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부의 삶>에서 배우는 독서경영

저자 : 임유경, 출판사 : 역사의 아침

“옛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남자의 뜻, 남자의 인생”이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쓴 편지들을 통해 아버지로, 친구로, 남편으로, 오라비로, 그리고 학문적 동지로의 찐한 남자만의 향기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이 쓴 짧은 편지에서부터 긴 내용을 담은 편지까지 한문 편지 68편을 통해 조선 시대 선비들의 삶을 배워 볼 수 있을 것이다.

제1부는 “뜻을 세우다”라는 주제로 인생의 출발점에 선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말한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쉽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지키는 길을 모색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선비다운 절개를 배워 볼 수 있다. 제2부는 “벗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말 그대로 우정에 관한 편지를 만나 볼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함께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마음의 위안이 될 것이다. 편지를 통해 우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제3부는 “세상살이, 고생길”이라는 주제로 이미 벼슬길에 들어섰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뜻하지 않은 고초를 만난 이야기를 편지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살다 보면 온갖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조선 시대 벼슬길에 들어서는 사람에게는 면신례(免新禮; 조선 시대 벼슬을 처음 시작하는 관원이 선배 관원들에게 성의를 표시하는 의식)라는 고통스러운 통과의례가 시련이 되기도 했고, 구설수에 올라 갖은 비방을 당하기도 했다. 잘 나가던 벼슬길에서 시기와 질투에 걸려 갑자기 생소한 곳으로 유배를 당해 고통 속에서 여러 해를 보내기도 했다. 제4부는 “아버지로 산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가정을 이루고,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자식을 길러서 결혼시키고, 손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걸어보는 내용들로 찐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

제5부는 “죽음 앞에서”라는 주제로 죽음을 접하며 삶을 돌아본 글들을 만날 수 있다. 나이 들면서 겪게 되는 배우자, 형제 등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인생에 커다란 상처를 주게 된다. 소중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던 사람인 만큼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고통이다. 이 당시는 나이가 들어서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의술이 발달하지 못해 전염병 등으로 죽는 경우도 다반사라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감에 대한 글을 통해 삶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안동의 한 무덤에서 ‘원이 아버지’로 시작하는 한글 편지가 발견되어 사람들이 놀랐던 적이 있었다. 16세기의 인물인 이응태(李應台, 1556~1586)의 아내가 써서 관에 넣은 이 편지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조선 시대 부부들도 이렇게 절절한 사랑을 했다는 사실에 더 놀라워했다.

그런 걸 보면 우리는 무의식 중에 조선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을 우리와는 아주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철학적인 글, 역사를 기록한 글들에서 보는 그들은 대의명분으로 무장한, 감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을 듯한 그런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단단한 철갑을 벗고 머리의 관도 내려놓고 휘날리던 도포도 벗어젖힌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 <여는 글_조선의 선비, 편지를 쓰다> 중에서

과거에 응하여 세상에 나아가는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권필은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세상에 나아가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은둔한다”고 한 공자의 뜻을 좇은 듯하다. 요순 시대가 아닌 다음에야 세상에는 도가 행해지기보다 그렇지 않은 시절이 많았으므로 원칙을 투철하게 지키는 사람들은 벼슬에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허균도 인정했다시피 벼슬은 가난 때문에 할 수 없이 하기도 하는 것. 일정한 수입 없이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나 권필은 큰 욕심 내지 않고 책과 술과 시가 있으니 그런대로 견딜 만한다고 말한다. - <뜻을 세우다_나는 세상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권필이 허잠에게 쓴 편지> 중에서

추사가 초의 선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작시를 보러 오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언급이 자주 나온다.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 중일 때 초의는 6개월 동안 같이 머물며 벗을 해주었고, 뒷날 추사가 강상(江上)에서 지낼 때에는 2년 동안이나 같이 지내며 도에 대한 담론을 나누었다고 한다.

