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직지소설' 문학상 최우수상 수상작!

그림 출처- 이경(호일에 그린 은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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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이백 년이 넘은 커다란 은행나무 근처에 멈추고 섰다. 나는 좌석에서 일어나 등산용 가방을 어깨에 멨다. 버스 기사가 나의 움직임을 룸미러로 힐끗 바라보았다. 가방은 꼭 필요한 것들만 넣었는데도 어깨가 휘청거릴 정도로 무거웠다. 출입문이 열리자 도로 위의 뜨거운 열기가 얼굴 위로 훅 스쳤다. 버스에서 내려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밤이었지만 은행나무가 만든 검은 실루엣이 선명하여 집으로 가는 길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길을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 한가운데에 섰다. 정 중앙이 뻥 뚫려 있어 하늘 위에 떠 있는 둥근 달이 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달은 아버지의 달루에 매달린 물감 종지처럼 보였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시각이었고, 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바람이 휘몰아쳤다. 나뭇가지가 크게 흔들려 달은 어둠 속 깊이 파묻혔다. 순간 눈앞의 세상이 온통 캄캄했다. 은행잎 한두 이파리가 바람에 날려 아래로 떨어지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은행나무 굵은 몸통은 늘어진 가지가 힘겨웠는지 거북목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땅에서 일 미터 정도의 높이에 양 갈래로 뻗은 밑동이 하늘을 향해 솟은 형태여서 아이들이 기어오르기에 딱 좋은 수형이었다. 여전히 온 동네 아이들이 순번을 정해 가지를 밟고 놀던 은행나무는 건재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달이 제 모습을 쑥 내밀었다. 다시 주위가 밝아졌다. 어두웠다가 밝아진 탓에 주변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나뭇가지 사이로 달루 대신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아들아, 너무나 보고 싶구나. 눈감는 그 날까지 널 위해 기도할 테다. 아니, 귀신이 돼서도 널 지켜줄 거다. 아비는 하면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끔찍할 만큼 과분했고 매우 일방적이었다. 그 음성은 여전히 내 귓가에 주문을 외고 따라다녔다.

나는 달을 올려다보며 나무 둥치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퉁퉁, 물이 가득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무려 십 년도 더 훨씬 전이었다. 나와 수연이는 은행나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먼 미래를 약속했었다. 그녀는 지금 어디서 잘살고 있을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수연이의 얼굴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돌아서서 전재미 마을을 올려다봤다. 창문마다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아버지가 사는 집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증축한 앞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은 탓이다.

아버지의 집은 골목골목을 오르고 올라, 마을 중심부 공터를 지나 한참을 더 올라가야만 했다. 마지막 지름길로 올라서면 다닥다닥 나란히 일렬로 붙어있는 한 무더기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중심부에 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달빛이 내 그림자 꽁무니에 철썩 달라붙었는지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곧잘 휘파람을 불고 놀았던 앳된 소년이었던 나는, 전재미 마을에서 같이 살던 수연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입맞춤하고, 사과처럼 생긴 그녀의 작은 젖가슴과 부드러운 속살을 만졌다. 그 모든 것을 지켜봤다는 듯 은행나무가 잔가지를 세차게 흔들었다.

은행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 오랜 세월 장승처럼 서 있었다. 사람들의 비밀은 찐듯하니, 풋풋하다가도, 너덜너덜한 넝마와 같았을 것이다. 나 또한 지키지도 못할 언약식을 수없이 퍼부었다. 은행나무를 끌어안고 미래를 맹세했던 젊은 날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수연이와 나는 약속의 증표를 남기기 위해, 나무 속 껍질을 벗겨 생기지도 않은 아기의 이름 ‘현우’란 두 글자를 지어 킥킥대며 굵은 쇠못으로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날 밤, 뒷동산 할아버지 무덤 옆에서 수연이와 첫 관계를 맺었다.

문득, 강미가 생각났다.

아, 그녀와 징글맞게 싸웠으면서도, 온몸이 타들어 가도록 날마다 욕정을 불태웠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십 년쯤 된다. 언제부터였는지 불같은 욕정은 사라지고 온기 없는 섹스만 반복하다가 극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날마다 그랬다.

입안이 텁텁하고 까끌까끌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전혀 배고프지가 않았다. 이별은 늘 연습이란 게 소용이 없었다. 이별이란 매번 마음이 무겁고 기분이 찹찹했다. 길게 만난 여자든, 짧게 만난 여자든 한 번 감정이 뒤섞이면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나이 벌써 마흔이다. 번드레한 직장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다. 늘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살아왔다. 여태껏, 이 모양 이 꼴로 말이다.

