두 개의 방이 일렬로 나란히 붙어있는 집 구조였다. 당시에는 우리 집은 수암골 전재미 마을에서 가장 튼튼하게 지은 흙벽돌 집이었다. 판자로 얼기설기 엮은 집을 털어냈다. 북에 있는 문전옥답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자손을 잘 키워내고 잘 가르쳐야 했기에 꼭꼭 숨겨 두었던 금비녀와 금반지를 팔아 튼튼한 집을 지었다.<계속>

[약력]이경 소설가

충북 영동 출생

대전대 대학원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 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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