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현스님(열린선원 원장,태고종 전 부원장)

[불교공뉴스-불교]북한의 김 일성 주석 사후 17년만에 김 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사망했다.

우리는 19일 북한의 발표를 세계가 동시에 보고 알았지만 사실은 이틀 전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더 다른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반도의 반쪽에 불과한 북한 지도자의 사망에 전 세계의 증권시장이 영향을 받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이목이 온통 북한에 쏠려있는 한주가 되고 있다.

더구나 옛 왕조시대의 국장(國葬)과도 같은 10일장을 진행하기 때문에 장례식이 진행되는 28일과 추도일인 29일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 세계의 이목은 북한을 향할 것이다.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고 있는 미국마저 북한이 발표하는 것 이외에 더 알고 있는 것이 없고, 북한의 대표로 나선 사람들 말고는 북한 권부의 핵심에 줄이 닿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김 정일위원장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죽었다는 사실을 며칠 동안이나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더 충격이라는 말이 더 이상 충격적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까맣게 닫힌 사회가 바로 북한이라는 나라이다.

우리의 정보기관도 서로 말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까지 하다. 그리고 후계자로 지목된 김 정은과 주변 인물에 관한 분석보도가 한창이다.

벌써 닷새째 계속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큰 이슈이니까 어절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류이기는 하지만 너무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국내 이슈이기도 하고 국제 이슈이기도 한데다 복잡한 국내사정과 맞물려 그런 것이기도 하다.

29일까지의 과정과 주변 일들에 관해서 큰일에서 작은 일까지 하나라도 놓칠까 두 눈과 두 귀, 아니 여섯 감각 기관을 모두 집중(正念)시켜 놓고 온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이북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이며, 민주화 운동에 몸 바치는 동안 알게 모르게 북측의 이념을 받아들인 이들, 그리고 오매불망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던 통일꾼들의 눈은 밤새 일하고 눈을 비비는 산업전선의 역군들처럼 피곤함 속에서도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이다.

평소 보수 이념을 표방하던 이들이나 북측에 고향을 둔 이들에게 모종의 나쁜 일을 당한 사람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 때 모두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생각할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당신이 깨달으신 내용을 제자들에게 충분히 숙지시키고, 그 제자들이 자신의 명상 체험 속에서 자신의 깨달음으로 체득시키는 것을 본 후에 제자들에게 전도명령(傳道命領)을 내리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그것은 잘 알려진 대로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나중도 좋게’였다. 일의 준비와 진행과정, 그리고 그 결과와 미래까지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말고 다 좋게 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정일위원장이 죽고 나자 29살에 불과한 김정은의 권력승계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가, 앞으로의 북한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권력구조와 관련한 변화와 경제구조와 관련한 변화 그리고 대 남한 및 국제사회와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저마다의 시선을 가지고 분석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현상의 지속을 바라는 마음도 있고 불안함을 희망으로 바꿔보고자 하는 마음도 담겨있다.

이미 30대에 권력승계 수업을 본격적으로 받아서 20여년의 인적 토대와 노하우를 쌓고서도 3년이라는 유훈통치를 통해 확실하게 권력을 행사했던 김 정일위원장에 비해 10분의 1도 안되는 짧은 시간과 젊은 나이 그리고 전쟁 등 현장 경험이 적은 김 정은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갑갑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의 일을 미리 짐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제대로 된 견해이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욕계의 중생들이니 어쩔 수 없이 예측을 해보고 싶어한다.

그런 면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대롱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곰곰 생각해보고 바라보면 한 순간에, 아무 이유 없이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원인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김 일성주석의 사후 김 정일위원장에 관한 견해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때도 지금과 비슷하였다. 가장 많은 것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곧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군정치, 벼랑끝 전술, 핵개발, 고난의 행군 등으로 20여년을 이끌어왔다. 그리고 김 일성시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김 정은시대와도 연결이 되어 금강산 관광과 개성특구에 이은 나진선봉 지구와 황금평 및 위화도 개발과 관련한 사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는 활동가들의 보고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김일성과 다른 모습이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관한 시각을 살펴보기로 하자. 김정일과 북한의 변화에 관해 의미 있는 일화가 있다.

모택동이 죽고 등소평이 중국의 지도체제를 형성하면서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개방경제를 실시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이념을 받아들이면서 그 이름을 ‘상품경제(商品經濟)라고 해서 자신들의 이념으로 삼고, 주변의 공산·사회주의 국가에도 보급하려고 하자 북한에서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공산주의 이념 속에 ‘상품경제’라는 말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1986년 6월 중순경 중국 ‘붉은 기(紅旗)’라는 잡지사 편집회의실에 중국측에서 당시 당 중앙 선전부부장이던 웅휘(雄輝)와 국무원 개발연구소 교수, 북경대 경제학 교수 등 경제학자 10여명과 북한측 당 중앙 선전부부장 김용학 등 경제 전문가 10여명이 모였다.

