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이기주, 출판사 :말글터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저자가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 그런 언어가 지닌 소중함과 절실함을 농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엿듣고 기록하는 일을 즐겨 하는 사람이다. 그는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몹쓸 버릇이 발동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이들이 나누는 말과 글에는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는 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치열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세상살이에 힘들고 지칠 때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속 시원하게 털어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책을 통해 작가가 건네는 문장으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에는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이다.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정서적 화상(火傷)을 입을 수 있다. 또한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 상대의 마음을 돌려세우기는커녕 꽁꽁 얼어붙게 한다.

이렇듯 ‘언어’나 ‘글’은 한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꽁꽁 얼리기도 하지만, 그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을 한순간 녹여주기도 한다.

이 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이라는 주제로 29편의 이야기를 통해 말에도 온도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2장은 “글(文),지지 않는 꽃”이란 주제로 역시 29편의 소소한 글들이 소개되고 있다. 3장은 “행(行),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주제로 30편의 아름다운 사연을 들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집어든 당신의 언어는 몇 도쯤 될까요? 글쎄요.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 마디 대문에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났다면 ‘말 온도’가 너무 뜨거웠던 게 아닐까요. 한두 줄 문장 때문에 누군가 당신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다면 ‘글 온도’가 너무 차갑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요. - <서문_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중에서

어머니가 퇴원하시는 날 담당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환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시던데요?”라고 묻자 그는 “그게 궁금하셨어요?”하고 되물었다. 의사는 벼럴 다 물어본다는 투로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난 그의 설명을 몇 번이고 되씹어 음미했다.

“환자에서 환(患)이 아플 ‘환’이잖아요. 자꾸 환자라 하면 더 아파요.”

“아….”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호칭 싫어하는 분도 많아요. 그래서 은퇴 전 직함을 불러드리죠. 그러면 병마와 싸우려는 의지를 더 굳게 다지시는 것 같아요. 건강하게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병원에서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醫術)이 될 수도 있어요.” - <말도 의술(醫術)이 될 수 있을까> 중에서

뒷맛이 씁쓸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염치(廉恥)를 잃어버린 것 같다. 지하철에서 어깨를 부딪쳐 노고 그냥 내빼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버스나 기차에서 1시간 가까이 목소리 데시벨을 최대치로 높여 통화하는 사람도 자주 보게 된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을 투명 인간 취급한다고 할까. 염치가 사치가 됐다고 할까. 염치는 본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염치가 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낮잡아 우린 ‘얌체’라고 부른다.

언젠가 정중히 사과를 건네는 사람의 표정을 들여다 본적 있다. 그는 어딘지 힘겨워 보였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왜일까. 엉뚱한 얘기지만 영어 단어 ‘sorry’의 어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그래서일까. 진심 어린 사과는 ‘널 아프게 해서 나도 아파’라는 뉘앙스가 스며있는 듯하다.

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 - <진짜 사과는 아프다> 중에서

한글은 점 하나, 조사 하나로 단어와 문장의 결이 달라진다. 한글 자모 24개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가 이론적으로 1만 개가 넘는다. 정교하다고 해야 하나, 언어학적으로 활용성이 크다고 해야 하나.

영국의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한글이야말로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지적 유산 가운데 하나”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한글의 세밀함을 무시한 채 머릿속에 맴도는 문장을 무턱대고 입 밖으로 끄집어내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를 앞에 두고 “넌 정말이지 외모도 예뻐!”라고 칭찬을 하려다, 실수로 “넌 정말이지 외모만 예뻐!”하고 말해버리면 친구 간에 의만 상한다.

한글은 아름답다. 그리고 섬세하다. 단, 섬세한 것은 대개 예민하다. - <모두 숲으로 돌아갔다> 중에서

거뭇한 키보드에서 손가락을 떼는 순간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도 유종의 미는 중요하다. 모든 사귐은 하나의 여정(旅程)이다. 마지막 순간이 두 사람의 추억을 지배한다.

연인과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였나 봐. 아무튼 잘 자내….”라고 마지막 문자를 보냈더니 “ㅇㅋ” 답문을 받았다는 지인이 있다. 나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잡다한 장르가 뒤죽박죽 뒤엉켜 있는 영화 한 편을 관람한 느낌이 들었다. 희극적이;s 요소가 다분한 멜로인지, 비극적 요소가 버무려진 코미디인지 헷갈렸다.

시작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아니 때론 훨씬 더 중요하다. 당사자에게 알려지는 것과 당사자에게 알리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시작만큼 중요한 게 마무리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 <시작만큼 중요한 마무리> 중에서

우린 어떤 일에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무언가 시도하지 않았거나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그러니 가끔은 한 번도 던져보지 않은 물음을 스스로 내던지는 방식으로 내면의 민낯을 살펴야 한다. ‘나’를 향한 질문이 매번 삶의 해법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삶의 후회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살다 보니 그런 듯하다. - <그녀는 왜 찍었을까> 중에서

꽃은 향기로 말한다. 봄꽃은 진한 향기를 폴폴 내뿜으며 벌과 나비와 상춘객을 유혹한다. 향기의 매력은 퍼짐에 있다. 향기로운 꽃 내음은 바람에 실려 백 리까지 퍼져 나간다. 그래서 화향백리(花香百里)라 한다.

다만 꽃향기가 아무리 진하다고 한들 그윽한 사람 향기에 비할 순 없다. 깊이 잇는 사람은 묵직한 향기를 남긴다. 가까이 있을 때는 모른다. 향기의 주인이 곁을 떠날 즈음 그 사람만의 향기, 인향(人香)이 밀려온다. 사람 향기는 그리움과 같아서 만 리를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한다. - <화향백리 인향만리> 중에서

* 전박사의 핵심 메시지

몇 년 전 한글날을 맞아 모 방송국 아나운서실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한 걸 방송에서 본 적이 있었다. 밥을 지어 두 개의 유리병에 각각 넣어두고 한쪽 병에 든 밥에는 아나운서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맙다’ ‘사랑하다’라는 긍정의 말을 했고, 다른 쪽 병에 든 밥에는 ‘넌 쓸모없어’ ‘넌 나쁜 밥이야’라는 부정적 말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놀랍게 나타났다. 긍정의 말을 받은 유리병 속의 밥은 몇 날 몇 일이 지나도록 멀쩡하다가 발효되어 누룩 냄새가 났다. 하지만 부정적 말을 받은 유리병 속의 밥은 얼마가지 못해 부패해서 검은 색으로 변했고 악취가 났다. 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말과 글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가 뱉는 말도 있을 것이고, 내가 듣는 말도 있을 것이다. 내가 유리병 속의‘밥’이라면 어떤 말을 듣기를 원했을까. 당연히 ‘감사하다’ ‘고맙다’ 등의 긍정적인 표현의 말과 글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말이나 글을 보는 상대방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긍정적이고, 힘이 나는 말과 글을 듣고 보고 싶은 게 당연한 이치다.

따라서 ‘말과 글에 따듯함과 차가움이 있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듯이 한 번 내뱉은 말 역시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한때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해야 된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예 선현들의 이야기를 그냥 흘러 들을 일이 아니다. 내가 뱉은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는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가슴에 못이 박히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수한 글과 말이 오고가는 이 시대에 말과 글의 중요성을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한 권의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따뜻한 온도의 말과 글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씨앗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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