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탄과 백탄

[불교공뉴스-문화] 동굴에서의 작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었으나, 그녀는 결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스승의 놀라운 힘이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를 깎아내는 곳곳에서 지난 아픔들이 묻어났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애써 떨쳐내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지나온 것들에 대한 미련을 그만 버려내고 싶었다. 애증까지도 모두 버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스승은 허도령의 혼을 모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누각에 모셔둔 각시탈에 청수를 바칠 때마다 허도령에게 예의를 다했다. 탈을 제작하기 전에는 허도령을 위한 음식을 차려놓고 제를 올렸다. 제가 끝날 무렵에는 복원되지 않은 세 개의 탈을 합쳐 열네 개 탈의 이름을 불러들여 축원문을 올렸다.
‘각시, 양반, 부네, 중, 초랭이, 선비, 이매, 백정, 할미, 떡다리, 별채, 총각, 그리고 두 주지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스승은 떨림이 있는 목소리가 해인의 귓가에 울렸다.
그녀는 스승처럼 하회탈의 이름을 외우며 기도를 올렸다. 끌을 잡고 있는 손이 흔들릴 때마다 몇 번이고 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 방법을 선택한 것은 허도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손끝의 감각을 찾기 위해서였다.
잠재의식 속에 깔려 억눌린 감정이 풀어지고, 가슴 저 밑바닥에 고여 있던 앙금이 서서히 걷혀지면서 마음이 맑아지길 소원했던 것이다.

“하회탈을 제작하려고 제를 올리면 반드시 선몽을 꾸제. 그것뿐만 아니라, 탈을 만들고 있는 동안 어깨를 훑고 지나가는 찬 기운을 느끼는구먼. 몸이 먼저 범상한 기운을 알아채는 것 같제. 탈을 만드는 일은 펄펄 뛰는 고기를 낚을 때처럼 손에 힘을 잔뜩 주다가도, 어느 때는 시신을 만질 때와 같은 경건함이 깃든 손길이어야 제. 꼭 손에 힘을 주었다가 빼는 요령을 터득해야 하는구먼. 오리나무를 마치 사람의 피부처럼 여겨야 제. 자칫 칼날을 잘못 들이댔다가는 핏물이 살갗에서 툭툭 터져 나올 수도 있구먼. 그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탈을 제작혀야 하는 거구먼.”

몸주께서 선몽을 주셨더라도 예의를 다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스승은 말했다. 창자가 끊어질 듯이, 간절하게 그 간절함으로 탈을 깎으란 것이다.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끌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탈을 제작하기 전, 반드시 스승의 가르침대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명상을 가졌다. 명상이 끝나고 나면 작업대로 다가가 오른쪽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끌을 끼워 넣고 칼끝을 미세하게 움직여 몇 번이고 손가락 연습을 했다. 일정한 리듬을 타며 나무를 도려내는 방법이기 때문에 손가락 움직임이 부드러워야 했던 것이다.

해 인은 오리나무 위에 각시탈의 얼굴선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각시탈의 얼굴 표정은 무거우면서도 차분한 분위기였다. 눈동자는 보일 듯 말 듯 아래로 살포시 감겨 있었다.
윗머리타래는 가채라고 해서 얹은머리 모양이다. 왼쪽 머리타래는 앞으로 나와 있고, 오른 쪽 머리타래는 뒤로 빠져 있었다. 이 때문에 좌우 머리타래는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각시탈은 광대뼈가 유난히 돌출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관상학적으로 과부상을 나타냈다고는 하나, 의지가 굳건한 여인상을 상징하기도 했다.

한반도의 경우 한으로 얼룩진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만 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전쟁터나 다름없었던 땅에서 그나마 강인한 여인들이 있었기에 가문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또한 그러하지 않던가. 젊은 남정네들은 전장 터로 나가고 여인들이 집과 가족을 지키고 있다. 여인들이 무너지면 남정네도 무너지고 나라도 무너질 형국이다. 그래서 해인은 자신의 몸주로 모신 각시탈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회탈 가운데 유독 각시탈만 입이 다물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보면 각시탈 입 주위에 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입술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삭이면서 입을 굳게 닫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 것일 수도 있었다. 각시탈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 것은 함부로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신분을 짐작케 했다. 또한 머리타래가 흔들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얼굴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조용하게 걸어야 하는 당시의 예의범절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었다. 해인은 각시탈을 조각하면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곳으로 자신이 빨려들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스승으로부터 탈 깎는 것을 전수 받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오감이 온몸으로 퍼졌다.

