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철 옥천대성사 주지 / 불교공뉴스 대표

[불교공뉴스-문화]이른 아침, 도량에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깔때기 모양을 한 바람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이리저리 휘몰아쳤다. 작지만 흡입력을 가진 게 요망스럽다.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있던 낙엽들이 일시에 빨려 들어가고, 휴지조각들이 메조사이크론처럼 생긴 기둥이 마당 가운데에서 빙빙 돌았다.

주기적으로 미국남동부지역 미주리 주 남서부 조플린 지역에 토네이도가 발생해 많게는 수백 명의 인명 피해와 건물이 파괴되어 아수라장이 되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일본 토치기현과 이바라키 현에서 거대한 토네이도가 발생해 인명 피해와 건물이 파괴되었다. 예전에 없었던 현상이라며 연일 매스컴을 달구었다.

토네이도의 발생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략 상층부와 하층부의 바람 속도의 차이, 온도의 차이로 성질이 다른 두 바람사이에서 공기 덩어리가 회전하게 되어, 뜨거운 지표면의 상승기류로 인해 거대한 흡입력을 가진 메조사이크론이 세워지게 되면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토네이도는 예측 가능한 자연재해라고들 말한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일본의 토네이도는 이상기후라고들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에서도 저마다의 토네이도가 불어 닥친다. 문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예측 불가능하다는 말은 어불 성설일 수도 있다. 모든 일은 자신이 지은 업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는가.

악업을 지으면 악업과 맞물리는 인연과 만날 테고, 선업을 지으면 선업과 맞물리는 인연을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다들 갑자기 불어 닥친 토네이도라고 호들갑스럽게 행동한다.

그러다가 A급 토네이도를 만나게 되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팔자가 사납냐고 스스로 자책하고 체념하기에 이른다. 그것 또한 자신이 지은 업을 회피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한참을 보고 서 있자니 도량 안이 난리 통이다. 삽시간에 가벼운 집기들이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그때, 처음 보는 보살님이 마당 안으로 헐레벌떡 들어섰다.

나를 만나기 위해 새벽 세 시에 나주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아침 공양을 겨우 마친 이른 시간인데 찾아들다니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었다. 보살을 사무실로 들게 하고, 차를 한잔씩 나눠마셨다.

텔레비전에서 나를 보고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고, 나를 만나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았다느니 하면서, 지금껏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았는데 갑자기 불어 닥친 액운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 지경이란다. 명문대까지 나온 딸인데, 집안끼리 알고 재내던 신랑감과 약혼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돈도 없고, 학벌도 부족한 청년을 만나더니 딸이 파혼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얌전하기만 했던 딸이 부모의 뜻을 어기고 그 청년과 혼인을 하겠다고 하자, 그 결과가 어찌되었는지 불 보듯 뻔 했을 것이다. 결국 딸은 가출을 하고 말았고, 벌써 반년이 흘러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보살의 애간장이 새까맣게 탔을 법도 싶었다. 도량에 앉아있다 보면 돈 자랑, 권력 자랑, 거기다가 자식 자랑까지 늘어놓는 불자들이 참 많다. 더 이상 부처님의 자비는 필요 없을 듯 모든 것을 다 가진 불자들이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럽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보살님, 그 가정에는 인생의 토네이도가 한 번도 불지 않은 것만으로도 축복이었습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동안 따님을 키우면서 어떤 업을 지었는가를 말입니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가르쳤다고 해서 자식에게 모두 잘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그 청년을 따라 나섰던 것은 지금까지 누렸던 그 모든 것보다도 더 소중한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님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에 날마다 편지를 남기세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편지 말입니다. 아마 그 핸드폰은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 핸드폰에 찍힌 보살님의 편지를 받고 따님이 곧 돌아올 것입니다.”

사실, 그 보살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딸이 언제쯤에나 돌아와 명문가 집안과 혼인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나보다 잘나고 돈 많고 인물 좋은 사람과 혼인을 하려면 먼저 그에 준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 그 집안에 들어가 종노릇을 자청하는 일이며, 늘 토네이도를 가슴에 품고 사는 일이지 않느냐고 보살을 타일렀다.

더 이상, 자신의 욕심 때문에 자식의 가슴에 못 박지 말라는 뜻이었다.
보살이 도량을 내려가자, 바람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 보살이 숨겨놓고 간 욕심의 보따리가 아직도 대웅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관세음보살! 두 손 모아 합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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