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산 자와 죽은 자

산 자와 죽은 자의 얼굴 차이를 나타내려면  입술과 코, 그리고 눈의 높이를 달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이 있다는 사람과 없다는 사람들의 견해 차이는 아주 극미했다. 해인은 눈에 보이는 현상 그것만 가지고 있거나 없거나를 판단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가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리는 증명이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소리는 귀에 들리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차이를 과연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인은 그 모든 것은 다섯 가지 감각이라고 답을 내렸다.

다섯 감각을 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의 모습을 면밀하게 관찰해 나갔다. 살아 있는 자의 얼굴은 코가 가장 높고, 눈이 그 다음이고, 마지막으로 입술이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해야만 입체감이 살아나고,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눈으로 보는 증거였다.

다음은 탈을 옆으로 세워놓고 각도를 쟀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잘 조각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탈의 뒷면의 얼굴은 이목구비의 흔적만 있을 뿐이지만, 대체적으로 움푹 들어간 모습이라 생동감이 떨어졌다. 물론 얼굴에서도 입체감이 살아나야 했다.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수시로 탈을 써보는 일이었다. 얼굴 어딘가가 옥죄이면 탈이 전체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뒷면을 조각할 때는 앞면을 조각할 때보다 오랜 인내가 필요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고 대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각시탈의 형태가 서서히 살아났다. 얼굴 부위는 예민해서 작은 칼날에도 오차가 생길 수 있었다. 그때였다. 각시탈의 눈이 설핏 뚫렸다. 예상한 대로 뒷면과 일치했다. 눈썹 부위를 좀 더 깊이 파냈다. 각시탈에 드리워져 있던 수줍음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었다.

아래로 처져 있던 각시탈의 눈가에 미소가 조금씩 번져왔다. 두 눈은 감겨져 있는 듯하면서도 모든 사물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날로 선 콧등이 일직선으로 곧장 내려오고, 콧잔등은 뾰족했다. 콧방울이 빈약해서 거의 형태만 남아있었다. 다음은 인중을 깎아내고 광대뼈를 다듬을 차례였다. 각시탈은 턱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턱 부분을 자르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입술 부위에 근육이 경직되어 있기에 섬세한 손질이 필요했다. 자칫 칼날이 비켜 나가기라도 하면 뾰로통한 입술 모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인은 끌을 내려놓고 작은 평칼을 집어 들었다. 울퉁불퉁한 볼 부위를 다듬기 위해서였다. 몹시 집중한 탓인지 손바닥에 땀이 고여 있었다. 탈의 앞면과 뒷면을 사포로 문지른 다음, 입김을 후~ 하고 불자 뽀얀 가루가 후룩 날렸다. 곧 뽀얀 새색시 얼굴이 해사하게 드러났다.

각시탈을 완성하고 나자, 해인은 머리가 맑아졌다. 또 다시 오리나무 한 덩이를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너무 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본 탓인지 초점이 흐릿했다.
해인은 동굴 밖으로 나와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나뭇잎에 가려 공방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계곡으로 내려가 시린 물에 얼굴을 씻고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오리나무를 한 쪽으로 쌓기 시작했다. 자귀와 끌, 나무망치, 조각도를 기름칠한 다음 무명천 위에 올려놓았다. 작업을 계속하기 위한 준비였다.

동굴 밖은 푸른 달빛이 가득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램프에서 퍼진 불빛 때문에 한쪽 바위벽에 커다란 거인처럼 생긴 형상이 나타났다. 순간, 풀썩 약초향기가 날렸다. 불쑥 누군가 찾아온 것은 아닐까? 하고 한동안 밖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밖은 빈 바람만 휘돌고 있을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8. 신들의 얼굴

아, 마지막이 문제야!

