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 무미, 무취한 단순한 물질

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동서양이 다르다. 서양사람들은 무색, 무미, 무취한 단순한 물질로 생각하고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반면, 동양인들의 눈에는 자연의 근원이면서 물 속에는 인간의 정신이 녹아 있다고 비춰진다.
 

노자(老子)는 그의 도덕경에서, 『선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모든 만물을 자라게 하지만 높고 깨끗한 곳에 있으려고 다른 물건과 다투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늘 싫어하고 천하다고 여기는 곳에 스며들려고 한다.』라고 물을 얘기하였으며, 장자(莊子)도 비슷한 관점으로 물을 바라보았다.
 

찻잎은 물로 우려낸다. 다인(茶人)들은 차향을 음미하기 위해서 좋은 물, 즉 진수(眞水)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옛 다서(茶書)에도 차를 끓이거나 우려낼 때의 물은 맑고 살으며 달고 가벼워야 한다고 했다. 이런 조건을 갖춘 물은 어떤 물일까. 아마 산속 바위 틈에 흐르듯 고여 있는 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산과 들은 오래 전부터 오염되기 시작하여 근동의 유명한 우물물도 식수로 쓰여질 수 없고, 산의 약수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차를 구하였다고 하여도 우려내는 물이 좋지 않으면 차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 차를 우려낼 때에는 가급적 살아 있는 자연수를 사용하는 게 좋으나 이 또한 쉽지 않다. 그러므로, 수돗물을 하루쯤 묵혀 사용하거니 생수를 쓰면

차의 향과 맛을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물은 차를 차답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물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면도 없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중요성을 잊고 있다.
 

물은 노자의 말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겸양의 덕을 지니고 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모아서 대양으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큰 바위는 거슬러 피해가면서도 본성은 도도하게 유지해 간다. 우리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주어진 짧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본성을 간직할 수도 있고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릴 수도 있다.
 

다인(茶人)들이 차에 함유된 고유의 맛과 향기를 간직하기 위해서 좋은 물을 어렵게 구하려고 노력하듯 비록 세속에 물들어 허둥댈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일지라도 가끔은 낮은 곳에 임하면서도 자랑하지 않는 물을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져보고 싶은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사)한국차문화협회 충북지부장/(사)충북전통문화협회 이사장 박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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