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청주교구청 교정사목 이길두 신부

 

삶의 목적이 뚜렷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능력을 준다고 한다.
내가 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묵상하며 살아야 한다.
스스로 “나는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고 운도 없고 병이 항상 떨어질 날이 없고...”
이렇게 되뇌면 하느님도 우리에게 “그래 너는 별 볼일 없고 운도 없고...”이렇게 대해 준다.
몸이 좀 아파도, 근심이 조금 있어도 “방금 전까지 아픈 것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하면 편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래서 "아픈 것도 습관이구나."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아. 아플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하면 하느님이 모른척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 고쳐주었는데도 자꾸 아프다고, 이제 문제가 다 해결돼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데도 방금 전까지 무언가 안 되었던 사실만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자기 앞에 스스로 불행의 그늘을 드리우는 사람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고 기쁠 수 있는 존재이다. 내일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일 일이 아니라 한 시간 후의 일을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늘 밝고 주위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치 자신이 불행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듯이 찌들어 있는 사람이 있다. 자꾸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하고 받아주니까 나쁜 것만 끌어안고 살게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을 괴롭히는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고요히 하느님 앞에 앉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어떤 집착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문제를 내가 붙들고 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인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히 놓아버려야 한다. 그냥 하느님께 맡겨 버리는 것이다. 그 순간 가슴이 시원해진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선언해 주면 된다. “나는 나다” “나에게는 하느님이 계시다” “내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겼는데, 맡겼을 때 남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남는가? 살며시 들여다본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 않을까?

살다보면 가끔 별다른 원인도 없는데 슬프고 외롭고 불안할 때가 있다. 삶에 대한 우수가 물밀 듯이 밀려와 가슴이 저려올 때가 있다. 그 때 속절없이 “내가 늙었구나, 내가 왜 이리 약해졌지?”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스스로도 다른 사람도 그것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육적인 상처에서 오는 허전함을 이겨보려고 돈에 매달리기도 하고, 명예에 목숨을 걸기도 하고, 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채워지지 않는다. 영적인 성장을 위한 삶을 살 때라야만, 영혼의 평화가 올 때라야만 그 상처가 아물어 슬픔과 외로움이 사라진다.
영혼의 성장을 위한 삶을 살려면 가슴이 기쁜 일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랑해야 한다. 소유욕과 이기심에 집착하는 삶을 통해서는 영혼의 존재를 느끼기 어렵다. 물론 머리로야 알 수는 있다.
이기심과 소유욕과 피해의식과 자만심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우리 가슴에 있는 하느님의 소리,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은 평화롭고 자신감이 있고 당당하다. 그러나 영혼을 모르고 하느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성공한 것 같고, 건강한 것 같아도 무언지 모르게 외롭고 허전하여 항상 허겁지겁 살게 된다.

진정한 건강이란 무엇인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놀러왔다가 때가 되면 돌아간다.
놀다 보니까 함께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자식도 생기고, 일도 생기고 그러는 거다. 놀다보면 때로 질수 도 있는 것이고. 놀이에서 한두 번 졌다고 너무 심각해 할 필요가 없다.
삶을 놀이라고 생각한다면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사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병이 났다고 해서 삶을 포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놀 때, 놀이에 열중한 아이처럼 일할 때 최선을 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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