각시탈을 쓰고 한 걸음씩 옮겨보면 오른쪽 머리타래가 앞으로, 왼쪽 머리타래는 뒤로 움직이는데, 조용하면서도 품위를 느끼게 하는 두상이었다. 해인의 머릿속은 온통 각시탈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사방의 각도에서 바라본 각시탈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부터 각시탈은 하회마을의 서낭신이 되었다. 하회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무진생 의성 김씨의 각시가 열일곱 세 때 하회마을로 시집왔는데, 갑자기 남편과 사별했다. 그런데 각시 또한 어느 날 홀연히 죽었다. 각시탈이 죽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청산과부로 살다 마음의 병을 얻어 죽었다는 설도 있다. 그 후 각시의 혼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은 후에 알려진 것이지만 허도령의 정혼녀가 자신의 불찰로 이매탈을 다 깎지 못한 허도령이 각혈을 하고 죽자, 부용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그 정혼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각시탈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다는 것이다.

해인은 각시탈의 머리타래를 조각하기 위해 자귀를 잡았다. 손가락마다 들어가는 힘이 다른 것은 제각기 다른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엄지와 검지는 자귀를 쥐는 역할을 하고, 장지와 약지는 그 뒤를 받쳤다. 마지막 새끼손가락은 네 개의 손가락이 밀리지 않도록 틈새를 막았다. 스승은 이런 손가락 움직임까지도 꼼꼼하게 전수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평생 가난과 싸우면서 터득한 그 비법을, 그녀에게 전수한다는 것은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해인은 잠시 눈을 부치기로 했다. 여러 날 밤낮으로 탈을 깎다보니 몸이 많이 피곤했다. 눈을 감자, 쓰라렸다. 작은 나무 분진이 그 속에 박혀버린 모양이었다.

해인은 갈전마을에 내려와 하회탈 전수를 받는 동안에도 작은 아버지 이갑수의 협박에 몹시 시달렸다. 그리고 자명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동 거리에서 자명이 어떤 여자와 함께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질투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몇날 며칠 질투심으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명을 찾아갔다. 자명의 작업실을 문을 열고 들어간 시간은 밤 열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해인아!”
자명이 해인을 보자 반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곳에 인사동 거리에서 보았던 그 여자도 함께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자명은 해인의 손을 잡고 놓지를 않았다.
“오빠랑 더 이상 얽히지 않고 혼자 살고 싶었어. 오빤 잘 지냈어?”
“뭐 그렇지.”
그때, 의자에 앉아있던 여자가 해인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자명씨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저는 정미영이라고해요. 자명씨 여자 친구에요.”
해인은 자명의 눈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냥 친구야. 오늘은 그만 가봐. 오랜만에 동생이 왔네.”
“그래요.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자리를 피해주죠. 내일봐요. 자명씨.”
정미영이 작업실을 나가자 무서운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자명도 해인도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랐다.

자명은 해인이를 끌어당겨 소파에 앉게 한 뒤 따뜻한 녹차를 내왔다.
“애인이야. 사실 며칠 전 인사동에서 오빠와 그 여자를 보았어. 참 웃기지. 몹시 질투가 나더군.”
“그냥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야. 별 뜻 없어.”
“이미 내 이야기를 한 모양인데 별 뜻이 없다니?”
“난 해인이 너 뿐이야! 더 무슨 말이 필요해. 그렇게 네가 사라지고 난 뒤 널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아니? 얼마나 많이 걱정했는 지 알아? 혹여 해인이가 찾아올까 싶어 작업실도 옮기지 않고 이대로 있었던 거야.”
자명은 해인을 자신의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는 다시는 숨어버리지 말라는 말을 하며 등을 토닥였다. 해인은 자명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자명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그들은 그렇게 또다시 서로의 몸을 헤집고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해인은 새삼스럽게 자명과의 재회를 떠올렸다. 정미영이라는 그 여자가 작업실에 있지 않았더라도 또다시 자명과 얽히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추측을 했다. 모두 지난 일이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강렬한 질투심이 솟구쳤던 것이다. 자명을 그녀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해인이 자명과 잠시 떨어져 있던 그 틈새에 정미영이라는 여자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자명이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발뺌을 해봐도 정미영은 달랐다. 술에 취해 몇 번을 몸을 섞은 사이라고 해서 사랑이 없는 몸짓이라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정미영의 입장에서는 사랑했기 때문에 자명과 몸을 섞었다 거였다. 자명을 사이에 두고 해인과 정미영이 밀고 당기는 어이없는 일이 계속되었다.

해인은 지난날이 떠올라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세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자명 또한 사진 전람회를 열기위해 정미영으로 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은 일이 있었기에 야박하게 밀어내지도 못했다.

해인은 침낭에서 일어나 손의 감각을 되살리는 손동작을 취했다. 그녀의 스승은 손 감각이 살아나지 않으면 숯에 대한 생각을 하라고 했다. 숯을 만들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탈 만들기와 다른 기법이지만 정성만큼은 다를 바 없었다. 숯가마는 반나절 정도 불을 지펴야만 나무가 스스로 발화할 수 있었다.

