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종 목사

넷, 행복의 열쇠는...

결혼을 할 만한
나이가 된 젊은이들이 나누는 얘기를
듣게 될 때가 있습니다.
짝이 될 사람의 재산 정도,
학력, 생김새와 같은 것들이
주된 관심사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따금씩 현재의 조건보다는
인간성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듯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을 볼 때면
입가에 미더워 괴어오르는
잔잔한 웃음을 짓게 되는데,
이만저만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헤쳐 갈 길이
쉽거나 단순하지는 않을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난 뒤에는
두 손을 모으곤 합니다.
건강한 생각을 안고 있는 젊은이의 앞날에
장애물이 적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 모은 손에 담는 겁니다.
더욱이 그렇게 말하는 젊은이를 보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어쨌거나 때때로 어려움도 있고
거친 일도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는 것,
다만 건강한 사람이라면 건너야 할 물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넘어야 할 고비를 두고 돌아서지 않는 것,
그리하여 언덕 너머에 있는 것을 마침내 보고,
물 건너에 있는 것 또한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산을 오르지도 않고 산 너머에 갈 수 있게 되고,
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도
얼마든지 강 건너에 닿을 수 있는 방법들이 생겼는데,
그런 까닭에
인생의 장애물도 그리 넘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수많은 현상들을 느낄 때마다 이만저만 걱정이 아닙니다.
인생의 길에는 결코 지름길도 없고,
산이나 강을 그냥 넘겨주거나 건네주는 교통수단이 없음,
그래서 건강한 사람만이 삶의 길을 잘 갈 수 있음을 모르지 않는 까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있는 사고의 오류 가운데 하나는
행복이 좋은 조건이나 상황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조건이나 상황은 확실히 중요합니다.
일의 진행이나 결과는
조건과 상황에 의해 그 성패가 갈리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성패가 행복에 이르는 길이 되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살이라면
조건과 상황은 그만큼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좋은 조건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두고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이 행복의 열쇠는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조건이나 상황으로 행복을 지을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행복일 수는 없고,
삶의 행복을 염두에 두고
사람들의 갖가지 상황들을 생각해 볼 때
좋은 조건이나 상황이 곧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등식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조건이나 상황에 앞서는 그 어떤 것이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불행한 사람을 많이 보았지만
행복한 사람은 몇 사람을 겨우 알고 있습니다.
조건이나 상황이 좋지만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도
제법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도구를 갖고 있는 것이
곧 좋은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이는 나름대로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사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곧 행복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모습도 많이 보았습니다.

중요한 발견은 행복은 외면적인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서 나는 조건과 상황을 행복의 열쇠라고 하지 않고
단지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 행복의 열쇠는
그 어떤 조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바로 각자가 지니고 있는 삶의 태도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조건이나 상황은 때로 삶의 유익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파멸을 부르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도
그 이상으로 많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또한 나는 조금 전에 불행한 사람을 이를 때에는
'보았다'는 표현을 했고,
행복한 사람에 대해서는 '안다'는 말을 썼는데,
불행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관찰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도
그것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행복한 이들에 대해서는
그만큼 신중하게 살피고
또 진지하고 고려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그 용어의 사용으로 암시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내린 결론은
행복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태도로부터 온다는 확인이었습니다.
그것이 모든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람직한 태도는 언제나 바람직한 결과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어려움이나 불리함까지도
삶의 유익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도 보았습니다.
그러니 좋은 조건을 찾는 젊은이보다는
건강한 태도를 지닌 젊은이를 보았을 때 두 손을 모으게 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일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에 대해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건을 선호하는 젊은이는 그냥 지나치고,
내가 보기에 바람직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 젊은이가
앞날을 잘 열어가기를 바라며 두 손을 모았던
내 사고의 편향성에 대한 뉘우침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런 젊은이들을 보았을 때에도
그들이 건강한 태도를 갖게 되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고
두 손을 모아야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선 자리를 한 번 자세히,
그리고 꼼꼼하게 되살필 때가 되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음을 불행으로 여기지는 않았는지,
생김새가 신통치 않아서 불행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배운 것이 적거나,
다니고 있는 직장이 내놓고 자랑할 만한 곳이 못 된다는 것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수입이 적다는 것과 같은
외형적인 조건들 때문에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지는 않았는지를
한 번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불만이 곧 불행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스승으로 모시는 어른이 몇 계시는데
그 중 한 분이 하시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핵무기가 얼마나 반생명적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없어져야 할 것이라는 쪽으로
논의가 모아지고 있을 때
이 분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하신 말씀은
'핵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핵이라는 것은 몹시 위험한 것이고
없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러나 현실에서 그걸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를 생각해야 하며,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핵이든 돈이든
어떤 사람이 그것을 맡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결론을 지으셨습니다.

그 이야기의 뒤에 나는
그것도 다른 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사자인
내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느냐는 물음으로,
그리고 질책으로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소유보다는 그것을 소유한 이의 태도이고,
그것이 바로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보는 겁니다.

살면서 나는
생김새에 대해 무척 신경을 쓰는 사람들을 제법 많이 보아왔습니다.
나 또한 젊을 때에는
거기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가만히 보니
본바탕은 아주 잘 생겼을 사람이
살아오는 과정에서 억눌리고 비틀리고 시달리면서 찌들어
아주 볼품없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모습의 사람들을
또한 적지 않게 보았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본디는 그저 그렇게 생긴 모습을 타고났으나
살면서 자신감에 넘치고,
이런 저런 기쁨들과 행복을 많이 경험한 결과로
충분히 매력적인 중년의 생김새를 지니고 있는 사람도
꽤 보았습니다.
태도가 생김새까지도 결정한다는 뚜렷한 증거였습니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외면적인 조건이나,
놓여있는 상황이 어떠냐 하는 것이
삶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좀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만,
이 문제는 우리의 행복여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행복의 씨앗을 심는 이의 마음가짐을 지니게 하는 데에
이 글이 도움이 된 분이 단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나는 그것으로 또 넉넉하게 행복할 것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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