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맨발의 꽃잎들』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강경아 시인의 시선은 비극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제주를 비롯한 광주, 팽목항, 미얀마, 스페인 광장 등 국내외의 비극적 현장으로 뻗어 있다. 특히 개별화된 슬픔이나 가족사적 경계를 넘어 청년 레이, 노숙자, 제주 4 · 3 관련 유가족, 오월의 어머니 등 집단적인 비극이나 타자들의 아픔에 집중되어 있다.

발길 닿는 모든 길이 통점(痛點)이다/매캐한 연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데/뒤틀리는 비명 소리 돌담을 넘고/부릅뜬 눈과 입들은 둘레를 이룬다/커다란 돌덩이는 비석이 되어/더 깊은 어둠으로 막아버렸다/달이 환하게 비추는 다랑쉬마을/잊혀진 사람들, 묻어버린 진실/속숨허라, 속숨허라/손톱자국이 핏빛으로 스며드는 길/제주의 사월이다

―「다랑쉬굴」 전문

누가 너희에게 즉결처분의 권한을 주었느냐/여덟 명의 식솔을 거느리는 가장에게/흙을 일구는 가장 외롭고 가난한 농부에게/살뜰했던 윗마을 아랫마을 평화로운 이웃에게/누가 너희에게 손가락총을 겨누게 하였느냐/좌우로 줄을 세우도록 하였느냐

―「여순의 푸른 눈동자」 부분

강경아 시인은 1948년 12월 군경토벌대에 의한 제주 ‘다랑쉬굴’ 주변의 양민학살사건 현장을 방문하고 국가권력의 폭력에 의해 “잊혀진” 제주인들과 그 때문에 “속숨허라, 속숨허라”, 곧 ‘말해봤자 소용없으니 조용히 하라’는 의미의 현대판 전승에 묻혀버린 “진실”이 마치 살갗을 깊게 파고드는 “손톱자국”처럼 자신의 아픔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말 그대로 강경아 시인에겐 “발길 닿는 모든” 역사의 “길이” “통점(痛點)”인 셈이다.

이른바 ‘여순사건’에 관련한 시 「여순의 푸른 눈동자」 또한 “누가 너희에게 즉결처분의 권한을 주었느냐”고 단호하게 묻고 있다. 그러면서 곧바로 “타다당 탕 탕 탕 탕탕” 총살형이 집행되는 당시의 “주암초등학교 운동장”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지금도 “구천을 떠도는” “통한”의 “혼”들이 “밤하늘”의 “차디찬 별이 되”어 “날카롭게 빛나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역사적 단절의 시간을 순식간에 뛰어넘는 순간적인 합일을 통해, “눈”과 “입”을 “가리고” “역사를 지우”며 “수장해버”린 “침묵의 말”(「애기섬」)들을 영원한 현재로 재소환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대 가신 의로운 길/정의가 이기는 길/가야 한다면/나는 가야겠네/혼자서라도/나는 가야겠네

―「오월의 어머니」 부분

‘오월의 어머니’들은 단순히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그로 인해 고통받는 여인들이 아니다. 국가 폭력에 희생된 자식이나 가족을 대신하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싸우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투사”다. 정의가 세상의 모든 뒤엉킨 문제들을 일시에 해결하는 열쇠는 아닐지라도, 굳이 “가야 한다면” “혼자서라도” “정의가 이기는 길”을 가는 “의로운” 여인들을 대변한다. 국가폭력에 의해 “쓰러지”거나 “좌절”된 세상의 균형추를 바로잡고자 하는 현대판 아스트라이아가 바로 ‘오월의 어머니’들이다.

우리 손자 걱정 마라잉 다 잘 될 거신게잉 마지막 메아리가 자꾸만 깜박깜박거려요 간, 쓸개 다 내려놓아야 닭똥 같은 눈물처럼 하나둘씩 켜지는 다섯 개의 별 퇴화된 날개를 접고 쪼그리고 앉아 끔뻑끔뻑 밤하늘을 쳐다봐요 눈치도 없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드는 닭벼슬이 꺾이요~ 꺾이요~ 별에 울고 별에 웃는 이곳은 별천지, 지도에도 없는 리뷰의 나라