양국의 이론가들이 모였기 때문에 상품경제와 공산주의 경제체제의 개방화의 당위성에 대해 불꽃 튀기는 토론이 벌어졌다. 국가의 자존심까지 건 토론이었기에 며칠이 지나도 확실한 비교 우위의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과는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이미 개방화에 착수했던 중국의 심천 등 연해개발구를 방문해 첨단 산업 시설을 보고서야 북한 학자들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쏠리는 듯 했고, 김일성은 양국 학자들에게 만찬을 대접하고 금강산을 보여줬다.

일인 지배, 일당 지배 체제하에서도 지도 이념을 확립하기까지에는 설사 지도자의 의중대로 가더라도 구성원들의 진지하고 철저한 토론을 통해 의견의 일치를 본다는 것이 묘한 느낌을 주는 데가 있다.

우리는 그야말로 국민의 의사를 전달하고, 대행하는 입장에 있으며, 그것을 시행하는 기관들끼리 어떻게 일을 진행하고 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제 권력의 출발점에 확실하게 선 김 정은은 알려진 대로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운동과 예술을 좋아하며 북한에 돌아와서 김 일성군사종합대학을 나와서 그의 삼촌이나 형들을 제치고 후계자 자리에 올라왔다. 장의위원 명단에서 읽을 수 있듯이 북한을 움직이는 군대와 당 등 필요한 권력구조의 최상위 핵심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일부의 전문가들이 후견통치를 이야기 하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일인독재의 나라와 종교는 직접 통치를 하지 않는 순간 무너진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이다.

김 정은은 제대로 교육받은 인물인데다가 권력의지도 강하여 자기보다 윗사람들을 물리치고 권력을 승계 받은 것이다. 거기에다가 현재 북한의 어려움을 헤쳐가기 위해 필요한 개방성까지 갖춘 것으로 보인다.

끊임없이 남한과 세계를 향해 한편으로는 핵의 위험성을 내보이고 다른 쪽으로는 인민의 어려운 사정을 드러내서 양날을 모두 재정지원에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최대한의 인재풀을 활용할 것이다.

또 하나 북한의 인민들이 비에 젖는 초상화를 보고도 울부짖는 단결성을 보이는 것은 획일화된 체제의 세뇌 교육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아래 토대로는 경제의 후진성에 기인한 가난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본인은 판단한다.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만큼의 배부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편향성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한 마디로 배가 고파서 충성하는 것이다. 배부른 충성은 충성하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아설 수 있지만 배고픈 충성은 마음대로 돌아설 수가 없다.

그것은 이미 우리 인류가 여러 곳에서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지원은 꼭 필요한 것이다. 자유의지에 의한 사고와 행동을 위해서 기초생활비용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일인독재를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안전과 발전 그리고 이북동포를 포함한 우리 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김정은 시대의 연착륙이 나라와 겨레의 통일번영에 이바지한다는 견해 안에서 바람직한 대응을 해야 한다.

현재처럼 초당적 대응 속에서도 자유로운 의견을 제출하고 그를 모아가는 민주적인 방법론이 필요하다. 그간 우리 사회의 제일 큰 문제가 여야와 시민 종교단체를 막론하고 정당한 방법론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다 보니 이기주의적 불통현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가 현재 정권을 쥐고 있는 여당과 정부의 잘못이고, 이를 견제하고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야당과 시민 사회단체 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교육계와 종교계에서도 잘못에 대한 비판과 항거만이 능사가 아니라 제대로 갈 수 있도록 큰 틀의 연대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안에서 다투지 말고 조문하고 싶은 이들은 마음대로 조문하게 하고 정부에서는 북한과의 내부적 외교관계를 차근히 다져가는 기회로 활용했으면 한다.

그것이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이라 할 것이다. 무조건 퍼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일견 그럴듯한 주장에 의해 교류와 지원을 막은 것에 대한 결과가 오히려 더 많은 지출과 상처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것은 통일 기회비용을 늘리게 되었을 뿐인 것이다.

대통령이 종교지도자와 여야지도자를 만나서 의견을 청취하고 보다 유연한 자세를 강조한 것은 한 걸음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마침 북에서 남측의 모든 조문을 받겠다고 한 것이 기회라고 본다.

94년처럼 갈등의 요인으로 삼지 말고 해결의 열쇠로 삼는 것이 대승적 자세라고 본다. 우리민족은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을 상기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이 북한사람들의 마음을 보다 더 자유지대로 향하게 하는 촉매제로도 작용함을 생각했으면 한다. 이미 북한은 거대한 흐름에 합류했다. 조금 더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 불교계도 정견에 입각하여 움직였으면 한다. 기본적으로 양쪽이 평화로우면 합쳐도 좋고 나뉘어도 좋다. 이왕이면 합쳐서 평화로운 행복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 불교적인 견해이리라. 각 종단과 단체에서 별개의 활동을 하더라도 통일부를 거쳐야 하는 것처럼 불교계 통일운동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협조를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없어도 자체적으로 재정을 마련해서 진행하려는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

모든 시민사회 종교단체의 사회적 활동과 세계적 구호 및 복지활동을 자체재정으로 진행하는 것이 어느덧 어려워지고 지원만을 바라보는 시대로 들어선 것이 현 시대 어려움의 출발이라는 것을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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