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서울시] 서울역사박물관 분관 청계천문화관(관장 한은희)은 4월 11일부터 6월 1일까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종이 위의 물길 : 청계천 지도展”이라는 제목으로 테마전시를 개최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그동안 기증, 구입 등을 통해 서울 관련 지도를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현재 1,150여 점에 이르는 상당 규모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청계천의 변화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34점의 지도를 엄선하여 이번 전시에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34점의 서울 지도 속에 남아 있는 청계천의 변화상에 주목하여 그 역사의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하였다. 지도에서 제공하는 정보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서울시정사진, 영상 자료 등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서울시정사진은 1957년~2002년까지 서울시 공보실에서 촬영한 사진들로 서울 발전상과 시민생활상을 상세히 담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땅을 그린 그림, 지도(地圖)는 한 도시공간의 변화상을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고, 시대별 공간 변화를 비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료이다. 지도 속 청계천의 역사는 곧 서울의 600년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며, 서울의 도시공간 가운데 청계천은 가장 극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변화의 과정에는 우리가 청계천에 바랐던 시대적 요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의 기억 속 청계천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어린아이들은 맑은 물이 흐르는 ‘복원’된 청계천만을 기억할 것이다. 장년층은 복개 시절 청계천로와 청계고가도로 교각 사이를 누비며 헌책방, 세운상가의 전자제품, 빽판 등을 사러 ‘청계천’을 헤매었던 기억이 더해져 있을 것이다. 좀 더 나이든 노년층이라면 1950~70년대 판자촌이 빼곡했던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도 함께 떠올릴 것이다. 참으로 다양한 청계천의 모습이고 기억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청계천에 대한 각자의 기억들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전시내용은 크게 4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개천(開川), 일제 강점기의 청계천(淸溪川), 해방 이후~1990년대의 청계천로(淸溪川路), 2000년대 새롭게 돌아온 청계천의 모습을 각 시대별 지도 속에서 찾아 그 변화를 추적해 보았다.

제1부는 ① 한양漢陽, 산과 물길의 도시 ② 개천開川 : 서西에서 동東으로 열린 도성 안 큰 물길이라는 주제로, 조선시대에 ‘개천(開川)’이라 불리며 한양도성민의 삶 한가운데를 흐르던 명당수이자 생활하천으로서의 청계천을 조명하였다. 아울러 개천을 관리하기 위한 국가적인 정책이 반영된 지도를 통해 당시의 개천이 백성들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청계천의 첫 이름인 ‘개천(開川)’을 소개하는 <천하도(天下圖)_한양도(漢陽圖)>를 시작으로, 한양의 산수지형(山水地形)과 개천의 원형(原型)을 파악할 수 있는 <한양도(漢陽圖)>를 선보인다. 그리고 <사산금표도(四山禁標圖)>, <수선전도(首善全圖)> 등을 통해 개천을 준설하여 퍼낸 흙으로 만들어진 가산(假山)의 위치와 영조의 대준천 이후 개천 관리의 임무를 맡은 준천사(濬川司) 등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제2부는 ① 청계천淸溪川 : 맑은 이름을 얻었으나 더러워진 물길 ② 대경성계획大京城計劃’ 속 청계천 복개覆蓋 계획의 주제로 일제 강점기 식민지배하의 청계천 상황을 들여다보았다. 청계천(淸溪川)이라는 맑은 이름을 얻었으나 북촌(조선인 거주지)과 남촌(일본인 거주지)인 동[洞]과 마찌[町]의 행정구역을 나누는 경계선이 되면서 점차 정부의 관리에서 소외되어 치안과 위생의 사각지대로 오염되어 가는 청계천의 상황을 살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전쟁의 기운이 짙어지면서 청계천은 도시관리계획 차원이 아닌 대륙병참기지화 정책의 일환으로 복개되어 도로가 될 운명에 놓였고, 그에 대한 일제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복개 계획이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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