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보은]5월 가정의 달에 부모 자식 간 나눔의 정을 생각한다. 흔히 요즘을 각박한 세상이라고들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정 나누기가 뜸해지다보니 더욱 ‘효’란 단어가 새삼 그리워지는 때다. 한 지붕아래 3대가 옹기종기 모여 살아온 36년 세월이 지금은 그리움으로 남아 차마 힘이 들 때도 있다는 한 며느리의 효심이 각박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 귀감이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회인면 애곡2구(일명 아랫보구실)에 거주하는 권순자(54·새마을부녀회장)씨다.
◇회인면 101세 최고령자인 시부를 36년 간 봉양 귀감

회인면의 최고령자로 지난 2월 10일 작고한 101세의 시아버지를 36년 간 친딸처럼 모셔온 마을의 자랑거리 며느리 권 씨를 모델로 지역사회의 효 문화 확산과 경로효친의 사회분위기 조성을 위해 85세 이상 부모를 두고 군에 거주하며 1년 이상 모신 사람에게 지원되는 ‘효도수당 지원 조례 안’이 늦어도 오는 6월경 입법 발의된다.
‘효도수당 지원 조례 안’ 제정의 효시가 된 주인공은 일명 아랫보구실(애곡2구)에 사는 새마을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권 씨로 꽃다운 나이 19세에 시집 와 36년간 시부모와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효를 실천해온 9남매 중 다섯째 며느리다.

◇꽃다운 나이 19세 때 열한 살 나이차인 남편에 시집와

효심 깊고 궂은일도 마다않는 선량한 성품 덕에 동네 부녀회장직을 맡은 권 씨는 오히려 효심 운운하며 회자되는 것에 부끄럽다는 말로 소회를 대신했다.
“제가 일 때문에 아무리 늦게 귀가해도 아버님은 늘 ‘집에 있는 사람이 밥 굶겠느냐’하시면서 오히려 두둔을 하셨어요. 그 순간 무거웠던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해지고 미안한 마음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커지고 그래서 아버님에게 많은 마음공부를 한 것 같아요. 어쩌면 그 덕택에 아버님을 모실 때 어려움이 없었고 늘 행복한가운데서 모실 수 있었던 거지요.”

◇선량한 시부 덕에 마음공부하며 행복했던 기억들 많아

항상 ‘숙맥’이라며 스스로를 낮추는 권 씨의 남편 김홍원(68)씨도 마을에서 세 번째 이장을 맡아 도합 7년째 이장을 하는 베테랑이다.
“남편의 성품도 인자하셨던 아버님과 비슷해 지금까지 부부싸움을 해 본적은 없어요. 눈살한번 찌푸리지 않고 살아온 고마웠던 세월 속에서 마음고생은 아직 한 번도 못해 보았어요. 이만하면 행복한 가정의 며느리 아니겠어요. 돈보다도 화목한 가정이 행복의 으뜸이라는 말을 매일 실감하면서 살아왔어요. 일하는 것보다도 마음을 알아주는 아버님과 남편이 있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던 것 같아요. 아직도 집안 어딘가에 항상 남아있는 아버님의 빈자리는 늘 그리움으로 남아있어요.”

◇시부의 이해심 덕에 허물이 자랑으로, 꾸중은 칭찬으로

괴산 출신인 권 씨는 한창 젊디젊은 나이 19세에 이목구비 뚜렷한 훈 남인 남편을 보고 반해 단 한 번에 결혼을 결심했다.
“청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차 친구였던 시누이의 소개로 맞선을 보게 되었지요. 인연의 끈이 있었던지 단 한번 보자마자 선뜻 마음이 끌렸어요. 그게 바로 인연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농사일하며 2남 1녀를 낳고 키우고 거기다 인삼밭까지 여기저기 만들어 놓은 탓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살다보니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현재 남편과 함께 재배하는 인삼밭의 면적은 3만9669.6㎡(1만2천평)으로 크다면 크죠. 언제나 도와주실 요량으로 마음 써 주셨던 아버님을 볼 때마다 제 허물이 오히려 자랑으로 바뀌고 꾸중대신 칭찬으로 바뀌니 늘 보살펴주셨던 그 마음이 늘 고마움이죠.”

