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작!

그림 출처-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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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순천이가 연락을 해왔다. 수연이 일행이 청주직지축제 기간에 야시장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우석이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그녀를 만나보면 어떻겠냐는 제의에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전면에 나서지 않으며 수연이의 동태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우석이의 저의가 몹시 못마땅했다.

청주직지축제는 3일 후에나 개막했다. 축제가 개막하기 전, 야시장 구역에 축제장 전문 업체와 상인들이 몽골 텐트와 부스를 설치하고, 물건 거치대 조립과 판매할 물건 정리를 위해 사전에 자리를 깐다고 했다. 그 준비 기간에 찾아가는 게 좋을 듯하다는 순천이의 연락을 다시 받고, 곧 실천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울렁증이 시작됐다. 그 어떤 음식도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는 무렵, 순천이와 함께 청주직지축제가 벌어질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너 혼자 가라. 나까지 나타나면 수연이가 얼마나 황당해하겠냐. 나는 주차장에서 기다릴 테니, 우석이가 알려준 그 위치에서 천천히 찾아봐.”

나는 우석이가 알려준 곳을 향해 걸어갔다. 야시장은 몽골 텐트와 물건 거치대 그리고 테이블 탁자까지 이미 정리된 상태였다. 간간이 조명설치와 네온사인 설치를 하는 팀들이 전선을 바닥에 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법 규모가 큰 야시장이었다. 그 자리를 몇 바퀴를 돌았는데도 수연이와 비슷한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바로 옆 텐트 안에서 상자를 들고 나오는 여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여자의 두 눈이 흘깃대며 나를 올려다봤다. 여자는 아무렇지 않은 딱딱한 표정으로 운영본부라는 베너가 걸린 몽골 텐트 부스 안으로 쑥 들어갔다. 급작스러운 조우였기에, 그녀의 표정 이외에 그 어떤 것들도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가 아닐 수도 있었다. 자그마한 키, 살이 통통하게 쪘던 것도 같았고, 얼굴에 주름이 있었던가, 화장이 진해 그것까지는 보지 못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운영본부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한 뼘 정도의 부스 문을 열고 내부를 살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 초점마저 흐릿했다. 잠시 잠깐, 흔들리던 풍경들이 정확하게 보였다. 늙수그레한 사내와 수연이 그리고 중학생쯤 되는 사내아이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때, 사내아이가 치킨 한 마리를 시켜먹자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낮게 달린 조명등이 그 아이의 얼굴 정면으로 내리꽂혔다.

앗! 너무도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세 명의 눈동자가 일시에 나를 향했다. 나는 문을 꽝 닫고 옆으로 몸을 숨겼다.

사내아이가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아이의 생김새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아이의 모습에서 어린 내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누가 봐도 어린 나였다. 심장이 터져버릴 듯이 쿵쾅댔다. 두 손을 맞잡고 서 있는데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우석이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나쁜 자식, 그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감쪽같이 숨겼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아이가 부스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겨우 몇 발자국 걸어가 벤치에 앉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너, 세형이지?”

내 등 뒤에 수연이가 서 있었다.

“얼마 전, 우석이가 날 찾아왔었어.”

“진작에 널 만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다, 내 잘못이야.”

“저 아이, 내 아들 맞지?”

“아니, 절대로 아니야, 네 아들이 아니야, 그러니 염려하지 마. 우석이도 자기 아들이 아니냐고 똑같은 소리를 하더라, 너희 둘, 이제 나에게 그 뭣도 아니야. 그러니까 더는 날 찾지 마.”

그 순간, 사내아이가 우리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달려왔다.

“엄마, 치킨 왔어.”

사내아이가 수연이와 나를 가운데 두고 번갈아 바라봤다. 테스트 중이던 공연무대 조명이 갑자기 켜지며 아이의 눈망울 속으로 들어찼다. 흰 달처럼 생긴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그러자, 아이의 입술 아래에 작은 점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왔다.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

차마 그 신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머뭇대는 순간, 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잠시 잠깐 눈자위가 씰룩거리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랑 똑같은 위치에 점이 있네.”

서로 닮은 흔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내아이가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치킨 생각이 났는지 아이는 휙 돌아서서 몽골 텐트 부스를 향해 쏜살같이 뛰어갔다.

“우리의 질긴 인연을 그만 끝내고 싶어.”

“그동안 널 지켜주지 못했어. 수연이가 어떻게 사는지 정말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그렇게 빨리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런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어.”

수연이는 직지축제의 상징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을 등지고 돌아섰다.

“사실을 말할게. 너랑 사귀면서도 감정이 점점 우석이에게 쏠렸어. 나도 그런 내가 정말 싫었다. 그 감정을 꼭꼭 숨겼지. 그러다가 순식간에 터져버렸어. 우석이가 일방적으로 나를 어떻게 한 게 아니야, 얼떨결에 몸을 섞은 것도 아니야. 내가 원해서 그 애랑 잤어. 미안하단 말은 내가 해야 해. 너무 늦었지만 말이야.”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우석이가 널 어떻게 한 게 아니었어? 우석이 말로는 자신 탓이라고 말했어.”

