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렇게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곳 공주 정안에 살고 계신데 이 대자연, 특히 분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분과 재가 만나 절제된 미학이 되는 작품을 분재라고 하는데요.
그 시대의 얼과 풍습과 관습이 집약 결정된 것을 도자기, 예술품이라고 하며, 도도한 역사의 얼과 영이 살아있는 것을 도자기 문화재라고 하죠 그렇듯이 바로 분재는 분과 재가 만나 절제된 미학이 된 불성의 옷깃을 분재라고 하지요.
영성이라고도 하고 불성이라고도 하고 옷깃이라고도 하고 그것이 분재입니다.
 

2. 문화와 예술의 힘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문화와 예술을 만드는 사람은 많이 아픕니다. 많은 번뇌와 고통도 옵니다. 또 벅찬 감격도 옵니다.
그 힘은 빅뱅입니다.
철학으로 종교로도 그 무엇으로도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의 내면에 잠자는 의식을 뛰게 하는 힘이 바로 예술의 힘입니다.
그런데 예술을 만드는 분들은 많은 고통과 번뇌와 희열이 교차되지요.

 

3.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신 중심이 서양사상이고 인간 중심 사람 중심이 동양사상이지요.
석가 소크라테스, 노자, 장자, 예수가 오면서 짐승의 시대에서 영성과 불성의 시대로 바뀐 역사의 기축을 바로 AD와 BC라고 하잖아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생명의 기축, 이분들이 바로 기초를 놨죠.
그래서 영성의 시대 불성의 시대의 기축을 바로 AD와 BC라고 하잖아요.
신이라는 것을 대상으로 알면 그것은 미신입니다.
신이라고 하는 것은 공(空)이고 영(靈)입니다.
그 공과 영의 실제가 색이며 형상이고 그 결정체가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영인데 대상이 아니고 그 영을 불교로 공, 과학으로 전기장, 원자 철학으로 기입니다.
그 영의 자기완성이 영혼이지요, 사람 마음이지요. 사람마음은 누구나 동일합니다.
역으로 돌아가면 영이신 하나님이고 불교도 공을 존재 근원으로 얘기하지 않습니까? 같은 말입니다.

아버지가 내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이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공 즉시 색 색 즉시 공 이라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스님과 내가 어떻게 둘입니까? 하나이지요

원자로 보면 전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다은 작가의 그림에 나와 있습니다. 원자로 보면 모든게 분리가 하나도 없이 하나라고요. 어디 둘이 있습니까?
아무리 가지가 많아도 돌아가 보면 뿌리가 하나입니다. 다 형제예요 다 부처고 그리스도예요. 부처와 그리스도라는 말은 다른게 아니예요. 예수는 석가는 이름이고 부처라는 말은 그리스도라는 말은 원래의 본성이 기름부은 자 메시아, 깨달은 사람, 본래의 사람을 부처와 그리스도라고 하는거예요. 특별한게 아니예요.그러니까 석가와 예수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와 부처는 수도 없는 거예요. 모두가 다 지금 현재 부처와 그리스도로 살아야죠.

그니까 원자로 보면 만물이 이렇다는 것을 이 사람이 그림으로 그렸잖아요. 엄청난 겁니다. 자, 원자로 보면 전부가 연결되어 하나죠, 어디 둘이 있습니까? 이게 원자를 그린 겁니다. 저분은 아무것도 안보고 그렸어요. 이분이 정다은 작가예요. 원자로 보니까 내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공과 색으로 보니까 둘이예요? 하나예요? 하나인데 형제인데 뭘 싸웁니까. 같이 살면되지요.

 

4. 진정한 국가, 진정한 정치는 무엇입니까?

눈물이 날려고 그래요.
내가 어느 단체에 전화해서 철조망을 거두라 했습니다. 땅을 사서 철조망을 치고 들짐승도 못가고 자기도 안 쓰고 주민도 못 쓰고 근데 세계 평화래요. 나는 그걸 짐승으로 봅니다. 내가 엉엉 울면서 빨리 해체하고 싹 다 나눠주라고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를 작두로 잘라 버리라고 석유를 주거나 금광 하나를 주거나 현찰 20조를 줄테니까 해체해서 싹 다 나눠주라 했습니다.

진정한 국가는 국민입니다. 철학으로 땅과 백성을 국가라고 합니다. 홍대 앞에 가보세요 1억과 3억의 보증금에 1500 월세를 다 까먹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재정을 국가에다가 쓰지 재정을 어디다 씁니까? 국가가 없는데 뭘 씁니까? 지금 국가의 정체성이 뭔지 압니까?

