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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과 "없음"의 경계에서
천주교 이길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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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22일 (수) 15:42:14 이길두 webmaster@bzeronews.com
   
 

[불교공뉴스=이길두 기자] 한 낮의 뜨거움이 절로 그늘로 몸을 숨기게 한다. 점심 전 조금 일찍 교구청사 뒷 마당 그늘에서 여여하게 더움과 시원함의 경계에서 시비를 논하고 있다.
더움을 느낀다는 것, 시원함을 느낀다는 것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더움은 더움으로 인식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시원함은 시원함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본다.

시원하다는 것은 덥다는 것의 체득과 감각에서 오는 것이다. 덥다는 경험속에서 일탈한 것의 즐거움인 것이다. 뜨거움이 기준이 되어서 뜨거움의 인식의 다발에서 갈라져 나온 것에서 느끼는 몸의 언어가 시원함인 것이다. 뜨거움이 더하면 더 할수록 차가움은 가까이에 있다. 햇볕이 작열하는 곳에서 일하거나, 운동하거나 하다가 마시는 음료는 그냥 맹물이 아닌 것이다. 뜨거움이 더 하면 더 할수록 그냥 맹물은 점점 더 시원해지는 것이다. 물은 그냥 물이어도 느끼는 주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 에 따라는 느끼는 오감도가 다른 것이다.
차가움이 더 하면 더 할수록 뜨거움은 곁에 있으면서 멀리 있는 것도 매 한가지이다.

행복하다. 즐겁다. 기쁘다는 것은 이것이 기준이 아닌 것이다.
불행한 것이!, 괴로운 것이!, 슬프다는 것이 사고의 준거의 틀이 되는 것이다.
불행한 것이 깨지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 행복이다.
괴로운 것이 깨지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 즐거움이다.
슬픈 것이 깨지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 기쁨인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그래서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이 같이 있는 것이다.
즐거움과 괴로움, 슬픔과 기쁨도 그러하다.

우리는 항상 경계에 있다. 그 경계에서 우리는 사고의 줄을 타는 광대이기도 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일상도(日常道)는 경계에서 자기 자리를 보는 것이고, 자리를 찾는 것이고, 자리를 앉는 것이다. 그래서 진아(眞我) 를 보고, 아는 것의 비법은 경계에 있는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종교 또한 그러하다.
모든 종교는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지? 무엇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그 경계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를 다그친다. 우리네 인간은 "신(神)에게서 나와서 신(神)에게로 가는 여행자라는 것"을
사판세상에서 있는 사람은 이판세상을 살면 되는 것이다.
이판세상에 있는 사람은 사판세상을 살면 되는 것이다. 돌고 돌아 원으로 회통하는 것이다.
이것을 자주 넘나든 것이 기도가 될 수 있고, 불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선(仙)이 될 수도 있고, 선(禪)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살려면
꽃의 세상에서 꽃처럼 살면 되고
세상을 편안하게 살려면
바람처럼 살면 된다.
꽃은 자신을 자랑하지도 남을 미워하지도 않는 경계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도 않고 험한 산도 아무 생각없이 오른다.
바람에는 경계가 없다.

꽃과 바람의 경계에서 머물면서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 놀다 가는 인생의 의미를 돌이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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