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손혜철 기자] 청주교도소는 5월 30일(월) 오전 9시 30분부터 ~ 오후 2시 30분까지 옥천고등학교 학생 30명을 대상으로 제2회 청주교도소 청소년 수용생활 체험캠프를 가졌다.

학교장(조성준)은 교도소 수용생활 체험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고, 탈선을 예방하며, 특히 법 관련 꿈을 갖고 있는 학생에게 교도소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청주교도소 수용생활 체험교육을 계획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청주 교도소 수용자 호송버스를 타고 교도소로 들어가 처음 수용자가 들어 올 때처럼 수용자복으로 갈아입고 입소체험을 시작했다. 교도소 음식을 먹어보고, 수용자 방에 들어가는 등의 수용자 생활 체험을 하였으며, 기술을 익히는 실습장과 취사장을 둘러보는 활동을 통하여 수용자들의 처지를 실감하였으며, 부모님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또 재소자들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과 아름다운 밴드연주, 그리고 재소자의 진실이 담긴 수용소 체험담을 들었는데, 학생들은 이러한 체험을 통하여 교도소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었으며, 법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값진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청소년 수용생활 캠프는 “청소년 범죄 예방”에 관심을 갖고 실천해 온 김재곤 교도소장과 교정위원 혜철 스님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김재곤 소장은 “법 경시풍조가 만연한 현실에서 청소년들의 범죄를 예방하고, 심성을 순화시켜 청소년들이 장차 사회발전에 기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수용생활 체험 캠프의 취지를 밝혔다.
 

청주교도소를 다녀온 후

5월 30일 월요일 우리 옥천고등학교 1, 2, 3학년 중 30명 정도가 선발되어 청주 교도소 체험활동을 떠났다. 청주 교도소에서 점심도 먹어보고, 직접 감옥에 수용되는 체험도 해보았다.

교도소 1일 체험을 해보는 것이었다. 처음 오기 전에는 TV에서 보았던 것이 떠올라 긴장되고, 무서웠지만 물론 그만큼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는 법무부에서 운행하는 진짜 수용자들이 타고 교도소로 가는 버스를 타고 청주교도소로 갔다. 버스는 수용자들이 혼란해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철장이 있었고, 창문도 밖에서 열 수 있는 식으로 되어있었다.

우리는 그 버스를 타고 청주교도소로 갔다. 버스 안에서 교도관님들이 몇 가지 일정설명과 질문을 받으면서 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교도관님들이 착하시고 재밌으셨다.

그렇게 우리는 금방 청주교도소로 도착을 했다. 도착을 하니 3~5미터정도 되어 보이는 높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곳이 있었다. 그 곳이 바로 수용자들이 생활하는 건물이라고 하셨다.

막 도착한 우리는 법무부와 교도소 홍보동영상을 보고 교도소체험을 한다는 확인서를 썼다. 그리고 우리는 교도관님의 주의사항과 몇 가지 말씀을 듣고 본격적인 교도소 체험을 했다.

우리는 좀 전에 보았던 높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손목에 어떤 도장 같은 것을 찍고 전자기기를 가져가셨다.

그리고 우리는 수용자들이 입소하기 전에 확인하는 절차를 직접 해보았다. 확인하는 절차는 이름, 나이, 주민등록번호 와 기재된 사진과 얼굴비교를 했다. 그런 후 우리는 수용자복으로 갈아입고, 고무신을 신었다. 수용자복은 색이 어둡고 칙칙하였다.

그리고 고무신은 땀이 많이 나고 발이 불편하였다. 또,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은 이름대신 번호로 불린다고 했다. 물론 우리도 번호표를 받았다. 나는 3016번이었다.

우리는 모두 방을 배정받고 방으로 향하였다. 복도에서는 1열로 다녀야 한다고 했다. 방에 도착한 우리들은 앉아서 토론을 하였는데 쉽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함께 들어오신 선생님과 교도관님이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있는 방에 대해 물어보니 현재 수용 되어 있는 몸이 불편한 수용자들이 사용하는 방이라고 하셨다. 다른 수용자들의 방은 난방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몸이 불편한 수용자들의 방이어서 그런지 따뜻하였다.

교도관님의 설명과 우리의 질문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식사는 배식 통에 밥, 국, 반찬을 주면 수용자 중 한명이 같은 방 수용자에게 배식을 하는 형식으로 식사를 하였다.

우리도 물론 수용자가 먹는 음식을 먹고 배식도 해보는 체험을 하였다. 교도소밥은 무조건 콩밥이라고 생각했는데 콩밥이 아니고 보리밥이었다.

