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오늘은 두세 번 오줌을 싸도 절대 새어나오지 않는다는 커다란 기저귀 두 봉지를 사들고 요양원을 찾아갔었다. 어머니는 먼 산 바라보던 그 눈빛을 옮겨 잠시 나를 향해 멈칫 바라보더니 냅다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막 새로 갈아 찬 새 귀저기에 끙! 소리를 내며 똥을 누웠다.

‘아, 저 여인도 한 때는 깊은 사랑을 속삭였던가.’
몹시 가슴이 메여왔다.
앙상하게 더 앙상하게, 쭈글쭈글 더 쭈글쭈글하게 어머니 몸뚱어리는 날마다 반항을 해보였다. 마치 시위라도 하듯 앙상한 뼈마디를 드러냈다. 어머니의 어깨 위로 내리 꽂히는 형광등 불빛이 너무도 차가워 도저히 바라볼 수가 없어, 끙 소리를 내는 어머니를 두고 그냥 돌아 나오고 말았다.

‘모두들 그러고 산다고, 종당에는 온몸의 물기가 모두 빠져버리면 응급실에 실려 가고, 생명연장시술을 받다가 목구멍에 호수 꼽고 콧구멍에 빨대 꼽고, 이곳저곳 뚫을 수 있는 곳은 다 뚫다가, 점점 붙어버리는 창자를 떼어내지 못해 똥도 못 누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뭐 그게 어떠냐고? 다들 그러다 죽는 게 다행이지 않느냐고. 돈 있어야 그 짓도 한다고? 그 코스야말로 가장 완벽한 효도를 받는 죽음이지 않느냐고.’
두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는 소리 내 엉엉 울었다. 어머니가 불쌍해서 결코 우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효자 질을 못하는 놈이지 않는가. 그냥 눈물이 나왔다.

세달 전, 아버지와의 사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머니는 한순간에 정신 줄을 놓고 말았다. 살아생전 두 양반은 늘 삐걱거리기만 했다. 하기야 속사정을 어찌 알겠는가. 어머니의 사위어가는 모습은 아버지의 투병생활을 지켜보았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아버지는 같은 남자라서 일까. 그 속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어서 지켜보는 것이 버겁지가 않았다. 예전의 어머니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무언가를 숨겨두었다.

“부응.”
액셀을 세게 밟자, 차바퀴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무언가 바퀴에 걸려든 모양이었다. 뭉개진 동물의 사체일 수도 있었다.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면서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휘몰아쳤다.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지갑과 핸드폰이 있는 지 주위를 살폈다. 바지주머니가 불쑥 솟아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게 분명했다. 서류 가방은 뒷좌석에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대충 훑어봐도 사무실에 두고 온 물건이 없었다. 그런데도 뭔가를 빠트리고 왔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며칠 동안 작성했던 보고서는 상무의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퇴근했다. 정수기 판매가 부진했던 원인을 조사해서 올린 서류였다. 홍보부에 근무하고 있는 나에게 가당치 않는 업무였다. 사실 내 처지에 가당치 않은 업무라는 건 없었다. 아무 탈 없이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복에 겨운 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회사에서 한 일은 정수기 광고와 홍보 책자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직원이 하나 둘씩 잘려 나가는 바람에 하는 일이 불투명해졌다. 이러다가 영업까지 뛰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보린에게 줄 꽃다발이나 선물이 있었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한 번도 그녀에게 꽃다발이나 선물을 건넨 적이 없었다. 그런 자잘한 절차가 귀찮았다. 미리 계획해서 데이트하는 일도 없었다.
퇴근하려고 사무실을 막 나서는데 보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여 줄 것이 있다면서 퇴근 후, 작업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먼저 만나자고 한 적이 없었거니와 더군다나 작업실에서 만난 적도 없었다. 대부분 내가 애걸 하다시피해서 허름한 모텔에서 만났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애걸복걸해서 만났으면서도 선물 따위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지 않지만 그건 사실이다. 지금 나는 사무실을 빠져나와 어머니를 잠시 만나고 그녀에게로 달려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내가 아는 그녀는 화가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넋이 나간다고 했다. 자신이 그리고 있는 칼 그림이 질투를 한다나 어쩐다나....... 정말 멋진 척은 다 한다. 그래도 그녀가 좋다. 무슨 말라빠진 그림 때문에 꼼짝달싹 하지 못한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분명 나는 그녀의 몸뚱어리를 사랑한다. 아울러 마음까지도 덤으로 사랑한다. 몸이 먼저라고 해두자, 난 아직 건강한 뿌리를 온전히 소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는 그녀가 정말 좋다. 그녀의 그림을 이해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 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혼자 남겨진다는 게 정말 두렵다. 이제 어머니도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아들도 나를 찾지 않고 있다. 아내 역시 서류상 부부 일 뿐, 사생활은 각자인지 오래되었고, 그럼 왜 이러고 사는 것인지.

나처럼 사는 부류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그래서 안심이냐고? 그건 아니다. 비극이다. 슬픔인 것이다. 그러나 인지하고 싶지 않다. 꿈 없이 그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밀려가고 있다고 하면 변명이 될까. 더욱이 떠밀려가고 있는 그곳이 죽음이 아니길 바랄 뿐이며, 아니 떠밀려가고 있는 그곳이 종당에는 누구나 죽음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인 것이다.<계속>
 

 

이경 약력

대전문인협회 회원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커피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03년, 첫 장편소설 ‘는개’ 출간
장편소설 ‘는개’ 출간. 미국 하버드대학 도서관 소장(2003)
2006년, 대전대학교 대학원 석사 문예창작학과 졸업. 논문 ‘윤후명 소설에 나타난 모티브연구’
2007년,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출간
2012년, 장편소설 ‘탈’출간
2012년, 제4회 김호연재 여성백일장 대상, 여성가족부장관상 수상
현재, 불교공뉴스 사장
메일: imk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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