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 총림 선암사, 승선교(昇仙橋)를 지나
태고종 총림 선암사, 승선교(昇仙橋)를 지나
  • 이경
  • 승인 2018.07.2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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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원형 홍예(虹預)의 아름다운 곡선

나무 사이를 건너온 햇빛이 승선교를 비추자, 반원형 홍예(虹預)의 아름다운 곡선이 환하게 드러났다. 아치형의 다리로 조선 숙종 39년(1713)에 지어졌으니,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지고 승선교를 건넜을까.

무슨 소설을 쓴다고 애먼 어린 두 아들, 아침밥 굶긴 날이 허다했다. 무슨 소설을 썼다고 작가란 이름을 덥석 껴안고 산 지난날들, 돌이켜보니 참 부끄럽다. 참회의 시간이 발목에 걸려 철겅철겅 지옥 쇠구슬 소리를 낸다. 나는 거짓 소설가의 이름을 승선교 아래로 휙 던져버렸다.

전라남도 승주읍 선암사를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까닭 중 그 하나, 바로 조정래 (1943~) 소설가가 선암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이다. 250년에서 650년 된 매화나무가 무려 50여 그루가 있는 선암사, 매년 삼월이면 매화 향기 가득한 가람에서 여섯 살까지 자란 조정래 소설가는 아주 오래전부터 어떤 소설을 써야할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정래 소설가의 아버지는 선암사 부주지 철운(鐵雲) 스님이었으며, 시인이었다. 아버지 철운 스님의 삶의 철학과 시대적 환경 때문이었을까, 그의 작품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대하소설은 조계산 자락과 선암사 대웅전과 3층 석탑 그리고 빛 바란 흐릿한 단청들과, 650년 된 선매암의 향기가 곳곳에 스며있어, 많은 독자들이 소설 속으로 쑥 빨려들어 역사의 슬픔을 함께 고통스러워했고, 희망의 등불을 함께 갈구했다.

선암사 승선교(昇仙橋)를 지나 태고총림(太古叢林) 선암사 일주문을 향해 가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왔다. 그때였다. 순간 가슴에서 쿵하고 돌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는 작은 체구의 여(女)행자를 발견한 것이다.

짙은 고동색 수행복 차림은 이른 새벽 어머니가 장독대에 올린 정화수처럼 맑다. 푸른빛 감도는 행자의 삭발한 머리, 햇살이 걸리자 반짝반짝 거린다. 가냘픈 목선 사이로 푸른 물이 흘러넘치는 듯하다. 중복이 내일모레, 내 이마에서도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 중복을 예고하는 날씨 참 뜨겁다.

승선교에서 강선루를 지나는 동안 조용히 여(女) 행자의 뒤를 따랐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혹여 나도 저런 모습이었을까를 잠시 멈추고 서서 바라봤다. 한 때 나도 그런 계획을 세웠던 적 있었다. 감히 비구니의 삶을 말이다.

둥그런 연못 삼인당에 다다랐다. 그런데 여(女)행자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일주문을 통과하기에 캐리어가 너무 무거워 다른 길을 선택한 듯하다. 일주문을 지나 만세루를 지나는 동안 새로운 기운이 온몸으로 차고 드는 느낌을 받았다. 전에 없이 몸에 생기가 돌았다.

돌계단으로 오르자 삼층 석탑이 보이고 대웅전이 웅장하게 자태를 드러냈다.

‘한국불교태고종 제43기 합동득도 수계산림’ 봉행

‘한국불교태고종 제43기 합동득도 수계산림’ 봉행 현수막이 대웅전 현판 위에 걸려있다. 선암사 ‘태고종 제43기 합동득도 수계산림 입교식’ 취재를 하러 온 것은 몹시 행운이었지만, 선암사 대웅전 부처님 전에 합장하고 삼배를 올릴 기회를 얻은 것 또한 큰 행운이었다.

‘태고총림, 선암사’

총림(叢林)은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하여 일컬은 말이다. 선원(禪院), 선림(禪林), 승당(僧堂), 전문도량(專門道揚) 다수의 승려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림(叢林)이라하는데, 선암사는 태고총림으로 오랜 세월 태고종 승려들의 참선수행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 율원(律院)의 역할을 해온 사찰이었다.

순천 선암사는 조계산 동쪽 자락에서 오랜 세월 웅거(雄據)하고 있다. 선암사는 542년(진흥왕 3) 아도화상이 비로암으로 처음 개창했으며, 875년(헌강왕 1) 도선 국사가 선암사로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순천 조계산 선암사(사적 제506호‧명승 제65호)는 몇 번의 화재와 수차례의 중건 및 중창에도 기존의 틀을 깨지 않아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찰 서쪽에 평평한 돌이 있는데, 옛 선인들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 하여 선암(仙巖)이라 불렀으며, 선암사의 명칭이 그렇게 해서 유래했다고 하니 선암사에는 돌 하나마다 설화를 품고 있었다.

