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조화윤 교무

어제도 별 날이 아니고 오늘도 별 날이 아닌 것 같았는데
그동안 행 하였던 모든 일들과, 오며가며 만났던 모든 인연들이
하루하루 쌓여 어느덧 한해가 되었다.

이때가 되면 어지럽게 흩어진 것들은 바르게 놓고, 돌아보지 못한 것들은,
연말이라는 핑계로 챙기게 되는 분주함이 있어 은근히 좋기도 하다.

좀 걸어야겠다 싶어 마당을 돌다가, 뽑지 않고 그대로 둔 쪽파가
겨울기운에 얼은 채로 텃밭에 있어 울타리를 밀고 들어섰다.

수확은 신통치 못했지만 고추와 땅콩과 고구마들이 자라던 곳에는
겨울의 싸늘함이 틈도 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위나무들도 둘러보는데,
가만히 발을 멈추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손이 닿지 않는 나무줄기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호박이다!

새한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목을 길게 빼고 그 호박 을 쪼아 먹고 있었다.
연신 고개 짓을 하며 찍어대던 새가 날아간 뒤, 나무 밑에 가서 살펴보니
호박 속 까지 부리가 들어가지 못했는지 껍질에만 콕콕 흔적이 있다.

손이 닿았으면 분명 땄을 호박이, 깊은 겨울이 되기까지 용케 매달려 있어
새의 먹이가 되어주고 있으니 호박도 새도 애처로우면서 은혜로운 모습이다.

양껏 욕심 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겨놓는 여유를 행한다면
남겨진 만큼 누군가에게 필요가 되어줄 텐데.....

“한 숟가락 더 먹고 싶다 할 때 숟가락 놓아라” 하시던 외할머니의 단호한 모습이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내 마음속에 출현했다.

차마 내주지 못하는 어떤 욕심이 내안에는 없는가?

시시조공(時時照空) 하자!
때때로 텅 빈 본래 마음을 비춰보고
가득 찼거든 얼른 비우고 그대로 허공이 되자
텅 비었기에 모두를 받아들이는 허공이다.
우주를 내 품안에 안아보는 마음이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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