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사회]나처럼 1960~70년대에 학교를 다닌 세대들은 익히 기억할 것이다. 그건 당시 대한민국은 지금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그렇게 철저한 ‘반공국가’였다는 현실의 발견이다.

지금도 반공이 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때와는 분위기와 정서가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일 게다. 그 즈음 학교에 가면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팽배했는데 이는 물론 위정자들의 작위적 전쟁 공포감 조성과 확산이 개입한 측면도 적지 않다.

여하튼 당시에 일어난 사건 중에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란 것이 있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유엔군 측 초소 부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도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 이 사단의 핵심이었다.

이 사건은 이날 오전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이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모두 11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유엔군 측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리고 있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고 있던 중 발생했다.

가지치기를 지켜보던 북한군이 “나뭇가지를 치지 말라”며 생트집을 잡았으나 미군이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하자 갑자기 수십 명의 북한 병사들이 트럭을 타고 달려와 도끼와 몽둥이 등을 휘두르며 폭행을 시작하여 결국엔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나머지 9명에겐 중상까지 입힌 뒤 물러갔다.

이에 대경실색과 함께 분기탱천한 미국은 백악관과 국무부, 중앙정보국 등 행정부 고위관리들로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각종의 전투기와 전쟁물자들을 한국기지에 속속 배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당시 한반도에 드리운 남북 간 전면전 발생 우려의 암운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경악케 하였다. 결국 위기의식을 느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사과문을 UN군 측에 전달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어제 경찰서를 지나다가 <추모, 천안함 용사 2주기>라는 펼침막을 보자 불현듯 이같은 끔찍한 과거사가 기억의 창고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우려 마흔 여섯 명이나 되는 소중한 우리의 용사들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2주기가 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한반도에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더하여 내 아들 또래의 나이인 김일성의 손자가 북한의 권력을 세습하였다는 건 조선시대의 왕권세습을 연상케 하는 실로 어처구니조차 없는 작태에 다름 아니다.

하여간 잊을 게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천안함 폭침 2주기’를 맞으며 다시금 북한의 무자비성(無慈悲性)에 분개하며, 아울러 당시 희생 당한 우리 해군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