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옥

배정옥

 

“아함 아하함”

남편은 연신 하품을 해댄다.

“어흐으 피곤햐.”

남편의 중얼거림과 지지게 켜는 소리로 어스름 새벽을 깨운다.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도 이런 새벽이면 등에는 지게를 지고 늙은 암소 앞장세우고 골목길을 나서셨다. 그 길을 지금은 그의 아들이 가고 있다.

남편은 몇 해 전 반평생 해오던 일을 접고 가진 돈 다 모아 축사를 지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제역(소, 돼지, 양, 사슴 등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지는 동물에게 발생하는 제1종 바이러스성 가축 전염병)이 떠돌았지만, 열심히 소독하고 정성으로 소를 돌봐서인지 우리 축사는 무사히 피해갔다. 지금은 백신 개발과 예방접종으로 다들 걱정은 줄었다. 하지만 비싼 사료 값과 대체 농가 수가 많다 보니 옛날의 1/3도 안 되는 소 값 파동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축산 농가는 허탈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요즘은 소 값은 좀 올랐다고 하나 천정부지로 오른 쇠고기 값으로 서민들만 더 긴축정책을 해야 했다.

남편은 처음엔 비싼 사료 값을 줄이기 위해 콩비지와 옥수수 대까지 발효해 먹였다. 열심히 공부해 소 수정도 직접하고 온갖 정성을 다했다. 며칠씩 밤잠을 설쳐가며 소를 돌보아도 경험 부족으로 연이어 송아지가 죽어 나갔다. 그 허무함은 그 무엇으로 표현하랴. 수정날짜와 새끼 출산 예정일을 잘못 계산하여 막사를 지키지 못했던 어느 겨울날. 한밤중에 새끼를 낳았었던 탓으로 아침에 가보니 이미 꽁꽁 얼어 죽어있던 송아지. 미처 발견 하지 못해 장기간 설사로 탈진해 쓰러졌던 송아지. 밤을 새워 영양제와 정성으로 돌보았다. 무사히 잘 자라 큰 어미 소가 되었을 때 그 기쁨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싸늘하게 굳어버린 새끼를 끌어안고 자책도 했었다.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난했던 지난날 농가에서는 소 한 마리만 있으면 큰 부자라 했다. 송아지 한 마리만 장에서 몰고 나오면 보는 이들의 부러움을 샀던 시절, 송아지 한 마리만 메어 봤으면 한이 없겠다했던 말은 이젠 옛말이 되었다.

봄에 새 풀이 나고 한 꼴 내기만 한 암송아지 한 마리 메면, 그해 겨울에는 어미 소로 자란다. 새끼 한 배 빼서 봄까지 키워 팔면 자식들 학비를 충당했던 그 시절, 소는 재산목록 1호였다. 사람의 부족한 노동력을 몇 갑절 대신해주고 죽어서는 우리의 가장 귀한 먹거리였던 소.

농가에서 소는 꼭 식구 같았다. 아! 분명히 식구였다. 지금은 사료를 주고 물을 따로 주지만 그 시절에는 사랑채 부엌만큼 큰 무쇠 가마솥에 쌀겨, 콩깍지 썬 짚을 넣고 푹푹 삶아서 소에게 먹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죽을 풀라치면 구수하고 풋풋한 풀냄새가 났던 기억이 아스라이 내 가슴을 파고든다.

소는 현재도 미래에도 농가에서는 귀한 먹거리요 소중한 재산 목록이다. 불안함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농산물 정책은 탁상공론이고 신토불이 한우 현란한 구호일 뿐, 농수산물뿐만 아니라 중요한 사료까지 외국에 의존해온 우리다. 사료 값은 하늘 높은지 모르고 뛰고 있다. 아직도 제대로 해결책을 못 내고 해마다 반복되는지. 축산농가의 갈 길은 어디이고 우리 농촌이 갈 길은 또 어디인가. 물론 몇 년 전부터 정부에서는 폐사 권장의 지원금은 내놓은 상태이다. 그래도 요즘 들어 어느 정도 안정적이긴 하나, 언제 자유무역협정에 의해 토종 한우가 수입 쇠고기의 저가 공세에 밀려, 과거의 밀가루처럼 맥을 잇지 못하지 않을지. 누굴 탓해서 무얼 하겠냐마는 착한 국민들의 눈물을 보지 못하는 그들이 어찌 우리의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찌하랴.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느릿한 소걸음일지라도 계속 질주하는 마라톤선수처럼 멈출 수 없는 것을.

배정옥

충북 옥천 출생

2011년 월간 문학저널 시 신인문학상

2014년 한국 영농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 작품상

2014년 시집: 시간의 그늘,

2019년 수필집: 바람은 왜 한쪽으로만 부는가,

한국 문인협회 옥천지부 이사, (현)

옥천군 문화해설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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