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선원, 2609년 부처님 되신날(성도절)봉축법회 법문
열린선원, 2609년 부처님 되신날(성도절)봉축법회 법문
  • 손혜철
  • 승인 2022.01.10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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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들어봐 주십시오.

“새로운 옛 길,예스런 새 길

길이 있다.

앞 사람들이 걸어갔다.

이제 사람들이 걸어간다.

다음 사람들이 걸어갈 것이다.

새로운 길인가

예스런 길인가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새로운 것이 어떻게 길인가.

여럿이 간 길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생각들이 든다.

같은 일이어도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

내가,우리가 가려고 하는 길도 그렇다.

내가,우리가 가고 있는 길도 그렇다.

내가,우리가 간 길도 그렇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면

새로운 맛이 나지만 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낭떠러지나 길끝으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여럿이 지나간 길을 찾는 것이 좋다.

헬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다녀간 길이

꼭 옳은 길은 아니다.

그 길이 가야 할 곳,목표지점 이르게 하는 것도

아니다.

가야할 곳에 이르게 한다고 해도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새 길,아무도 가지 않은 길

걷기를 좋하하는 이들이 꽤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다.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아니

태어나지 않는 지혜를 얻으려,

살지 않는 경지를 얻기 위해

수행하는 이들은 어떨까?

수행자들이여!

제대로 다 깨달은 님들이 옛날 거닐던

그 길과 거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언어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정진

바른 새김

바른 집중

이다.

이것을 잘 가르친다면

이 조촐한 삶이 늘어나고

많아지며 널리 퍼지고

알려져 발전할 것이다. “

초기 가르침은 <도시경(nagarasutta)>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나의 길은 바른 길입니다.

'반드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길(ekayanamagga)'입니다.

가 보니 먼저 간 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부처들이.

뒤의 가르침들에서는

가 보지 않은 길을 걷고 싶어 하는

탐구심과 자긍심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천지에 나와 짝할 이가 그 누구인가?

물어서 아무도 없다는 대답을 기다린다.

하나 밖에 없는 것을 가진

하나 밖에 없는 사람.“ 등으로 표현됩니다.

오늘 재가자들이 더 많으니 재가자 가운에

깊은 깨침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고려 말 이자현거사의

게송을 읊어드리겠습니다.

“거문고

푸르묏부리 깃들어 드니

내려오는 귀한 거문고가 보이네

한 곡 타는 건 별 일 아니나

그 누가 곡조를 알아주리

家住碧山岑

從來有寶琴

不妨彈一曲

祗是少知音“

청평거사 이자현(李資玄,1061~1125)의 시입니다.

불기2566년 1월 10일(음 12월8일)서울 은평구 열린선원 무상법현 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이 성도절,부처님 되신 날 입니다. 부처님 되신 지가 얼마나 됐다고요? 2609년 된 겁니다. 올해가 불기 2566년인데 35살에 깨달음을 얻어 45년 동안 사셨습니다. 그러니까 둘을 더해야 깨달음의 햇수가 나온다 이 말입니다. 정확하게는 1을 빼야지요? 두 번 써 먹으니까요. 부처님 열반하신 해를 기준으로 하기에 그렇지요. 그런 계산법을 가지고 행사를 하고, 기리는 절은 열린선원 뿐이어서 왜 저렇게 쓰는가 생각 하실 거예요. 다만 어떻게 하드라도, 그건 우리들의 계산법이고, 우리들의 생각일 뿐 법칙은 아닙니다.

인터넷이나 이런 곳에 보면 백년 만에 한번 피는 꽃들이 몇 가지 있어요. 대나무꽃, 고구마꽃... 보셨죠? 그거 대나무 꽃이 아닙니다. 대나무꽃은 백년 만에 피지 않고 자주 핍니다. 벼꽃 비슷하게 생겼어요. 예쁘게 피어 있는 것, 그거 대나무꽃 아니예요. 다른 꽃인데, 누군가가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그렇게 한 거예요. 본인도 모르니까. 또 고구마꽃이 백년에 한번 핀다고 이야기하죠. 키워본 사람은 압니다. 고구마는 한번 심으면 씨가 썩어버려요. 그래서 새 고구마가 나와요. 인연될 고구마가 없어요. 대개 고구마 심어서 새 고구마 나는 것 보다는 고무마 잎 심어서 새 고구마 나는 게 많죠. 백년이 가는 고구마가 없어요. 기본을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건데도 놀랍니다. 현재 우리는 어머나 그렇게도 잘 못하죠. 그런 것들이 우리가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당신이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 보니까 아하 다시는 안 태어난다 하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사자는 다른 짐승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진 않는다. 그 몸속에서 나오는 벌레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사자신중충이라 합니다. 쇠는 부러지거나 녹슬지 않는다. 없어지지 않는다. 속에서 나온 녹으로 부러진다. 이런 말이 있죠. 부처님 경전에 나온 말입니다. 경전에 나온 말인데 백 프로 믿을 만한가요? 녹은 어디서 생기나요? 산소를 만났을 때 생기는 것이 녹이예요. 안에서 생기든 밖에서 생기든, 부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셨든, 부처님 제자들이 그렇게 생각하셨든 반드시 자연과학적 사실을 다 쓴 것은 아닙니다. 따져,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깨달았느냐. 내가 다시 윤회하는 삶, 괴로움의 시작인 태어남을 다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신 거예요. 태어나지 않으면 괴로움이 없어, 괴로움이 없으면 즐겁다고 본다. 그것을 열반이라 하는 것이고. 일단 안 태어나면 괴로움이 시작되지 않으니까 즐거움이 지속 된다 보는 것이죠.

