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 시인

동지(冬至)를 하루 앞두고 있다. 이순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 『아무, 어떤』이 종려나무에서 출간되어 빛바랜 우체통 안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이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무, 어떤』 이 칼날같이 찬바람을 가르고 왔는지 책표지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우체통에서 시집을 꺼내 들자 ‘동지 때 개 딸기’란 속담이 생각났다. 철 지난 절기에 딸기를 구할 수 없었던 오래전의 속담이었다. 동지 때 먹을 수 없었던 그 개 딸기를 구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김우식 시인은 ‘이순 시인의 『아무, 어떤』 이번 시집은 시인이 경험해온 생명체와의 교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그것을 심원한 사유와 감각으로 기록해간 결실이다.

진실하고도 선명한 실존적 기억에서 사물과 정서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순간을 끌어들이면서 시인은 우리에게 삶에 필연적으로 개입하는 환한 깨달음의 순간을 응시하게끔 해 준 것이다. 앞으로도 이순 시인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새겨진 이러한 시간 경험과 생명 존중의 시 세계를 가장 중요한 삶의 형식으로 삼으면서 시를 써갈 것이다. 이번 시집에 분명하게 보여준 삶의 고단함은 가혹한 절망이나 체념으로 빠져들지 않고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있다.’라며 이순 시인의 시집에서 사유와 감각이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설지 예측을 했다.

연용흠 소설가는 표사에서 ‘이 시집을 펼치면 그의 심박이 뜨겁게 닿는 곳에 자연 생태가 있다. 민들레 개망초 느티나무 매화 목련 영산홍 쥐똥나무 벚꽃 능소화 비단풀 자벌레 산호랑나비 후투티 같은 소소한 존재들이 가득하다. 이순 시인은 그들 안에서 특별히 ‘시’와 ‘삶’을 사유하고 각성한다. 혼자 그리다가 저 혼자 웃을 수 있는 경지는 그런 내력으로 터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내민 아름다운 서정의 갈피에 이 시대의 아픔이 들어있다. ‘그래, 되었다. 살았으니 되었다’고, ‘슬픔의 힘으로 또 다른 슬픔을 견딘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기도 하다.

이순 시인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대전에서 자라 한밭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 현재 도서출판 ‘문화의 힘’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2008년 <문화시대> 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속았다』(시학, 2016년), 『꽃사돈』(시시울, 2019) 있다. 현재 대전작가회의, 대전소설가 협회 회원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시 감상]

아무, 어떤

어쩌다 그림자만 조용히 지나는

아무, 어떤 낡은 골목

봄 먹은 목련 한 그루

온몸 열고 기다리다

바람 발자국 소리에

숙소갑사(熟素甲紗) 흰 치마

슬쩍 떨궈 기척하네

누가 알랴마는

조요 조요 피어서

저 혼자 그리다가

저 혼자 웃다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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