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성덕왕 때, 견우옹(소를 끌고 가는 노인)이 꽃을 따서 수로부인에게 드리며 불렀다고 삼국유사에 실려 전하는 향가가 바로 헌화가(獻花歌)이다.

여기서의 '꽃'은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가파른 벼랑끝에 핀 진달래꽃이다.

이 노래에는 사람의 귀함과 꽃의 귀함이 함께 들어있다. 아름다운 수로부인도 귀한 존재이고, 목숨걸고 가파른 벼랑 끝에서 따 온 진달래꽃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존재이다.

한편, 돌아가신 분께 우리는 흰 국화꽃을 바친다. 여기서도 꽃은 귀함을 상징한다. 소중한 분께 귀한 꽃을 드리는 것이다.

정약용이 귀양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서 "국화꽃 한 이랑만 팔아도 몇 달 먹을 식량을 살 수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도 국화는 구하기 쉽지않은 비싸고 귀한 꽃이었던 것 같다.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명절에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조상님들의 묘소를 찾아 뵙고, 귀함의 상징인 꽃을 꽂아 드리며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갖는다.

그런데, 나에게 그토록 소중한 분들을 모신 공원묘역에는 향기도 없는 싸구려 플라스틱 꽃들로 가득하다.

귀(貴)함이 없다.

햇빛에 바래 퇴색된 싸구려 플라스틱 꽃에서는 감사와 추모의 마음보다는, 지구환경을 해치는 쓰레기라는 부끄러움이 배어 나온다. 소중한 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돌아가신 후에도 쓰레기에서 자유롭지 않게 해 드린 것이다.

나는 지난 추석명절에 조상님들을 찾아뵈면서, 이 향기없는 플라스틱 싸구려 꽃들을 모두 걷어내고, 그 자리에 작은 십자가를 놓아드렸다.

평소 내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작은 아버지께서 흐믓한 모습으로 내려다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진즉에 바꿨어야지....이눔아 !!"

우리 환경을 망치고 있는 싸구려 플라스틱 쓰레기를 걷어내면서, 소중함과 귀함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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