그리고 국은 우리가 먹는 평범한 국이고 반찬도 우리가 먹는 평범한 반찬이었다. 우리 방에서는 형들이 배식을 해주시고 설거지도 해주셨다.

우리들은 몇 시간의 체험이 힘들었던지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을 때 교도소에서 라디오를 틀어 음악을 들려주었다. 교도소에서도 대중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점심을 다 먹고 정리를 다한 다음 수용자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는 똑같이 해야만 했다. 바로 부동의 자세로 앉아 있어야했다.

처음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다 보니 힘들고 짜증도 났지만 수용자들은 이런 일은 매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다는 내색도 못했다.

그 길고도 짧은 10분간의 부동의 자세로 앉아있기가 끝난 다음 우리는 바로 출소를 하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하지만 모든 일정이 끝이 난건 아니었다.

우리들은 교도소를 돌아보고 설명을 듣는 현장 활동을 했다. 교도소안의 공장들도 돌아보고 설명도 들었고 수용자들이 운동하는 모습도보고 어떻게 공장에서 일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먹었던 음식 즉, 수용자들이 먹는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급식소도 돌아보았다. 급식소의 급식은 수용자들이 직접음식을 만든다고 하였다.

급식소도 생각보다 청결하였다. 그 후 우리는 교육관으로 가서 수갑과 같은 여러 가지 장비를 직접해보고 체험함으로써 많은 장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일정에 없던 수용자밴드부의 공연을 보았다.

3곡정도 들었는데 수용자이지만 밴드를 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무조건 수용자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시 교육관으로 와서 수용자의 강연을 들었다.

물론 어휘는 물론 말하는 솜씨도 없었지만, 아무리 수용자라 할지라도 교도소에서 깨닫고 우리에게 진실 된 이야기를 해주는 수용자의 말은 그 어느 누구의 강연 보다고 마음에 와 닿았다.

그 후 마지막으로 10년 뒤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도 써보고 체험활동 소감서도 써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짧지만 긴 의미 있는 체험활동은 끝이 났다.

처음에는 재미로 아무 생각 없이 갔던 교도소였지만, 여러 가지 체험을 하고 직접 교도소에 가보니 생각 없었던 내가 너무 창피했다. 그리고 아무리 수용자라 할지라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은 없어져야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말 못되고 악한 수용자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단한번의 실수로 인해 교도소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하지 색안경을 끼고 나쁘게만 보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어쩔 수 없는 한 번의 실수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말했다시피 한 번의 실수로 교도소에온 수용자들이 매우 많다 하였다. 단한번의 실수가 인생을 허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체험활동으로 간 교도소가 마지막으로 간 것이어야 할 것이다. 비록 짧은 체험이었지만, 많은 것을 깨닫고 반성 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던 것 같다.

옥천고등학교(교장 조성준)는 5월 30일 청주교도소(소장 김재곤)에서 학교폭력 및 범죄를 예방하고, 미래에 꿈을 갖고 있는 학생에게 삶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수용생활 체험교육을 가졌다.

이날 체험교육은 옥천 대성사 주지 혜철스님(불교공뉴스 대표)의 주선으로 희망학생이 많아 1~2학년 학생 30명을 선착순으로 선발했으며 민병하 교감과 안성용 선생님의 인솔 하에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실시했다.

학교를 출발하여 교도소까지 청주 교도소의 수용자 호송버스를 타고 온 참가 학생들은 회의실에서 교도행정과 청주교도소 현황을 슬라이드로 청취하고 김재곤 소장의 환영사를 들었다.

김재곤 소장은 “이미 기성세대는 각자의 색깔로 칠해져 있지만 여러분들은 하얀 백지와 같아서 다양한 교육과 체험을 통해서 나름의 색깔을 칠하게 된다.”며 “오늘의 체험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여러분의 드림이나 비전을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높다랗게 담이 쳐진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 처음 들어오는 수용자와 똑같이 수용자복으로 갈아입고 신원확인, 신체검사, 교도소 생활 수칙 등 입소체험을 했다.

실제 수용자가 생활하는 방으로 10명씩 나누워 입실한 학생들은 실제로 수용자들의 생활을 체험하면서 혜철스님의 명상지도와 내 꿈을 펼치기 위한 도전을 다짐하고 국가와 부모님 그리고 선생님께 미안하고 고맙고 감사하는 명상과 함께 한명씩 수용생활체험 소감을 발표하는 등 자유 토론을 가졌다.

