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를 씻으며...
장독대를 씻으며...
  • 손혜철
  • 승인 2010.11.11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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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으로

친정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으로 우리 네 식구가 가는데 두 명만 탈 수 있는 차에는 아빠와 딸이 타고, 나와 아들은 북부정류장에서 고향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남편이 집에서 정류장까지 십리가 더 되는 길을 마중을 나와서 나와 아들은 한 자리를 둘이서 나눠 앉아 친정에 도착을 했다.

따끈한 햇살은 들녘뿐만 아니라 우리 집 장독대도 어김없이 보듬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끼 낀 바닥과 빗물이 튀길 때 올라붙은 흙들로 얼룩진 장독의 겉모습에서 나는 세월의 흐름을 느꼈고, 장독의 뚜껑을 열어 본 나의 가슴은 까맣게 물이 들고 있었다.
언제쯤 빨아서 덮었는지 먼지가 풀풀 날리는 항아리 입구의 싸개 천과 삭아서 끊어져 가는 까만 고무줄이 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의 가슴에 뭉클하게 솟아오른 것은 엄마의 바지런하시건 옹이박인 손길과 구부정한 허리와 아픈 다리를 이끌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동생 댁들의 수고로 만들어진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운 뒤 아버지의 슬리퍼를 신고 모자를 눌러쓴 나는 바지의 단을 접어 올리고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서 바가지를 하나 띄우고 햇볕이 쨍쨍한 오후의 시골길을 걸어 텃밭으로 나갔다.
커다란 밀짚모자를 눌러 쓴 것은 내리쬐는 강한 햇볕을 가리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평상시 부모님의 의중을 제대로 읽지 못한 나의 속내를 감추기 위한 나의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엄마의 동동걸음에 덩달아 바쁘게 움직이며 발자국을 떼어놓던 아침등교 길의 출발점이었고,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도 들에 계시던 아버지께 저녁 진지 드시러 오시라고 심부름 가던 길이었으며, 내가 집에서 나갈 때나 들어올 때 언제나 거치던 나의 울타리였던 이 길, 이 마당, 이 터전....

손과 발이 다 닳도록 열심히 살아오신 내 부모님!
당신들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자란 이 장녀는, 이제 엄마라는 이름표롤 달게 해 준 장성한 딸과 아들을 보물로 두었다.
살아가면서 당신들의 자리가 새록새록 고맙고 안타까움으로 커져만 간다.

단지의 까만 싸개 천을 걷어 수돗가에서 빨아내자니 처음에는 거품도 일지 않더니만 엄마의 정성처럼 계속 씻고 또 씻으니 까만 때 자국이 점차 말갛게 헹궈진다.


부모님 마음속에 풀지 못한 삶의 한 자락과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아픔이 뚝뚝 떨어져 수채 구멍을 지나 논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그것이 허투루 쓰이지 않고 무엇인가 키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빨래 줄에 너울거리는 천들을 보면서 부모님의 투박한 손길과 애잔한 사랑으로 자란 5남매의 함박웃음을 바지랑대에 바쳐서 널어두는 곳이라고 부모님께서 생각하시기를 꿈꾸어 본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단지 입구에 붙은 흙먼지를 수세미로, 단지 안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씻어 낸 뒤 항아리 속의 까만 장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이 뒤틀려졌다.
고추장 항아리 입구에 낀 검은 곰팡이와 된장의 쉬를 건져 내면서 나의 환부를 도려내지 못함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더위와 추위를 용하게 견뎌내며 곰삭아 가는 항아리 안의 장은 알맞은 시기에 손봐주지 못했음에도 이렇듯 각기 제 자리를 잘 버티고 있는데 나는 언제쯤이면 잘 발효되고 숙성되어서 진정한 맛을 낼 수 있을지....?
요원한 자신을 발견하고는 새삼 부모님의 사랑에 가슴이 얽매여 온다.

빨래 줄에서 말린 천을 내려서 새로운 고무줄을 끼워 넣고 단지 입구를 감싸면서 마음속으로 다짐을 해본다.
“그래! 나의 안타까운 이 감정을 언젠가는 거두어 낼 날이 오겠지?” 하면서.....

단지 안의 간장, 된장, 고추장과 갈무리 해 놓으신 곡식들을 보면서 5남매에게 나누어주실 사랑이 여기에 또 쌓여 있구나 싶어서 다시금 울컥하는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의 화수분인 부모님을 정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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