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틈만 나면 읽는다. 읽은 만큼 기록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그래도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읽는 분야는 다양하다. 강의, 글쓰기, 책 쓰기, 원고투고, 창업, 독서 등이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어떤 분야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그 분야를 잘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 분야에 대한 애정과 열의가 평소부터 있었다는 말이다. 책에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책은 바보를 천재로 만들어주고, 평범한 사람을 비범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놀라운 물건이다. 단순히 종이에 글자가 써 져 있는 것을 풀로 붙여놓은 물건이 아니다. 인류는 책을 통해 지식을 전달해 왔다. 한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깊이 있게 정리해 놓은 것이 바로 책이라는 작품이다.

책을 통해 삶을 바뀐 사람이 많이 있다. 나의 사표인 다산 정약용이 대표적이다. 다산은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다. 수레 가득 실은 책을 며칠 만에 모두 읽고 기억했던 모습이 다산의 어린시절이다. 과거에 급제하고 당시 임금이던 정조를 만난다. 이 만남이 다산에게는 삶을 바꾼 만남이 된다. 정조는 지식과 체력을 겸비한 왕이었다. 젊은 학자를 중용하여 정부의 요직에 앉혔다. 서얼 출신을 차별받던 이덕무, 박제가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앉혀서 신분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왕이다.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 그리고 박제가. 그들은 독서광들이었다.

다산은 1,800년 갑작스런 임금 정조의 승하 이후 날개가 꺾이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순조가 즉위하자 대비의 집안이었던 안동김씨가 세도정치를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천주교를 박해를 핑계로 당시 남인의 젊은 학자였던 다산을 전남 강진으로 유배보낸다. 다산은 18년 간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한다. 삶을 한탄하고 술과 한숨으로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산은 독서와 초서와 저서에 힘썼다. 멀리 한양에서 온 높은 벼슬을 하다 죄를 지은 양반에게 방을 내 준 사람은, 강진 읍내의 주모였다. 주모의 뒤편 창고로 썼던 작은 방을 얻어 다산은 다음 날 새벽 고문 한 쪽을 베껴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의 실력을 입소문으로 들은 주위사람들은 아이들을 보냈고, 다산은 다산초당을 마련해 강진에서 교육을 시작했다. 여러 제자들이 있었다. 그 중 다산을 가장 따르고 다산도 마음에 들었던 제자가 황상이다. 다산은 어리석은 자신도 배우면 나아질 수 있냐는 16살 더벅머리 소년 황상의 질문에,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계의 가르침을 준다. 실력이 높고 인품이 깊은 스승의 격려에 감동받은 황상은, 다산이 강조한 초서를 관뚜껑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다. 주위 사람들이 그 쓸데없는 짓을 왜하느냐고 말려도, 나를 믿어준 스승이 강조한 것이라며 꿋꿋이 좋은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베껴썼다.

다산을 존경하는 이유는 박식하고 다재다능해서가 아니다. 보통사람이라면 포기했을 삶을, 다산은 책으로 극복하고 이겨내고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강진 18년 유배생활은, 다산 개인과 그 가족에게는 큰 불행이었지만, 조선의 역사에 있어서는 크나큰 축복이었다. 《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촌병혹치》 등 역사에 남을 576권의 책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다산은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폐족의 자식이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훗날 어떻게 일어서겠냐면서, 자식들에게 독서를 강조했다. 책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극복했던 다산. 다산에게 책은 길이요 진리였다. 내 삶에 있어서도 책은 그만큼 소중한 존재다. 지금보다 더 좋은 책을 찾고 읽으며 현명하고 지혜로운 생각으로 타인과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dnetpro@naver.com), 미래경영연구소장

: 칼럼니스트, 강사, 커리어컨설턴트, 작가. 《혼자 알기 아까운 책 읽기의 비밀》(연지출판사, 2015), 《통하는 취업전략》(효민디앤피, 2014) 저자. ‘초서鈔書독서회(양산도서관)’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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