◇10년 전 바르게살기협의회 통해 장한효부 상 수상도

권 씨는 꽃다운 나이 19세에 시집와 10여 년 전 먼저 작고한 시어머니를 비롯 지난 2월 10일에 작고한 시아버지를 합해 어언 36년 간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온 장한 며느리다.
그는 이미 이런 이유로 10년 전 쯤 바르게살기협의회를 통해 회인면의 장한 효부로 선정,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점차 사라져가는 미풍양속이 절실한 세태에서 한결같은 시모, 시부의 사랑을 실천해온 그는 몇 달 전 작고한 시아버지의 빈자리가 무척 생각난다는 말로 서운함을 대신하고 있었다.
한결같은 시아버지의 사랑, 변함없는 며느리의 사랑을 실천해온 이들 가정은 너무도 행복한 가정으로 마을의 효에 대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삼대가 부부싸움 한 번 안 해 본 금슬로 우애도 모범

“시부모님도 부부간 정이 좋으셔서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한 적 없어서인지 우리도 부부싸움 한번 안 해보고 여지껏 살아왔어요. 한 일화로 아버님이 밖에 있다가 들어오시면 아들은 안 찾는데 며느리가 없으면 올 때까지 기다리셨어요. 그런 정이 쌓이다보니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너무나 힘들었지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삼우제 때 재산분배 문제로 형제가 모였을 때 아무런 오해 없이 한 평생 부모님을 모신 다섯째 며느리에게 가야 한다고 형제들이 모두 손을 들어 주셨지요. 9형제 중 5남에 다섯째, 누님이 3분, 동생 하나가 있어요.”

◇손주·증손들엔 끝없는 옛날이야기 펼치던 천상이야기꾼

9형제에서 출생한 손자, 증손자 등을 합치면 무려 52명의 자손을 두었다는 다복했던 101세의 고인은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할 만큼 효가 으뜸이 된 최고의 집안가장이었다.
또한 형제간에 화목한 가정을 이끌기 위해 노력한 집안의 맏형은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했던 도 행정 국장을 지냈던 바로 김홍기씨다.
“장사를 치르던 날 아주버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바로 아버님이 평생 딱 열하루만 앓다 가셨다는 사실 확인이었어요. 하루는 집에서 열흘은 병원에서요. 또한 손자, 증손자 합쳐 52명이라는 사실두요. (웃음). 그만큼 기본적으로 건강하셨던 분 이셨어요.”

◇완전 채식주의자로 고기·생선 두 번 이상 올리면 버럭
“식성하면 언제나 채식만 고집하던 어른으로 제가 고기나 생선을 밥숟갈에 얹어 드리면 한번은 ‘그래라’고 받으셨지만 두 번 세 번 계속하면 역정 내셨고 특히 싫어한 음식은 미역국과 고추장에 찍어먹는 풋고추였어요. 이유는 몰라요. 무조건 좋아하신 음식은 김치, 된장, 무 종류를 좋아하셨어요. ‘늘 정직하게 살아라’를 입버릇처럼 하셨던 아버님의 특기는 풍수지리셨어요. 옛날에 배운 풍수로 동네는 물론 타지에서 알고 풍수를 보아 달라 찾아오면 묘 자리 등을 봐주셨지요. 학력이 초졸이 다인 아버님이지만 총기는 남 못지않았어요. 늘 한결같았는데 돌아가실 때쯤 아버님이 일하고 돌아온 제게 추운데 고생했다. 욕보았다 하시며 혼자 일하지 말고 여러 사람이 일하도록 하라고 더운 여름인데 그렇게 걱정하시더군요.”
최근에도 작고한지 3개월이 갓 넘어가지만 일상에서, 집안에서 자꾸 눈에 밟히는 시아버지의 그림자가 몹시도 그리워진다는 권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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