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배 소설가

중견작가 최성배 소설가는 단편 3편, 짧은 소설 7편, 중편 1편이 수록된 열다섯 번째의 소설집 『꿈을 지우다』를 도서출판 이든북에서 출간했다.

최성배 소설가는 1986년 단편소설「도시의 불빛」을 발표하면서, 억압의 시기에 금기시했던 역사적 진실을 가진 문면의 작품성향을 출간한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점차, 도시민들의 힘겨운 현실과 불화한 그 너머에 웅크리고 있는 치욕스러운 욕망을 그려내는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장편소설『침묵의 노래』 ,『바다 건너서』 ,『내가 너다』,『별보다 무거운 바람』,『그 이웃들』,『계단아래』를 출간했으며,

소설집으로는『물살』,『발기에 관한 마지막 질문』,『무인시대에 생긴 일』,『개밥』,『은밀한 대화』,『흔들리는 불빛들』,『나비의 뼈』,『찢어진 밤』을 발표했다. 그 외에도 산문집『그 시간을 묻는 말』,『흩어진 생각들』과 시집『내 마음의 거처』,『파란가을하늘아래서는 그리움도 꿈이다』,『뜨거운 바다』 등 장르를 뛰어넘어 쉼 없이 작품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제3회 문학저널 창작문학상, 제3회 한국문학백년상, 제40회 한국소설문학상, 제40회 조연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최성배 소설가는 소설집 『꿈을 지우다』 출간하기까지 작가의 심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비가 내린다.

우수수 흩날렸던 흰 꽃잎들처럼, 저 많은 주검이 흙 속으로 떨어졌는데….

그 잔해 위로 빗줄기가 쏟아지고 후덥지근한 바람이 휘감는다.

텅 빈 공간에 스며드는 눈먼 빛이여!

헤아릴 수 없는 사물이 병들어 부서지고 녹아서 빛바랠지라도

마스크가 벗겨진 우리의 민낯을 해말갛게 닦아주지 않으련?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돋아나듯 이제 슬픔은 사라져야 한다.

길바닥에서 주워들은 소문을 기억이 짜낸 구성이지만, 매끄럽지 못한 서사는 여전히 부끄러울 따름이다.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탐욕을 구분해보려는 시도 역시, 몹시 딱한 작업이었다.

시간을 붙들어 매지 못한 채 까마아득한 시간의 그림자를 따라 여기까지 흘러왔구나.

뇌리를 드나들며 재활용품들을 긁어모았어도 별도리가 없다. 혹여, 나잇살에 스며든 잠꼬대는 아니었을까. 내가 움켜쥐었던 희망은 또다시 잔인했다.

지금은 어디쯤인가?

육신과 정신이 합성된 몸 어딘가는 까무룩 무너지고 있을 것이다.

…살아있음을 사치스럽게 여겨야 하리, 나는.

양진호 평론가는 ‘최성배의 소설 『꿈을 지우다』는 이런 곤란한 상황에 놓인 남성 개별자들의 고군분투의 기록을 담고, 또 그 어려운 과정에서 그들이 자신에게 씌워진 불가능성의 굴레를 벗고 불완전하게나마 ‘작은 사다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서사에 담아낸다.

두 명의 주요 등장인물, ‘천상준’ ‘이강열’은 ‘남성은 과거의 의미들을 이어받을 의무가 있는가?’ ‘나는 남성이라는 위치를 어떻게 해석해나가야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그 서사 속에서 끊임없이 던지며 자신만의 ‘남성’의 의미를 되찾아 나간다’라고 했다.

또한, 남성은 이제 가장, 혹은 리더로서의 권위와 같은 것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사회의 변화를 조정하고 ‘전통’을 유지할 의무와 책임만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즉, 리더로서의 지위를 모두에게 요구받거나 혹은 도전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남성’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만 이 사회의 ‘의미의 체계’ 속에 편입될 수 있는 것으로 봤다.

그는 매듭 굵은 손가락으로 해동버튼을 눌렀다. 냉동실 안에 쟁여둔 덩어리는 더 짧은 시간을 전자레인지 속에서 녹여냈다. 그는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혓바닥이 움직이는 한 욕망도 살아있다. 오뚝하고 길쯤한 콧날 끝으로 큼큼거리며 그것의 냄새를 맡았다.

마치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안소니 홉킨스의 눈빛으로 물고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철갑 같은 비늘들을 털어내어 야무지게 생긴 날선 가위를 들었다. 살아서 바다 속의 거친 물살을 거슬러 힘껏 돌아다녔을 생명이 이제는 한낱 물질로 존재했다. 위장된 먹이의 유혹을 못 참아 낚시바늘에 걸려서 잃은 목숨. 아가미 아래 수염과 뱃살에 송곳처럼 돋은 단단한 두 개의 침과 꼬리. 등지느러미에 톱날처럼 삐죽삐죽 돋아난 가시들이 날카롭다. 바늘처럼 단단하고 뾰족한 돌기들은 날이 서 있었다.

어쩌면, 바다 속에서 하늘로 솟구쳤다가 내동댕이쳐진 용이 변해서 조그만 물고기가 되었을까? 하긴, 거칠고 딱딱한 척추돌기가 한낱 물고기 지느러미로 변할 리 없다. 감성돔에게 지느러미는 생존의 무기이자, 몸의 일부이다. 그렇지만, 도미 매운탕을 끓이려는 그에게는 거추장스러워 제거해야 할 걸림돌일 뿐. 사물의 존재는 주체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생선인가? 사람인가?

소설집 『꿈을 지우다』」-일부-

최성배 소설가는 기발한 이야기들과 단단한 문장으로 끊임없는 실험정신을 추구하는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며, 그동안 소설 쓰는 과정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책 제목인 「꿈을 지우다」는 최근 작품으로 세 남자의 시점으로 구성된 중편소설로, 작가 자신의 가슴 속에 묻어둔 꿈과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한 작품이기에 무척 애착이 간다고도 말했다.

*문의: [도서출판 이든북] T. 042)222 – 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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