“나무를 거꾸로 세워야 하고, 최대한 밀착시켜 나무를 쌓아야 좋은 숯을 얻을 수 있제. 숯가마를 하는 형님이 있었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닌겨. 우선 질 좋은 참나무를 구해서 가마 안에 차곡차곡 쌓고, 가마 문을 닫아 밀봉시키는 것으로 시작되는 거구먼. 그런 다음 가마에 불을 붙이고 하루 정도 불을 때고 나면, 가마 안에서 나무가 스스로 타기 시작하제. 이때 공기구멍을 통해 바람 조절을 잘 해야 질이 좋은 숯을 얻을 수가 있는데, 가마 속에서 탄화하는 과정을 육 일이나 칠 일 정도 거치고 나서 숯을 꺼내야 제. 그것을 하루 정도 식히면 완전한 숯이 완성되는 거고. 탈도 마찬가지 제. 타다가 스스로 발화하는 것처럼 하회탈도 탈마다 정성이 배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 혀.”

저온에서 구워낸 숯은 검탄이고, 고온에서 만든 탄은 백탄이었다. 숯가마는 최고 섭씨 1,300도까지 오른다고 하니까, 그 열기로 오롯이 태운 나무야말로 최상의 상품이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스스로 발화해서 전혀 새로운 원소로 변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검탄은 휘발성이 강하고, 백탄은 알칼리성에 가까웠다. 강도에 있어서도 백탄은 두드리면 쇳소리가 나고, 검탄은 둔탁한 소리가 나면서 부서졌다. 그래서 백탄의 이용 가치가 더 높았다. 검은 탄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숯이지만, 백탄은 고도의 숙련과 인내가 필요했다. 해인은 하회탈을 만들 때와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자명과의 관계는, 검탄과 백탄을 오고가는 미묘한 관계의 연속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나의 고리가 풀리면 또 하나의 고리가 얽히고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자명을 사이에 두고 두 여자의 신경전이 오고갔다. 자명은 정미영에게 이별을 통보했는데도 자신은 정리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결혼을 강요했다. 해인은 어이없게 맞물려가는 세 사람의 관계가 환멸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자명에게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또 다시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자명은 해인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고, 정미영은 자명의 숨통을 조여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임신을 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그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자명과의 이별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별과 재회를 수없이 반복했다.

해인은 지난 일이었지만 그 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뻐근해져오는 가슴을 쥐어틀었다. 도무지 잠들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작업대로 다가가 깎다만 각시탈을 집어 들었다. 12센티미터, 가로 25센티미터, 세로 25센티미터 크기의 오리나무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습기를 알아보았다. 작업하기에 좋을 만큼 적당했다. 각시탈의 앞모습은 모두 정리된 상태라, 다음은 나무를 뒤집어 뒷면부터 파기 시작하는 게 순서였다. 탈을 제작할 때는 뒷면 조각이 앞면을 조각할 때보다 더 신중해야 했다. 그런 탓에 뒷면에도 밑그림을 그렸다. 그녀 나름대로 죽은 자의 얼굴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뒷면은 앞면의 기준과 약간 차이를 보였다. 그래서 작업하면서 앞과 뒤의 아귀를 잘 맞추어갔다.

왼손에 들려져 있던 자귀의 머리를 나무망치로 내리쳤다. 쿵! 하는 소리가 동굴 가득 울려 퍼졌다. 손가락 사이로 가는 파장이 퍼졌다. 잘 익은 박을 반으로 자른 것처럼 잘라낸 뒤, 오리나무 뒷면을 얕게 파내려 갔다. 나뭇결이 촘촘한 부분은 작은 끌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나무 조각이 수북하게 쌓일 때마다 칼날의 번득거림이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각시탈의 모습에서 설핏 죽은 자의 미소가 보였다. 살점이 뭉그러진 콧날은 하늘을 향해 뻐금거렸다. 움푹 들어간 두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깊은 어둠이 가득할 뿐이었다. 또한 코가 눈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있었으며, 아래로는 입술의 흔적을 만들었다.<계속>

  이경 약력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커피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03년, 첫 장편소설 ‘는개’ 출간
장편소설 ‘는개’ 출간. 미국 하버드대학 도서관 소장(2003)
2006년, 대전대학교 대학원 석사 문예창작학과 졸업. 논문 ‘윤후명 소설에 나타난 모티브연구’
2007년,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출간
2012년, 장편소설 ‘탈’출간
2012년, 제4회 김호연재 여성백일장 대상, 여성가족부장관상 수상
현재, 불교공뉴스 사장
메일: imk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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