대웅전 부처님 전 삼배를 올리고, 무릎 꿇고 앉아 헝클어진 마음을 바로잡게 해달라는 간청을 올렸다. 얼마동안 두 눈 꼭 감고 숨죽여 확답을 기다렸다. 모든 게 고요했다. 사탕 달라고 떼쓰는 우매한 행동, 그제야 눈을 뜨고 대웅전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네 마리 용이 여의주를 물고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네 마리의 용트림을 바라보는 동안 소름이 돋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부처님의 답이 그곳에 있었다.

큰 석가래 위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네 마리의 용을 보고 있는 동안 두려움과 걱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자잘한 일상들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고 없었다.

무엇이 그토록 나를 두렵고 걱정스럽게 하는지 밤마다 잠 못들 게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며 대웅전 뒤뜰을 한 바퀴 돌았다. 서쪽으로 나 있는 길로 발길을 옮기려다, 600여명의 스님의 공양을 담았다는 커다란 ‘구지’를 발견했다.

‘구지’ 안에는 작은 불상과 애기 동자 불이 합장하고 묵언 기도 중이었다. 3미터가 넘는 ‘구지’ 안 곳곳에 던져둔 동전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뽀얗게 빛 바래있었다. 대웅전을 돌아 나와 ‘조계산 장군봉’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선암사 뒤편 장군봉으로 가는 길목, 800년이 넘는 동안 야생차밭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자연산 야생차로는 선암사 차를 최고로 친다.

선암사 야생차는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나는데, 삼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음지에서 자라 찻잎이 연하다. 중복을 코앞에 둔 절기라서 그런지 뜨겁게 달아오른 땅기운이 숨통을 조여 왔다. 야생 차밭으로 가던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때 돌계단에 굴러다니는 돌 하나가 보였다. 손을 뻗어 덥석 주워들었다. 혹시나 조계산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그 조각돌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누렇고 흰빛 도는 퇴적암 돌조각이었다.

척척하게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행사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드디어 한국불교태고종 제43기 합동득도수계산림 입교식이 봉행되었다. 남(男)행자, 여(女)행자 40명이 짙은 고동색 수행복 차림으로 합장하고 반야심경을 바친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사리자 지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염불소리가 가볍다

행자들의 염불소리가 가볍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덥지도, 차갑지도, 달콤하지도, 쓰지도 않는 수행생활이 될 것을 약속한다. 그 때, 두 행자 건너 건너에 여(女)행자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앞서 갔던 그 여(女)행자가 분명했다.

“사회에서 있었던 모든 생각들과 인연의 고리는 모두 벗어버리고 끊어내야 합니다.”태고종 총무원장 편백운 스님의 격려사가 시작되자, 행자들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 위로 부처님 말씀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와 앉는다.

“멀고도 깁니다. 행자 교육을 마치면 5년 세월 수양을 쌓아야 비로소 비구와 비구니 수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선암사 정수원 원장 호명스님은 입소한 행자들이 마음을 굳게 다져야한다며 부처님 원력을 불어넣는다.

행자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한다. 스님이 목탁을 치며 도량을 도는데 도량석(道楊釋)이라고 한다. 그 목탁소리를 듣고 모든 선암사 스님들이 모두 일어나게 된다.

​종성과 목어, 운판, 법고, 대종이 경내에 울리면 대웅전 새벽 예불이 시작된다. 그때부터 행자 교육의 시작이다. 온갖 번뇌와의 싸움이 천둥번개처럼 뇌리 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죽비 소리가 가슴 속으로 치고 나가기를 수차례 반복, 큰방 스님들의 간경(看經)소리가 귀 끝에 걸려 옴짝달싹 하지 못한다. 몸을 겨우 풀어 조계산 장군봉을 올려다본다.

지난날의 인연들과의 갈등, 아직도 번뇌가 가득하다. 겨우 멈추고 서서 침묵의 시간을 맞는다. 무념무상의 시간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두 눈에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온몸에 남아있던 물기가 모든 빠져나간 뒤 찾아오는 고요함 곧 묵언 수행의 오솔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그 과정을 통과해야한다.

40명의 행자들은 선암사 정수원에서 초급승려에게 필요한 기초습의, 기초강의, 기초의식, 부처님 일대기 및 기초교리, 태고종 종지 종풍 사상, 울력 등의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3개월 행자 교육이 끝나면, 수계식은 10월 18일 오전 11시, 선암사 중앙금강계단에서 봉행될 예정이다.

입교식을 하는 40명의 행자들과 같은 자세로 합장을 하고 의식에 동참했다. 어느 새 나 또한 입교식을 하기위해 선암사에 들어온 여(女)행자와 다를 바 없었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친다. 살아온 길이 보인다. 살아갈 길도 희미하게 보인다. 분명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파르라니 머리를 삭발하지는 못했어도 이 시간 이후, 나는 수행자의 소신을 갖고 걸어갈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부처님 앞에 서면 사탕 달라고 떼쓰는 우매한 나에게까지 가르침으로 이끈 선암사 도량, 천 오백년이란 오랜 세월 태고종 총림으로 웅거(雄據)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