―「청년 레이 3」 부분

수해로 인한 대참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떠내려간 소들도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는데/집과 논과 밭도, 축사 비닐하우스도, 오일장 일터도/우리들의 권리는 방수벽을 뚫고 침수되어 버렸다

―「슬기로운 당신의 권리」 부분

이른바 ‘별점’이라는 권력(?)으로 “별에 울고 별에 웃는” 더 힘없는 약자들을 괴롭히는 사태 속에서 ‘별’은 그 고유의 상징성을 잃은 텅 빈 기표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간, 쓸개 다 내려놓아야” “밤하늘”에 “닭똥 같은 눈물처럼 하나둘씩 켜지는 다섯 개의 별”이 뜨는 “별나라 공화국”은 이상적인 가상의 사회를 의미하는 유토피아(Utopia)를 가리키지 않는다. 얼핏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실상 ‘별(aster)’이 ‘사라진(dis)’ ‘대재난(disaster)’의 상태, 곧 “차라리 별이 뜨지 않는 밤이 좋”은 비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인 디스토피아적 세계일 뿐이다.

강경아 시인은 절대적 다른 타자들을 향한 자기 존재의 지향성에 그치지 않고 타자의 고통에 대한 그 책임과 의무를 스스로 떠맡는 자세를 견지한다. 그런 강경아 시인의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정의의 실현’이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건질 수 없는” 무가치한 “생명”의 시대 속에서 “방수벽을 뚫고 침수되어 버”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진정한 투쟁”(「슬기로운 당신의 권리」)이 중요하다.

하지만 강경아 시인은 아픔과 절망을 넘어서서 바닥을 노래할 때마저도 “바닥은 바닥이 알아보는 법/바닥이 서로 기대고 맞대어/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견고한 성체(聖體)가 되어 다시,/걸어 나올” 것을 의심치 않는다. “맨발의 족적이 향불이 되어 타” 올라 “부뚜막 같은 온기가 들불처럼 퍼져나”(「바닥」)갈 것을 믿으며 “뼈아픈, 한 시절 청춘이 절단난 채” “오늘도 찢겨진 콘크리트 손바닥으로/굴뚝까지 올라오는 한기(寒氣)” 가득한 세상에 “스스로 빛이 되는 작은 별들이”기를 소망한다. 모든 고통이 ‘스스로가 스스로의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히는 저마다의 별로 빛나기를 바라는 희망이 간절하게 배어 있다. 냉철한 현실 인식을 통해 비록 춥고 외로워도 시인에게 주어진 소명의식을 저버리지 않고 기꺼이 ‘맨발의 꽃잎’처럼 걸어 나가며 세상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이 믿음직하다.

시집 속의 시 한 편

보리쌀 두 말, 고무신과 비료도 준다며

너도나도 서명하라는 이장의 말에

괜찮을 거라고 별일 있겠냐고

마을 청년들과 농민들이 불려 나와

보도연맹에 가입하라고 부추기더니

좌익이 뭔지, 사상이 뭔지도 모르는

무고한 사람들이 빨갱이가 되어

마구잡이로 잡혀가는구나

아득히 멀고도 먼 고향을 앞에 두고

푸른 물결들도 발버둥을 치며 막아서는데

총소리 빗발치는 소치도 앞바다

거대한 무덤 속으로 떨어지는

맨발의 꽃잎들

눈을 감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삶이 죽음만도 못하다던 절규들이

푸른 칼날이 되어 용오름을 만들고

엄마섬 애기섬이 껴안고 울던 날

저 바람은 기억하리

반공 간첩이 새겨진 흥안호 뱃길 뒤로

하늘 높이 펄럭거리는 무표정한 태극기를

저 바람은 기억하리

―「저 바람은 기억하리」 전문

■ 시인의 말

고목에서 다시 피어나는

목련꽃 한 송이처럼

길 잃은 발들의 조문객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가 별이 되고 눈물이 돼버린

그대가 있어서, 그대여야만 해서

뼈 아픈 한 시절

겁도 없이 시집을 또 낸다

직파된 언어들이 발아가 되어

잡초만 무성한 나의 시(詩) 밭에도

당신을 닮은 초록의 뿌리 내릴 수 있을까

2022년 가을

강경아

■ [약력] 강경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 『시에』로 등단했다.
시집 『푸른 독방』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