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역사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혹은 ‘문화가 살아야 민족이 산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역사와 문화는 과거의 사람들이 거쳐 왔던 삶의 흔적이며, 완전히 지나간 일 같으면서도 아직까지 살아 숨 쉬며 우리의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역사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며 일상 속에서 관심을 실천하곤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경제선진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유산에 대한 관심이 다소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이 책 『역사에서 길을 찾다』의 저자 이배용 이사장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곁을 지켜 온 역사적 유물이야말로 현재이자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비춰 주는 거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 한국학학술연구원 원장으로 활동 중인 역사학자이자 문화해설가인 저자의 지식과 경험에 기반하여 다양한 역사 유물과 역사적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하지만 동시에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성찰해볼 수 있도록 깊이 있는 화두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길을 찾다』의 흥미진진한 매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첫째로, 이 책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 및 외세 침략의 강풍 속에서 국가 생존을 고민했던 고종의 고뇌가 느껴지는 고종의 서재 ‘경복궁 집옥재’, 조선시대 기록유산의 백미를 보여주는 자료 중 하나인 ‘군영등록’ 등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역사유산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며 역사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돕는다.

둘째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속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뜨거운 의리,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 속에 드러난 아내에 대한 존중과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처세술, 조선 최고의 왕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의 인생이 600여 년을 뛰어넘어 지금 사회에 던지는 교훈 등 여러 역사 속 유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좀 더 쉽게 점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셋째로, 최근 몇 년여간 큰 돌풍을 일으키며 세계적으로 중요한 인문학의 화두가 된 여성주의(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 속 다양한 족적을 남긴 여성 인물들을 조명하고, 조선 유학 600년 역사 속에서 최초로 여성 초헌관이 된 저자의 관점에서 전통적 남녀관과 현대적 남녀관의 조화를 탐색하며 궁극적으로 모두가 상호 존중하며 조화롭게 나아갈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 역사는 문화의 현장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흔히 “역사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문화가 살아야 민족이 산다”라는 말을 예사롭게 한다. 실제로 선진국이라 하면 땅만 넓다고 또 경제만 부강하다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격조 있고 아름다운 문화가 살아 있을 때 세계로부터 존중과 신뢰를 받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다. 바로 내가 사는 동네 가까이에 세계적이고 자랑스러운 유산이 있어도 별로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20세기에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먹고사는 일이 시급한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GDP 3만 달러를 구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선조들이 남겨준 소중한 유산들의 의미를 알아서 세계로 알리고 미래 후손들에게도 전해 주어야 한다.

특히 전통문화는 오랜 세월 겪으면서 살아남았기에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창의성을 배우고 사람의 생각과 정성이 보이고 역사적 상상력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평생 역사를 가르치면서 수백 번 전국의 유적 답사를 인솔하였다. 대학 총장님들을 비롯하여 어른부터 학생들까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문화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스토리텔링하면서 살아 있는 역사를 전해 주려고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한결같이 모두가 감동하고 자긍심과 애국심으로 한마음이 된다.

내가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감격해야 그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다.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동안 예사롭게 지나쳤던 유적, 유물이 보석으로 보이면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안목이 높아지고 애정이 생기는 것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실천하여 어제를 담아 오늘을 다지고 내일에 넘겨주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전통유산도 모르고 파손하면 나중에 돈이 생기고 권력이 높아져도 다시 복구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을 때 문화의 초석을 다지고 지켜야 세계인에게 자랑으로 전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이고 미래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다. 즉 시작과 결말을 모두 보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 있고 겸허해지는 것이다. 수많은 선현들의 시대정신이 담긴 어록을 통해서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좌표로 삼을 수 있다.

원효대사는 하늘에 해와 달이 함께 있기 때문에 뜨거운 기운으로 곡식이 타지 않고 차가운 기운으로 곡식이 썩지 않는다는 음양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또 동양 고전의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오만함을 경계하는 교훈도 새겨들을 만하다.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길 소원하였던 퇴계 이황의 교육관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추구해야 할 진리이다. 강진에 유배 가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다산 정약용의 “천리는 순환하는 것이고 한 번 넘어졌다고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는 법이 없으니 희망을 꺾지 말고 내일을 위해 부지런히 책을 읽고 학문에 정진하라”는 간곡한 당부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긍정의 힘이다.

요즈음같이 코로나19로 인해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에는 우리의 전통사상과 고전을 통해서 삶의 지혜와 참된 마음가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AI도 대신할 수 없는 영혼, 따뜻한 가슴, 정신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유엔헌장에 전쟁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라면 평화의 방벽도 사람들의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라 하였다. 그 마음이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 배려하고 섬기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책은 선조들이 가꾸어 놓은 정신유산과 문화유산을 접하면서 힘든 시기를 극복해 보자는 취지에서 그동안 써놓았던 글들을 묶어본 것이다. 읽다 보면 용기를 얻고 희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여기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학술발표 논문이 아니라 그동안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기고한 글들, 방송에서 해설한 내용들을 주로 엮은 것이다. 비교적 간결하고 읽기 쉽게 쓴 글들인데 당시 지면의 한계상 미처 못 실었던 내용은 편집 과정에서 추가하였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격려와 도움이 있었다.

우선 우암학원 설립자 조용기 이사장님의 적극적 지원에 감사드린다. 그동안 기고한 글들을 이제는 책으로 낼 때가 되었다고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신 양병무 교수님, 그리고 함께 편집에 정성을 기울인 행복에너지 한영미 작가님과 기꺼이 출판을 맡아주신 권선복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아름다운 작품을 흔쾌히 제공하여 이 책의 품격을 높여준 한국화가 이호신 작가님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좋은 사진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개인 작가님, 기관장님들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이 졸고를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역사탐방 후기를 써주신 손병두 총장님, 신숙원 부총장님, 홍승용 총장님, 노찬용 이사장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외국에서 한국을 찾아와 제자가 된 사랑하는 북경대 왕단 교수, 연변대 채미화 교수의 진정어린 헌사(獻辭)에 감동을 전하고 싶다.

평생 전통문화를 찾아 나선 길에 언제나 격려를 아끼지 않고 때로는 동행해 준 가족들에게도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1년 2월

동소(東昭) 이배용(李培鎔)

기억력이 특출한 역사학자, 감동적인 문화해설가, 한국의 사찰과 서원을 유네스코(UNESCO)에 등재시킨 문화 대사, 여성계의 대표 리더, 저자에게 붙여진 수식어이다.

저자는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서강대학교에서 한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위원장, (사)코피온 총재(해외봉사단체), 한국사상사학회 회장, 한국여성사학회 회장,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 단장을 역임했다.

현재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영산대학교 석좌교수, 한국학학술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근대 광업침탈사 연구』(1989, 일조각), 『한국 역사 속의 여성들』(2005, 어진이),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공저)』(1997, 이대출판부), 『브랜드 코리아(공저)』(2011, 나남출판), 『Women in Korean History』(2008, 이대출판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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