보드가야의 네란자라 강 둑 위에 있는 한 나무 아래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은 보살은 불퇴전의 결심으로 정진에 마지막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이 몸이 가죽과 힘줄, 뼈만 남고 피와 살은 다 말라서

죽게 되는 한이 있드라도 정등각(正等覺)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노라.”

보살의 노력은 이처럼 지칠 줄 모르는 것이었고, 보살의 헌신은 이처럼 시들 줄 모르는 것이었으며, 진리를 깨치어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결의는 이처럼 단호한 것이었습니다.

보살은 출입식념(出入息念)에 전념하여 초선(初禪)에 들어가 거기에 머물렀다. 다시 차례대로 제2선 제3선 그리고 제4선에 들어가 머물렀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에서 모든 때를 닦아내어 평온한 마음을 이룬 다음, 이 마음을 과거 생(生)을 기억하는 지혜(宿命智)쪽으로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보살이 초저녁(오후 6시1~10시)에 성취한 첫 번째 지혜였습니다.

다시 보살은 온갖 형태의 중생이 각기 지은 업에 따라 좋은 상태로 또는 나쁜 상태로 태어나고 죽는 것을 아는 지혜(宿命智)쪽으로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한밤중(10시~새벽2시)에 성취한 두 번 째 지혜였습니다. 다시 그는 번뇌를 소멸시키는 지(漏盡智)쪽으로 기울였습니다.

그는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즉 ‘이것이 고(苦)다. 이것이 고의 생기(集)이다. 이것이 고의 멸(滅)이다. 이것이 고의 멸에 이르는 길(道)이다.’ 그는 여실히 깨달았다.‘이것이 번뇌다. 이것이 번뇌의 생기이다. 이것이 번뇌의 멸이다. 이것이 번뇌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았을 때, 그의 마음은 번뇌로부터 해탈하였습니다. 그 번뇌란 감각적 쾌락의 번뇌(欲漏), 존재하려는 욕망의 번뇌(有漏),무지의 번뇌(無明漏)의 세 가지 번뇌였습니다. 그의 마음이 해탈했을 때 해탈했음을 아는 지혜(解脫知見)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태어남은 소진되었다. 청정한 삶(梵行)은 완성되었고 할 일은 다 해 마쳤습니다. 다시는 이런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 이것이 새벽 녘(새벽2시~6시)에 성취한 세 번 째 지혜였습니다. 이 세 가지 지혜를 삼명(三明)이라 합니다.

다시 보살은 승리의 게송을 읊었습니다.

“집 짓는 자를 찾았지만

찾지 못해 많은 생을 돌며 살았다

다시 나고 나는 것은 괴롭다

집 지는 자여 그대는 보였기에

다시는 집 짓지 못하리라

기둥들은 부러졌고 지붕은 무너졌다

조건 지어진 것이 제거된 마음은

갈애의 끝 열반에 이르렀다.”

법구경 153,154게. 이 두 게송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직후 깨친 감회를 읊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집은 몸을 의미하고, 집짓는 이는 갈애를, 지붕은 때(坵;kilesa)를, 기둥들은 무지(無明)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보살 고타마는 12월 8일(남방불교 5월 보름날) , 서른다섯의 나이에, 영원한 진리인 네 가지 성스런 진리(四聖諦)를 완전히 파악함으로써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시어, 일체 중생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위대한 의사, 대의왕(大醫王), 붓다가 되신 것입니다.

저는 1977년 겨울 경기도 평택 명법사에서 바로 오늘 저녁 밤샘 참선을 하였습니다. 비구니 스님들과 함께 그야말로 아무것도 몰랐지만 50분 참선 ,10분 휴식으로 밤을 샜고 새벽 설법을 듣고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만해스님의 ‘님의 침묵’에서처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에 빠져 오늘까지 왔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기회가 오기를 바랍니다.