담배를 한 개비 물고 불을 붙여 길게 한 모금 빨았다. 바싹 마른 입안 가득 연기가 들어찼다. 가방 뒷주머니에서 먹다 남은 물병을 꺼내 마셨다. 아, 소주였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맨숭맨숭한 정신으로 아버지를 만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전재미 마을 초입에 편의점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곳에서 소주 한 병을 사 와 간단하게 목이라도 축인다면, 아버지가 무슨 말로 선방을 날리든 그냥 쥐죽은듯이 듣고만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잔소리를 못마땅해 한다거나, 들이받는다거나 하면 큰일이었다. 폐암 투병 중인 아버지가 당장 쓰러질 수도 있을 테니, 조금만 더 시간적 여유를 갖는 쪽으로 생각을 틀었다.

나는 편의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삼각김밥 하나를 사 들고 다시 은행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젊은 남자가 나무 주위를 돌고 있었다. 나는 맞은편 벤치에 앉아 소주 병마개를 땄다. 단숨에 소주 반병을 들이켰다. 술이 목구멍을 타고 짜르르 흘러내려 갔다. 은행나무 주위를 돌고 있는 남자가 신경이 쓰여 곁눈질로 슬쩍 봤다. 남자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손에는 막걸리 한 병이 들려 있었다. 그곳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는가 싶어, 자세히 살펴봤다.

그 행위를 단번에 알아챘다. 오래전 어머니는 은행나무에 막걸리를 부어 그해의 액운을 소멸하는 의식, 즉 뱅이라는 것을 했다. 그렇다면 검은 양복도 액운을 떨쳐내려는 무속 행위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참으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었다. 나는 애써 검은 양복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려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전재미 마을의 풍경만 멍하니 올려다봤다.

예전에는 늘 어두컴컴하기만 했던 전재미 마을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마을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동네에서 영화와 드라마 몇 편을 찍는가 싶더니, 골목골목 가로등이 총총하게 들어섰다. 잘 생긴 젊은 남자배우가 천연 발효 빵을 만들면서 변별력 있게 요리조리 빵 모양을 바꾸어 굽는 내용이었다. 그 드라마가 대박 나는 바람에 수암골 전재미 마을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무턱대고 울안으로 휴대전화기를 들이대는 어린 학생들과 젊은 남녀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동네는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그러자, 마을 입구에 줄줄이 빵집이 들어섰고 카페도 들어섰다.

지금은 그 많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마을이 휑했다. 주말과 일요일에나 젊은 남녀 몇 쌍이 주변 카페를 찾을 정도로 골목은 한산해졌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난 전재미 마을의 풍경은 점점 더 쇠락하듯이 보였다. 그런데도 마을 중심부는 예전 그대로 멈춰버린 딴 세상이 펼쳐졌다. 그래서 옛 골목길을 보존해야 한다는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가끔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정작 원주민들은 수십 년을 복잡하고 불편한 공간에서 부대껴 산 것에 익숙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 오랜 고단함이 몸에 밴 탓인지 세상 사람들의 말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 전재미 마을을 싹 밀어버리고 고층 아파트를 지으면, 편히 살 수 있을 텐데 왜 사서 고생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전재미 마을의 원주민들은 개발이 몹시 두려웠다. 오막살이 집이라도 오롯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에서 두 다리 뻗고 사는 게 더 좋았다. 비싼 아파트를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고, 입주 딱지라고 해봤자, 추가로 들어가는 돈이 그들에겐 천문학적 숫자라서 아파트에 들어가 살지도 못했다. 입주 딱지는 남의 손에 넘어갈 게 뻔했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른다 해도 그 정도의 과정은 다 알고 있었다. 또한, 보상받은 돈 몇 푼 때문에 가족들은 날마다 싸움질을 할 것이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 동네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이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신이 있을 때,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해야겠다. 어서 집으로 돌아와라.’

