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출처-장세현 작가

8

흥덕사지 금당의 보수 작업을 마치자, 아버지는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할아버지의 유품을 밖으로 끌어내라고 성화를 부렸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이른 아침부터 창고에 들어가 케케묵은 먼지를 닦아내며, 단청칠 도구를 밖으로 꺼냈다. 금세 좁은 마당 한가득 할아버지의 짐들과 칠통이 수북이 쌓였다.

달루의 우담바라는 지고 없었다. 상처의 딱지처럼 거무스레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물건 보관 방법을 설명하다가, 찾아든 가슴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먹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자리를 뜨자, 어떻게 물건들을 분류해야 할지 난감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은 그만 버렸으면 했다. 털이 닳아빠진 붓과 딱딱하게 굳은 아교와 분채 가루가 든 채기까지 차곡차곡 모아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문득 순천이 생각이 났다. 아뿔싸, 검은 양복을 만났던 일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핸드폰을 점퍼에서 꺼내 버튼을 눌렀다. 곧 순천이의 중저음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박씨가 전화를 다 했네!”

순천이는 나를 수박씨라고 불렀다. 아랫입술 아래 수박씨만 한 큰 점 때문이다.

“오줌싸개야, 잘 있었냐! 얼마 전, 우석이가 청주 탄금대에서 수연이 소식을 듣고 왔어. 그런데 수연이에게 남자도 있고, 중학생쯤 되는 아들도 있다고 들었어. 잘살고 있다면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을 것 같고.”

“그동안 미친놈처럼 수연이를 찾아다녔잖아. 그러니까 꼭 한 번은 만나봐야지. 정말 잘살고 있는지 확인을 해봐야지.”

“그래야겠지?”

“청주에 볼일이 있어서 바로 올라갈 거야. 그때 우리 만나서 의논하자.”

“순천아! 깜박했는데 말이야. 네 동생과 비슷한 사람을 전재미 마을에서 만났어. 가족을 찾는다더라? 혹시 몰라 번호는 받아뒀다.”

“그 애, 우리 집 막둥이 맞다. 혹시 학교 선생이라고 하지 않던?”

“맞아 그렇게 말했어. 잔치국수와 막걸리도 얻어먹었어. 어떻게 된 거야.”

“삼 년 전에 연락이 와서 만났어. 우리 집 막둥이는 상처가 아주 깊어. 정신이 멀쩡하다가도 순식간에 기억을 놓쳐버려. 뇌에 작은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했는데 그 후유증 때문에 가끔 정신을 잃어. 어려서 여러 집을 전전하다가 학대를 많이 당했나 봐. 마음이 붕 떠버린 날엔, 친부모를 찾는다며 전재미 마을을 어슬렁댄다. 그럴 때마다 대폿집 할매가 나한테 연락을 해. 막둥이 왔다고. 막둥이가 잠시 학교 선생으로 근무한 적도 있었는데, 점점 우울증이 심해서 그만뒀어. 지금은 병원을 들락거리며 치료 중이야. 그 날 밤에 널 만났었구나.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이었는데, 몰래 집을 빠져나가 전재미 마을을 갔다지 뭐야. 막둥이는 천성이 순하고 착해. 그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상으로 보지. 지난달에는 아버지 기일에 양부모와 함께 순천에 다녀갔어.”

“그동안 왜 말하지 않았어?”

“강미랑 허구한 날 싸움질인데 우리 집 일을 어떻게 말하냐? 지금 양부모는 막둥이가 초등학교 때 입양했어. 내가 막둥이를 순천으로 데려가겠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야. 정말 친자식처럼 여겨. 언젠가는 순천으로 데려와야지. 곧 청주에 올라갈 거야. 그때 대폿집에서 같이 만나자.”

전재미 마을 어귀에서 은행나무를 돌며 막걸리를 뿌리던 검은 양복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가슴이 아팠다. 흰쌀밥에 고깃국 먹이려고 부잣집 업둥이로 보낸 게, 되려 가시밭길로 내몬 꼴이었다. 어린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아직도 그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을까.

아버지는 밤새 컹컹 울리는 기침 소리를 냈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났어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 눈꺼풀이 반쯤 감겨 있었다. 책과 패철 그리고 경면주사를 담은 사기그릇, 붓과 먹, 벼루는 그늘에 말려 다시 보자기 싸두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칠통과 도구들은 폐기하기로 합의를 봤다. 아버지는 더는 일할 기력도 없고 버틸 재간도 없다며 간간이 넋두리를 읊어댔다. 오래된 물건들은 덕지덕지 구정물이 찌들어 어지간해서는 걸레질로 벗겨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손에 익은 연장들이라며 애착을 보였다.