동굴 주위는 온통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화로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어 한쪽 볼이 몹시 뜨거웠다. 몸을 일으켜 화로구멍을 닫으려고 해도 도무지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녀가 덥고 있던 담요는 발밑으로 흘러내렸다. 담요를 끌어올리려고 팔을 움직여 보았다. 역시 몸이 꼼짝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손을 뻗어 옴짝거린 뒤에야 가까스로 고개를 들고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뽀얀 안개가 동굴 입구를 꽉 틀어막고 있어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고 있던 옷이 눅눅했다. 쥐며느리처럼 웅크리고 있던 그녀가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녀의 몸이 붕 떠올랐다. 누워 있는데도 동굴 바닥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거칠게 뿌리쳤다. 하지만 그림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지만 그 소리는 곧 흩어지고 말았다.
“당신은 누구세요?”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 소리는 입 안 가득 흩어질 뿐, 밖으로 터져 나오지가 않았다.

그녀는 점점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떠밀려가고 있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주 익숙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발끝이 가벼웠다. 손을 잡아끌고 있던 사람의 뒷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또다시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나 입이 터지지 않고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던 도포자락만  바람에 펄럭였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요?”
해인은 가슴 언저리 한쪽이 저려왔다. 짙은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3미터도 채 안 되었다. 검은 그림자에게 이끌려 얼마를 걸어가자, 아주 오래된 집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산 속에 이런 집이 있었다니 뜻밖이었다. 담장 기왓장 사이로 푸른 이끼가 버섯처럼 돋아 있었다. 대문 앞에 이르자, 잡고 있던 검은 그림자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해인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자세히 둘러보니 북방형 구조의 미음자 집이었다. 타원형 모양의 작은 정원이 마당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꽃들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피어 있었다. 백일홍 꽃과 비슷하기도 하고, 불두화처럼 모양의 꽃들이 하나같이 활짝 피어있었다. 한쪽 담벼락 아래는 가녀린 소녀의 얼굴을 닮은 하얀 꽃, 푸른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온 소년의 모습을 닮은 꽃 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러자 꽃술이 서로 적나라케 엉켜 붙는 것이었다. 너무도 신기해 그녀가 손을 뻗어 잡아보려고 했지만 모든 것들이 물결치며 흩어지는 것이었다.
그때 멀리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수천 년 동안  윤회를 거듭한 인간의 고통을 끌어 모아 누군가의 입과 입으로 전해져 온 그런 소리였다.

탁! 타닥 탁! 타닥
먼 절간에서
목어소리 들려오는데
길섶 위에 누운 청동의 푸른 뱀
아름드리 오리나무 위
꿈틀거리며 기어오르네.

누구의 형상인가, 뿔 돋친 도깨비인가. 기기묘묘한 무리들이 어지러이 춤을 추는 광경이 눈앞에 어른 거렸다. 해인은 몹시 두려워 그곳을 빠져 나오려고 뒷걸음쳤다. 그런데도 절간 목어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고 들려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소리가 이끄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문을 지나자 희미하게 사랑채가 보였다. 은은한 불빛이 문살 틈에 가득 고여 있었다.

댓돌을 딛고 올라서서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아, 그런데 방안은 온통 쌀로 가득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어린 시절 방앗간에 들렀을 때, 커다란 독을 보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해인은 너무 놀라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방안 가득 쌓여 있던 쌀을 한 움큼 거머쥐었다. 그런데 쌀이 손 안에 잘 잡히지 않았다. 얼마 동안 애를 쓴 덕에 몇 알을 손바닥 안에 거머쥘 수 있었다. 알이 고르고 윤이 났다.

그때였다. 누군가 방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안 윗목에 켜 놓은 촛불이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었다. 희미하게 사람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흰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구석에 앉아, 네 귀가 닳아빠진 고서를 뒤적이고 있었다. 상투를 틀고 있는 모습은 한 마리 학이 고고하게 앉아 있는 듯 보였다. 노인은 힐끔 그녀를 쳐다보는 싶더니 쌀 한 줌을 들어 바닥으로 휙 던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쌀이 올올이 일어서서 꿈틀거렸다.