초의가 좋은 차를 골라 부쳐주면 추사는 감사의 표시로 글을 써서 보내주곤 했다. 편지는 처음부터 차로 시작하여 끝날 때에도 차로 마무리한다. 편지에 글씨를 부친다는 말이 없었더라면 추사는 늘 무언가를 달라기만 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뻔했다. 임금도 따로 부탁을 해야만 추사에게 글을 받을 수 있었는데, 초의에게는 예외여서 달라고 하지 않아도 선뜻 내주었다. - <벗으로 산다는 것_차의 인연; 김정희가 초의 선사에게 쓴 편지> 중에서

이 편지는 다산이 나이 마흔여덟에 유배지에 있으면서 아들 학연에게 쓴 것이다. 다산은 자신이 만약 이곳 유배지에서 죽는다면 무엇이 제일 큰일인가를 생각했던 것 같다. 우선 죄인 된 몸으로 불명예를 안고 죽는 것이니, 그것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불명예스럽게 죽고, 시신마저 고향으로 옮겨지면 그곳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영원히 구차스럽게 기억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정약용은 미리 유언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죄가 씻기기 전에는 장사지내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죽음을 기다리며 유언을 남기는 모습이 비장헤 보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무죄를 확신하며 하루 빨리 유배에서 풀려나기를 바라는 간절함도 엿보인다. - <세상살이, 고행길_내가 만약 이곳 유배지에서 죽는다면; 정약용이 아들 학연에게 쓴 편지> 중에서

조선 시대에 자녀를 교육하는 방법은 오늘날과 비교하면 사뭇 달랐다. 오늘날에는 자녀를 하나 혹은 둘만 낳아서 온갖 정성을 쏟고,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다 들어주는 것을 최고의 부모 노릇인 양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도처에 왕자와 공주가 넘쳐난다.

과거에는 귀한 자식일수록 예를 갖출 수 있도록 엄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믿었다. 과거처럼 지나치게 위계질서를 지키기 위한 윤리와 규범을 강요하는 것은 오늘날 실정에 맞지 않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나를 절제하는 정도의 예절만큼은 시공을 초월하여 반드시 익혀야 한다. - <아버지로 산다는 것_손자의 이름을 지어주다; 이황이 아들에게 쓴 편지> 중에서

포저(浦渚) 조익(趙翼, 1579~1655)이 죽은 딸에게 쓴 글이다. 5남 1녀 중 막내딸이었는데, 열여섯 살에 시집가 스물다섯 살에 죽었다. 결혼해서는 내외가 화목하고, 시부모에게 사랑도 듬뿍 받았으며, 영특한 아이들도 낳았다. 딸이 잘 살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그렇게 걱정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두 손녀가 죽고 사위도 죽더니 이제 딸마저 죽고 말았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하늘도 원망해보고, 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 벌을 받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도 본다. 나중에는 자신도 늙어 머지않아 죽을 테니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한다.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하니 주변 산천이 모두 빛을 잃은 듯하다는 표현이 상투적인데도 절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 <죽음 앞에서_ 주변산천도 빛을 잃었다; 조익이 죽은 딸에게 쓴 편지> 중에서

* 전박사의 핵심 메시지

일반적으로 조선 시대 선비는 가부장적이고 글만 읽는 양반이라 생각이 들 것이다. 또한 이 시대의 남자라 하면 대의명분을 앞세우고, 감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을 것 같은 인물이라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편지를 읽어보면 그들 역시 평범한 친구였고,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으며,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고 때로는 도망치고 싶어 했던 나약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편지는 사람의 속내를 가장 잘 드러내 준다. 글 속과 행간 속에서 쓰는 이의 진솔한 마음이 잘 담겨 있다. 그런데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을 것 같았던 조선 시대 남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는 게 오늘날 정서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멀리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전달 할 수 있는 방법이 편지를 써서 전달하는 길 밖에는 없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편지 속에서 당당하기만 했을 것 같은 대장부들이 세심하고 정이 가득한 남편이요, 아버지요, 친구이자 형제가 되는 모습 속에서 선조들의 참된 삶을 배워야 될 것이다.

편지라는 매체는 상대방에게 진심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비책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디지털 시대, 인터넷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서 손으로 꼼꼼하게 써 내려간 편지를 받아 읽게 된다면 상대방에게 빠지게 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손편지를 써본 적이 언제인지, 언제 손편지를 받아 봤는지 기억조차 희미할 것이다. 손편지에서 전해오는 잔잔한 그리움과 정이 그리운 시대이다. 손편지를 통해 그리움과 정을 전해보면 어떨까?

디지털 홍수 속에서 아날로그적 사고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준 선조들의 지혜를 이 책에서 찾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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