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종 목사 행복이야기

이번에 나는 행복의 재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해야 하고,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안타까움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다
그것이 만들어지거나 존재하는 데 필요한 재료가 있습니다.
행복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 재료는 크게 주재료와 보조재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재료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이미 알아보았습니다.
복습을 겸해서 다시 한 번 짚어보면
'지금 여기 있는 나'입니다.
앞에 있는 수식어를 생략하고 그냥 '나'라고 해 봅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게 되는 모든 경우의 '나'라는 말에는
거의 '지금 여기 있는'이 생략된 것으로 보시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 또한
앞으로 자신이 어떤 말을 하면서
'나'라는 용어를 쓸 때마다 거기에
'지금 여기 있는'이 생략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쓴다면
삶의 질이 뚜렷하게 달라질 거라는 점도
아울러 짚어두고 넘어갑니다.

주재료가 주어졌으면 이제 보조재료를 구해야 합니다.
내가 주재료와 보조재료를 구분하는 것은
그 중요성에 있어서의 비중이나
가치의 크고 작음을 전제한 개념이 아님도
미리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단지 행복해야 할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점에서
나머지 것들을 보조재료로 구분한 것으로
개념상의 차이일 뿐이니
차별적인 의미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요성이나 가치에 있어서 차별적인 인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주 요긴한 인식입니다.
이것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싶을 수도 있으나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재료의 주와 부를 구분하는 것을
이미 지난번에 말씀드린 중심과 중심은 있으나
중심과 주변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되짚는다면
이해가 좀 더 쉬울 줄 압니다.
따라서 '누구의 행복이냐'고
행복의 주체를 물을 경우에는
주재료와 보조재료라는 개념이 가능하지만
행복 자체가 주어가 될 때에는 주와 부를 나눌 수도 없고,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이제 그 보조재료가 무엇인지를 밝힐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입니다.
이 말에 식은 웃음을 지을 이들이 있을 수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이
행복의 재료라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이 말에 고개를 저을 사람 가운데
사람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것이나 거슬리는 것들,
또는 불쾌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고,
그것이 적지 않은데
어찌 '모든' 것이 행복의 재료일 수 있느냐고
물을 이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자신있고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그런 것들까지도 모두가 다 행복의 재료라고 말입니다.

부정적인 것이나 거슬리는 것,
또는 불쾌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할 자리가 다음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은 이쯤 해두고
이야기를 진행시켜 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하나 무지개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일곱가지 색깔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
한 가지 음식만 가지고는 건강을 유지할 수가 없음을
예로 들어 두고 지나갑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교육과 학습을 받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중요한 것에 대한 교육이나 정보는
거의 그런 교육이나 학습에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에 대한 것은
거의 교육내용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정보의 대부분은
우리의 행복노선에 혼란을 주는 것들이라는 사실은
어찌 보면 끔찍하기도 합니다.
그런 교육에서 우수한 사람을 인재(人才)라고 부르는 것도
그리 탐탁하게 여길 일은 아닌 것 같고 말입니다.
수없이 많은 학문과 학설이 있으나
행복론이나 행복학은 그 분야가 존재하지도 않은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것은 교육이나 학문을 비판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그 무엇도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럴 만한 자리에 있지도 않고,
그만한 식견도 없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비판이라는 것이
설익은 인격에서 나오며,
비판하는 자신의 심성을 황폐하게 한다는 것은 아는데,
그것을 알아차린 뒤부터는
그 무엇도 비판하지 않기를
거듭 훈련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나 교육의 부재는
어쩌면 행복해지는 일이
당연한 것이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냐는
변명을 해 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현상을 놓고 볼 때
그런 것이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학문이나 교육, 또는 정보들은
오히려 행복해지는 일에 많은 혼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짚어 둡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재료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음식의 경우 요리를 해야 하고,
약재일 경우 조제를 하며,
그것이 다른 자재일 경우에는 건축이나 공작을 해야 합니다.
그럴 줄 안다는 것은 재료를 다룰 줄 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재료나 자재들 또한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행복의 재료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다루면 행복이 나오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불행의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특별한 솜씨가 없다는 까닭에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모든 요리나 조제, 또는 공작이나 건축에는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하지만
행복의 요리나 조제에는 그렇게 까다로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태도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나와 함께 있는 '모든 것'이
행복의 재료라는 인식이면 충분합니다.
물론 살다보면 어떤 것은
나를 불행하게 하려고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것까지도 행복의 재료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장애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이야기할 때
다시 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우리는 출발점에서 그리 멀리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틀림없는 사실은 이
미 우리는 행복을 향한 길에 이미 들어서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 가는 기차에 앉아 있으면 의사와 상관없이
서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얼마 가지 않았을 때에는
차가 섰을 때 내리기만 하면 그 있던 자리로 돌아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길은 틀림없이 서울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방향은 분명하게 설정된 것이 아니냐며 씨익 웃어봅니다.

벌써 이야기를 접어야 할 때입니다.
모든 것이 행복의 재료라는 말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쯤에서 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있는 것들에 대해
의미있는 눈길 주기'입니다.
집을 나오자마자 하늘을 본다거나,
늘 그 자리에 있는 어떤 것에 지각된 시선 보내기,
일상을 함께 하는 사람의 자주 보이는 모습에 눈길 주기,
이런 것들은 얼마든지 많은데
그 중 한 가지만이라도 틈나는 대로 해 보는 겁니다.
그러면 온 몸의 세포들이 새로워지기 시작합니다.

인생, 그것은 너무도 소중한 겁니다.
단지 우리가 그 소중한 것을
그래서는 안 되는 것과 바꿔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입니다.
인생이 그러하듯 세상 또한 너무도 아름다워
황홀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별 것도 아닌 유혹과 맞바꿔버리거나
아니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저 그러려니
흘려 지나친 일이 너무 많았음도 아울러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다시 출발입니다.
확실히 달라지기 시작했음을
일상생활에서 이미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행복여행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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