점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쌀들이 일제히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노인이 계속해서 쌀을 던지자, 그것들이 불쑥 솟구쳐 오르더니 커다란 기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둥은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흰 갓을 쓴 남자와 흰 족두리를 쓴 여자의 모습이었다. 마치 궁중의 상복 차림이었다. 두 남녀가 방 안을 휘휘 젓고 돌아다니다가, 뚝 동작을 멈추고 섰다. 그리고는 스르르 흔적도 없이 풀어졌다.
“아, 마지막이 문제야. 그 마지막이 문제란 말이야.”
구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녀는 힘주어 소리쳤다.
“뭐가 문제라는 거죠?”
아, 그때 그녀의 귀에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입안에서 맴돌았던 소리가 그녀의 입술을 빠져나가 다시 귓바퀴로 돌아온 것이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세요?”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하지만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도 스르르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는 점점 더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고, 카오스적 돌출에서 비롯된 창조적 생각들과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두가 그녀의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영상들이었던 것이다.


금줄을 치다.

그녀가 그곳을 빠져나오자, 멀리 혼례마당이 보이는 광장에 이르렀다. 광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더니, 마당 한가운데 자리와 멍석을 깔고 혼례식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광대 한 명이 장구 두 개를 양 옆에 나란히 놓고, 그 위에 꽃 갓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꽃 갓을 올려놓았던 장구에 광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탈을 한 곳으로 부르는 세마치장단이 마당 가득 퍼졌다.

양반, 각시, 초랭이, 할미, 선비, 이매, 별채, 백정, 중, 떡다리, 부네가 제각기 몸짓을 해보이며 마당 한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양반이 홀기를 부르고 초랭이가 방구를 세워 앞에 놓았다. 그리고 혼례의 시작을 알렸다. 그런데 총각탈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북장단이 더욱 거세지자, 그제야 총각탈이 등장했다.
“신랑 출! 신부 출! 서동부서! 서부서서!”
마당 가운데 모닥불이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각시탈을 쓴 광대와 총각탈을 쓴 광대가 맞절을 올리며 혼례의 시작을 알렸다. 신랑 신부에게 합환주가 돌아가고, 서약식이 이루어졌다. 그때 활활 타올랐던 모닥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폭우가 쏟아지고 곧 사방이 암흑 속에 묻혀버렸다. 돌연 총각탈을 쓴 광대가 푹 쓰러지는 것이었다.

“아, 부정을 탔다!”
징을 치고 있던 광대가 소리를 쳤다.
“아, 부정을 탔다네! 큰일이야! 큰 변이 생길 모양이야.”
광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 꽃 갓 하나가 덜렁 해인의 발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다.
“앗!”
해인이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다. 모든 게 꿈이었다. 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선명했다. 해인은 몸주가 알려준 선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이 말한 마지막이 문제란 뜻은 무엇이고, 광대가 말한 부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에게 무엇을 알려주기 위해 끝도 밑도 없는 꿈속에 나탔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 꿈이 의미하는 것은 금줄이었다. 마지막 이매탈을 남기고 정혼녀가 금줄을 넘었기에 허도령이 급사를 해버렸다지 않는가. 금줄 너머에 있는 부정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우선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해인은 노인이 말하려고 했던 것이 금줄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부정한 것의 침범이나 접근을 막기 위하여 문이나 길 어귀에 매어 두었던 금줄 풍습이 아직도 남았었다. 이곳은 산속이고 또한 범접할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생략했는데, 아무래도 금줄을 쳐야 할 듯싶었다.

해인은 작업실로 돌아가 짚과 한지, 황토 흙을 구했다. 금기를 막는 금줄은 짚으로 꼰 왼새끼로 꼬았다. 왼새끼는 귀신이 싫어하는 줄 형태라 해서 동굴 입구에 쳤다. 그리고 왼새끼 줄에 한지를 매달기도 하고, 붉은 황토를 뿌렸다. 귀신들이 붉은 것을 싫어한다고 해서 벽사의 의미에서 그런 풍습이 생겨났던 것이다. 금줄을 치는 풍습은 이뿐만이 아니라, 아기를 낳은 집과 장을 담글 때도 이용했다. 숯과 고추, 한지와 황토 흙, 그 외에도 소나무가지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부정한 것을 막아냈다.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 병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의미도 있었다. 해인은 왼새끼를 꼬아 한지를 매달고 황토를 뿌렸다. 그리고는 봉예에게는 탈을 완성할 때까지 절대 올라오지 말라고 했다.

