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경 시인의 제2시집 『납작 가슴에 팔뚝이 굵은 여자』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황미경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움을 배가시켜주는 것이 자연과 맑고 투명한 대상들에 대한 감각적이고 예리한 포착의 정서이다.

오늘 꾀꼬리를 세 번이나 보았다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그가

노란 희망처럼 재빨리 날았고

나뭇가지 위에 잠시 앉아

위로를 전했다

오색딱따구리를 두 번

파랑새도 한 번 보았다

까치와 까마귀

물까치와 참새 박새는 흔해서 세지 않았다

노랑턱멧새와 눈이 마주쳤고

멀리서 왜가리 서 있는 걸 보았다

검은등뻐꾸기는 여전히 4음절로 울었고

산비둘기 저음에

이따금 꿩이 꿩꿩거렸다

뻐꾸기가 울었고

내가 모르는 새들이 울었다

좀 있으면 소쩍새도 울 것이다

그사이 앞마당 작약은 혼자서 피었다

―「새」 전문

황미경 시인은 하루종일 새소리를 듣거나 날마다 새롭게 돋아나는 풀꽃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다 보면 시도 덩달아 순해진다고 한다. 그것은 이미 몸도 마음도 자연의 품에 안겨 동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시 「새」에 등장하는 꾀꼬리, 오색딱따구리, 파랑새, 물까치, 참새, 박새, 왜가리, 검은등뻐꾸기, 산비둘기 등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이름을 불러주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면 어느덧 숲속 작은 집 마당에 서 있는 듯하다.

희망과 절망은 같은 빛깔

저마다의 방식으로

덧없음을 겪어내는 동안

가을꽃은 처연해서

구절초는 오늘도 푸른 흰 빛

―「위로」 부분

오늘 아침엔

서슴없이 떨어지는구나

태풍엔 그리

안간힘으로 버티더니

어린것들은 세상을 몰라서

겅중거리고

어미는 자애롭다

―「낙엽」 전문

살다 보면 안간힘을 다해 버텨야 할 때가 있고 서슴없이 떨어져야 할 때가 있다. 한 계절 환하게 밝히던 꽃과 나뭇잎은 생존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버티지만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떨어진다. 자연에 순응하며 스스로 떨어진다. 철모르는 어린것들은 어미 앞에서 마음껏 뛰놀고 세상의 험난함을 아는 어미의 눈과 귀와 발톱은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늘 곤두서 있지만 새끼들에게 향하는 눈빛만은 한없이 자애롭다. 자연의 순리이다.

고춧가루 병뚜껑과/참깨 병뚜껑이 바뀌었다/둘을 들고 뚜껑 안쪽을 살핀다/둘 다 불그죽죽한 기운이 돈다/고소한 향도 배어 있다/언제부터 둘은 내통한 것일까/한두 번이 아닌 듯하다/흔적의 정도가 누구라/단정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니/둘은 이미 서로에게 물들어/정체성을 잃었다/어느 것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어느 것도 온전히 제 것은 아니어서/사랑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허나 사랑이란 또 얼마나 얕으냐/고소한 고춧가루와/매콤한 통깨가 될 수는 없는 일이어서/뚜껑을 넘나들던 맹서 따위/부질없어지기도 했다

―「내통」 전문

살면서 “고춧가루 병뚜껑과/참깨 병뚜껑이 바뀌” 듯 조화와 균형 이 무너질 때 많다.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일어나는 여러 갈등과 상처는 또 어떠한가. “서로에게 물들어” “정체성을 잃”은 현실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인은 이를 초월하기 위해 여러 대상을 탐색하고 거기에 서정적 동일성을 부여한다. 이는 스스로를 위무하며 나아가는 자아의 성찰로, 다른 한편으로는 질서라는 우주적 상상력으로 그 폭을 넓혀 나간다.

황미경 시인이 「시인의 산문」에서 밝히고 있듯 우리의 삶은 그리하여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적이고 경이로운 일이다.

■ 시집 속의 시 한 편

봄이어서 여자는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손톱은 초록으로 칠한다

새끼손가락을 흔들어

나뭇잎과 수다를 떨면서

출근을 한다

납작 가슴에 팔뚝이 굵은 여자는

빛이 안 드는 작업장에서

얼골이 누렇게 뜰까 봐

점심을 먹자마자

화단 철쭉에게 말을 건다

눈이 샐쭉 오므라든다

월하

오월의 바람 뺨을 스치자

납작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라일락 향기 따라 집에 온 그녀

서슴없이 널브러진 집안일을 한다

―「납작 가슴에 팔뚝이 굵은 여자」 전문

■ 시인의 말

이십 대에는 서른이 되면 시집을 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숙제를 미루듯 딴청을 피우며 몇십 년을 보냈고 어느 날 시가 찾아왔다. 밥 먹을 때도 자려고 누웠을 때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거친 녀석을 어르고 달래고 희롱하여 말쑥하게 빚어내는 일이 일상의 기쁨이 되었다. 나의 은밀한 기쁨을 세상에 내어놓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로 일종의 허영과 사치인데 이를 알고도 응원해주는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기쁘다. 지천명에서 이순으로 가는 중턱에서 두 번째 시집을 엮는다. 나의 귀는 점점 순해지고 펜은 단단해지리라.

2022년 가을

황미경

■ 황미경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21년 시집 『배롱나무 아래서』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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