보살은 사마타,사마디,위빳사나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었고 그 뒤 45년간 중생들 가까이 제자들인 비구,비구니와 재가자들에게 깨달음 얻는 수행법을 지도하고 함께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무엇을 통해 부처님의 깨닫는 과정과 깨달음의 내용을 설명하였습니까?

네. 그렇지요. 말씀을 통해 드렸습니다. 그 뜻을 제대로 알아야겠지요? 중국에는 50여개의 민족들이 뭉쳐 사는 연합국가이므로 말을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개인과 가족 및 사회,국가의 명운이 걸려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주제로 하는 명상,참선이 성행했고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이른바 말씀참선 곧 간화선(看話禪)이지요. 오늘날의 화두는 무엇일까요?

새로 오신 법우님 코로나19바이러스는 왜 전파되고 있나요? 서로 만나서 그러는 것이지요? 옛날에는 만나지도 않고 만나도 기껏해야

몇 백명,몇 천 명이었는데 이제는 수십,수백만 이상을 만나게 되니

질병 자체보다 전파,감염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때 나는,우리 가족은,우리 모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화두가 될 수 있겠지요.

화두 참선을 하는 데는 세 가지 기본 조건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왜 이런 좋은 가르침을 제대로 익혀 알지 못한 어리석음이 있는가?

크게 성내는 마음(大忿心)입니다.

이렇게 우주 자연이 맞물려 돌아가는 이치가 도대체 코로나19에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크게 의심하는 덩어리 마음(大疑團)입니다.

아! 이 길 먼저 가신 스승, 선배 따르면 분명 목적지인 집에 도착하겠지. 크게 믿는 마음(大信心)입니다.

대 분심, 대 의심 덩어리, 대 신심 이 셋이 모두 어우러져야 합니다!

얍!!!

놀라셨지요? 이렇게 고함지르거나 탁상을 침으로써 얼기설기 꾸며놓은 것은 사라지고 순수한 마음덩어리가 드러나게 합니다. 어떤 경우는 주장자로 때리기까지 합니다.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짜맞춘 지식같은 것들은 살아있는 지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스님이든 재가불자이든 살아있는 동안에 수행을 통해 특이체험을 한 번도 하지 못한다면 대단히 아쉬운 일입니다. 위빳사나를 하든,간화선을 하든,묵조선을 하든,염불선을 하든,경전독송선을 하든,진언염송선을 하든...어떤 수행을 하드라도 일정시간 이상을 지속하면 반드시 무엇인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경험하신 분들께 체험을 이야기 하고 교정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반드시 그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고 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함께 부처님 따라하기 했으니 마음이 흐뭇합니다.

코로나가 괴롭히는 재 작년 끝무렵 종교평화단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회보실에서 신년호에 칼럼을 써 달라 하여 2020년 12월 31일자에 '새해 종교계에 바란다'는 아주 부담스러운 글을 썼습니다.

줄여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종교계도 어렵다는데 어렵기는 무엇이 어렵습니까?

오는 성도들 모두 천국, 극락으로 인도해줘야 하는데 대면 금지라 그렇게 할 기회가 적어져서 천국, 극락 가는 숫자가 적어지니 안타깝다는 말을 하시는 것이겠지요?

아닌가요? 많이 오지 않으니 따라붙어야 할 돈(돈)이 적어져서 어렵다는 말인가요?

종교인, 종교시설, 종교단체도 그것이 필요하지만 이마에 써놓고 다닐 수는 없잖습니까?

이웃종교 성인도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입디다. 사람들 많이 다니는 큰 길, 많이 모여있는 대회당에서 큰 소리로 하지말고 너희 집 골방문을 걸어 잠그고 여호와께로만 향하라고. 불교에서도 심 황후 만난 봉사들처럼 한꺼번에 다 눈 뜨는 것이 아니니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 골똘히 사유하라 하셨지 않습니까?

일부러라도 그리 해야 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졌으니 이 때라도 그렇게 할 기회가 되었으니 쓰임새 있게 써봅시다!'라고. 눈총 많이 맞아 아프겠지요?

우리도 기회가 왔을 때 잡아보십시다!

부처 되신 분 축하드립니다.

된 부처님 축하드립니다.

부처 되실 분 축하드립니다.

될 부처님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공양을 함께 못해서 아쉽습니다.

서울 은평구 저잣거리 수행전법도량 열린선원에서는 어제 봉축법회 조촐히 했습니다. 세 든지 17년 된 역촌중앙시장이 재 건축 하기로 했다며 명도소송까지 하면서도 협상하고 있다 보니 어쩌면 역촌중앙시장에서는 마지막 되신 날 법회일 듯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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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흥 / 불교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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