동굴 입구에 금줄을 쳤으니 이제 탈을 깎는 일만 남았다. 허도령이 금줄을 치고 탈방에 틀어 박혀 백일 동안 탈을 깎았던 것처럼 해인도 모든 상황이 똑 같아버렸다.
해인은 양반탈을 깎으려고 오리나무 토막을 작업대 중앙에 올려놓았다. 양반탈은 다른 탈보다 나무가 크고 두툼해야 했다. 오리나무는 결이 촘촘하고 잘 건조되어 있어서 조각칼이 잘 물렸다.

양반탈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재산도 많이 모은 거부 상을 의미했다. 그런데도 그 이면에는 양반이란 허울을 쓰고 인간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재연했다. 양반은 뭇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부네를 차지하기 위해 체통을 저버리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결국은 자신의 하인인 초랭이에게 조롱당하기도 한다. 양반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반탈의 눈은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형태의 눈은 음의 기운이 세다는 것을 나타내며,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 뿐, 마음 씀씀이는 옹졸하고 성실성이 전혀 없는 눈의 형태인 것이다.

또한 양쪽 볼의 주름은 왼쪽에 세 개, 오른쪽에 일곱 개의 주름을 갖고 있었다. 탈을 만드는 사람마다 주름의 개수가 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해인은 스승이 하던 방법을 따랐다. 사실 주름의 수에도 의미가 담아있기 때문이다. 왼쪽 세 개의 주름 수와 오른쪽 일곱 개의 주름 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복을 부르는 숫자였다. 왼쪽 볼은 윤택한 살림과 젊음을 과시하기 위해 주름이 적은 것이고, 오른쪽 주름은 양반이 나이가 많다는 것을 표현한 것들이었다.

양반탈은 고개를 뒤로 젖히면 입을 벙긋거리며 웃음을 짓고, 앞으로 숙이면 빛이 차단되면서 울고 있는 형상으로 변했다. 또한 고개를 바짝 숙이면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신분상 양반이 화를 버럭 내는 것도 체통에 맞지 않았던 탓에 화를 참고 있는 표정인 것이다. 그런 표정을 시시각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턱을 분리해야 했다. 이런 표현 방법은 너무 절묘한 기법인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이런 방법으로 얼굴 표정을 바꾸는 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조각칼을 들고 있던 해인의 손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양반탈이 점점 제 모양을 갖추어갔다. 무엇보다 양반탈은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얼굴 전체에 여유 있는 미소가 서린 형상으로 조각해야 한다. 그런 요소 때문에 탈을 완성하고 나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해인은 칼끝을 일직선으로 세웠다. 코를 중심으로 오른쪽 선은 왼쪽 선보다 아래로 약간 처지게 조각하기 시작했다. 오른쪽 손 검지에 모아졌던 힘이 모두 빠져나가자 감각이 없었다. 오른쪽에 있는 눈썹선, 눈두덩선, 눈 아래선, 볼 선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굴을 비대칭으로 표현하기 위해 한쪽을 아래로 내려 깎았다. 그렇다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기법인 것이다.

양반탈은 코를 중심에 두고 제작하면 용이했다. 코와 양쪽 눈이 굵은 주름으로 연결되어 있고, 눈썹과 이마 또한 코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얼굴 전체의 주름선이 코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웃을 때마다 자연스러운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이경 약력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커피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03년, 첫 장편소설 ‘는개’ 출간
장편소설 ‘는개’ 출간. 미국 하버드대학 도서관 소장(2003)
2006년, 대전대학교 대학원 석사 문예창작학과 졸업. 논문 ‘윤후명 소설에 나타난 모티브연구’
2007년,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출간
2012년, 장편소설 ‘탈’출간
2012년, 제4회 김호연재 여성백일장 대상, 여성가족부장관상 수상
현재, 불교공뉴스 사장
메일: imk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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