“우석이가 널 끔찍하게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을 거야. 형제처럼 자란 널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겠지. 우석이라면 그러고도 남아. 그러니 병든 우석이를 그만 힘들게 해. 네 갈 길 가. 제발 부탁이야.”

나는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서로 제 갈 길을 가자며 선전포고를 쏟아낸 수연이가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녀의 검은 그림자가 빛 속으로 사라졌다. 부스 안으로 들어간 그녀, 투명인간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두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날이 모두 허깨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수연이에게 그 뭣도 아니었을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과연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정신이 아뜩하니 혼미했다.

책의 정원과 직지 숲의 상징물에 설치된 네온사인이 깜박였다. 출입구에는 긴 금줄이 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으로 저벅거리고 들어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축제의 예행연습이 시작될 모양인 듯, 현장 속으로 스텝들이 한둘씩 모여들고 무용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대금 연주가 구슬프게 흘러나왔다. 축제의 예행연습이 눈앞에서 장엄하게 펼쳐졌다.

무대 정중앙에 설치된 커다란 두 그루의 나무, 그 앞을 가린 하얀 천막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폐기물 나무로 만든 커다란 조형물이 선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향해 뻗은 나뭇가지에 커다란 달루가 묶여 있었다. 곧 금속활자 직지가 하늘에서 별처럼 쏟아지더니 달루에 하나둘씩 걸리기 시작했다. 밀랍에 새긴 활자의 틀에 구리, 주석, 납을 섞은 쇳물을 부어 만든 직지였다. 활자 떼기를 하지 않은 금속활자 모형들도 군데군데 매달려 있었다. 이어, 남자 무용수 몇몇이 무대 위로 날아오르며 공중부양을 시작했다. 직지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퍼포먼스인 듯싶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얼이 나간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때 재킷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핸드폰을 열자, 순천이에게서 온 부재중 통화가 열 통도 넘었다.

“야, 어디야! 왜 폰을 안 받았어? 큰일 났다. 네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지금 응급실로 이송 중이니 주차장으로 빨리 와.”

“우리 아버지의 몸 상태가 어느 정도래?”

“위중하대. 그러니까 빨리 와.”

나는 순천이가 있는 주차장으로 가려다 멈칫 섰다. 그리고는 수연이가 들어간 그 부스를 향해 질주했다. 숨을 헐떡이며 부스 안으로 냅다 들어가자, 치킨을 먹고 있던 세 사람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수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아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다.

“제 아버지가 지금 위독해요. 아이의 얼굴을 핸드폰으로 찍어가게 해주세요. 아버지가 이 아이를 보면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나는 두 손을 모은 채 간절하게 말했다.

“사진을 왜 찍어간다는 게야!”

수연이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노려봤다.

“수연아, 아이만 괜찮다면 그렇게 해줘라.”

“외삼촌! 그게 말이 돼요?”

“외삼촌이라고?”

나는 몹시 놀란 표정으로 수연이와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수연이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말실수를 했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보게, 나는 수연이의 외삼촌이야. 몹시 급한 듯하니, 자세한 것은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하세.”

외삼촌이라고 밝힌 그 남자가 차분한 어투로 수연이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이는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현우야, 사진을 좀 찍어줘.”

수연이가 겨우 입을 떴다. 현우란 이름을 듣는 순간, 두근대는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아이도 내 표정을 보며 놀라는 눈치였다. 현우란 그 이름은, 수연이와 내가 은행나무 속살에 새겨 놓은 먼 미래의 아기 이름이었다. 사내아이가 잠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싶었다. 그 침묵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사진을 찍어 드릴게요.”

아이의 승낙이 드디어 떨어졌다. 그러자, 수연이는 아이의 얼굴에 묻은 치킨 양념을 물티슈로 닦아줬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두 손이 벌벌 떨렸다. 조심스럽게 아이 곁으로 다가가, 화면의 초점을 맞추고는 버튼을 깊게 눌렀다. 찰칵찰칵, 메모리 칩 속에 아이의 다양한 표정이 저장되었다. 검게 빛나는 눈동자, 불그스레한 입술, 오뚝한 콧등, 그리고 입술 아래 까만 점 하나가, 렌즈를 통과해 내 눈으로, 내 가슴으로 훅 들어왔다.

순천이의 발신 번호가 화면에 떴다. 수신거절 모드를 누르자, 배경 화면에 있던 금붕어의 커다란 입이 단숨에 그 번호를 미끼인 양 먹어버렸다. 갤러리 안에 저장된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는 동안 쿵쿵대는 세찬 바람 소리가 가슴에서 났다.

나는 수연이와 외삼촌 그리고 아이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부스 밖으로 뛰어나와 주차장을 향해 있는 힘껏 내달렸다.

‘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힘들면 달루에 걸린 직지라도 꽉 붙들고 계세요.’

멀리 주차장 입구에서 순천이가 두 손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끝>

[약력]이경 소설가

대전대 대학원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 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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