창고 안에 쌓여 있던 오랜 흔적들이 사라지자, 공간이 몹시 넓어졌다. 쓸만한 연장들은 마른 수건으로 먼지를 훑어낸 뒤, 그 안에 차곡차곡 정리해뒀다.

“이래서, 자손이 필요한 거다. 안방의 벽장 안에 할아버지 유품 중에 작은 노트가 몇 권 있을 거다. 단청과 관련된 것들을 정리해둔 것들이야. 그것을 정리하는 일만 남았다. 이 많은 물건을 어떻게 남 손 빌려 정리를 할 수 있겠냐. 모두 쓰레기 처리가 될 게 뻔해. 그래서 널 애타게 찾은 게다.”

아버지는 평상에 앉아 꼬챙이를 흔들어 가며 들것과 날것을 지시했다. 할아버지의 유품이 주를 이뤘다. 방안 벽장에 쌓여 있던 한학책까지 모두 햇볕에 말리기 위해 끌어냈다. 한학책들을 여태 보관하고 있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한학에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였으니, 단지 의무감 때문에 그랬을 법도 했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책을 지역 향토박물관에 기증하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의 얼굴에 수심이 짙게 내려앉았다. 대부분 할아버지가 직접 쓴 필사본들이라서 박물관에서 받아주지 않을 듯싶다며, 혹여 갖고 있다가 귀찮아 지면 그때 소각하라고 했다. 개인사적 의미의 물건일 뿐 그다지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버지는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 방으로 들어가 눕더니 어느새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골라둔 책들 가운데는 단청 문양 채본과 색의 혼합 비율 그리고 다양한 재료들을 기록한 노트가 몇 권 섞여 있었다. 그리고 직지라고 쓰인 필사본이 그 속에 파묻혀 있었다. 직지 필사본을 꺼내 들고 후루룩 넘기자, 그 속에서 할아버지의 유언장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우리 아들 영갑이 보아라, 개성에서 피난 나올 때, 어머니와 아내가 집을 지키겠다며 남았고, 너와 단둘이 남쪽으로 겨우 넘어왔다.

내 고향은 개성시 송도면 25번지 커다란 은행나무 집이다.

고향 땅 송도면의 산천을 절대로 잊지 마라. 대대손손 집안의 터전은 개성임을 꼭 알려주길 바란다.

고 씨 집안은 단청칠을 가업으로 여기며, 그 모든 기술을 후손에게 전수하며 살아왔다. 고향에 관련된 것들을 이곳에 자세하게 기록해 둔다. 피란을 내려오기 전, 개성 고향 집의 은행나무 아래 집안 대대로 전해지던 채본, 족보 그리고 장손에게 대물림 되던 위패를 항아리 속에 담아서 묻었다. 통일된다면 그곳을 찾아가서 선산이 잘 있는지 살펴보고, 항아리를 캐어 조상님들의 유지를 잘 받들도록 해라.’

유언장에는 개성 집 항아리 속에 담겨 있는 단청문양 초안 뜨는 방법과 석채와 아교를 다루는 비법 그리고 집안의 대소사와 조상들의 기일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잠에서 깼다. 채 삼십 분도 안 된 토끼잠이었다.

“얼추 내일이면 집안일을 다 마칠 수 있겠다. 버려질 물건은 직접 소각장으로 싣고 가서 폐기해야겠다. 나머지는 볕에 더 말려서 방안 벽장과 창고 안에 나눠서 보관하도록 해라. 내가 죽더라도, 박 씨를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나머지 단청기술을 배우도록 해. 그리고 우석이는 너무 마음에 두지 마라. 수연이가 아주 오래전에 우리 집을 찾아왔었다. 네가 군대에 들어가고 난 뒤였다. 전재미 마을을 떠나기 전에 인사차 왔었다. 네 어미와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서로 부둥켜안고 울더라. 죽기 전에 손주를 안아 볼 일은 없겠으나, 이제 너도 새 출발 했으면 한다. 마음 굳게 먹고 살아라. 이젠 어떤 선택을 하든 끝을 내렴.”

창문가에 덩그렁하게 걸린 달루, 아버지와 나를 향해 밑동을 마구 흔들어댔다.

며칠 후, 늦은 저녁 순천이가 막둥이를 데리고 전재미 마을에 왔다. 미리 도착해 대폿집에서 잔치국수에다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있다는 연락을 해왔고, 나는 서둘러 잡동사니를 창고 안으로 들여놨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연이를 찾아 나설 때가 된 것이었다.