점심도 수용자가 먹는 식단 그대로인 밥과 올갱이국 그리고 김치, 콩나물 무침, 호박찌개를 배식 받아 각자 식기에 담아 먹고 설거지도 직접 했다.

이어 수용자들이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실습장을 돌아보고 취사장도 둘러본 다음, 학생들은 난동이나 자살 방지 보호 장구인 수갑과 포승 포박체험과 자살방지 헬멧을 써 보는 체험을 했다. 설명을 하는 교도관은 “이런 보호 장구들은 난동을 부림으로 해서 생길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수용자의 신체보호와 안전, 질서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지 괴롭히고 고통을 주기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수용자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사용하며 의사의 지시가 있을 때는 즉시 사용을 중단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강당으로 이동 재소자들끼리 만든 ‘La Bella Vita(아름다운 인생)’밴드의 연주와 단원 중 한사람이 수감생활의 아픔을 작사 작곡한 ‘이 아들이 아파요’ 등 연주를 듣고 한 재소자(무기수)의 체험담을 들었다.

재소자는 이스라엘에 유학까지 갈 정도로 자신의 웅대한 꿈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던 중 뜻하지 않은 순간의 실수로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었지만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다시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란 희망 속에 어려운 수용자 생활을 해왔는데 지난해에 모범수로 15년 만에 외출을 하여 나가보니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늙으셔서 아들의 효도를 조금도 받으실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또 외출 나갈 때 친구들 전화번호를 빼곡히 적어서 나갔는데 막상 전화를 할 자신이 없어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학생들은 어느새 숙연해지고 있었다.

이어 학생들은 10년 후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쓰고 체험 소감을 적는 것으로 일일 교도소 체험을 마쳤다.

옷을 다시 갈아입는 한 학생(고2)은 “오기 전에는 조금은 무섭고 겁도 났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시설이 잘되어 있는 것 같고 밥도 맛있게 먹었다.”며 “그러나 수용자분의 경험담을 들으니 교도소가 어떤 곳인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라고 말하며 들어 올 때와 들어 와서 그리고 나갈 때의 다 다른 느낌들을 받았다며 처음 해보는 교도소 체험 행사를 ‘별난 체험’이라고 정의 했다.

교도소 체험활동을 다녀와서...
1학년3반17번 오 현

오늘은 교도소체험활동을 간다고 해서 아침밥을 먹으면서 마음이 설레였다. 아침에 학교를 가니깐 친구들이 들떠 있었다. 내 마음으로는 무섭기도 하고 수업을 빼고가는 것이라 기쁘기도 했다.

아침에 8시 30분경에 중앙현관으로 모였다. 인원체크를 하는데 2학년 어떤 형이 늦게 와서 쪼금 지체되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우리학교로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는 파란색이라 엄청 무서웠다.

차에서 교도관님들이 내리시고 우리는 차에 탔다. 그런데 교도관님들 옷색깔이 하늘색도 있고 남색도 있어서 이상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교도관님들이 거기 가서 규칙이나 그런 것들을 설명해주시고, 형들이랑 우리들이 질문하는 것도 받았다.

그러는 와중에 청주교도소 표지판이 보였다. 약간 긴장이 됐다. 처음에는 여자교도소도 있었는데, 남자교도소로 갔다. 버스를 타고 조금 가다가 수용자들을 보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 수용자님들은 무섭게 생기고 그런 줄 알았는데, 엄청 해맑게 일하고 계셔서 깜짝 놀랐다.

교도소 건물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학교 교실만한 곳에 들어가서 교도소 홍보영상을 봤다. 그러다가 교도소장님이 들어오셨다. 체험활동확인서를 쓰고 소장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을 잘 새겨들었다.

그 다음에 드디어 교도소로 들어갔다. 교도소 입구가 있는데 못 넘어가게 담장이 너무 높았다. 들어갈 때 손에 안 보이는 도장을 찍고 들어갔다. 가니깐, 무서운 교도관님들이 교도소체험활동계획을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거기에 들어가는 동안에는 수용자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러고 나서 신입자라고 하고 교무실 같은 곳에 갔다. 앉아서 우리는 수용자라는 말을 듣고서 교도관님들이 나누어주시는 수용자 옷을 난생처음 입게 되었다. 고무신도 신고서 내 이름대신에 수용자번호를 주시고, 방 배정을 해주셨다. 그리고 처음에 우리를 교도소로 체험활동오게까지 도와주신 혜철스님이 우리 방에 같이 들어오게 되었다.

