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사회]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중 하나가 여자, 즉 아내가 편해야 가정이 편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신발이 편해야 오늘 하루가 편한 것이고, 가정이 편해야만 비로소 마음도 덩달아 평안한 법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더 관찰하자면 사람은 노년이 편해야 진정 승리한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이미 확실하게 노년의 교차로에 들어선 저의 오늘날은 그렇다면 지지리도 궁상맞은 나날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올부터 시작한 생업인 경비원의 업무는 늘 그렇게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또한 늘 만성부족인 잠과의 투쟁이기도 하죠. 때문에 일과를 마치고 귀갓길에 오르는 때면 잠이 밀물처럼 쏟아지기 일쑤입니다.

여하튼 요즘 모 제약회사의 광고처럼 ‘세상 사는 게 피로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했으니 견뎌내고 볼 일입니다. 각설하고 일요일은 어제도 온종일 근무하느라 심신이 무척이나 피로한 즈음의 일입니다. 전화가 걸려와 받으니 2인 1조로 같이 일하는 파트너의 아버님이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아~! 000씨의 아버님이시군요! 근데 000씨는 (앞의) 경비실에서 근무 중입니다. ...... 어제 아드님이 귀가를 안 하여 궁금하여 전화 하셨다고요? 그건 어제 야근에 이어 오늘 주간근무까지 하느라 그런 겁니다. 아무튼 아드님께 곧 전화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언젠가 휴일에도 주간근무를 하는 중에 파트너의 아버님께선 커다란 귤을 묵직하게 들고 오시어 저도 덤으로 얻어먹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어제 그 전화는 이제는 안 계신 선친을 두둥실 보름달로 떠올리게까지 하는 모티프로 작용하기에 이르렀지요.

사람은 신이 아닙니다. 하여 누구라도 한 가지 이상의 부정적 측면은 소유하곤 하는 것입니다. 선친께선 평소엔 선비처럼 고고하고 학식 또한 풍부한 분이셨지요. 하지만 술만 들어갔다손 치면 금세 돌변하여 하나뿐인 아들인 저를 무던히도 어렵게 하셨습니다.

물론 누구도 말리지 못 한 당신 특유의 주사(酒邪)는 홀아비 특유의 투정(?)이긴 했지만 말이죠. 어쨌거나 술을 안 드셨을 때 아버님께선 제가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오면 늘 그렇게 칭찬과 배려, 그리고 사랑까지를 한꺼번에 표출하시곤 하셨습니다.

“오늘은 비가 와서 많이 힘들었지?” “아녜요, 덕분에 우산을 많이 팔 수 있어서 아버지 드시라고 고등어도 한 마리 사 왔어요.” 그랬던 아버님이 갑자기 타계하신 건 제 아들이 불과 세 살 때입니다.

부모사후불효해의 보편적 정서를 떠나 세상에 단 한 분뿐이었던 아버지가 그처럼 허망하게 떠나시고 나니 가통지사(可痛之事)도 그런 가통지사는 또 없더군요! 비록 제게 불학(不學)의 고통과 더불어 가난까지를 유산으로 물려주시긴 했지만 아무튼 아버님의 부재(不在)는 참으로 두터운 외로움을 가중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당초엔 없었던 가족계획을 수정하면서까지 둘째인 딸을 보긴 했지만 말이죠. 그러니까 아버님께선 이 세상을 떠나시며 저에게 자타공인의 재원(才媛)이며 효녀이기까지 한 딸을 선물하신 셈입니다.

어제 제 업무 파트너의 아버님 전화는 그래서 다시금 이제는 그리움으로만 남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정(情)을 새삼 곱씹게 하는 단초로 작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죠. 고향인 천안에 가면 서울서 오가는 전철이 서는 ‘두정역’이 있습니다.

이를 빙자해서 저는 어제 그리운 ‘부정역(父情驛)’이 비 온 뒤의 무지개처럼 그렇게 반짝이며 제 가슴속으로까지 마구 파고드는 걸 차마 제어하지 못 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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