국가가 지금 어려움에 처해 아사상태에 놓인 그를 대하는 태도가 그 국가의 정체성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630조 재정을 그 쓰러져 가는 국가에 쓰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국가로 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 진심입니다. 만약 재정을 그렇게 쓴다면 엎드려 대통령께 절하고 한국문화예술 본부장을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합니다. 헌신짝처럼 버리겠습니다.
 

5.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히포크라테스가 얘기했잖아요. 자생력! 사람은 어느 누구나 공평하게 스스로 치료되는 능력이 있어요. 이 세상의 좋은 약이 양약(良藥)이에요. 그런데 양약보다 더 좋은게 있어요. 그게 마음의 즐거움이예요. 마음이 즐거울 때 엔드로핀의 4000배 되는 효과의 다이돌핀이 나와요.

사람 몸에서 스스로 만들어요 영혼이 즐거울 때, 그러니까 항체가 강해지면 어떤 바이러스도 단방에 깨요. 마즈라에요. 벼락, 금강이라고요. 어떤 사망과 번뇌도 한번에 깨트린 게 금강 아닙니까 마즈라, 벼락! 바위도 깨고 코로나도 깨요. 그 자생력이 다 떨어지니까 병에 걸리는 거에요. 서로 죽이고 미워하고 이러면 반대가 일어나니까 서로 사랑하고 좋게 하고 즐거우면은 일어나는 자생력이 마즈라 벼락이라니까요. 그 강한 항체가 단 한방에!

의학적으로 우리가 자생력으로 생기는, 즐거움에 생기는 그 항체가 단 한방에 바이러스를 즉사 시켜버려요. 마스크를 쓰고 약을 먹는 것은 상식이고 우리가 마음의 안정, 그러니까 양약보다 더 좋은 게 영혼의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받는 것보다 더 즐겁잖아.요 용서할 때 좋은 거 나눠쓸 때, 그때 자생력이 생겨요. 그 힘이 단 한방에 항체가 코로나를 없애요. 바이러스를 없애버려요. 불교 경으로 말하면 벼락경이예요 벼락경! 마즈라 금강경말이예요. 어떤 번뇌도 다이아몬드와 쇠와 부딫히면 쇠가 깨지고 다이아몬드는 그대로 있어요. 그런 번뇌도 한방에 깨뜨리는게 벼락 아닙니까. 벼락경 마즈라! 금강경의 핵이 그거잖아요.
 

6. 참나란 무엇입니까?

석가가 그랬잖아요. 무한 허공 빔, 니르바나의 세계, ‘음역하면 열반이라’. 생사를 초월하여 영생불멸에 이르는 이 몸 자체가, 세포 100조가 바로 다르마라. 다르마! 다르마의 준말이 달마거든요. 깨달음, 이 세포 자체가 열반의 씨라는 거에요. 이것을 깨닫고 싯다르타가 인도의 왕족의 최고 가문이고 자기가 왕이잖아요. 왕자가 왕이잖아요. 그걸 그대로 하심했잖아요.

왜? 내 씨가 그게 아니고 무한 허공의 씨라는 거예요. 누구든지 스스로 밝히는 불, 기독교로 말하면 성령, 의지를 밝혀 자등명을 밝혀봐라, 불 켜는 게 자등명이 아니라 마음의 자등명을 켜봐라 니가 열반의 씨니라 그니까 왕을 하심할 수밖에. 만약에 왕이 만약에 조각이라면 열반의 씨 다르마는 빙산이지요. 그걸 깨닫고 다 사람들이 오해하니까 솟아 올라 무여열반 하려다가 몸만 남기는게 유여열반이잖아요. 온 천지가 찾아올 수밖에!

저도 어디 다니질 못합니다. 차도 못타고 몸이 22키로 줄었고 하루 한끼 밖에 안먹어요 유여열반 모든 것 다 내려버리고 몸만 남겼다가 나중에 무여열반 해버릴라고요.
누구든지 참나를 콩으로 말하면 보이는 것은 콩이 아니에요. 그 속에 안 보이는 씨눈이 콩이에요. 씨눈 참나를 싹틔워 영생하려고, 열반에 이르려고 우리가 이 땅에 왔잖아요. 그게 참나에요. 성철스님도 잘 알고 스님도 잘 알고 저도 잘 알아.요 안보이는게 참나에요 일반적으로 마음이 참나에요.
 