혜철 스님은 참 인상이 좋으신 분이셨다. 친구들하고 혜철스님하고 우리랑 버스를 같이 타고오신 교도관님이 같은 방이 엇다. 방에 앉으니깐, 생각보단 너무 좋았다. 선풍기도 있고, 티비도 잇고 싱크대도 있었다. 그리고 사진도 많이 붙여 있었다.

우리는 방에 둥글게 앉았다. 우리는 3실이었고 형들하고 친구들은 1,2 실이 었다. 혜철 스님께서 양반다리 하는 법을 알려주시고, 혀를 둥글게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 침이 안 나와서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눈을 감으라고 하시고, 먼저 내 몸에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고 하고 부모님께 내가 잘못한 것은 돌아가면서 말하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돌아가면서 말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혜철 스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나도 눈물을 흘릴 뻔 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를 마음으로 하라고 하시고서 우리에게 이상한 최면을 거셨다.

눈을 감고 내가 아무것도 없는 바다위에서 배를 타고 있고 내 코위에 태양이 있다고 했다. 그것을 생각을 하다가 스님께서 박수를 크게 치셔서 깜짝 놀랐다.

그러면 걸린거라고 해서 더 놀랬다. 그러던 와중에 밥이 나왔다. 교도소에서 먹는 밥은 콩밥일 줄 알았다. 그래서 아~하고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어떤 수용자님이 오셔서 배식을 해주셨다. 밥은 조금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반찬, 국, 물 이렇게 나와서 좋아했다. 밥을 뜨고서 얼른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소장님이 오셔서 말씀조금 하시고서 다시 밥을 먹었다. 나는 2그릇이나 먹으니깐 옆에 계시던 스님께서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하셨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 당번을 아까 정해가지고 친구 두 명이서 설거지를 하고 방에서 쉬고 있는데, 노래가 나왔다. 진짜 그때 교도소도 생각보단 좋은 것을 알았다.

그 때 우리가 교도관님께 교도소에 있는 무기징역인 수용자님들과 최고령인 수용자님과 또 소년수도 물어봤다. 예상외로 많은 수용자님들이 거기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밖에 있는 교도관님들이 나오라고 해서 나갔는데 교도소에 있는 건물 안을 안내해주셨다.

수용자님들이 운동하고 계시는 운동장 옆을 지나 어떤 공장 같은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자동차가 있고 그 옆에는 컴퓨터실이 있는데 거기에는 수용자님들이 공부를 하고 계셨다. 그러고 나서 자동차 정비하는 곳으로 가서 설명을 듣고 나서, 급식 실을 한 바퀴 돌고나서, 교육관으로 갔다.

가니깐 우리보고 어떤 교도관님이 밴드를 소장님께서 구경하라고 시켜주셔서 교회 같은 곳으로 가니깐, 밴드가 있었다. 밴드가 우리에게 3곡을 불러주었다. 2번째 곡은 자작곡이었는데, 너무 슬펐다. 그리고 다시 교육관으로 가서 수갑과 다른 체포하는 장비를 설명해 주셨다.

나는 처음에 제일 기본적인 수갑을 차고서 맨 마지막에 플라스틱 일회용 수갑을 차게 되었다. 수갑은 기능이 신기했다. 그리고 종류도 많았다. 그다음에 모범 수용자님의 말씀을 들었다. 나는 졸았다. 그래서 솔직히 잘 못 들었다.

처음에 10년 후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시고 우리는 명문고니깐 10분을 주셨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쓰다 보니 금방 썼다. 그리고 소감문도 쓰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신입자가 처음으로 거치는 방을 다시 가게 되었다.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 다음에 밖에 나와서 교도관님 말씀 듣고 버스에 타서 다시 집에 오게 되었다. 교도소를 가서 느낀 것은 내가 아무리 어려운 일에 닥쳐도 희망을 수용자님들처럼 희망을 잃지 말자는 것이고 또 부모님께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교도관님들처럼 매일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또 실수를 한번 하더라도 반복은 하지말자는 것과 또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나에게는 그나마 편하다는 것을 느꼈다.

옥천고등학교 조성준 교장 선생님은 “청소년 시기는 방황하다가 자칫 탈선하기 쉬운 때인데 이번 교도소 체험을 통해서 누구든지 한 순간의 충동이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냉철한 인식과 경각심을 갖고 올바른 삶의 지표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비록 죄를 지어서 대가를 치르기 위해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지만, 이들도 언젠가는 출소해서 우리 이웃이 되어 함께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소외되기 쉬운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따듯한 관심과 배려가 이들의 재범을 방지하여 결국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교도소 체험 교육행사를 갖게 되었다”고 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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