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호등-서쪽으로 기운 달

[불교공뉴스-문화] 서쪽으로 기운 달
하늘 한가운데 떠 있던 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던 무렵, 흐릿하게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운 달빛이 흩어지고 있는 가운데 파계승마당이 펼쳐지고 있었다.

‘삼각산 넓은 줄기
휘공땅에 절을 짓고
모시어라 모시어라
삼불귀를 모시어라
아마도, 죽는 것이 어렵구나.’

이어서 부네가 등장했다. 부네가 한쪽 구석에서 소변을 보자, 마당 주변에 음기가 차올랐다. 그것을 본 중이 욕정을 참지 못해 부네와 어울려 춤을 추며 희롱하기 시작했다. 부네가 몸을 비비 틀었다.
닭이 홰를 치며 새벽을 알렸다. 금세 눈앞에 보이던 것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 생각의 꼬리는 그녀를 점점 기억의 저편으로 끌고 갔다. 사이버 인간이라도 된 듯 기억의 버튼을 누르자, 입력된 칩이 하나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자명이 읍내에서 고등교육 막 끝낼 무렵, 누나가 나타나 자명을 데려가겠다고 했다. 한 눈에 봐도 자명을 몹시 닮아 있었다. 자명은 해인이와 함께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누나는 해인이까지 책임질 만큼 형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작은 아버지 이갑수도 자명의 누나 말이 옳다고 거들었다. 자신의 핏줄을 남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자명의 누나와 작은 아버지 이갑수는 합의를 보았다.

 

자명이 안동을 떠나기 전날이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자명이 해인에게 숨겨두었던 말을 꺼냈다.
“아버지 죽음에 숨겨진 비밀이 있어. 정확하게 알아내지는 못 했어. 항상 몸조심을 해야 해. 이갑수 사장이 혹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기반이 잡히면 꼭 오빠가 데리러 올게.”
해인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인생을 가로 막고 서 있는 불길한 기운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 조용히 나를 부르시더니 유언을 하셨어. 하회마을 산은 해인이 몫이랬어. 지금은 동네 이장님 앞으로 되어 있는데 네가 성인이 되면 명의 변경을 해주기로 약속했어. 너도 그 이장님이 병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지? 그 이장님은 할머니와는 먼 친척이야.”

 

해인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이 작은 아버지 이갑수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꾹 참고 오빠를 기다려야 해. 이재선 사장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사 놓았던 산이었는데, 미처 명의 변경을 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신 거야. 그래서 사장님의 묘도 그곳에다 썼던 것이고. 할머니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 이장이 끝까지 입을 다물지 못한 게 화근이었어. 술자리에서 농담을 하다가 말해버린 것이 문제가 되었지.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작은 아버지는 길길이 날뛰었고, 이장을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어. 이장님이 잔뜩 겁을 먹었대. 일단 근거가 없는 헛소문이라고 발뺌은 하고 있어. 하지만 사장님이 너를 가만 두겠니? 어떻게 해서라도 그 산을 자기 앞으로 옮기려고 별별 방법을 다 쓸 거야. 그 산은 할머니와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산이야. 그래서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거야.”

 

자명이 해인의 두 손을 꽉 잡았다.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그녀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리고는 자명에게 바짝 다가갔다.
“아버지는 뺑소니차에 치어 운명하셨어. 그 뺑소니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어.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기에 우리가 너무 어려.”
“오빠는 그 뺑소니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거야.”
자명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다. 몹시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당시 사진관과 예식장을 운영하던 이재선은 사업장을 확장하기 위해 사거리에 있는 3층 목조건물을 매입했다. 사업이 커지는 바람에 이갑수를 끌어들였다. 이재선은 동생 이갑수가 욕심이 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피붙이가 남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일을 함께 시작했다. 이갑수도 처음에는 열심히 노력했다. 사업 범위를 넓혀 이웃 도시까지 판촉을 나가 고객 유치에 힘썼다. 하지만 수금 담당을 맡고서부터 돈이 조금씩 사라졌다. 처음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비리가 곧 들통나고 말았다. 사고가 나기 며칠 전, 둘은 돈 문제로 말다툼을 했는데, 장부와 현찰이 맞지 않아서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결국 이갑수는 사진관 일을 그만 두었다. 이재선도 동생에게 매몰차게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괘씸하기는 하지만 다시 출근해달라고 할 셈이었다. 하지만 이갑수는 그깟 돈 몇 푼 갈라먹었다고 딸린 식구까지 있는 자신을 내쫓았냐며 앙심을 품었다.
“그때 내가 너무 어려서 자세하게 알 수는 없었어. 사건 현장은 빈번하게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장소가 아니었어. 그 당시 이갑수 사장이 사채업자들을 만났다는 소문도 있었어. 그 사건을 은폐하려고 손을 썼다는 거야. 아직도 미궁 속에 빠져 있는 사건이지.”
잠시 말을 멈춘 자명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몸을 잔뜩 구부렸다.
“사람을 의심하며 산다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야. 지금까지 심부름을 하며 지낸 것도 이재선 사장님의 의문스런 죽음 때문이었어. 철이 들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지. 그 교통사고에는 분명 음모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 사고가 나기 몇 시간 전에 이상한 차림을 한 남자가 사진관 주위를 배회했어. 과연 그 자가 누구였을까. 왜 늦은 시간까지 사진관에서 일을 하고 있던 사장님이 나오길 기다렸는지, 아직도 의심스러워. 그 사람을 찾는다면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당시 나는 어려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그리고 이재선 사장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지.”
“그럼 오빠가 그자의 얼굴을 봤단 말이야!”
“모자를 쓰고 있어서 누구였는지 정확하게 보지는 못했어. 이갑수 사장이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아버지의 죽음을 아는 척하지 마. 알았지?”
“알았어.”
“꼭 너를 데리러 올 게. 넌 내 동생이니까.”
자명은 잔뜩 겁먹고 있던 해인을 꼭 안아 주었다.
누렇게 변색된 벽지 위로 할머니 얼굴과 자명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처음 이사 왔을 때 그대로의 벽지였다. 벽 모서리마다 벽지가 낡아 뜯어지고 군데군데 얼룩이 가득했다. 해인이 벽지를 바라보기만 해도, 두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왈칵  눈물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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