한 달 전에 통화한 아버지의 목소리는 몹시 힘이 없었다. 그런데도 전재미 마을로 돌아간다면, 누군가 내 뒤통수에다 대고 실패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듯싶었다.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재차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모든 것들을 결정했다. 강미와 헤어졌고, 하던 사업도 뒤엎어버렸다. 꼭 아버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미와는 헤어질 때가 되었고, 하던 일도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간밤에 어머니가 꿈에 나타났었다. 생전 그대로의 고왔던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높은 사다리에 올라 단청 칠을 하고 있었다. 벽에 걸린 달루에 담긴 채기 속 물감을 붓으로 콕콕 찍는 그 모습이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어머니가 솜방망이와 붓을 달라고 하자, 나는 손을 쭉 뻗어 솜방망이와 붓을 건넸다. 그리고는 달루에 걸린 하얀 채기를 바라보며 어머니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사다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를 향해 그만 내려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잠에서 깼다. 꿈 때문인지 명치끝이 아팠다. 어머니도 나를 몹시 기다렸나 보다. 그래서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꿈에 나타난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도 도무지 아버지 집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미 소주병은 다 비웠다. 주섬주섬 쓰레기를 가방 속에 푹 찔러넣고는 벤치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막걸리를 붓던 그 검은 양복이었다.

“이곳에 사십니까?”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왜요?”

“혹시 순천이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순천이요? 그 사람을 왜 찾아요?”

검은 양복이 내 턱 밑까지 치고 들어왔다. 창백한 얼굴, 까만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자, 움찔 놀라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가로등 불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곳까지 그를 데려가 얼굴을 자세히 살펴봤다. 눈꼬리가 살짝 처진 눈, 오뚝한 콧날, 작은 입, 모든 구조가 조만조만했다. 몸집도 왜소했다. 일단, 유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순천이와 닮은 듯도 싶었다. 순천이는 아버지를 닮아 피부가 검고 몸집이 컸다. 그렇다면 검은 양복은 순천이 어머니의 체형에 가까웠다. 그의 심중을 꿰뚫어볼 마음에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순천이와 무슨 사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제가 젖먹이였을 때, 이곳에서 자랐어요. 혹시 우리 부모님을 아는 사람을 만날까 싶어서요.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분명히 알고 계신 눈치들인데, 다들 모른다고 시치미를 뚝 뗍니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경찰서를 찾아가거나, 가족을 찾아주는 단체에서 수소문해야지.”

“이미 유전자 등록까지 접수해 두었어요. 그런데도 틈만 나면 이곳을 찾게 됩니다. 혹시 순천이를 알고 계시는가요?”

순천이는 전재미에서 같이 자란 오줌싸개 친구였다. 순천이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자신들의 뿌리를 찾겠다며 온 가족을 데리고 순천으로 떠났다. 순천이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통에 빚쟁이를 피해 야반도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검은 양복이 케케묵은 순천이 아버지의 빚을 받아낼 요량으로 접근한 것은 아닐까 싶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저는 얼마 전까지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저 아래 대폿집 문을 아직도 열어놨던데, 그곳에서 잔치국수랑 막걸리를 드실래요? 제가 살게요.”

검은 양복이 뜬금없이 잔치국수와 막걸리 한 잔을 사겠다고 했다. 그가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쳤던 선생이었다는 말에 경계의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검은 양복과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대폿집은 붉을 조명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올라왔던 그 길이 아니었다. 왼쪽으로 나 있던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공터가 나오고 비스듬히 비탈진 곳에 대폿집이 있었다.

‘한 잔 술을 팝니다.’

유리창에 걸린 베너가 달랑거리며 길손을 먼저 맞이했다. 대폿집 안으로 들어서자, 멸칫국물 달인 냄새가 확 풍겨왔다. 그제야 허기가 밀려들었다. 아침에 경주에서 출발해 여태껏 소주 한 병과 삼각김밥 한 조각을 먹은 게 전부였다.

빼곡하게 벗어놓은 신발들이 반질반질한 문지방 아래 뒤엉켜 있었다. 방은 이미 만원이었다. 앉은뱅이 테이블 네 개가 꽉 들어찬 방이었다. 남자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주거니 받거니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다행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서들 오시구려. 뭐 잡수실 거요?”

주인장 할머니가 급히 주방에서 나오면서 알은 척을 했다. 예전 주인장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그새 주인이 바뀐 모양이었다. 검은 양복이 주인장 할머니 앞에 다가서며 안채에 있는 조용한 방을 내어 달라고 말했다.

“아, 순천이네를 찾는 그 선생이구먼? 그럼 날 따라와요.”

대폿집 주방, 옹색한 살림들이 빈틈없이 자리를 차지했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와 시커먼 프라이팬은 기름때가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종지들과 술잔이 수북했다. 고추장 깡통이 겹겹이 쌓여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자, 마당이 나타났다. 화분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검은 양복이 그 마당을 가로질러 희미하게 불빛이 새 나오는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의 행동이 너무도 익숙했다.<계속>

그림 출처-이경 

 

[약력]이경 소설가

충북 영동 출생

대전대 대학원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 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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