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익어가는 동안 유수화 시인은 시를 짓는다. 시인이 290여 가지나 되는 술은 담는 동안 수백 수천 개의 시어를 만나고 이별을 반복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김이 올라오는 소리, 시가 올라오는 소리를 고스란히 담아 『화독 명약火毒名藥』 시집을 발간했다.

유수화 시인이 직접 법제했다는 술의 이름들이다. 송순주, 아카시아술, 솔잎주, 송절주, 매화주, 찔레꽃 화주, 계화주, 백화주, 주작주, 목련주, 홍주, 도화주, 두견주, 청명주.......술 항아리마다 이름표와 날짜를 달아주는 날이면 유수화 시인의 시(詩)도 아랫목 뜨끈한 곳에서 뜸이 들었다.

‘사람이 먹는 모든 음식은 술이 된다.’ 유수화 시인의 말이다. 곧 사람이 먹는 모든 음식은 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들려온다. 유수화 시인이 지혜의 우물을 길러 약초와 꽃을 법제해 열을 올렸다가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하면, 얼굴이 불콰해지는 무릉도원 주를 비로소 빚을 수 있었다. 술을 빚는 유수화 시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또한 잘 익은 술처럼 맑게 살아온 길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유수화 시인

유수화 시인은 목원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2001년 『문학과 창작』을 통해 시단에 나왔다. 시집 『쏨뱅이의 사랑』을 출간 했으며, ‘숲속의 시인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목원대 평생교육원에서 ‘발효이야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수화 시인은 국문학을 전공하기 전, 화가였던 어머니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았다. 목원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입학하기 전까지 어머니의 뜻대로 그림을 전공했다. 그러나 유수화 시인은 시를 짓는 일, 술을 빚는 일로 새로운 인생을 출발했다.

술을 빚게 된 인연

유수화 시인이 김영순 (동국대) 교수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한동안 시인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결국 그 일을 그만두었고, 동국대 김영순 교수를 스승으로 모시며 술을 빚게 되었다. 6개월이 지난에서야 처음 고두밥을 지어볼 기회를 줄 만큼 스승의 교육은 엄격했다.

술을 빚기 위해서는 법제가 중요하다. 자연에서 채취한 약초와 꽃잎을 약으로 처리하는 과정이며, 독성을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화주를 담글 때에는 꽃봉오리를 이용하지만 진달래는 암수술에 독이 있어 만개했을 때 채취해 암수술을 손으로 일일이 제거해야한다. 꽃잎은 열 법제를 해야 하며, 열매는 끓여서 독성을 제거해야한다. 뿌리는 저며서 고두밥과 함께 쪄낸다. 이 모든 과정이 법제 인 것이다.

술을 빚게 되면서 염색과 민화를 함께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무명천이나 실크에 천연염색을 해 그 위에 민화를 그려 술병 담을 보자기를 만들었다하니, 술을 빚으려면 염색과 민화는 필수라고 했다. 그래서 유수화 시인은 술이 익어가는 동안 시를 쓰고 염색을 하고 민화를 그린다. 자투리 시간을 허투로 쓰는 법이 없다.

앞으로 계획은 햇살이 깊게 드는 공방을 짓는 일이라고 했다. 또한 각자의 체질에 맞는 술을 빚어 약으로 활용할 수 있는 책을 묶고 싶다고도 했다.
 

유수화 시인의 유년기

시인은 화가였던 어머니에게 생인 손가락이었다. 갓 태어난 핏덩이가 너무 허약해 도저히 키워낼 자신이 없어 한약방을 하고 있던 친정집 어머니에게 맡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유수화 시인은 열 살이 넘도록 계룡시 두마면 외가 댁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시인은 어머니가 둘이었다고 한다. 키워준 어머니와 생물학적 어머니였다. 다 죽어가는 어린 손녀 호호 불어가며 살려냈다는 그 정성으로 시인은 시를 쓰고 술을 빚고 염색을 하고 민화까지 그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모두 외할머니의 정성이 가져다준 값진 삶이었다.

『화독 명약火毒名藥』 시집

유수화 시집 『화독 명약火毒名藥』은 문학아카데미시선에서 출간되었다. 시집은 제1부 <이별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제2부 <화를 화로 다스리다> 제3부 <그대에게 가는 길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제4부 <나는 술을 마시면 기억력이 좋아진다>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로 구성되어 있다.

유수화 시인은 그동안 갈고 닦은 술 빚는 시간을 시(詩) 속에 녹여놓았다. 또한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들과 지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술 항아리 안에 수채화를 그려놓았던 것이다.
 

   

음복
                -모과주

아버지의 기일에 올릴 제주를 빚는다

무너진 우물의 돌무더기 같은 모과,
댓바람소리 들이치듯
고른 곳이 하나도 없는, 까맣게 타들어간 모과,
아버지의 모과,

도려낸 결의 상처,
마른 우물 속, 물길을 터주듯이
사흘 밤낮을 저어놓아 달달하게 농익은 밑술을 붓는다
고루고루 술길을 치대어 간다

모과향이 넘친다
퍽퍽하고 단단한 결과 결이 출렁이며
상처마다 향기를 내뿜는다

섣달 초사흘, 향을 피우고 창을 열자
손맛이 좋다고 웃으시는 아버지의 달빛,
음복한 초승달의 불콰한 눈빛이
위패에 그림자로 어룽지는, 그 밤으로
그대에게 모과주를 보낸다. -전문-

 

화독 명약火毒名藥

-산수유주

눈 오는 날에는 산수유빛 붉은 청주를 권합니다

여러 날 그대가 있는 산자락을 오가며 따온 열매,

산수유 300그램을 물 2되에 넣고 팔팔 끓여요

시루에 앉힌 고두밥은 뿌연 김을 올리고

술방의 열기는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알알이 식은 고두밥에 차디찬 밑술이 뼛속까지 시리게

버무리고 치대는, 뜨거움을 삭히기가 참 오래 걸리네요

하긴, 마음의 화독도 고질이라 쉽사리 걷어지지 않던데요

시간이 약이라는 처방대로 기다리며,

휘감은 눈발이 툭툭 창틀에 쌓이는 곳으로

손을 내어봅니다

시린 손을 마주잡던 사람,

그 불장난 같은 떨림의 뜨거움,

눈발처럼 내 손안에서 녹아내립니다

쥐면 녹고, 잡으면 사라지는 그대,

그대 아직도 사랑의 열독에서 발효 중이신가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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