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포증 탈출, 정답은 없지만 방법은 있었다

영어 낙제생 출신이 영어로 강의하는 강사가 되기까지!

처음에 이 책의 원고를 건네받고 한 줄 한 줄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저자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기 시작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영어를 처음 배우던 중학생 때 이후로 나이 50이 다 될 때까지 영어는 자신에게 아킬레스건이었으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넘을 수 없는 철옹성과도 같았다고 과거를 회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이 책에 공개된 그의 성적증명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교 3년 동안의 영어 성적이 그야말로 최하위 낙제점수였다. 그런 그가 각고의 노력으로 해외에 근무하면서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영어로 업무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역이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그러다 보니 저자는 자기계발을 위해 영어가 간절히 필요했다. 그래서 50이 다 된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영어책을 펼치게 되었고,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 정말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보통사람으로선 정말 하기 힘든 것을 실천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CNN 뉴스를 듣고, 영어신문을 읽고, 계속해서 외국인과 영어로 소통함으로써 영어 회화가 자신이 목표했던 것 이상으로 발전했다. 그런 생활에 젖다 보니 영어에 재미를 느꼈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의 영어 실력은 급속도로 향상되기 시작했다.

오늘에 이르러 저자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영어의 달인’이라고 한다. 그런 호칭을 듣기까지는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뒤늦게 영어공부를 시작한 학습 초기 상황을 그는 일종의 고문이었다고 표현한다. 그동안 저자가 영어공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공을 기울였는지 짐작이 가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의 영어 사랑은 각별하다. 시간이 지나면 변할 만도 하련만 그의 영어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상당 부분 일상생활이 반복되고 그것이 몸에 배기 때문에 삶이 나른해질 만도 하련만, 저자는 60대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야말로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의지, 추진력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그는 50이 다 된 나이에 영어공부를 시작한 이후 아직도 영어공부를 하고 있고, 외국인 교육생들 앞에 나서서 영어로 우리나라 재난관리 체계를 소개한다. 그리고 2022년 2월엔 영어로만 수업이 이루어지는 KDI 국제정책대학원에도 입학했다. 또 정년 후에는 TED 강의와 통번역사를 꿈꾼다고 한다. 그의 그칠 줄 모르는 열정에 그저 경의를 표할 뿐이다.

영어만 보면 울렁증을 앓던 그가 이젠 영어만 보면 신바람이 나고 행복에너지가 넘쳐난다고 한다. 과거의 영어 낙제생이 맞은 오늘의 감동적인 현실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불행의 길목을 지나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우리의 삶엔 행복만 존재하지 않는다. 억울하지만 고통의 한계를 시험하듯 버겁고 어려운 일들은 늘 발생한다. 하지만 버티고 버티다 보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희망의 구멍을 찾든, 행운의 기회가 오든, 마음을 다잡든, 절망 같은 시간을 버티며 지내다 보면 조금씩 나아진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단지 이 책의 저자가 영어를 잘하고, 중앙부처의 고위공직자가 되고, 자신을 위한 미래의 꿈이 원대하기 때문에 훌륭한 것이 아니다. 그의 노력의 성과는 단순히 개인의 자기계발뿐만 아니라 영어강의를 통해 개발도상국에 K-재난관리를 전파시키며 국익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저자의 남다른 열정과 인내력, 그리고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이룬 이러한 성과들은 쉽게 뛰어들었다가 조금만 힘들고 벅차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교훈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야말로 부모가 먼저 읽고 자녀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훌륭한 책이다.

김재흠 저자

1964년에 시골 산골 마을인 봉화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낸 후 중학교 때 대구로 전학을 가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정신이 팔려 재수를 해 어렵게 건국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첫 직장인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이 된 후 대학원 진학은 엄두도 못 내다가 32년이 지나 석사학위 도전이라는 꿈을 이뤘다. 작년 봄에 KDI 국제대학원 야간과정에 입학하여 외국 학생들과 함께 영어 수업을 들으며 뒤늦게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다.

근무 경력

1993년 2월 총무처 7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디뎠다. 공직 내내 인사업무를 맡았으나 2018년 해외 복귀 이후로는 재난 부서에서 경력을 쌓았다. 행정안전부 수습지원과장을 시작으로 안전개선과장, 재난복구정책관, 재난협력정책관을 거쳐 작년 2월부터 국가민방위재난안전교육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10년 7월, 늦은 나이에 싱가포르에서 첫 해외 근무를 하게 된 후 3년 뒤 또다시 파리에 있는 오이시디 한국대표부에서 일하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공직생활 중 한 번도 쉽지 않은 청와대 근무를 두 번이나 할 기회도 찾아왔다. 2007년엔 노무현 정부, 2013년엔 박근혜 정부 총무비서관실 인사팀에서 일했다.

강의 경력

2020년 10월 난생 처음 “한국의 재난복구체계” 강의를 한 이후로 꾸준히 재난 및 자기 계발 분야 강의를 해오고 있다. 재난수습지원과장과 본부 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얻은 현장 경험과 업무지식이 강의 준비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요즘은 지자체 공무원, 소방관, 군인 등 다양한 국내 교육생을 대상으로 국가재난관리체계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아울러, 외국 공무원이나 대학원생 등 국제 연수생을 대상으로 한국재난관리체계와 코로나19 대응 전략 등을 영어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반평생 가까이 앓아왔던 영어 울렁증을 극복한 후 더 많은 사람과 나의 경험담을 나누고 싶어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영어 학습 동기부여 강의도 함께 하고 있다.

이메일 kijah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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