‘결혼 생활이 행복한가를 먼저 물어봐야 하나, 그다음은 십여 년 전의 사건에 대해 미안함을 에둘러 표현해야 하나? 아픈 상처를 왜 들추냐고, 화를 내면 어쩌지? 아직도 사랑한다고 고백이라도 할까? 그럼 단박에 미친놈이라고 할 테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오다가다 들렀다며, 차라리 무심한 표정을 지을까?’

갈팡질팡 온통 그녀 생각뿐이었다. 건넛방으로 들어가 점퍼를 꺼내 입었다. 누워 있는 아버지의 얼굴빛이 누런빛이었다. 미음을 몇 숟가락 뜨지도 못하고, 진통제 한 주먹을 입에 털어 넣고 겨우 잠이 들었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집을 빠져 나와 대폿집으로 가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순천이와 막둥이는 대폿집 문간방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씩 마시고 있었다.

“벌써 시작했네. 막둥이는 그동안 잘 지냈어?”

막둥이가 벌떡 일어나 인사를 꾸벅했다. 그에게 다가가 가늘고 긴 손가락을 꼭 잡고 흔들었다.

그 날은 막둥이를 몰라봤다. 어찌 알고 내게 잔치국수와 막걸리를 사줬느냐, 역시 뭔가 통한 게 있었다며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내는 말을 했다.

“우리 막둥이, 병원 치료가 끝나면 순천으로 내려가 자동차 정비소에서 나랑 같이 일할 거야. 거기서 막둥이는 회계를 볼 참이다. 내가 정비 기술은 최고지만, 컴퓨터를 잘 못하잖아. 그 방면은 동생이 짱이야. 너도 우리랑 기름밥 좀 먹을래?”

순천이는 막둥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연신 토닥거렸다. 얼굴이 너부데데한 순천이의 얼굴에 반해 갸름한 막둥이의 얼굴이 서로 겹쳐졌다. 그들의 작은 두 눈, 윗입술보다 아랫입술이 두툼한 것이 똑 닮아 있었다.

“이제부터는 박 씨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단청칠을 모두 배울 거야. 그런데 너희들 얼굴이 닮긴 닮았네. 누가 봐도 형제들이야.”

나는 순천이의 막걸리잔에 술을 가득 부었다. 그동안 아팠던 마음을 조금씩 비우자며 너털웃음 소리를 냈다. 얼굴이 너부데데한 순천이는 말술이란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파리하니 갸름한 얼굴인 막둥이는 술잔을 입에만 댔다가 슬그머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술이 몸에 받지 않는 듯해 더는 권하지 않았다.

“우리 집 막둥이는 말이야, 우리 엄니의 얼굴을 빼 박았어. 행동거지도 얌전하고 침착해. 거기다가 목청도 좋고 머리도 좋고. 나는 아부지를 닮아서 술고래야.”

“그리고 넌, 오줌싸개였고…….”

나는 순천이의 과거를 들춰냈다.

“수박씨야, 그것 때문에 전재미 동네에서 늘 왕따였다. 너만 달랐어.”

“아침마다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 얻으러 돌아다니는 널 어떻게 좋아했겠냐. 그냥 넓은 아량으로 내가 받아준 게지.”

막둥이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유독 집집이 쌀독이 텅 비었던 그해, 막둥이가 부잣집 업둥이가 되었던 사연을 조심스럽게 쏟아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죄인처럼 마음이 아팠으며, 주술처럼 늘 막둥이를 위한 기도를 읊었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러자 막둥이가 두 팔을 벌려 나를 껴안고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막둥이는 이제 다 이해한다고, 모두를 다 용서하겠다고, 온전히 제 모습을 찾기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이라며, 앞으로 전재미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했다. 순천이는 갑자기 눈을 멀뚱거리며 막둥이를 살폈다. 혹여, 막둥이가 저 너머의 세계에 자신을 꼭꼭 숨기려는 것은 아닌가 해서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막둥이가 소설을 다 써?”

나는 막걸리 트림을 꿀꺽 삼키며 물어봤다.

“막둥이가 대학 다닐 때부터 글 쓰는 재주가 있어서 문학상까지 탔어.”

순천이는 막둥이가 대학을 다닐 때, 소설가로 등단한 사실을 비장한 목소리로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가 발 벗고 도와줘야지.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대폿집으로 불러라.”

순천네 막둥이는 막걸리 두 잔을 연거푸 들이켜더니, 꼭 전재미 마을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글을 쓰겠다며, 결기에 찬 목소리로 ‘성공’이라는 구호를 외쳤다.<계속>

[약력]이경 소설가

충북 영동 출생

대전대 대학원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 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