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이 성불을 하지 못하고
큰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에 팔만 사천 가지의
수많은 번뇌망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많은 번뇌 가운데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증애심(憎愛心),
곧,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증애심이 완전히 떨어지려면
크게 깨달아,
무심경계를 성취해야 합니다.

무심삼매에 들어가기 전에는
경계에 따라서 계속 증애심이 발동하므로
이 ‘증애심’이라는 병은
참으로 고치기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부모와 같이 섬기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불교에서는 ‘용서’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은
나는 잘했고 너는 잘못했다,
그러니
잘한 내가 잘못한 너를 용서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상대의 인격에 대한 큰 모욕입니다.

불교에서는
‘일체 중생의 불성은 꼭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성불해서 연화대 위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이나
죄를 많이 지어 무간지옥에 있는 중생이나
자성자리, 실상(實相)은 똑같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죄를 많이 짓고 나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부처님같이 존경하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모든 일체 만법의 참모습은 항상 청정합니다.
유정, 무정 할 것 없이
전체가 본래 성불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 모두를
전부 다 부처님같이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불교의 근본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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