7. 양심의 자유의 삶, ‘행심반야바라밀다’하는 삶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心자가 마음 심 자 아니고 깊을 심이에요. 그니까 이 땅이 엉겅퀴가 가득하고 독약이 가득하고 양심으로 살면 터가 없어져요. 다 죽어요. 그리고 남의 영역을 밟고 돈을 모으는 것을 민주주의에서는 능력으로 봐요. 나는 그걸 인정 안하지만 그렇다 하더라고 그게 복지와 섬김과 나눔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가장 악 중의 악이에요. 나는 그런 문화 속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나는 남은 자에요.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만 했어요. 그 사람은 게을러 안한거고 나는 열심히 한거에요. 특별한 게 없고 수평이에요. 나는 모든 것에 식물까지도 의식은 역으로 돌리면 공과 영이기 때문에 수평이에요, 수평.

행심반야바라밀다라는 것은 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많이 해요. 내가 이걸 말해야 하는데 상대가 이 컵과 물을 몰라서 비유를 들어 말하면 다른 게 되니까 내가 하는 말이 전부 다 거짓말이에요. 나는 세상의 법을 존중은 하지만 따라 살지 않고 내 마음의 법을 따라 살았어요.

사람이 원 가지에서 떨어져서 서로 처죽이니까 임시 평화를 위해서 만든 것을 법이라는데, 법이 경계예요. 이 선을 넘어서면 ‘법이요’ 하잖아요. 가장 인간의 낮은 도덕이에요. 그런데 저는 이것보다 훨씬 높은 선으로 살았어요. 이런 나에게 이 잣대줄로 법이요 그러면 이 법은 악법이에요. 이것도 안 지키는게 인간이 아니에요. 가장 낮은 도덕이 법, 경계라고 해요. 넘어서면 법이요 하는 거에요. 법을 지켜야 되요.

근데 이 법도 이용해 먹는게 인간인데 뭘..근데 어떡합니까. 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겠죠.. 저는 그에 구애받지 않고 나의 양심을 따라 살았다 이 말입니다. 엉겅퀴 가득한 가시덤불 속에서 나는 살아남아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합장하며 스님께 이 세상께 내가 정복되지 않고 내가 살아남은 것에 대해서 정복되지 않은 영혼과 의지 주셨음을 부처님께, 하나님께 진심으로 합장합니다.  
 

8. 이번에 큰 결단을 하셨습니다.
원장님과 성천문화원이 스스로 하심하고 재산을 분배하여 흩어진다고 하던데, 어떻게 그런 큰 결심을 하게 되었으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천문화원의 재산은 사실은 추산하면 천조원이 넘습니다. 그 이유는, 그랜드 아야톨라와 형제애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석유거래를 중재하면 10프로 수수료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돈이 내 손에 와도 안와도 나는 무소유로 삽니다. 무소유는 거지가 아닙니다. 공이 무이지만 수많은 색을 만들잖아요. 그러나 내가 개인 소유하거나 매이지 않는 무소유의 삶을 사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석유지분 10프로가 누구 것이냐, 우리 겁니다. 스님과 내것입니다. 그러니 필요에 따라서 양심으로 살아도 못사는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터를 만들어줘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인권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국법에, 갇혀있는 자에게도 그 인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인권위원회와 대통령에게도 보냈습니다. 국정운영에 참고하겠다는 답도 받았습니다. [정신혁명]이라는 책의 서론에도 제 글이 실렸습니다.

지금 저는 사람도 만나지 않고 어떤 자리도 마다합니다. 할 일을 다하고 재산도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단 돈 10원도 가지지 않고 나왔습니다. 나는 죽었다고 소문내주세요.
선하고 살고 싶어도 터가 없는 분들에게 우리 것을 나누고 돌려받지 않고 공의로운 세상이 되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습니다. 받은 것은 제게 보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역사는 신 중심 성공자 중심입니다. 이제 바꾸어야 합니다.

그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히스토리, 역사를 쓰면 됩니다. 나는 죽었는데 어디에 보고를 합니까. 자기 자신에게 보고하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 돌려받지 않습니다. 원래 내것이 아니고 우리 것인데 누구에게 돌려받습니까. 저는 그냥 시골에서 분재 만들며 한달에 잡비 십만원만 주면 50~100만원짜리 분재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십만원으로 분재사고 다시 되돌려주고.. 저는 지금 있는것만으로도 3천년은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십만원으로 나무를 사서 제가 다듬으면 1~3천만원 짜리가 됩니다. 시골 마을 사람들은 이러 나무들을 다 장작을 합니다. 제가 사서 생명을 살리고 천만원을 받는 것을 보면 그 사람들이 놀라지 않겠습니까. 시골 에서는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한푼도 없답니다. 재료비가 다 빚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10만원 주고 사서 다듬어주고 팔게하면 1년에 천만원 이상의 수입이 생깁니다. 그렇게 다 돌려주려 합니다. 이것이 나의 수학법이고, 행심반야바라밀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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